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81화 (281/307)

〈 281화 〉 280화.

* * *

전설이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많은 사람이 도전하였으나 영광스러운 별이 된 사람은 드물었고, 그런 별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존재한 사람은 드물었으니 말이다.

아리아는 이 시대의 버튜버 가운데 전설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구독자 숫자로 보면 선라이즈 10위권 정도의 구독자를 가졌으나, 활동을 개시한 지 반년이라는 점을 본다면 놀라운 수치였다.

허나 그녀는 구독자로 평가할 수 없는 버튜버다.

인터넷 방송인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할 화제성

아리아는 그런 화제성 면에서 항상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다.

음악으로 보자면 유튜브 인기 급상승 1위를 탄 이후 가요계에 진출하여 일본 가요계를 뒤집었고

게임으로 보자면 시원한 게임 실력으로 겁 많은 사람들이라도 공포 게임에 도전하게 만드는 분석 컨텐츠로 여름 게임 업계를 뒤집었고

목소리로 보자면 화제의 게임 우마무스메에 출연하여 본인의 능력으로 담당 캐릭터를 인기 캐릭터로 만들만큼 매력적이었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리아의 디자이너로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사니와 격주마다 식사 자리를 가지며 그림 업계와 친분을 나누고, 유명 작곡가인 니아 작곡가와 자주 교류하여 서브컬쳐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아리아는 그야말로 이쪽 판의 여왕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물며 그녀에게 반해서 그녀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버튜버들이 얼마나 많은가?

메이드 라의 하렘에 대해 모르는 선라이즈의 팬들은 없었고, 다른 회사 소속의 버튜버들도 그녀의 방송에 함께하길 바란다는 사실은 이미 버튜버들 사이에서 소문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헤에, 내 인지도가 그랬구나.”

“서, 설마 모르셨나요?”

“최근 들어서는 워낙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그런지, 다른 버튜버들 사이에서 내 평가를 못 들어본지 꽤 되었네.”

하긴 그녀의 행보는 워낙 독특했다.

데뷔 6개월이면 이제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립하고 캐릭터 역사에 남길만한 대박 컨텐츠를 기획하고 방송으로 풀어나가는 게 당연한 시절이다.

그러면서 구독자 n만명 달성 방송같은 것을 준비하며 다른 버튜버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아리아는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는 듯, 독보적인 실력과 존재감으로 별이 되어버렸다.

행보만 보자면 버튜버의 전설인 마나와 비슷한 행보였다.

‘괴물은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세 신입 사이에는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선배는 정말...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응,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스무살을 겨우 넘긴 여인이 입에 담기에는 참으로 오만방자한 말이었으나 세 신입은 왠지 납득 해버렸다.

그녀와 만나고 30분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그녀는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교를 허용하지 않은 규격 외의 천재란 저런 존재였다.

그런식으로 생각하니 묘한 압박감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방송하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방송의 흐름? 시청자들의 의견?”

“아리아는 완벽주의를 지향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런 완벽주의가 흐트러질 때 기뻐하는 법이지.

나는 그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편이야.

이미 허당으로 유명한 편이지만, 완벽주의를 노리고 방송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이미지를 놓고 일종의 밈을 만들려고 하는 편이지.”

“밈.”

“그래, 두 사람은 방송해봐서 알겠지만 결국 우리같은 버튜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밈이 중요해.”

사실 선라이즈의 방송인이라면

아니, 인터넷 방송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에 의해 쉽게 생산되고 쉽게 거론될 수 있는 밈이 존재해야 방송을 직접 켜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버튜버들은 이런 밈을 만들어가기 수월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끼를 선보이고 팬을 만드는 과정에서 확실한 컨셉을 잡고 있는 버튜버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으로 강력한 밈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코모레비의 사이코패스 밈

유리아의 집착하는 여자친구 밈

클레스타인의 폭력적인 성녀 밈

“버튜버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흘러가야 해.

너희들도 알고 있지만 아리아는 선라이즈 최초의 단독 데뷔로 이루어졌지.

캐릭터 디자인과 모델링 모두 완벽한 형태로 데뷔했지.

회사를 구하지 못하는 개인 버튜버들은 감히 꿈꾸지 못할 지원을 받고 시작했지.

그 이후 나는 끊임없이 밈을 만들었어.”

지금은 레전드 오브 전설로 남는 점프킹 방송으로 화제를 모았다.

버튜버 덕질 토크로 버튜버 오타쿠라는 밈을 만들고, 노래 방송으로 천재 가수 밈을 만들었다.

그 후 타마와의 에이펙스 콜라보, 헤카테와의 페이데이 콜라보로 인해 든든한 FPS 고수인 아리아 형 밈을 만들었고, 꿀 떨어지는 ASMR 방송으로 매혹적인 구미호 이미지를 굳혔다.

물론 그녀의 방송 하나 하나가 다른 인터넷 방송인들에게 쉽사리 볼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퀄러티로 새로운 이미지를 소개한 까닭에 밈이 빠르게 정착되어서 그렇지, 결국 그녀가 이슈를 잡아먹으며 대박을 터트린 것은 이런 밈들을 통해서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밈을 만들기 위해서야.

시청자들과 투닥거리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당해서 울먹이는 것도, 시청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밈을 만들어 내야만 해.”

이것이 버튜버의 매니저로 1년간 활동하여 이쪽 시장을 분석하고 그 이론을 몸소 실천하여 업계의 전설로 올라온 아리아의 이론이었다.

물론 우아한 백조의 발밑은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의 성공 배경에는 피나는 노력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체력 그리고 언니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세 신입들은 그녀를 우러러 보았다.

“캐릭터를 연구해, 밈을 만들어, 혼자가 힘들다면 다른 동기들과 함께 해, 선배들에게 상담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견고하게 올라나가 봐.”

“저희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인사하던 아델리아가 소심한 어조로 말했다.

유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아 주며 말했다.

“물론이지! 너희들은 10000: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이 아리아의 후배가 되는 사람들이니까.

너희는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어!”

“흑.”

사실 멘토링이라고 해봤자, 인터넷 방송은 개인이 개척해야할 영역이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업계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 자신들에게 할 수 있다고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어조로 답해준다.

그것으로 족했다.

그녀의 성공을 알게 될수록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졌던 그녀들은 가식이건 아니건, 태양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들을 응원한다는 말에 감정이 올라온 듯 울음을 터트렸다.

*****

결국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었는가

유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정신차려보니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같은 라이트노벨같은 전개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허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비현실적인 감각에 얼을 타겠지만, 언제나 자신감이 흘러넘치던 유나는 금세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아마 학교라면 이제 3학년이고 돌봐야 할 후배들이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입장이니

뭐 버튜버 후배를 거느리는 것도 비정상은 아니겠지?

“흐음, 그래도 괜찮다면 내가 너희들의 방송 연습을 봐주고 싶은데, 경력 반 년의 선배가 이렇게 말하면 별로 믿음직스럽지는 않으려나?”

난데없이 터진 울음에 전염이라도 된 듯 훌쩍이던 후배들은 축축한 손으로 유나를 붙잡았다.

코미케에서 갑자기 업계 전설 존잘님이 와서 자신의 책을 사더라도 이렇게 열렬한 손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결국 자신의 언니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언니를 달래주기 위해 제법 긴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잠시 후

세 신입은 버튜버 사이에서 ‘천궁’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선라이즈의 사택 앞에 도착했다.

천궁이라니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버튜버에 뜻을 둔 사람들은 하루라도 좋으니 이 꿈같은 공간에서 지내기를 소망했다.

그도 그럴게 여기에 들어와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명했으니 말이다.

구미호 아리아와 마계공주 유리아

2기생의 전설 미즈나시 오르페와 5기생의 실세 루미에

4기생의 리더이자 실세인 클레스타인

그리고 버튜버계의 원로이자 이나리와 비등한 지상파 인지도를 가진 아이돌 코모레비

전설들의 둥지였다.

그리고 그 둥지에 이런 식으로 찾아오게 될 줄 몰랐던 세 사람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뭐, 그렇게 긴장들 하지 말아. 어차피 여기도 사람 사는 공간인걸?”

물론 툭 만하면 처들어오고, 아침마다 졸린 눈으로 커피를 찾으러 집에 내려오기는 하지만 선량한 이웃이자 동료들이다.

방송인들이 가지는 고충을 나누고, 힘들때면 서로가 집안일을 도와주는, 어찌 보면 사회학자들이 한 번쯤은 탐구하고 싶어 할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사택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쿠라장 특유의 풍토가 아니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전원이 100만 구독자의 버튜버인 별들의 저택에 들어온 세 데뷔생들은 유나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인형같은 여자아이를 볼 수 있었다.

“헤헤 나에 언니, 제가 언니 사랑하는 거 다 알죠?”

“여자들을 무책임하게 내 집에 들이면서 할 말이야?”

“그래도, 후, 후, 후배라구요 후배!”

마치 사고치고 온 철없는 남편을 쏘아보는 듯한 시선으로 유나를 바라 본 여자아이는 자신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어서 와, 대책 없는 선배 때문에 고생 많지?”

아리아를 철부지 취급하는 그녀의 태도에 세 신입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특히 그녀의 열렬한 추종자인 하루나는 호흡이 가빠진 듯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든 그녀는 식탁으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저녁을 먹기에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방송인들은 든든하게 먹어야 하니까 손 씻고 어서 들어오렴.”

그러고보니 집 안으로 들어온 순간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녀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닥친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지금 하늘같은 선배가 자신들을 위해 직접 식사 준비를 해 주셨다고?

“아이 참, 언니 제가 마저 할게요.”

“흥, 유나에게 죄책감을 달아 둔 다음 당분간 우려먹어야겠어.”

세 사람의 시선이 변하거나 말거나, 나에와 유나는 다정하게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저번에 성우 초대 사건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이후 다시 되찾아 오나 싶으나, 결국 사람을 만나면 밥을 먹어야 하는 한국인 특유의 성격에 집밥 찬양론자인 유나는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세 신입은 방송 데뷔 후에 침이 닳도록 자랑하게 될 ‘마왕성 식사’를 누릴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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