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화 〉 2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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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타쿠 업계에 우마무스메가 점점 자주 언급되어가는 시기
아리아가 성우 활동에 몰입하느라 방송에 소흘히 한다고 생각하는 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극단적으로 ‘버튜버는 성우를 위한 발판이었어?’라는 의견이 담긴 날 선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확실히 성우 활동을 개시한다고 밝힌 이후 그녀의 방송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실상은 얼마 안 되는 녹음에 들어가서 다른 성우들이 일하는 것을 직접 지켜 보고, 녹음이 끝난 후 놀러 다니면서 성우들과 술잔을 나누느라 시간이 줄어든 것이지만, 결국 방송 시간이 줄어 들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팬들 가운데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리아의 성우 활동을 나쁘게 보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목소리에 재능이 있는 아리아에게 성우 활동은 결코 나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성우 활동을 통해서 목소리 연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실전적인 지식들이 쌓여가기 시작하며 그녀의 목소리 연기폭이 넓어졌다.
워낙 저음을 내는 데 익숙한 중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메이드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음을 내는 데 익숙한 아리아의 목소리를 갖춘 그녀였다.
거기에 성우들에게 배운 연기 태크닉과 감정 빠르게 전환하는 방법을 배운 후 그녀는 그야말로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백(?)의 목소리’를 갖추었다는 칭찬마저 듣기 시작했다.
배운 것을 방송에 써먹자는 평소의 포부대로 그녀는 다양한 목소리 연기가 필요한 일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이전이라면 ASMR 방송을 통해서 ‘사람을 홀리는 성숙미 가득하면서도 처연한 여자 목소리’만을 무기로 갖추었던 아리아의 방송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게임을 할 때도 이전이라면 평소의 어조대로 읽던 그때와 다르게, 남성 캐릭터는 힘 있고 설득력 있게, 여성 캐릭터는 소녀에서 노인부터까지 폭넓은 목소리를 내면서 연기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 콘텐츠로만은 그녀의 발전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일 기회가 적었기에 아리아는 작심하고 아예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했다.
언어에 대한 이해, 폭넓은 목소리 음역대, 그리고 연기력이 갖추게 되면서 새롭게 시작한 것은 바로 ‘읽기’ 콘텐츠였다.
때마침 최근 들어서 온라인으로 만화를 읽고 소설을 읽는 플랫폼들이 점차 늘어나고 커지기 시작하면서 온라인으로 소설을 읽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한 아리아는 이런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일본 현지인보다 더 정확하고 깔끔한 발음, 인기 있는 인터넷 방송인 특유의 확고한 전달력, 거기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연기력으로 많은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읽기 콘텐츠는 기존의 게임 콘텐츠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방송인들이 감히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그녀는 기존의 매혹적인,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여성이라던가 사람을 홀리는 특유의 매력 넘치는 여성의 연기톤을 벗어나서 남자 목소리를 내는 데도 익숙해졌다.
메이드로 활동할 당시 특유의 묵직한 동굴 저음도 매력이 있었지만, 그녀는 경박스러운 남자 말투도 제법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재수 없게 모든 걸 안다는 듯 깐족거리는 이세계 남주인공의 말투를 기깔나게 했다.
“아아, 모르는가? 이건 우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 ‘양념 고기’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이것은 마요네즈라고 하는 법이다.”
너무 기깔나게 말이다.
우욱
씨발, 왜 고기를 재웠다가 구워 먹는 게 혁명인데?
아니 우동보다 피자가 더 맛있는 거 아니야? 왜 밀가루를 활용한 다른 음식에서 다른 빵 종류가 아니라 우동이 나오는데?
일본 생활 3년 차인 나도 젓가락질 힘들어하는 데 쟤들 왜 젓가락질 한 번에 잘하냐고 ㅋㅋ
마요네즈 시벌 그거 일본 거 아니잖아!
재수 없는 주인공 캐릭터의 오만한 말투
쓸데없는 장인혼이 들어간 뛰어난 연기
그리고 같은 일본인들이 읽어도 ‘아 이건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장인 설정과 흐름
그 덕분에 이번 방송은 유독 시청자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그리고 그 시청자들의 불평 가득한 채팅에 유리아가 장작을 던졌다.
“와 진짜 재수 없다.”
“유리아님!”
그녀와 합을 맞춰주고 있던 유리아가 견디지 못하고 흐름을 깨고야 말았다.
시청자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일부러 유명한 작품 보다는 ‘똥작’이라고 불리는 이세계에 일본 특유의 국뽕주의를 가득 채워 담은 양산형 소설을 택하긴 했지만, 아리아의 재수 없는 남주 말투는 솔직히 말해서 시청자들도 아리아에 대한 사랑을 흔들리게 하기 충분했다.
“TS 시켜버리자.”
“네?”
“이세계 국뽕주의 뽕빨물 남주인공을 여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자고.”
“그건, 작가님이 화내지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는 소설을 소리 내서 읽는 것 뿐이잖아? 아리아가 남성의 목소리로 읽던, 여성의 목소리로 읽던 문제 없지 않을까?”
실로 궤변이었지만, 그럴싸하게 들렸다.
실제로 그녀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시청자들이 제법 화를 내는 이모티콘을 많이 쓰고 있어서인지 그런지 알게 모르게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하던 아리아는 ‘재수없는 이세계 남자 주인공’말투를 그만두었다.
“어라, 그런데 어떻게 하죠? 여자 주인공다운 말투?”
그녀의 의문은 당연했다.
물론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당시 기준으로 ‘목소리’가 나오고 마니아들이 아닌 다른 시청자들이 ‘아!’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은 크게 없었으니 말이다.
해답을 제시한 것은 ‘도저히 재수 없는 남주 목소리를 듣기 싫다’라며 불평하던 유리아였다.
“요즘 일본... 아니아니, 마계의 소설 트랜드를 보자면... 분명히 옆 나라에서 온 ‘악녀’컨셉의 여주인공이 제법 많이 보이긴 하지.”
“악녀 컨셉?”
“흠흠, 아리아는 조금 더 옆 나라의 최신 소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마치 가르침을 베푸는 듯한 마계 공주의 말이었다.
역시 공주님이 뭘 잘 아시네
한국산 악녀 소설들 너무 재밌어요
ㄹㅇ루, 나는 남자인데도 잘 본다니까? 한국인 특유의 매콤한 감성이...
역시 막장 드라마의 나라! 그런데 소설도 재미있어!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은 아리아가 다시 문장을 읽었다.
재수 없는 뻔뻔한 남자 주인공 대신, 고귀함이 좍좍 묻어 나오는 고귀한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어머나, 이런 것도 모르셨다니... 이게 바로 ‘우동’이라는 거랍니다.”
“세상에나, 어떻게 ‘부루고기’를 모르실 수 있죠? 가.여.우.셔.라.”
“이것이 바로 로즈윈 가문의 특제 비법인 ‘마요네즈’, 당신같은 사람들에게 베풀기 아까운 신의 음식이죠.”
오 시발
짜증나는 데 듣기 좋아
아가씨 말투 되게 잘하네?
아 근데 내용이 너무 재수없어 ㅋㅋ
양판소 이세계 국뽕 남주 vs 옆판소 이세계 귀족뽕 여주 난 닥후 ㅋㅋ
아 잠만, 주인공 캐릭터가 여자로 바뀌면 스토리 다 어떻게 되어감?
TS백합하렘이지 뭐
재수 없는 주인공 남자 캐릭터가 여자 캐릭터가 된 것 만으로도 뜨겁게 타오르던 민심이 가라앉았다.
오히려, TS 되어버린 까닭에 기존의 무지성 하렘 구성이 끈적끈적한 우정 내지는 동성애로 이야기가 변해버렸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이 어렵지 그녀는 전통적인 일본 특유의 무자각 무지성 하렘 남자 캐릭터를 완벽하게 귀족 여성으로 어투와 표현을 변경해서 말하기 시작했는데, 높은 음성으로 품위 있는 귀족 말투는 재수 없는 남자 주인공 특유의 역겨움 대신 ‘아가씨의 은총’이라는 신선함을 부여했다.
그렇게 1권 낭독이 끝난 후 아리아가 물었다.
“유리아 언니, 어떠셨어요?”
“그야말로 최고였어.”
1권 내내 다양한 엑스트라 캐릭터로 아리아에게 대쉬하거나, 두근거리는 로맨스 상황을 즐겁게 읽은 유리아의 반응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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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의 새로운 도전, 아가씨 캐릭터 연기!]
[지난밤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 아리아는 기존에 이어오던 소설 읽기 콘텐츠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것은 아가씨 캐릭터 연기, 평소 시청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거나 밀고 당기면서 연애 분위기를 조성하던 평소와 다르게, 완전히 위압적인 귀족 여성의 캐릭터를 조형함으로서...]
불과 12년 사이에 괴물같은 성장을 이루어낸 버튜버 시장에서는 아리아 같은 대형 버튜버의 근황을 정리하는 뉴스 사이트도 나왔다. 이런 사이트는 그녀의 방송 중 나온 발언이나 행동을 마치 키리누키처럼 기사처럼 써서 영상을 보지 않더라도 그녀의 소식을 전파했으며, 생각보다 그녀의 아가씨 톤 연기가 빠르게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다음 날 오전 회의에서 매니저의 뜨거운 눈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일본 서브컬쳐 마케팅 팀에 있어서 아리아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였다.
게임이 원작이나 게임이 나오지 않고 두 번째 애니메이션이 나온 시점에서 엎어진 프로젝트라고 알려진 우마무스메 프로젝트의 엑스트라 단역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타버린 장작이나 다를 바 없는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홍보하고 새로운 붐을 일으킨 영향력
그리고 현재 시점 역대 최고 판매량을 자랑하는 1권 DVD 속에 들어있는 ‘우마뾰이’ 영상 때문인지 몰라도 순항하고 있는 우마무스메 프로젝트는 작품에는 자신 있으나 ‘홍보’가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제작진들의 머릿속에 ‘혹시 우리도?’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그렇기에 그녀 앞으로 쏟아져 오는 명함에 적힌 회사의 이름들이 점점 더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경력이라고는 우마무스메에 출연한 엑스트라 단 한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급’이 높은 국민 애니메이션 배역 등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해주기를 원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특히 레이와 시대에 처음으로 개봉하는 프리큐어 시리즈야, 일본인이 아닌 너는 이 시리즈의 성우가 얼마나 대단한 지 모르겠지만...!”
“국민 여아용 애니메이션의 국밥 그 자체죠.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홍보가 가능하고, 장난감 시장과 연계하면 신인으로서는 엄청난 커리어를 붙잡는다면서요?”
성우 계의 최고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프리큐어 시장이다.
마치 남자 연기자의 등용문이 가면라이드 시리즈인것처럼, 아이들의 TV를 지배하는 타이틀은 단역이라고는 하나 나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시작점을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출연은 제가 원했던 바가 맞긴 한데, 저랑 술잔 기울였던 선배들이 라이브 프로젝트 준비한다고 바빠져서 새로운 대형 작품에 출연할 생각은 없어요.”
“어?”
“저 성우가 아니라 버튜버잖아요?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되죠, 버튜버를 민간에 열심히 알리는 역할은 코모레비와 이나리 선배 두 사람이면 충분해요.”
“하지만 프리큐어라고 프리큐어!”
“에이 프리큐어니까 더 안 되죠, 녹음량이 얼마나 많은데, 단역도 아니고 엑스트라 역할로 맡아버리면 해외쪽 선배들과 합동 방송은 영영 불가능하게 될걸요?”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유나는 이번 우마무스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면 녹음 하는 요일인 목요일을 전후로 일정을 모두 비워버렸다.
수요일 같은 경우 휴방 스케줄을 잡아버렸고, 목요일 같은 경우는 무조건 심야 방송, 금요일도 저녁 이후 방송을 켤 정도로 스케줄의 공백이 생겼다.
비록 단역이지만 성우들과 친목하기 위해서 일정을 비웠고 최근 들어서 그 오해를 풀기 시작한 자신에게 있어서 새로운 배역은 독이 될 것이라는 평가였다.
“쩝, 아쉽네.”
하지만 무려 프리큐어다 프리큐어.
아쉬운 듯 그 말을 중얼거리는 유키하라 매니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나가 말했다.
“어째 언니가 더 신난 것 같네요? 막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하지, 오타쿠 업계 일하는 사람 중 프리큐어 제안받는 게 보통 일인 줄 알어? 우리 유나 같은 예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
덕질 경력을 단기간에 쌓아 올린 유나는 그 대단함이 몸소 느껴지지 않았지만, 성우들과 으쌰으쌰하는 동안 그들이 소속된 성우 사무소의 매니저들의 어그로를 온 몸으로 받은 자신의 매니저가 고마웠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지금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순간이 좋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프리큐어를 받을 건 아니지만.
“언니, 제가 요즘 웹소설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한국에서 건너온 게 많더라구요?”
“뭐, 그렇긴 하지?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책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기존 웹소설을 유통하던 대형 회사가 라인하고 손잡게 되면서 웹툰하고 웹소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돼.”
“언니, 저 한국인이라는 거 아시죠?”
영어로 방송하고 일어로 성우일을 하는 유나의 국적은 한국인이다.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사실이다.
“...그렇지.”
“웹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이거 돈 냄새가 풀풀 나는 거 같은데요?”
실제로 그러했다.
코로나는 서브 컬쳐 강국인 일본의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오프라인으로 잡지와 신작 소설을 돈 주고 사는 사람들의 지갑 대신 인터넷으로 연재되는 만화와 소설에 대해 관대하게 지갑을 여는 흐름이 포착되었다.
선라이즈같은 버튜버 회사는 몰라도, 기존의 만화 잡지 편집사나 출판사들은 이런 변화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그들의 전략은 다름 아닌 성우들을 통해서 소설의 외전 격인 보이스 드라마를 녹음하는 식으로 마케팅을 나서는 전략이었다.
“대학생 1학년 2학기, 2019년 봄 코로나가 터지면서 외부 활동일 불가능하게 되었던 한국인 출신 유학생이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죽였을까요? 참고로 그 당시에는 파이널 판타지나 슬램 덩크도 모르던 사람었어요.”
“...웹소설?”
“정답.”
새삼스럽지만 유나는 유학생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그녀 또한 스트레스를 풀 만한 취미 생활이 있어야 했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한국에서 출판되는 웹소설들을 동생 아이디를 빌려서 무한으로 읽었다.
그리고 그 당시 즐겁게 읽은 로판, 특히 악녀가 주인공인 로판 타이틀 대다수가 일본어로 나온 것을 본 유나의 표정을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의 표정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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