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75화 (275/307)

〈 275화 〉 274화.

* * *

[너의 애마가 즈큥도큥~ 달려나가~ 바큥바큥~ 달려 나갈게~]

화면 속 여인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돌 음악이란 높은 수준의 노래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듣기 좋은 멜로디와, 편하게 따라부를 수 있는 하이라이트 부분과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후크 정도만 있으면 괜찮다.

[우마뾰이 우마뾰이!]

하지만 저건 그냥 피지컬로 찍어 누른 거다.

혼자서 여러 명이 내야 할 포스를 낸다고 봐도 무방했다.

“놔두기가 아까운데?”

애니메이션 제작 위원회에서 판매를 담당하는 마케팅 팀장이 그렇게 말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불법 영상(원래 언아카이브 영상은 방송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진행하는 방송이기 때문에 기록이 남으면 안 됐다)의 우마뾰이는 진짜 ‘우마뾰이’였으니 말이다.

“한정판에 넣죠. 이참에 다른 비­우마무스메 배역의 성우들도 우마뾰이 시켜버리죠.”

역시 게임의 신과 손발을 맞춰온 사람다웠다.

오타쿠들이 좋아 죽는 포인트인 ‘한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사람답게 그는 바로 써먹을 방안을 제시했다.

“원래 애니메이션에 이런 제작 비화 한 둘이 들어가면 메이킹 필름이 되는거죠.”

“그냥 사람들을 우마뾰이 시켜버리죠.”

“우마뾰이.”

나이 지긋이 든 남자들이 우마뾰이를 읊는 그 모습은 살짝 거북한 감이 들게 했으나, 혀에 착 감기는 우마뾰이와 화면 속 버튜버가 귀엽게 우마뾰이 우마뾰이 하는 것은 강력한 마력이 있었다.

스스로도 모르게 ‘우마뾰이’를 말하게 되는 그 마력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버튜버 마케팅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물론 아리아가 혼자서 방송에 언급하는 것으로는 일시적인 변동이 있었지만, 그녀와 친한 버튜버들이 애니메이션 1기를 리뷰하고, 2기에 대해 기대감을 보인 것으로 스트리밍 플랫폼 사이트의 시청률이 크게 올랐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DVD 대여소인 ‘츠타야’를 통해서 DVD를 빌려보지 않는 젊은 세대의 사람들이 아메바 티비, 니코동 티비, 아마존 비디오 등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서 이전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보게 되었다.

그쪽 사이트 또한 알고리즘에 따라 ‘요즘 뜨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스템으로 우마무스메 1기를 재조명했고 인지도가 올라왔다.

버튜버 혼자서 이루어낸 위업은 아니지만, 아리아와 클레스타인 두 사람이 언급하고 다른 버튜버들의 관심을 이끄는 것으로 하나의 흐름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현재 버튜버 업계에서 명실상부 톱을 달리고 있는 선라이즈의 버튜버를 보는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이렇게 이루어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유명한 사람을 공략해서 시행하는 마케팅은 요즘 세상에 드문 일은 아니지만, 선라이즈 특유의 끈끈한 유대감, 흔히들 클러스터(Cluster)라고 부르는 집단들은 생각보다 서로에게 쉽게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아리아라는 버튜버는 생각보다 다른 버튜버에게 끼치는 파워가 강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녹음 전에는 우마 무스메가 게이머들에게는 엎어진 기획을 게임의 신이 되살린 프로젝트 정도로만 인식하던 사람들이 우마뾰이를 입에 담겠는가?

“사실 현장 녹음 감독에게서도 그녀에 대한 보고가 따로 올라왔습니다.

경력 없는 신인 성우라고 볼 수 없는 실력과 배짱, 그리고 다른 선배들에게 친해지는 능력이 원탑 급이라고 하더군요.”

“분명 인터넷 방송인, 특히 버튜버 쪽은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녹음이 끝나는 순간 그녀와 함께하길 원하는 성우들이 제법 많더군요.”

성우라고 반드시 사회성이 좋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성우들이 성공을 조금 더 빨리 하는건 맞다.

인맥을 통해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무소를 통해서 일을 받아오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자기 밥그릇을 찾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권’ 즉, 경력이 걸렸건 앞으로 성우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과 사귀기 위해서 발동되는 것이지, 순수하게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성우들에게 있어서 유나라는 사람은 일종의 성우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유학생이고, 성우 체험활동을 하는 외부인에 가까웠다.

“애초에 그녀는 버튜버가 아닌가? 인터넷 방송인과 성우는 굳이 비유하자면 육군과 해군같은 느낌 아닌가?”

“그녀는 버튜버 이전에, 천재 가수이지 않습니까?”

“...잠깐, 설마 노래를 가르쳐준단 말인가?”

유나는 천재가 맞다.

뛰어난 사람이 옛사람들이 쌓아 올린 공부를 피나는 노력으로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이루어내는 성과를 그녀는 젊은 나이에 이루어냈으니까.

그런 그녀를 교양있는 음악 방송에 내보내자고 몸을 비트는 방송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 사람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냥 버튜버로 출연해서 어디서 트레이닝을 받았다던가, 어떻게 음악을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2주일간 반짝거리면서 온갖 예능에 나오고 난 이후, 지상파에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버튜버 아리아 이전에 음악가 아리아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 특히 가요계 잡지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몸을 비틀고 있는지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아무리 비틀어도 ‘버튜버입니다. 밝혀지는 건 곤란’이라는 스탠스를 취했던 평소와 다르게 성우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설마 그 사람 성덕인가?”

“...네.”

“도,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줄곧 회의에서 엄숙한 포지션을 지니던 제작 위원장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괴짜 천재의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한 성우들 하고만 어울린다면 모를까

경력을 한창 쌓고 있는 신인 내지는 무명 성우들과도 적극적으로 어울린다고 하니 기가 찼다.

그야말로 괴짜였다.

“그래서 녹음 샘플이 여기 있습니다.

특히 그녀와 자주 어울리는 성우들이 정말 노래 실력이 탁월하게 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력이란 한 번에 뛰어오르지 않는다.

칼을 가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정진한 사람만이 피워낼 수 있다.

그걸 감안하고 들어본 결과, 이전 성우 채용 오디션의 노래와 지금의 노래는 상당히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나저나, 유나라는 사람...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습니다.”

“...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사실 스태프들 사이에서 그녀는 미래에서 회귀한 초일류 아이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만화 영화를 만드는 사람답게 익살스러운 대답이었으나, 은근히 설득력 있었다.

일단 일반적인 상식으로 유나를 이해하는 데 포기한 그들은 조금 더 실리적인 생각을 했다.

“그녀가 맡은 이번 캐릭터, 분명히 서포트 캐릭터라고 했지? 게임에서도 서포트 카드고.”

“네.”

“아리아에게 음악 저작권 공유해주고, 마음껏 우마뾰이 시키게 하도록 하지.

그녀의 우마뾰이는 반드시 공식에서 확보해야 한다. 명심하도록, 아리아의 우마뾰이가 아닌 타즈나의 우마뾰이!”

*****

애니메이션과 게임은 예정보다 일찍 나오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원래대로라면 연기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렇게 사회적으로 뜨거운 관심이 있을 때 제대로 치고 나와야 한다는 운영진의 결정에(이날 게임 회사의 프로그래머와 애니메이션 회사의 직원들은 유언장과 사직서를 썼다) 유례없는 크런치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1화가 공개되는 순간, 사람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나이가 제법 있는 경마 팬들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 전설적인 이야기를 썼던 토카이 테이오와 매지로 맥퀸의 이야기, 클래식 3관을 노리던 미호노 부르봉과 이를 저지한 라이스 샤워의 서사라는 점에 감탄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가 달라졌을지언정, 이 작품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경마 부분은 전작보다 더 발전했고,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위닝 라이브 연출은 진화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면 ‘뭐야? 말을 의인화 한 소녀들이 달린 후에 이긴 순서대로 센터에 세우고 춤을 시킨다고?’ 하는 이상하다 못해 괴상한 세계관과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이미 이 작품에 기대하던 사람들은 1기를 통해 그 위화감을 상당히 덜어내고 왔기에 문제가 없었다.

유명한 중계 사이트인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30만명에 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96%가 넘는 시청자들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고, 1화에서는 아리아가 담당한 대사가 단 한 줄 나왔지만, 이것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아리아의 팬들은 24분의 애니메이션을 모국어로 번역하고 배포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은 호평을 이어 나갔다.

실상은 일정에 사람을 갈아 넣은 지옥과도 같은 강행군이었지만, 1화의 호평과 2화의 호평­그리고 평소보다 더욱 두둑하게 배정될 성과금­은 애니메이션 제작진과 게임 개발진의 의욕을 고취 시켰다.

드라마로 치자면 방송 1 주 전에 테이크를 하고 편집을 하는, 업계 사람들이 본다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가혹할 일정은 이어졌고, 성우들 또한 애니메이션 테이크가 끝나고 게임 파트로 넘어가서 녹음을 들어가기 시작한 건 이때였다.

조명받을 주인공이 정해졌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개개인의 목소리와 상태를 증명할 수 있는 게임 수록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 성우들은 그야말로 혼을 불태웠다.

그녀들의 노력이 특히 크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음악 수록 부분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곡과는 다르게, 작품에 수록된 여섯 곡을 녹음하는 부분에서 많은 신인 성우들은 그들의 커리어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빼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캐릭터 특유의 발성법과 연기를 잊지 않으면서도, 자신 있게 노래하는 그 모습은 다른 유명 성우들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았다.

이에 자극받은 유명 성우들도 평가절하 당하지 않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녹음에 들어갔고, ‘거쳐 가는 커리어’라는 생각 대신 ‘이 정도면 인생 걸만한 커리어인데?’하는 생각들을 서로 하게 될 무렵, 애니메이션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3화가 끝남과 동시에 2018년부터 나온다? 나온다! 하던 게임의 출시가 확정되었다.

사이게임즈는 이 프로젝트에 사활이라도 건 듯 어마어마한 홍보를 이어 나갔고, 애니메이션 또한 비싸기로 소문난 야마노테선에도 미디어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실상은 ‘게임의 신’을 ‘죽이고자’하는 윗사람들의 치열한 회사 내부 정치 끝에 ‘게임의 신’이 자신의 경력을 걸고 띄운 승부수였지만, 광고에 투자한 금액만큼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었다.

이런 팽팽한 긴장 속에서 대망의 블루레이 1집이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동일 회사 다른 IP 게임의 유저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한 게임 시리얼 코드의 내용 또한 동봉되어있었으나, 이번 특집에는 새로운 인질(?)이 있었다.

‘본 DVD의 초기 한정판에는 우마무스메 배역이 아닌 다른 캐릭터의 우마뾰이 전설이 수록되어있습니다.’라는 조그만 문구가 트위터에 올라왔다.

­우마뾰이? 우마뾰이?

­그러니까, 우마무스메가 아닌 캐릭터 중에서 우마뾰이라고 하면...

­트레이너? 그 남자 트레이너?

­ㄴㄴ 여자도 트레이너 있음, 이쪽은 메구미님

­헐, 메메쨩이 우마뾰이라고?

­잠깐만, 그러고보니 타즈나 성우가...

­아리아

­아리아의 우마뾰이?

­우마뾰이? 우마뾰이?

­저번에 비공개 방송에서 불렀던 우마뾰이를 원본에서 직접 부른다고?

우마뾰이

이 얼마나 오타쿠의 마음을 자극하는 단어란 말인가?

애니메이션에는 워낙 단역으로 나와서 ‘그게 누군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엑스트라 치고는 비중이 제법 나온 터라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허나 아리아의 우마뾰이는 느낌이 달랐다.

오타쿠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그러니까 한때 유튜브를 휩쓸었고, 지금도 편의점에 가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아리아의 ‘푸른 혜성에 빌어’ 실력으로 우마뾰이다.

다른 우마뾰이가 평범한 우마뾰이라면, 이쪽 우마뾰이는 일본을 대표할 우마뾰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괴상한 글들이 오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