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70화 (270/307)

〈 270화 〉 269화.

* * *

유나와 미우는 예정된 녹음 시간보다 일찍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우가 뽑은 새빨간 스포츠 카 대신에 유나의 중형차에 올라탄 그녀들은 평소처럼 버튜버의 영상을 찾아보는 대신 자신에게 어울리는 연기톤을 가다듬고 있었다.

특히 유나같은 경우는, 전임자의 목소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애니메이션에 추출한 녹음 대사를 수백 번째 듣고 있었다.

대사의 토씨 하나, 발성의 호흡 하나도 놓치지 않는 채 집중했다.

“아, 도착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였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회사지만 본사는 도쿄 밖의 현에 있지만, 성우들을 위한 녹음소는 도쿄 내에 따로 마련되어있기 때문에 본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일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언니 긴장 괜찮아?”

“성우 오타쿠로서는 긴장되지만, 성우로서는 딱히?”

미우는 자신의 우려가 바보같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유나가 누구인가?

애니메이션은 호빵맨과 포켓몬 밖에 모르던 사람이 일 년 만에 버튜버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이 년 만에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버튜버가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어서 지상파 공중파 가리지 않고 커다란 방송에 나가고, 일본 가요계에 ‘언더 그라운드의 반란’이라면서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노래를 견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노는 물이 달랐다.

능력이 뛰어나고 원래부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우아한 여름 패션에 자신의 미모를 숨기지 않는 당당한 매력이 흘러 넘친다.

걱정해야할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오늘은 간만에 셋이서 밥 먹자.”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밥 해주겠다는 유나의 말에 미우는 피식 웃었다.

“언니 하숙생 또 하고 싶다.”

“이제는 안 받아.”

“히잉, 너무해.”

그런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두 버튜버는 사전에 받은 출입증을 목에 걸고 들어갔다.

녹음 예정 시간은 13시였지만, 그녀들은 일찍 점심을 먹고 1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이 넘쳤다.

“일단 우리들이 해야 하는건 말이죠...”

일찍 온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런 성우 녹음 시설을 처음 사용하는 유나를 이끌어주기 위해서 미우가 시간을 낸 것도 있지만...

“어라, 미우 씨 안녕하세요? 저번 프로젝트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네요!”

“마나씨!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미리 도착한 성우들과 만남을 가지기 위해서다.

마나라고 불린 성우와 이전에 만난 적 있다는 듯 미우는 반갑게 손을 붙잡으며 인사했다.

“이쪽은 같은 회사 소속의 유나 언니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네! 넷! 잘 부탁드려요!”

“뭐에요, 마나 씨 벌써 캐릭터 연기 들어가는거에요?”

역시 유나 언니의 외모는 낯선 사람에게 압도감을 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미우는 부드럽게 농담을 하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마나 선배님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릴게요.”

“그... 아, 네!”

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성우 선배와 정겹게 인사를 마친 그녀는 이후에도 여러 선배를 찾아가며 인사를 시켰다.

사실 이런 성우 소개는 같은 사무소의 선배가 이끌어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유나와 미우는 전문 성우가 아니었고, 다른 애니메이션 본사와 다르게 이쪽은 조그만 시설이었기 때문에 다른 성우와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는 검증된 신인 성우들을 차용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완전히 유명한 거물급 선배들과 그 밑의 스타 선배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인사 순례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물론 그것도 잠시

일본 애니메이션 및 게임 제작에 거물 성우를 투입하는 건 자본 있는 회사라면 당연한 전략이었기 때문에 거물 선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성덕이된 유나는 환호성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눈에 기쁨을 가득 담고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성덕

그녀는 성우 오타쿠이기도 했지만 성공한 오타쿠이기도 했다.

*****

아야카는 명실상부한 일류 성우였다.

필모그래피는 100줄이 넘어가고, 황금 스타트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유아용 국민 애니메이션 채용에서 스타트를 끊고, 그 애니메이션이 크게 성공한 이후 아이돌 게임의 주요 캐릭터로 발탁, 그 게임마저 크게 성공했다.

운도 좋았고 실력은 더더욱 좋았다.

목소리의 연기폭이 넓었고, 본인의 판단 아래 감정의 절제와 발산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거기에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라이브에 서기 위해 트레이닝을 받은 그녀는 당장 자신이 임한 캐릭터로 라이브를 뛸 수 있는 완성된 성우였다.

허나 사교적으로는 완만하다고 할 수 있으나 살짝 천연미가 흘러넘치는 천성이다.

성우 업계에서는 제법 잘 알려진 사실이고, 성우 업계가 위계질서를 강하게 잡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대단한 업적을 가졌지만 대단히 귀여운 선배로 유명했다.

자신에게 성우로서의 성장과 성공을 가져다 준 게임 회사의 의리로 엎어지기 일보 직전의 에니메이션에 참여한 것도 성격적인 작용이 강했다.

그런 그녀는 재미있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성우들 사이에서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번성하고 있는 버튜버 사무소이 사람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녀쯤 되는 사람이면 자기 거 하느라 바쁜 편이었기에 버튜버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그녀의 팬들이 팬미팅에서 ‘버튜버’ 내지는 ‘인터넷 방송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버튜버의 ‘실제 사람’을 본 순간

말을 할 수 없었다.

일본 성우의 최신 트랜드는 노래였다.

캐릭터 연기는 당연하게 기본이었고, 노래를 할 줄 알면 커버송이나 캐릭터 송을 부를 수 있었다.

거기에 화룡정점을 더하는 게 외모다.

반쯤 아이돌 시장이 된 작금의 사태에 성우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지만, 아야카는 연기, 노래, 외모 삼박자를 갖추면서 성장했기에 외모 또한 상당히 신경쓰고 또 따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성우라기보다는 외모 좋은 미남미녀들이 흘러넘치는 드라마의 여주인공같은 외모였다.

화려하게 아름답다.

타고난 아름다움은 손에 꼽을만큼 아름답지만 그것을 엄청난 노력으로 완벽히 개화했다.

얇은 여름 옷 사이에 보이는 탄탄한 근육, 섬세하게 관리한 피부와 머릿결은 극한으로 단련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러 사람을 알고 지내는 그녀는 저런 아름다움은 오래 전부터 가꾸고,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스스로의 외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많은 미인들을 만나본 아야카는 첫 눈에 반해버린다는 표현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야카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라이즈 소속의 미우라고 합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선라이즈 소속의 유나라고 합니다.”

“어머나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상투적인 인사

하지만 여기에 있는 두 사람은 다른 신인 성우에 비해서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합쳐도 10줄이 넘지 않지만, 두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조심하지 않았고 비굴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동료 성우를 만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성공한 사람의 단단한 자부심’

그러고보니 100만 구독자라고 하였던가

그녀들은 말 한마디에 한 도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 달리 말해 인플루언서였다.

아야카는 그녀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권위를 딱히 따지지 않는 그녀는 버튜버라는 낯선 직업에 대해서 잘 알고 싶어졌다.

특히 자신의 시선을 휘어잡은 유나라는 여인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핫시~ 여기 있었네? 이 사람은 누구야? 새 매니저? 애인?”

“아쥬! 그런 거 아니라니까!”

같은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친해진 다른 성우의 합류가 이어지면서 버튜버 겸업의 신인 성우 두 사람은 무난히 인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진행은 순조롭게 나아가지는 못 했다.

녹음 감독이 생각하는 방향과 성우들이 해석한 캐릭터가 일치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노련한 성우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들은 경험이 적은 사람에 비해서 빠르게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버튜버 출신의 두 사람이 녹음을 하는 순간 많은 시선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외모의 유나와 그런 여인을 닮으려고 하는 듯한 미우는 노골적인 시선이 신경쓰이지 않다는 듯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내가 무조건 1등 할거야! 대도주! 아니, 슈퍼 그레이트 도주다!”

“날 무시하지 말라고! 나는 최강의 말이 될거니까!”

평소 클레스타인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성녀 컨셉인만큼 그녀는 정말 성서를 낭독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컨셉이 지키기 어려울 때, 그녀는 폭력 성녀 모드로 들어가는데, 이때의 그녀의 연기톤은 그냥 자신감 넘치고 오만방자한 컨셉이었다.

때문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말썽꾸러기 꼬마 연기에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하지만 장난기를 조금 더 빼주세요. 미성숙한 진지함이 들게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미우는 몇 번의 재녹음 끝에 목소리 톤을 가다듬었다.

이후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어울리는 성우와 함께 자연스럽게 연기를 주고 받았다.

­역시 완전 신인은 아니긴 하네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빠르구나

­그냥 이름값으로 오디션에 뽑힌 게 아니긴 하구나

성우들의 그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긴 완전 처음도 아니고, 몇 번의 경력을 가진 미우는 빠르게 녹음을 완료했다.

그리고 유나가 들어가는 순간

차분한 어조로 오더를 내리던 녹음 감독이 숨을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저 외모로 왜 여기서 이런 일을?

당장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가야할것 같은 사람이 여기에 왜 있지?

이런 시선을 받으며 들어간 유나는 당당하게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트레이너 씨 좋은 아침이에요.”

마치 항공기의 스튜디어스처럼 친절함이 가득한 목소리다.

맑고 고아하고 깔끔한 도쿄 정통 발음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 사이에 들어있는 5%의 사랑과 5%의 애절함이 처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후후후, 당신이라면 언젠가 해내실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믿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어머나, 트레센 학원은 처음인가요? 이쪽이랍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캐릭터들과 대화할때는 그런 기색이 사라진다.

즉, 플레이어 = 시청자가 몰입하는 트레이너라는 캐릭터에게만 호감을 담아내는 깔끔한 해석이었다.

“...”

반신반의했다.

당연했다.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따라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동감을 느끼게 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분야는 프로의 영역이다.

디자이너의 업계에서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듯

캐릭터의 매치와 목소리간의 조화는 중요한 일이었다.

“흠흠, 유나...씨? 베이스 톤이 좋습니다. 하지만 호감의 정도를 조금 더 낮추도록 합시다.

이 애니메이션은 트레이너와의 교류보다 말들간의 우정과 전우애가 중요하니까요.”

상당히 디테일한 피드백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다양하다.

그것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빼달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 줄여달라?

이성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을 요구하고 있었다.

성우로 치면 필모그래피가 0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이다.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마라톤 선수에게 100미터 달리기를 요구하는 꼴이었다.

“좋아요.”

성우와 버튜버는 다르다.

전자는 목소리만으로 영혼을 부여하는 직군이고, 후자는 본인이 정한 캐릭터 컨셉을 연기하며 소통과 재미를 제공하는 직군이다.

하지만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듯, 하나의 계통에 빼어난 이들은

“트레이너 씨 좋은 아침이에요.”

다른 계통에서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하물며, 처음 하는 일에 심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 담대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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