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68화 (268/307)

〈 268화 〉 267화.

* * *

인터넷 방송인의 시청자들 중 채팅을 보내는 이들은 셋으로 나눌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들은 순수하게 분위기를 타는 사람들이다.

노래를 부를 때는 응원봉을 흔들고, 재미있는 농담을 치면 ㅋㅋㅋㅋ 하며 웃고, 개소리를 하면 아 그건 좀;; 같은 반응을 보내는 분위기에 따르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방송인에게 우호적인 스타일

흔히들 충신이라고 불리는 이런 사람들이 보내는 채팅은 주로 우호적인 내용이 많았다.

방송인이 힘들어하면 응원을 보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이들이다.

그에 비해서 비협조적인 스타일이 있다.

단순히 팬이라고 볼 수 없는 악질적인 채팅을 일삼는 스팸러들과 다르게

그들은 어떻게든 인터넷 방송인을 놀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특히 방송인들을 도발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스트레스를 주면서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낙이다.

이런 이들은 방송인들에게 스트레스가 되긴 하지만, 그들의 참신한 발상과 드립은 예측 불허의 인터넷 방송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이쪽 문화의 핵심이다.

이런 팬들의 비율은 방송인의 스타일에 따라 크게 나뉜다.

이상할정도로 팬들 조교를 잘하는 특수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5:3:2 비율 내지는 4:4:2 비율을 유지한다.

점잖은 연령대가 많을 경우는 6:3:1 같이 극단적으로 스트리머에게 우호적이지만 타격감이 좋은 버튜버들에게는 주로 3:3:4 내지는 3:2:5 비율을 유지한다.

아리아 같은 경우는 4:4:2 비율로 주로 우호적인 채팅이나 분위기에 휩쓸린 채팅이 많이 올라오는 편이었다.

선라이즈 버튜버 중 가장 많은 국가의 유저들이 뒤섞이는 채팅방답게 타 버튜버에 비해서 채팅 송출량과 도네이션 숫자가 높은 편을 기록하는 아리아의 방은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포 게임 해제하기, 공포 게임 부수기, 공포 게임 가이드하기 같은 도발적인 컨텐츠를 이어나가는 그녀의 방에는 ‘감히 니가 이걸 보고 안 울고 버틸 수 있냐!’같은 고약한 심보를 가진 신인 시청자들이 늘어났고, 그들은 아리아가 골탕먹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들어오는 이들이 많았다.

­이거 컨셉인거 다 암, 이미 플레이 해두고 다른 스팀 계정으로 게임 사서 하는 거 아님?

­진짜 이 게임은 맵이 개 거지같이 복잡한데 길 별로 안헤매는 거 보니 컨셉 맞는 듯ㅋ

시청자들은 늘었지만 채팅 분위기도 평소와 다르게 험악해져갔다.

이런 반응을 대처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BPM 측정기를 달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반복 플레이를 해도 여러 게임을 하는 인터넷 방송인이 모든 공포 포인트를 외울리는 없고, 오히려 공포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심박수가 올라가는 일이 잦았기에 BPM 측정기는 그야말로 공포게임을 하는 스트리머의 판독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는 편안했다.

“푸히히히.”

놀래키기 위해 귀신이 나오면 웃음을 터트린다.

만약 게임에 총이 등장하면 미간 정중앙에 근사한 선물을 한다.

“아 이런 빅토리아 풍의 실내는 진짜 예쁘네요. 저도 방을 꾸미면 약간 이런 영국식 스타일을 하고 싶은데…”

피흘리는 귀신이 바라보는 상황에도 가구 디자인을 보고 감탄하거나

“푸하핫, 얘 좀 봐요. 움직이는게 꼭 고장난 잔디깎기 가지 않아요?”

불쾌하게 움직이는 괴물들의 동선을 분석해서 기이한 포즈로 따라하는 그 모습은 이 게임이 과연 공포 게임인가, B급 코미디 게임인가를 돌아보게 했다.

­인간이 미안해…

­누군가를 겁주고 놀래키기 위해 프로그래밍 된 아이가… 놀림받고 있어요…

­귀신들도 누군가를 놀래킬 권리가 있다! 게이머는 순수하게 놀라게 하라!

­이 방송… 공포 게임 제작자는 봐서는 안 될거 같은데

­솔직히 내가 개발자면 현타와서 담배 피러간다 진짜.

“이쯤되면 위에서 뭐 하나 슥 떨어지고, 당황해서 플레이어가 좌우로 마우스 흔들거리면 멀쩡한 액자에서 피가 나올거고…”

“어디보자, 이 게임 평균 플레이 시간이 18시간이었죠? 제가 다른사람들 보다 빠르게 클리어하는 편이니 14시간 정도로 잡고… 어디보자, 5시간 정도 했으니 슬슬 긴장감 조여줄 귀신들이 나오겠죠?”

“아, 얘 코딩 잘 못 되었나 보네요. 여기서 옷장으로 들어가는 척 캔슬키 누르면 괴물이 여기서 서있는데요? 뒤통수 한 대 못때리나?”

­그만… 그만….

­실장님에게 이 방송 보여주고 혼났습니다. 헤헷

­이쯤되면 업계인 아님? 아리아 전적에 공포게임 개발자 추가해본다.

누군가에게는 비명의 근원이 되었을 공포게임이 철저하게 해부 당한다.

어째서 놀랄 수 밖에 없고, 플레이어의 심정과 개발자의 의도를 분석하며 냉정하게 플레이 하되,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거리낌없이 장난을 치는 똘기 충만한 아리아의 모습에 그녀가 망가지는 꼴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오히려 개발자를 동정했다.

[아리아님 공략 영상 보고 도전한 피어 2회차! 쫄릴 때마다 아리아님 영상 틀고 합니다!]

[아리아식 공포 게임 분석 도전기]

[아리아의 공포 가이드를 꼽고 첫 공포 게임 나가봅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하는 인터넷 방송인들이 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공포 게임을 그럴듯하게 분석하는 아리아의 방송 스타일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공포 게임을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공포 장르지만, 아리아의 목소리와 방송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는 듯, 이전에 정말 무서워서 게임을 포기했던 사람들은 흐름을 타고 공포 게임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아리아의 공포 게임 가이드를 신뢰했다.

아리아의 게임 가이드는 게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분석한 전문 게이머 영상에 비하면 게임에 대한 통찰이 떨어졌지만, 게임 구조에 대한 이해가 높은 그녀는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 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군데 제시하였다.

공포 게임 방송을 스트레스로 여기는 사람들도 무서운 공포 요소를 철저하게 분석해주고 심리적 압박감이 드는 공포 게임을 빨리 깰 수 있게 도와주는 그녀의 가이드 영상을 한 두번씩 참고했다.

특히 그녀의 방송은 공포 게임을 못하기로 소문난 유명한 700만 게임 스트리머가 인생 처음으로 공포 게임을 클리어 한 영상과 함께 유명해졌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예쁜 여우가 저와 함께 공포 게임을 함께 해준다구요! 저는 예전에 캘리포니아 옥수수밭에 길을 잃었을 때 제 손을 잡고 그 미로를 빠져나온 어머니가 떠올랐다니까요!

공포 게임이 두려우면 그녀의 해제 가이드 영상을 보고 자신감을 챙기시는 게 좋을겁니다!’

마치 홈쇼핑 광고 멘트처럼 느껴지는 그 말에, 버튜버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제외한 이들은 점점 그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포 게임은 마니아들이 즐기는 특수성 때문에 하나의 거대한 장르이기는 해도 유입이 힘든 게임인데, 공포 게임을 ‘즐겁게’ 즐기게 할 수 있는 아리아의 방송 이후로 게임에 도전하는 스트리머들이 늘어나고, 그런 스트리머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포 게임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근 스팀 판매량의 공포 게임이 늘어난 것을 보고 저희는 자조했습니다.

공포 게임은 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그들을 놀래키기 위해 디자인 된 게임이지만, 한 스트리머의 영상 덕분에 즐겁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개발 신념이 흔들리는 기분이 드네요]

아리아에 의해서 세 편이나 ‘해제’당한 게임 회사의 프로듀서의 말은 때아닌 공포 게임 열풍에 더더욱 인기를 끌게 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은 많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들도 많다.

온갖 별들이 자기만의 빛을 뽐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인터넷 방송인 시장에서조차 담대한 심장으로 즐겁게 게임을 하고 개발자와 심리전을 하는 공포 게임 스트리머는 처음이었기에 아리아는 버튜버라는 이미지를 넘어선 큰 인기가 되었다.

­일본산 여우와 함께 하면 두렵지 않다고 하지?

­야, 얘들 봐라 벌써 부적도 만들었네 ㅋㅋ

­근데 아리아 목소리 너무 좋지 않음?

­버튜버라는 모습이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보다보니 눈에 익숙하네

­꼬리 움직이는 거 봐 너무 귀엽다.

그녀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방송에 찾아오거나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오고 몇 개의 영상을 가볍게 훑어본 그들의 유튜브 추천 영상에 키리누키 영상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하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버튜버라는 게 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거지?

­안면 인식 프로그램으로 가상의 아바타를 조작하는 방송인이라니… 이런 것도 있었구나?

­일본에서 시작된 거야? 역시 오타쿠들의 나라 답네ㅋㅋ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보네? 그리고 아리아처럼 영어로 하는 애들도 이렇게 많았구나

­보다 보니 익숙해진다. 아리아 때문인듯?

[공포 게임에는 구미호]

이러한 밈이 만들어지는 순간 선라이즈는 노련하게 대처했다.

홍보팀을 움직여서 아리아의 방송을 분석하는 콘텐츠를 만들거나 광고를 크게 기획하면서도 여우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서 상품으로 팔기 시작했다.

번역팀을 붙여서 그녀의 방송 풀 스트리밍 버전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서 힘을 실어주는 등 회사 차원에도 열심히 움직인 결과 유튜브에서 시작된 그녀의 영상은 타 플랫폼까지 널리 퍼졌다.

그리하여 2020년 8월의 인터넷 방송 시장은 때아닌 공포 게임 열풍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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