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67화 (267/307)

〈 267화 〉 266화.

* * *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최악이다.

그냥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최악이다.

어머니는 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키우고 싶어 했고, 나는 머리가 깨져도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가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도저히 이해시킬 수 없었다.

망집이라고, 그래서는 행복하게 못 산다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나를 잘난 판사 며느리로 기르고 싶어했다.

명문대 나오고 예쁘게 가꾸고 법조계에 일하는 그런 인생 말이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게 나의 행복이라고 말했던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영석했던 초등학교 졸업 이후,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하자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 자꾸 그럴꺼면 호적에서 파버린다.’

호적에서 파버린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말에 나는 겁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TV 속에 멋지게 춤추면서 환호받는 아이돌의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천만다행이게도 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유나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둡시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발언도 아이돌이 되는 게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치는 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진짜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자살 소동 이후 내가 무대위에 더 이상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연습생을 그만둔 이후, 나는 거의 학대를 받아가며 공부를 했다.

다행히도 나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그토록 그 여자가 원하던 ‘우수한 딸’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유쾌하고 기쁜 척 행동했지만, 나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어둠이 자리했다.

꿈이 꺾여버린 나는 그저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되야 했으니까.

얌전히 거인의 손길에서 ‘판사 며느리’라는 인형이 완성되도록 인생을 살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 두려운 미래를 알고 있는 까닭인지 나는 더더욱 학교에서 유쾌하게 행동했다.

마치 유나라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없다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말이다.

정말이지 우스웠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자식 자랑’에 사용될 양분이었고, 사육되는 삶을 살 바에는 그냥 고생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 나는 아주 우연히 ‘스포츠 과학’이라는 과목을 알게 되었다.

고도로 발달한 스포츠 과학을 전문적으로 수학하고, 물리 치료 계열로 가면 의료 스태프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의 꿈을 알고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스승님 덕분이었다.

이쪽 계열의 최고를 알기 위해서 조사한 결과, 나는 일본의 ㅇ대학이 이쪽 방면으로는 최고라는 사실을 알았고 유학을 준비 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온 후 연락을 끊었다.

이후에는 번듯하게 일본 명문대 졸업한 이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취업한 후 찾아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버튜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배 나온 30대 판사와 결혼해서 아양 떨면서 명품을 구매하는 인생보다 내 손으로 직접 벌어서 명품을 사는 인생이 낫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도 자식을 스폰이나 받는 천박한 여자로 취급하다니

역시 나는 그 여자와 친해질 수 없었다.

동생 놈 : 에휴

동생 놈 :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동생 놈 : 하긴, 나도 어머니에게 10억 통장 보여주고 인정 받았으니까

동생 놈 : 누나도 그냥 돈으로 찍어 눌러

동생 놈 : 아빠가 불쌍하지 그냥...

나만큼은 아니지만 프로게이머인 동생 또한 그 여자 밑에서 고생을 심하게 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더더욱 간섭을 받기 시작했으니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사라진다.

오히려 투지가 불타올랐다.

근사한 3D 아바타 뽑아내서 통화에 참여 해야지

만화와 게임을 사탄의 소굴에서 탄생한 혐오스러운 이물질 취급하는 그 여자의 짜릿한 반응이 예상되었다.

중학생 때 ‘조금 놀았지만’ 고등학생 때는 ‘전교 1등’하고 일본 ‘명문 대학교’ 진학한 나를 팔아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존경받던 그 여자의 표정이 궁금하다.

애초에 그 여자 성격으로는 차마 자기딸이 3D 버튜버 아바타를 뒤집어 쓴 인터넷 방송인이라고는 죽어도 못 밝히는 사람이니 비밀 유지도 걱정되지 않는다.

“유나야, 괜찮아?”

“왜요 언니?”

“얼굴이 조금... 무서워.”

최근 호러 게임을 연달아 방송하느라 도통 내 방에 오지 않은 언니의 조심스러운 반응에 나는 표정을 고쳤다.

어휴, 언니 앞에서 무서운 표정을 짓는 건 좀 아니지.

그러고 보니 내가 언니 앞에서 화난 표정을 지은 적이 있던가?

하지만 어떻게 하나

언니 얼굴만 보면 미소가 헤실헤실 터져나오는 걸.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언니 일로와요.”

“언니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강아지라고 생각해?”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나에게 다가와준다.

아이고 우리 언니, 나의 귀여운 언니

언니를 품으니 안 좋은 생각이 싹 사라지고 온 몸에 불끈불끈 힘이 난다.

하아, 이게 행복이지.

이게 진짜 가족이 아닐까?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면서 눈이 풀린다.

그 여자를 생각 하는것만으로도 이렇게 피곤해진다니까

그러고보니 나... 결국 밤샘 방송했네.

“졸리면 자, 깨워줄게.”

“고마워요...”

최근 들어서 생활 리듬을 지구 반대편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밤과 낮이 뒤바뀌었다.

평소에는 오전 7시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는데, 요즘은 너무 피곤해서 오전 9시까지도 쿨쿨 자버린다.

나는 언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저는 반드시 그 여자에게 빅 엿을 선사해야겠어요.”

“하하... 조금 너무하시긴 하네. 뭐 보수적인 부모님들이 일본에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그...렇게 볼 줄은.”

회사에 출근한 나는 유키하라 언니를 만나서 가족 관계를 시원하게 공개했다.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돼서 이야기를 잘 안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스타에 그 여자가 선빵 갈긴 건 참을 수 없었다.

“뭐, 버튜버들 사이에서 멋지게 성공해서 부모님이 다시 돌아보게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한데, 유나처럼 그, 불타오르는 건 또 처음이네.”

“그래서 당분간 활동은 이렇게 할게요.”

“그래, 당분간은 일본 쪽 방송 기획은 하지 말고 서구권에 맞춰서 방송을 기획하면 되지?

일본 쪽 방송 참여할 때는 반응 좋을 것 같은 합동 방송만 일정 잡으면 되고.”

일본 쪽 팬들에게 인지도를 쌓으면서 서양 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콜라보 방송이 필수였다.

특히 나를 대신해서 유키하라 언니가 코모레비와 클레스타인의 라이브를 협동하는 조건으로 나는 1번 게스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게스트 자리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라이브의 품질도 올려야 했으니, 당분간은 나 대신에 유키하라 언니가 갈리게 되었다.

“언니 미안해요.”

“아냐 괜찮아, 일이 힘들기는 이전에 ‘메이드 라’와 함께 이중 업무를 볼 때 진짜 힘들었지.”

나와 함께한지 반 년이 다 되가는 신입 매니저였던 언니는 이제 능숙한 매니저가 되었다.

단순히 방송 보조가 아니라, 다른 버튜버의 기획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다재다능한 매니저 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나를 픽업하러 출근길에 차를 몰고 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듬직한 지...

“그런데 호러 게임은 언제까지 할거야?”

“글쎄요, 일단 스팀에 좀 인기 있겠다 싶은 녀석들은 모두 갈아버릴려구요.”

“... 살다가 호러 게임 개발사와 그 안의 귀신들 걱정해보긴 처음이네.”

“다음 방송부터는 BPM 측정하면서 해보려구요.”

몇 개의 게임을 순식간에 갈아버리니 슬슬 시청자들이 ‘이거 주작아님?’같은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확실하게 내가 쫄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했다.

심장 박동수야 뭐, 이쪽 바닥의 국룰이긴 하지.

“에휴, 이런 것도 무서워하다니 허접들.”

“... 유나는 무서운 게 없나보네?”

“2주 연속 2만자 레포트, 미납된 세금 고지서, 이월된 주민세.”

자기 수업만 듣는다고 착각하는 교수님들의 정신 나간 과제 분량

에어컨 좀 오래 틀었다고 나를 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세금 고지서

찌라시에 숨어있는 주민세를 내지 못하면 독촉장이 날라오는 공포스러운 주민세

1학년 때 나를 제일 피폐하게 만든 것들이었다.

특히 미납된 세금 고지서의 집착은 그냥 공포 그 자체였다.

나의 설명을 들은 유키하라 언니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나, 이렇게 보여도 2년 전까지만 해도 진짜 피말리면서 살았다구요.

아무튼 언제나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목표가 생기면 역시 조금 더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특히 그 여자에게 엿을 먹일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짜릿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달해야 할 200만 구독자 그리고 80만엔

목표가 생긴 나는 평소보다 더욱 힘차고 파이팅 넘치게 활동을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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