〈 262화 〉 261화.
* * *
“그러니까 유나는 워커홀릭이라는 거네.”
“네... 뭐, 그런 거 같네요.”
“매니저 시절에 그렇게 ‘버튜버들은 몸을 아껴야해요. 관리 열심히 해야해요.’라고 말하던 유나가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니 어때?”
“...”
결국 나의 철저한 감독 및 감시는 언니에게 주어졌다.
적어도 휴가 기간에는 사고치지 말라는 유키하라 언니의 말에 나에 언니는 수락했다.
그런데 이거 마치...
관계 역전 아니야?
“우리 사고뭉치 유나 사고 못치게 관리 열심히 해야겠는걸?”
왠지 묘하게 사람 복장 긁는 표정을 지은 언니는 난생 처음으로 깐족거리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귀엽긴 한데...
뭔가 살짝 열이 받는 기분이든다.
“저, 그렇게까지는...”
“그래서 ‘친구’들 돕다가 제대로 안 쉬게? 유나 너를 부려먹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라이브 준비 그거 장난아니게 힘든 일이었잖아.”
그렇긴 했다.
솔직히 링거 맞으면서 달리기는 했지.
“그래도 지금은 스태프들도 갈려 나가면서 경험이 쌓였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원래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 부터는 좀 할만 하잖아요?”
“그리고 그 스태프들 중 40%가 병원에 간 것도 알고 있지?
그러면 인원이 부족한 기획팀을 돕기 위해서 유나도 열심히 일할 거고, 유나의 열심히는 대충 끝나지 않으니 보나 마나 무리 할거고, 그러면 유나는 쓰러지고 나는 울고 유키하라 매니저 는 혼나겠지?”
“...”
영 가능성 없는 말이 아닌지라 나는 무어라 변명하지 못했다.
확실히, 매니저가 아닌 버튜버 입장이 되니 조금 다르긴 했네.
일을 벌리는 건 쉬운데 그걸 지키는 게 보통 쉬운 게 아니다.
“그러면 그냥 유나가 즐겨하던 협곡이나 하면서 스트레스 풀어.”
일하지 말고 게임 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는 현상에 나의 이성은 오작동을 일으켰다.
그런데 버튜버 입장에서 게임은 일 아닌가?
“일이 맞긴 한데, 방송 안키면 괜찮지 않아? 어차피 3일간 쉬면서 방송 소재 같은 거 미리 생각해도 되니.”
“그... 방송 소재 생각하는 건 일 아닌가요?”
“이건 우리가 인터넷 방송인인 이상 ‘일’이라기 보다는 음... 본능에 가깝지 않을까?”
사람이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게 ‘일’이 아니듯, 인터넷 방송인이 방송 소재를 생각하는 건 일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언니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타당한 말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게임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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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껐다.
역시 이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만한 게임은 아니다.
정치와 패드립, 인간 혐오가 판치는 이 게임은 정말 어지러웠다.
오랜만에 한국의 매콤한 패드립을 본 나는 망할 협곡을 컴퓨터에서 삭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가 혀를 찼다.
“유나는 경쟁 게임만 좋아하나 보네.”
“그치만... 게임을 하면 이겨야하고...”
“어휴.”
보다 못한 언니가 나의 머리를 껴안아준다.
언니의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질거렸다.
여름의 무더운 기세가 한풀 꺾여가면서 힘이 빠진 매미소리가 창밖으로 들린다.
“우리 일 년간 정말 많이 바뀌었지?”
“네 언니.”
언니를 만나고 이상한 업계에 뛰어들었다.
고장난 인형같던 언니는 이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고
나 또한 언니의 그림자에서 간접적으로 내 꿈을 이루었다.
“언제나 나를 챙겨주기만 하던 유나를, 내가 이렇게 유나를 챙길 수 있게 되었지.”
“사실 그 전부터 언니도 제가 했던 가사일들도 해주시잖아요?
최근 들어서 요리도 도전하시던데.”
“응, 유나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을 내가 돌려주고 싶었거든.”
역시 그런건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 어쩐지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살아오던 사람이라 그런지 유나는 멈추질 못하는 것 같네.
언니는 그게 너무 안타까워.”
언니의 말이 맞았다.
이건 천성이다.
빚을지는 건 어색하다.
호의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일방적인 호의는 살짝 부담스럽다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3일이 아니고 하루라도 좋아.
커뮤니티 반응도 보지 말고, 노래 연습도 하지 말고, 그냥 나랑 이렇게 있자.”
그리고 요괴처럼 내 마음을 파고든 언니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멈춰있던 언니가 나에게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언니의 말에 매료된 나는 그 말을 따라 최대한 멈춰서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
뭐랄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비어있는 시간동안 무언가를 해야하는 게 아니었나?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고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내 노트북과 테블릿은 언니가 가져가버렸다.
나는 중얼거렸다.
“키리누키 보고 싶어요.”
“버튜버 관련된 업무는 금지.”
“에, 왜요!?”
“걔들 보면서 또 ‘내 방송에는 어떻게 할까’ ‘나라면 이렇게 해볼건데’ 이러면서 또 분석 할거잖아?”
“윽.”
실제로 그랬다.
새로운 밈도 배우는 것도 좋지만, 하이라이트 장면을 통해서 그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이런 밈을 만들었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분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팬심도 팬심이지만, 동료로서 그녀들의 행동분석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생각을 꿰고 있는 언니 덕분에 나는 침울했다.
“애니메이션은요?”
“성우 체험하고 성우 쪽으로도 진출하고 싶다는 너에게? 또 업무 분석할 거 아니야?”
제지당했다.
으으
언니는 나를 너무 잘 아는 거 같아
강아지를 조교하는 엄격한 조련사처럼 나의 행동을 제어하던 언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진지하면서도 귀여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거역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만화책.”
“업계 돌아가는 거 보려고?”
씨알머리도 안먹혔다.
쳇, 그래도 만화책 정도는 허용해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상황이 참 웃겼다.
이전이라면 ‘으으 그런거 왜 봐?’ 했던 오타쿠스러운 것들을 내가 이렇게 당연하게 찾고 있다니...
물론 나의 일 자체가 이쪽 업계하고 크게 연관성이 있는 건 맞지만
확실히 이젠 넷플릭스를 보면 드라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만 보고 있다.
뭐 그렇다고 아예 안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랑의 불시착같은 명작을 안 보면 손해가 아니지 않나?
그런데 확실히 예전보다는 손이 안 가긴 한다.
20분이면 끝나는 애니와 다르게 이쪽은 거의 40분에서 한 시간이니...
뭔가 한 화 한 화 보기 부담스러운 편이었다.
다시 침대에 누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전이라면 뭘 했더라?
선라이즈에 들어오기 이전에도 나는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비자 한도 내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인맥을 다졌다.
공부 열심히 하는 연기를 위해(사실은 이해 안가는 것들도 있긴 했지) 교수님의 연구실에 마실 걸 들고 찾아간적도 있었다.
어찌 보면 학창시절이 더 바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때는 내가 더 좋은 삶을 살고 싶어서, 내가 꿈에 다가가고 싶어서 한 일들이면
지금은 돈을 받고,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고, 나와 함께 나가는 가족 같은 친구들이 많았기에 무게감이 다르다.
“으음.”
고뇌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뱃살에 언니가 고개를 박았다.
최근 들어서 바쁘게 지내느라 고당의 커피 음료들과 야식을 먹어 통통해진 뱃살에 얼굴을 묻은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심신 안정이 된다.
고양이를 기른다면 이런 느낌일까.
“저는 어떻게 살았죠.”
“인싸처럼 산 거 아니야?”
인싸라니
참 무책임한 단어다.
그냥 외향적인 사람이라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게 좋았다고 투덜거려보지만 그럴때마다 ‘기만하지 마!’ 라는 소리를 들은 나는 속으로 삭였다.
아무튼 오타쿠가 된 지금 내가 어떤 인싸 활동하고 다녔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나는 이 무료함을 날릴 단어를 떠올렸다.
어찌 보면, 왜 이걸 이제 떠올렸지? 하는 생각이다.
“아.”
“왜 그러니?”
“쇼핑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윈도우 쇼핑으로 그만두었던 것들을 진짜 사고 싶어졌어요.”
“생각해보니 유나랑 쇼핑 안 나간지도 제법 되었구나, 뭐 사고 싶니?”
돈을 번 이유?
처음에는 저축이었다.
버튜버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 성공 가도가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걱정
나에게 돈을 빌려간 츠유의 사례를 보더라도 버튜버는 꽤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직장이다.
심지어 회사 소속이긴 해도, 과세율이 장난 아니라 35%나 떼어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수익 지분이 들어오고, 내 음악을 사용한 판권료에서 돈이 적금처럼 꾸준히 나오기 시작한 나는 상당한 부를 갖추었다.
그리고 지금 은행에 잠자고 있는 금력을 휘두를 몇 안되는 기회다.
“명품!”
예전에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사지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에는 어떻게든 싼티 안나는 브랜드 옷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어울리는 옷을 사기 위해 백 번 정도 고민하고 옷들을 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은행을 열어 통장을 확인한 나는 씨익 웃었다.
잘나가는 인터넷 방송인의 금검(??)이 휘둘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품 코너에 가서 이거부터 저거까지 다 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하고 저거, 저거하고 저거 주세요! 정도는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생겼다.
언니는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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