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3화 〉 2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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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기업 산토리 브랜드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일본 대기업들 가운데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지향하는 편이다.
주요 분야는 주류와 음료인 그들은 공격적인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선호했고, 오이맛 펩시나 녹차와 펩시를 섞은 음료 아닌 무언가들을 만들어 내면서 점잖게 표현하자면 혁신 그 자체적인 마케팅을, 속되게 말하자면 약빨고 만든 음료들을 만들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각인했다.
점잖은 척하는 아사히보다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은 그들은 기어코 새로운 마케팅 플랜을 내놓으니, 그것은 바로 산토리 노마레라는 기업 소속 공식 버튜버의 출범이다.
그것도 흔히들 ‘윗사람들이 생각하는 딱딱하고 재미없고 유행 지난’ 틀딱들이 선호할만한 디자인이 아니라, 현역 일러스트레이터의 손으로 디자인된 깔끔하고 매력적인 디자인에 대기업 답게 돈을 아끼지 않는 고가의 모델을 써서 데뷔한 그녀는 기업의 공식 버튜버라 자극적인 방송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버튜버답지 않게 훌륭한 방송 센스를 선보이며 65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준수한 선방을 선보였다.
이런 성공에 감명받은 라인 문고 또한 기업 소속 마케터 겸 인플루언서인 버튜버 양성을 위해 투자를 감행하였다.
돈 냄새를 잘 맡기로 소문난 소프크뱅크답게, 그들은 일본 전문 웹소설 취급 사이트인 라인 문고를 통해 기존의 라노벨 시장을 밀어낼 기세로 극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었기에 자본은 충분했다.
문제는 인재 채용과 육성이었다.
그런 라인 문고의 윗사람들 눈에 들어온 것이 일본 버튜버 시장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선라이즈였다.
현재 레드 오션과 다를 바 없는 인터넷 방송인 시장, 그것도 일본 내수시장에 갇힌 기존 방송인과 다르게 해외 지부를 설립해서 해외의 팬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선라이즈는 ‘갈라파고스 식 한계’에 봉착한 일본을 넘어선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매혹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이름을 떨치고 있는 버튜버 가운데 최고의 흥행보장을 자랑하는 아리아를 알게 되었으니, 대기업의 새로운 레이블인 라인 문고와 최대 버튜버 기업인 선라이즈가 악수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인 아리아와 새롭게 데뷔할 신인, 브로니가 만나게 되었다.
앞으로 브로니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게 될 그녀는 당연히 검증받지 않은 신인이 아니라, 기존에 인터넷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던 우이사키 마코토는 40만의 팬을 보유하던 능숙한 인터넷 방송인 답지 않게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같은 방에 감히 숨을 쉬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스럽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사랑스러운 금발과 멋진 흑발이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섞여 있는 여인은 습관적인 동작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손빗으로 빗었다.
우아하게 뻗은 두 다리는 연약한 미인의 것이 아니라 단단해 보이는 운동선수의 굵은 아름다움이 넘쳤고, 극한의 자기 관리로 다져진 몸은 다부져보이기도 하지만 포근해보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아리아라고 밝힌 여인은 난생처음으로 2D를 정면에서 찢어버리는 3D의 미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가꾸고 숨기지 않은 여왕같은 존재였다.
나이는 분명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리고 국적 또한 다른 여인이지만, 결코 쉽게 대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녀는 제법 자존감 높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조그맣게 만드는 여인이었다.
“마코토 씨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결국 저희가 들어가는 건 캐릭터 회의니까요.
아, 마코토 씨가 별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쪽에는 친숙하지 못한 일반인이라 그러신가요?”
“아, 아예 모르는 건 또 아니에요오...”
마코토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
최근 한 달 안에 40만 구독자가 늘어난 괴물같은 방송인이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을 것 같다.
부끄러운 상황에 익숙한 인터넷 방송인이지만, 현실에서 겪는 부끄러움에는 익숙하지 않은 마코토의 얼굴은 완전 새빨갛게 변했다.
“마코토 씨가 여기 제 앞에 있다는 것은, 엄격하기 그지 없는 대기업의 심사를 통과한 신인이라는 증거잖아요? 당신에게는 능력이 있어요.”
“아니에요...”
인터넷 방송인으로 마코토가 성공했다고 묻는다면,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방송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도망쳤으니 말이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구독자가 40만 명이었고, 고등학생 때 취미로 시작한 방송 경력은 합치면 4년이 넘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성공하지 못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방송은 부정적인 평가를 만들게 했고, 자신을 지켜봐주던 사람들은 더 화려하고 젊고, 재능 있는 사람들의 방송으로 떠나갔으니 말이다.
관리를 잘 한 여성 특유의 아름다움은 있었지만, 생얼 방송을 할 정도로 외모에 자신은 없었다.
소통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재미있는 소통 방송을 할 정도로 빼어난 건 아니었다.
게임 능력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보기 귀엽다’ 수준을 벗어나지 않은 정도의 평범한 실력이었다.
애매한 재능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마코토는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평범하지 않고 비범했다.
하지만 특출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45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녀였지만, 영상 조회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구독자들 또한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른 방송인과의 합동 방송에서 특출남을 선보이지 못했고, 사교성이 뛰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개인 방송만으로 진행하기에는 방송의 힘이 현저히 부족했으니, 그녀는 운이 좋아 잠시 반짝 했을 뿐, 결국 스타가 되지 못했다.
그런 사정을 들은 유나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실패한 인터넷 방송인은 아니다.
일단 10만 구독자를 넘어선 순간 방송에 전념해도 그럭저럭 풀칠할만한 수입이 나오니 말이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인터넷 방송은 특정 팬들을 강력하게 휘어잡을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고, 또 그러한 콘텐츠를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 수 없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매니저의 경력으로 쌓은 지식과 버튜버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을 통해 유나는 마코토의 마음을 어설프게나마 이해했다.
“괜찮아요, 마코토 씨. 인터넷 방송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과 버튜버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다르니까요.”
“그, 그럴까요?”
“저, 아리아에요.”
데뷔한 지 반년 만에 195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터넷 방송인 업계의 괴물
자극적인 어그로 마케팅도 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실력으로만 세상에 증명한 천재
그런 유나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마코토는 오랫동안 그녀의 가슴 속을 틀어막고 있었던 무거운 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
“먼저 마코토 씨는 방송에 대한 경력이 있고, 기본적인 자질은 나쁘지 않아요.
생방송 분야가 조금 약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보는 데, 그건 경험을 통해서 단련할 수 있어요.
다행히 마코토 씨는 방송에 은퇴하신 이후 건강을 회복하셨고, 체력을 제법 기르셨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네, 아무래도 유튜버들은 방에 잘 나가지 않는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좋아요, 성공을 위한 첫 조건은 갖추어져 있네요.
체력 없는 정신력은 무의미한 외침에 불가해요.
제가 밤낮을 뒤바꾸어도 빠르게 회복하는 이유, 여러 일을 도전하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 그게 바로 체력 때문이니까요.”
“...네!”
“그다음으로는 캐릭터에요.
마코토 씨가 라인 문고를 합격한 결정적인 이유는 라인 문고에 출간하는 책 대다수를 읽은 독서 경력이라고 했죠?”
“네, 교양 있는 사람들은 그 글들을 자극적이라고 싫어하고, 라노벨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플랫폼이 익숙하지 않아서 싫어하지만... 저는 웹소설이 좋아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재미... 는 당연한 이야기구요, 저는 사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요.
그런데 요즘 한국 드라마는 웹툰 원작이나 웹소설 원작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더라구요. 가령...”
“치즈 속의 그대처럼 말이죠?”
“네! 달콤쌉사름한 연애가 있으면서도, 두근거리는 남주의 행동과 예측할 수 없는 여주의 행동,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정보 전달 트릭을 써서 긴장감을 더하는...”
이후의 대화는 살짝 일방적으로 변했다.
한국 웹소설 짬이 있는 유나와, 그에 못지 않는 덕력을 지니고 일본 웹소설 트랜드를 꿰고 있는 마코토의 대화는 흔히 볼 수 있는 웹소설 오타쿠 토크였다.
잠시 후
자신의 실태를 떠올린 마코토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유나는 평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결국 인터넷 방송인이란 스스로가 좋아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방송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한 번 인터넷 방송인으로 실패했던 마코는 훌륭한 방송인이 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인터넷 방송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나의 지론은, 인터넷 방송과 버튜버 방송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선보이는 방송과,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연기하는 방송은 다르니까.
“결국 우리 마코토 씨가 원하는 것은 아가씨 캐릭터군요? 현대소설에 나오는 우아한 재벌 여성 보다는, 고아한 화족(??) 아가씨와 로판의 아가씨를 닮은 듯한 캐릭터요.”
“네, 기왕 로판에 빙의당할 거라면 최소 여주인공 내지는 그녀와 대적하거나 협력하는 비중있는 아가씨가 되고 싶어요.”
유나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필 악역 캐릭터 전문으로 오디오 북 녹음으로 악녀 캐릭터를 잡아먹기 위해 연구하고 있떤 자신에게 아가씨를 선보이다니...
캐릭터 컨셉을 구상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아가씨 캐릭터를 바라본 유나의 두 눈동자에는 장난치기 좋아하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눈동자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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