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85화 (285/307)

〈 285화 〉 284.

* *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카토의 실력으로 아가씨 캐릭터를 연기하며 방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소요로 하는 일이다.

대본 없는 메소드 연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배우에게 필요한 역량이지, 인터넷 방송인들에게 요구 받는 분야는 아니다.

개인의 특성을 강하게 어필하는 기존의 인터넷 방송인과 다른, 특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버튜버의 역량은 생각 외로 힘들었다.

쉽게 생각한다면 버튜버 업계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선라이즈에 소속된 버튜버들조차도 방송 시간이 길게 이어지면 본인의 컨셉을 망각하는 방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캐릭터로 임한 후 방송하는 일은 정말 이쪽 분야의 천재가 아니고서는 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유나는 고운 이마를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으으음...”

“...죄송해요.”

분명히 마코토는 쟁쟁한 라인 문고 채용에서 여러 시험을 통과받은 우수한 인재임이 틀림없었다.

오프라인의 어벙한 모습과는 다르게, 캠 앞에 선 마코토는 달변가였으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행동을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생방송 경험이 적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라이즈에서 연구한 방송 데이터를 통해서 안 좋은 습관들을 미리 잡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집중력이었다.

그녀의 순간 집중력은 나쁘지 않았다.

가벼운 샘플 방송을 해 본 결과, 그녀의 캐릭터 역할은 명확했고, 버튜버인 자신이 보기에도 마코토의 아가씨 연기는 정말로 괜찮았으니 말이다.

허나 이것을 길게 이어 나가는 건 무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체력 부족이라고 봐요.”

“그, 그런가요?”

“가만히 앉아서 방송을 하는 일에도 체력이 들죠.

이 사실은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망각해서는 안 되어요.

자신의 온전한 포텐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런 집중력과 끈기는 체력의 보호 없이 성립하지 않아요.”

그것이 유나의 지론이었다.

공부를 할 때도, 노래를 부를 때도, 심지어 집안일을 할 때도 체력은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렇기에 유나의 자기 관리는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미용을 목적으로 시작한 건강 관리였다.

그러나 향상심 강한 유나가 그 역치를 조금씩 올린 결과, 현재 그녀의 운동은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프로 육상 선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 탓에 그녀는 급작스럽게 스케줄이 터지고, 늦은 심야 시간에 방송을 하더라도 제 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질 좋은 식사와 안정적인 주거 환경 그리고 규칙적인 운동 습관은 그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네?”

“일단 마코토 씨가 담당할 캐릭터는 조금 특이해요.

기초는 라인 문고의 홍보를 위해 라인 문고 소속의 버튜버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력 관계를 가지는 저나 다른 버튜버 소속 사의 버튜버들과 다르죠.”

“확실히 그래요.”

계약이 그러했다.

애초에 라인 문고가 버튜버를 홍보 요원으로 삼는 일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대다수의 인터넷 방송인들이 성공을 위해서 유행하는 소재에 대해 언급하고, 필요한다면 어느 정도 자극적인 소재와 발언을 통해서 어그로를 끄는 게 필수라면, 회사 소속의 그녀는 그런 식으로 말 할 수 없었다.

물론 19금 성인 로맨스 소설을 언급할 때는 괜찮았지만, 회사는 이미지를 위해서 방송 개시 한 달 이내에 성적인 소재를 대화 주제로 삼는 것을 금할 정도로 까다롭게 굴었다.

“요지는 홍보라는거죠 홍보. 압도적인 성공을 요구로 하지 않아요.”

“네, 분명히 계약은 ‘버튜버 데뷔와 방송 흥행을 통한 라인 문고 홍보’니깐요.”

“그렇다는 말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이야기죠.”

“에?”

“방송 시간을 극도로 줄입시다. 최소 방송 시간 한 시간, 최대 방송시간은 한 시간 반까지.”

그녀가 아가씨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줄인다.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리미트 라인을 정해버린다.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전업 버튜버들의 평균 방송 시간이 길어지는 최근의 추세에 맞지 않는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유나의 말을 듣는 마코토의 두 눈동자에는 지진이 일어났다.

“고, 고작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라구요?”

“마코토 씨, 당신은 현재 일본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라인의 계열사에 들어갔어요.

물론 새로운 레이블이기도 하고 웹소설이라는 시장이 아직 일본에 크게 널리 알려저있지 않죠.

하지만 웹 소설이라는 시장은 분명히 크게 뜰 거에요.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고, 아마존 e북 매출은 올라가고 있죠.

전철에 탄 사람들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조그만 책을 읽기보다는 휴대폰으로 책을 읽죠.”

그녀의 말이 맞았다.

라인 문고에 소속된 마코토는 교육 시간에 그런 자료들을 받아보아서, 자신이 맡은 일이 생각보다 큰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은 당신이 결코 가벼운 금액을 받지는 않을거에요.

신입 사원 월봉이 20대로 시작하는 좋은 조건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해요.”

난데없이 나온 돈 이야기에 마코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인터넷 방송인을 그만두고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짧은 구직 기간동안에 뼈저리게 체험한 그녀는 유나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에요. 당신이 방송하게 될 하루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사이에 프로로 존재할 것.”

“프로로 존재한다.”

“네, 그 시간 동안 전직 인터넷 방송인이었던 마코토 씨는 없어지는거에요. 그 시간동안에 당신은 철저하게 에우로페 아가씨가 되어야만 해요.”

“그, 그럴까요?”

“아, 정확하게는 ‘귀족 아가씨를 지망하는 서민 아가씨’ 정도가 좋겠네요.

이런 설정이면 마코토 씨가 실수를 해도 사람들은 관대하게 넘어갈 거니까.”

“아, 아가씨를 지망하는 아가씨가 되라구요?”

“네, 귀족 아가씨를 지망하는 평범한 서민 아가씨가 되는거죠.”

완벽한 아가씨가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완벽한 아가씨가 되고 싶어하는 아가씨를 연기해라.

말장난에 가까웠지만, 마코토는 그 말이 와닿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족적인 아가씨를 연기하는 사람이 코앞에 있었으니 말이다.

마코토의 귀에는 유나의 말이 이렇게 들렸다.

‘저를 따라 하는 캐릭터를 연기하세요. 제가 당신의 미래를 열어드리겠어요.’

본인이 들었다면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뛸 말이지만, 이미 마코토에게 있어서 유나는 인생의 구원자 급의 존재로 올라간 상태였다.

유나를 따라하자.

아리아의 ‘아가씨’를 따라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현재 일본에서 커다란 성공을 올리고 있는 라인 문고에 소속된 신인 버튜버, 에우로페의 담당자가 세운 연기 방침이었다.

*****

“진짜 바빠 죽겠다.”

우마무스메 프로젝트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그녀는 콜라보 방송을 진행하지 않으면 해저 케이블을 끊어버리겠다는 마나의 살벌한 협박을 받았고, 자신을 ‘아리아의 원 나잇 엔조이’라고 소개하는 클라티에의 짓궂은 음해에 시달렸다.

입은 걸걸하지만 소심쟁이인 엘리야에게 우울증 MAX 그 자체인 편지를 받아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에오스와 셀레네의 방문을 받으며 그녀들의 충직한 시종이 되었다.

공포 게임 해부 프로젝트와 우마무스메 프로젝트로 바빴던 그녀는 다시 서양 팬들이 바라던 GB 합동 방송을 꾸준히 이어 나갔고, 그러는 와중에도 라인 문고에 얼굴 도장을 찍으며 신입 버튜버 에우로페의 데뷔를 도왔다.

그런 유나의 바쁜 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은 당연히 쿠로가와 나에였다.

아침에 곤히 잠드는 그녀의 머리맡에 커피를 놓아두고, 그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세탁기의 빨래를 챙겼다.

냉장고에 새로운 식료품을 채워 넣는 것도 그녀였고, 가벼운 지진으로 인해 깨진 유리컵을 치우고 새로운 유리컵을 사 온 것도 그녀였다.

해외 콜라보를 한 이후 밤낮이 뒤바뀌어 힘들어하는 그녀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등을 토닥여주었고, 그녀가 원한다면 마음껏 뽀뽀도 해주었다.

그런 나에의 내조 덕분에 회사의 큰일을 마칠 수 있었고, 마코토의 또 다른 신분, 하쿠텐 에우로페의 데뷔 방송을 기다리는 순간까지 올 수 있었다.

“으음, 그러니까 에우로페 씨는 유나의 새로운... 아이인거지?”

“낳은 적 없는 아이네요. 입양아일까요?”

“기른다면 같이 길러야겠지?”

아무렇지 않게 그런 대화를 이어나가던 두 사람은 각자 코코아와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큰 프로젝트를 끝마친 회사원의 여유를 만끽했다.

“아, 그나저나 우마무스메, 정말 매섭네요.”

현재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마무스메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그 게임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사이게임즈의 새로운 전성기라는 이름으로, 그 게임은 일본 게임계와 경마계, 젊은이와 헤이세이 세대를 잇는 일종의 문화로 발돋음했다.

“그나저나 아리아의 우마무스메 가챠 방송은 언제야?”

“...”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유나야, 키타산 블랙 너무 귀엽지 않아?”

키타산 블랙이라는 단어를 들은 유나의 표정이 금이 갔다.

그도 그럴게, 그 카드가 나온 지 하루 지난 지금 그녀의 업무 메일은 ‘아리아의 합동 방송 제안서’로 가득 찼고,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버튜버들은 그녀와 가챠 방송을 하기를 희망했다.

우아하고 고고한 완벽주의 구미호가 가장 철저하게 망가지는 방송이 바로 가챠 방송이었다.

우마무스메로 그녀를 알게 된 팬들은 그녀의 기적 같은, 그러니까 예능 신의 사랑을 받는 가챠 확률을 알게 되었고, 그녀와 함꼐 가챠를 돌리면 ‘기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의 팬들은 가챠를 돌리지 않고 그녀의 방송을 기다렸다.

“당연히 방송을 한다면 언니랑 할거지?”

“하하...”

난처한 유나를 구원해준 것은 에우로페의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우아하고 고고한 백만점의 아가씨가 되고 싶은 아가씨, 에우로페라고 합니다.”

비음이 적절하게 들어간 차분한 아가씨의 음성이 울렸다.

올해 일본을 들썩이게 만든 귀멸의 칼날­무한 열차의 아트 디렉터가 맡았다는 캐릭터 디자인답게 롤빵 머리가 귀엽게 말린 화려한 아가씨 캐릭터가 모니터 너머로 눈을 감빡이며 인사했다.

“이번에 라인 문고의 소속으로 여러분들의 곁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버튜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데뷔 방송의 초안은 유나와 마코토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할 정도로 크게 공을 들였다.

그 덕분인지 마코토는, 아니 에우로페는 아가씨 특유의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라인 문고, 웹 소설, 로맨스 판타지, 아가씨 캐릭터

이런 식으로 이어진 사고의 흐름은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녀의 캐릭터를 어필하게 했다.

“그렇습니다. 소통이에요 소통. 귀족이란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입장이죠. 그렇기에 이 에우로페 또한 시청자분들과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의 프로필이 담긴 화면에 등본을 올렸다.

그래, 개인 정보와 인적 사항이 들어간 등본 말이다.

물론 이름과 주민 번호는 가렸지만, 사진이 들어갈 부분에 화려한 롤빵머리 아가씨의 얼굴을 올려둔 그녀의 대담한 자기소개에 채팅은 뒤집어졌다.

­화, 확실히 등본만큼 확실한 자기 어필은 없긴 한데...

­이 아가씨 골 때리네...

­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뭐냐고, 요즘 버튜버들은 다들 이런가??

어찌 보면 백치미마저 느껴질 만큼 대범한 행동이었다.

이는 방송에 익숙한 나에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녀는 마시던 코코아를 뱉을 뻔 했다.

“뭐, 뭐야 저게?”

“저건 제 아이디어에요.”

시작할 때부터 완벽한 캐릭터보다 살짝 나사 빠진 모습을 보이는 게 향후 과한 기대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뭐 그런 요지로 말했지만, 등본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종이로는 저의 속내를 제대로 터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저 에우로페의 진실된 모습을 터놓을 기회가 데뷔 방송이 아니라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봐주세요.”

제삼자인 것처럼 무덤덤하게 등본의 기재 사항을 읽으며 자기소개를 마친 그녀가 다음에 내보인 자료는

위 내시경 자료였다.

...문자 그대로 속을 보여주는 자료였다.

문자 그대로 말이다.

이것을 예상하지 못한 두 버튜버들은 각기 마시던 음료를 내뿜었다.

아무래도 온갖 괴짜들이 넘치는 버튜버 세계에 예사롭지 않은 신인이 등장한 모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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