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69화 (269/307)

〈 269화 〉 268화.

* * *

“에이 어떻게 말이 나와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우승을 하면 라이브를 하는 게임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게임이 나온다는거야.”

“와… 저도 나름 오타쿠라고 생각해서 함선 모에화, 총 모에화, 도검 모에화, 성 모에화 등등 다양한 게임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말’도 충분히 모에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가 그 말의 딸? 그런걸로 연기를 한다구요?”

8월이 지난 후

비록 해외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아리아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그녀 앞으로 넘어오는 일거리들이 많아졌다.

단순하게 특정한 가게와 콜라보를 진행해서 아리아의 메뉴라던가, 아리아의 캐릭터 굿즈를 제작하는 의뢰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제법 커다란 게임 회사의 콜라보 캐릭터 제안 혹은 성우 출연 의뢰가 다가왔다.

당연히 흔히 말하는 A급 배역은 아니었다.

아리아의 방송 재능이나 게임 진행 능력이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성우 경력은 다른 쟁쟁한 성우에 비해서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인지도에 비해 단가가 저렴한 의뢰들이 제법 들어왔다.

마치 ‘성우 아리아’ 보다 ‘인기인 아리아’를 마케팅에 사용하려는 제법 노골적인 제안들이 많았다.

버튜버의 활동도 즐기는 유나였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기를 원하는 그녀는 애니메이션에 3줄 정도 말하는 엑스트라 배역도 찾아볼만큼 관심이 많았다.

그런 그녀의 눈길을 잡은것은 일본 유명 게임 회사에서 제안한 신작 프로젝트였다.

애니메이션 공개로 제법 인기를 모았지만 2년 전 게임 쇼케이스에서 폭망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알아본 유나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뭐 불확실한 프로젝트의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쪽으로는 대사가 세 페이지 이내로 말하는 엑스트라격 캐릭터네요. 그런데 게임 회사나 애니메이션 회사 크기가 아무리 봐도 저에게 올만한 규모가 아닌데요?”

그랬다.

아무리 엑스트라고는 하지만 게임과 연계되는 멀티미디어가 예정된 대형 프로젝트에 그녀가 참여하기에는 일본은 성우의 나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우 사무소에서 보내준 자료가 아니었으면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으음… 원래 배정은 그쪽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라 서포트 캐릭터, 즉 비서 캐릭터 같은 걸로 들어왔어. 원래 이쪽 성우분이 활동을 하셨는데, 다른 쪽 본진이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프로젝트에 하차하게 되셨어.

그런데 그분이 이쪽 프로젝트 나오실 때 너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몰라도 추천을 하셨더라고.”

“뭐에요, 기존 캐릭터 성우가 있었어요? 누군데요?”

“후지이 씨.”

“언니비천한제가성스럽고위대한유키치언니의빈자리를대체할수있을지는모르겠지만소신동방예의지국의소녀로서열과충성을다하여그분의빈자리가바래지않도록그분의목소리를200시간들으면서연기톤을따라할수있도록열과성의를바쳐서모든힘을바칠것을다짐합니다.”

상한 치즈를 바라보듯 제안서를 바라보던 유나는 존경하는 성우의 이름을 듣자마자 종이를 껴안았다.

절대 반지를 탐하는 생물체처럼 눈을 번뜩이는 그녀의 모습을 본 유키하라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타쿠, 기분나빠.”

“언니, 우리가 그 오타쿠들을 상대로 사업하고 우리도 오타쿠인 거 알죠?”

“근데 성덕은 기분 나쁜걸?”

유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에 경마를 모에화 하겠다는 굉장한 컨셉의 프로젝트를 다시 바라보았다.

메인 캐릭터는 아니고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을 간접적으로 서포트하는 조력자 캐릭터였다.

비중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는 포지션

비록 ‘급’이 높아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렇게 된 거 고참 성우들에게 깨지면서 배운다고 굳게 다짐한 그녀는 뚫어져라 기획서를 노려보았다.

**

“방송을 열심히 하고 있자니 갑자기 다른 커리어가 열려버리네.”

“뭐 우리 회사의 버튜버 중 성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성우 훈련 받은 사람은 언니를 포함해서 다섯 명 정도인걸?”

같은 시간에 녹음을 하는 것 보다 방송을 하는 편이 훨씬 수익이 많은 인기 버튜버인 유나였지만 돈을 모으고 성장을 하는 와중에도 성우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는 그쪽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다.

판단을 내렸으면 빠르게 움직여야했다.

그녀는 알고 있는 지인 중 가장 성우 쪽 활동이 잦은 사람은 클레스타인이었다.

전직 성우 연습생 출신인 다비, 성인향 연애 게임의 수록에 자주 참여한 마녀와 다르게 그녀는 버튜버가 된 이후 성우 교습을 1년간 꾸준히 받아왔을 정도로 관심이 지대했다.

게다가 그녀는 유나와 같은 프로젝트에 오디션을 봐서 합격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선라이즈의 프로젝트가 아닌 외부 프로젝트로 같이 일하게 되었다.

“라이브 준비 바쁠텐데 찾아와서 미안.”

“아니에요, 언니 덕분에 제가 이런 수준 높은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된거잖아요?

저는 거기에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언니와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언니에게 일 가르치는거야 뭐 간단하죠.”

회사에서 간만에 둘끼리 만난 그녀들은 근황을 가볍게 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의 게임 방송 정말 잘 봤어요.

제 직업이 공포 게임 기획자가 아니고 버튜버라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래서 8월에 한정해서 그런 기획을 진행했지.

나도 내가 한 거 돌이켜보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참, 너 최근에 한국식 족발 집 발견했다고 하던데, 왜 나랑 같이 가자고 말을 안해?”

“에이, 언니랑 같이 가게 되면 너무 많이 먹게 된단 말이에요.

언니의 그 무식한 대식의 흐름에 휩쓸려버린다니까요?

언니랑 같이 회식한 사람 중 다음날 체중계 안 올라가본 사람은 없을걸요?”

“사니는 괜찮던데.”

“두 분이서 야키니쿠 10인분을 처치하는 괴물들이니 제발 저같은 평범한 소녀하고 비교해주실래요?”

“소녀는 무슨, 대학생이면서.”

“마음만큼은 언니의 밥을 야금야금 받아먹는 고3이에요.”

“아, 그때가 살짝 그립긴 하네.”

고등학생에게 중요한 3학년 2학기 시절 코로나로 인해서 학교가 강제 휴교를 당하는 불운한 일을 겪은 미우는 버튜버라는 이중 직업 때문에 기숙 학원에서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정말 잘 맞는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 이전 사이타마에 있던 유나와 쿠로가와의 집에서 숙박을 하며 유나의 ‘한국식 야매’ 과외를 받으며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랑 결혼하면 평생 밥걱정 없어서 좋을것 같네요.”

“언니가 메이드냐?”

“메이드 아니에요?”

“요것이…”

그 이후 두 사람은 너무 바빠졌다.

수험생 생활을 명문대 합격이라는 화려한 결과로 마무리한 미우는 공부를 하는 동안 부족한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고

유나는 버튜버로 데뷔하고 나서 온세계에 굵직한 방송 기획과 레전드로 남을 방송들을 이어나가면서 그녀보다 훨씬 커다란 규모의 버튜버가 되었다.

이후에 미우가 사옥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사는 거리가 가까워진 이웃이 되었지만 해외 일정에 맞춰서 방송시간을 조절하는 유나와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마왕군 합동 방송’이라는 컨셉의 마계 공주, 구미호, 성녀의 조합으로 일상 썰을 풀어내는 방송을 기획한 덕분에 서로 시간이 맞게 되었다.

“그리고 둘이서 뭔가를 하는 건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음악 괴도단 이후 처음 아니에요?”

“아아. 디스코드로 처들어가서 음악 부르라고 땡깡치는 그 놀이.”

짧게 추억을 회상한 두 사람은 이윽고 손에 들린 기획서와 1기가 기록된 DVD를 바라보았다.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라니, 다시 봐도 매니악하네요.”

“프린세스 커넥트같은 이름도 있는데 뭐 어때.”

“그런데 게임 쪽 사업 엎어지는 건 아니겠죠? 언니하고 다르게 저는 이미 한 배역을 따냈다구요.”

짧게 투덜거린 미우는 블루레이를 집어넣고 화면을 연결했다.

유나의 집에는 없는 커다란 85인치 TV와 블루레이 역할을 겸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부드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기 [I LOVE YURIA] [I LOVE ARIA]의 로고가 새겨진 편한 오타쿠 티셔츠를 입고 편한 바지 차림으로 소파에 앉았다.

띵동

“역시 관람에는 팝콘과 구운 땅콩이지.”

“맥주도 가져왔어.”

2층에 거주하는 샤야 카기와 사토 카가 주전부리를 들고 찾아왔다.

이쯤 되면 진지한 업무보다는 놀자판에 가까웠지만 두 사람은 ‘우리도 언젠가는 성우 업무를 할 지도 모르는데 공부할건데?’라는 억지를 부리면서 두 사람의 관람파티에 참여했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유나와 미우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이래보여도 업무에 진지한데.”

“암암, 그러니까 술은 고생하는 너희들을 보고 마시려고 가져온거야.”

“환자가 맥주 마셔도 되요?”

“용의 율법에 따르면 문제 없다고 하더라.”

호쾌하게 웃은 혼혈의 여인이 제집 안방처럼 소파에 몸을 파묻고 제멋대로인 그녀에게 익숙해진 카기는 냉장고 문을 열고 눈썹을 찌푸렸다.

“왜 냉동 맥주잔이 네 잔이야? 두 사람은 자택 근무 신청하고 온 거아니야?”

“원래 일 하면서 술 마시면 더 잘되는 거 몰라?”

“하아, 이래서 유나하고 카가 언니를 붙이면 안 되는데, 주정뱅이가 둘이잖아.”

그렇게 때 아닌 애니메이션 시청회가 열리고, 네 사람이 합치면 월간 5억이 넘어가는 버튜버들은 한가한 백수마냥 소파에 눕거나 바닥에 엎드리며 한 때 일본에 이슈를 가져온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당연하게도, 술을 마시며 캐릭터를 보며 우마뾰이를 외치는 그녀들의 모습은 재택근무라기 보다는 놀자판에 가까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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