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86화 (286/307)

〈 286화 〉 285화.

* * *

버튜버 활동을 개인 소속으로 데뷔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 버튜버로 활동을 개시하면 상당한 주목도를 받을 수 있다.

선라이즈, 무지개 프로덕션, 가상소녀 게이머즈 같은 그룹에 데뷔하는 신인들이 높은 초기 구독자를 끌어 모으고 시작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라인 문고의 시작은 상당히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면에서 방송인,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자주 구독하는 버튜버를 고용해서 마케팅을 겸하는 미디어 진출은 확실히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이라고 볼 수 있었다.

비록 그 전략이 효율적인지는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알 수 있겠지만, 첫 뚜껑을 열어보는 일에는 기존 버튜버들의 팬들은 물론이고 버튜버를 그다지 인지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마저도 찾아보게 하는 파워가 있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신인 버튜버­ 완벽한 아가씨가 되고 싶어하는 에우로페의 데뷔 방송은 지극히 성공적이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아가씨 말투

한 시간 남짓한 방송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 텐션

정말로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아가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행하는 방송은 애니메이션과 3D 영화 사이의 느낌을 받게 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교양이 뚝뚝 흘러 넘치는 고루한 방송인건 아니었다.

아가씨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로맨스 판타지 소개는 과하지 않은 인터넷 밈이 들어갔고, 가끔 나오는 말실수를 ‘저는 아가씨가 되고 싶은 아가씨니까요’ 하는 변명으로 넘기는 뻔뻔함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실소를 짓게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데뷔 방송에서 ‘속을 터놓고 싶은 사이’가 되고 싶다며 공개한 주민등록본은 확실히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버튜버란 본래 가상의 세계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사람이고, 현실 사람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 대기업의 탈을 쓴 버튜버 아가씨가 등본을 공개하며 솔직한 자기 정보를 밝히는 일은 그런 불문율을 깨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방송이 제법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기 전 까지는 말이다.

­미치겠네 ㅋㅋㅋㅋㅋ

­아니 아가씨, 아무리 속을 터놓고 싶다고 하지만 이건 조금...

­아가씨의 우아한 속옷 모습을 기대했습니까? 유감­ 아가씨의 비밀스러운 사진은 위 내시경 사진입니다.

­확실히... 속에 있고 비밀스러운거긴한데...

신혼여행의 첫 밤을 보내기 전 은근히 유혹하는 목소리로 속내를 공개하겠다고 할 때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따끔 신인 버튜버들이 가끔 보이는 속옷 일러스트나 캐릭터 디자인 아트 같은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공개한 것은 최근 병원에서 찍은 위 내시경 사진이었다.

확실히 개인 정보에 속하고, 정말 개인적이면서도 비밀에 가까운 정보이긴 한데...

그렇다고 데뷔 방송에 위 내시경 사진을 보내다니 정말 미친 아이디어였다.

사람들은 라인 ‘문고’에서 가지는 출판사 업계 특유의 딱딱한 것들을 예상했는데 정작 데뷔한 이 아가씨는 버튜버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기존의 버튜버와 버금가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방송 내내 시청자들을 휘둘렀다.

컨셉을 잃지 않는 목소리, 실수를 하더라도 적당히 우길 수 있는 설정,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옛스러우며, 일본에 잘 쓰이지 않은 사어(死?)를 실수하는 척 내뱉는 여우에 버금가는 연기, 인터넷 밈을 활용하면서도 남용하지 않고 천박한 언어를 피하려고 하는 집중력

여기에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간 높은 완성도의 3D 아바타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방송계의 우아한 폭군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섯 차례의 방송에서 매번 5만에서 7만 사이의 구독자가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어 나갔고, 그녀는 데뷔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4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는 초대형 신인이 되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인거죠.”

그리고 그 폭군의 숭배 대상인 구미호를 담당하는 한국인 여성은 카페에서 우아하게 다리를 꼬으면서 강조했다.

“방송 시간이 많아야 한다­이건 사실 편견이에요.

모니터 앞에 앉아서 얼굴 모르는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일에 집중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보여야하고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죠.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흐름을 타서 쭉 이어나간다면 모를까, 사람은 원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생물이에요.

그래서 체력이 정말정말 중요한데, 인터넷 방송인들 대다수는 체력이 정말 약해요.”

그녀 앞에 앉은 라인 문고의 홍보 담당 책임자, 돌려 표현하자면 에우로페를 담당하는 마코토의 상사 겸 매니저인 나키타 대리는 받아쓰기를 하듯 그녀의 모든 말을 적어나갔다.

“선라이즈는 사실 조금 이상한 집단이에요.

아니, 후배들이나 선배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진짜 자기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미치는 사람들이라 컨디션이 정말 나쁠 때를 제외하고는 방송 시간이 상당히 길거든요?

한 번 하면 세 시간은 기본이고 다섯 시간 일곱 시간까지 진행할 때가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그녀들의 방송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죠.

‘아 버튜버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송 시간을 오래 가져야 하는구나’ 라고 말이죠.”

“하지만 선라이즈의 버튜버들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 소속한 버튜버 혹은 개인 버튜버들 대다수가 한 달 방송 시간을 최소 60시간, 길게는 170시간까지 하는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그게 통계의 오류라는 거 잘 알고 계시잖아요.

당장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건 트위치건 들어가서 버튜버를 하는 사람들을 봐요.

하루 여섯 시간 이상씩 방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 아시잖아요.”

“그건...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긴 방송 시간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죠.

뭐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저는 아리아잖아요?”

너스레를 떠는 듯한 유나의 웃음소리에 그 앞에 앉은 나키타 대리는 그녀에게 비즈니스 파트너 이상의 감정을 가지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두 사람은 비즈니스 미소를 교환한 후, 커피를 한 모금씩 훌쩍거리며 잠시 분위기를 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리고 에우로페가 방송에 익숙해지고, 그녀가 제가 요구하는 연기 수준을 두 시간, 세 시간씩 이어나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방송 시간은 어지간해서는 타협을 보지 않을거에요.”

유나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말이 튀어나왔다.

본인의 매력적인 웃음소리로 분위기를 풀고, 급작스럽게 핵심을 던지는 유나 특유의 화법을 처음 겪는 나키타 팀장은 그 말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에우로페의 연기톤은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고음의 목소리로 가성을 자주 쓰는 목소리를 한 시간 반 이상 듣게 되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귀에서 피로를 느껴버리죠.

둘째, 이런 연기톤을 유지하는 일은 버튜버들 가운데 100만 구독자 이상을 달성한 성공한 버튜버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데뷔 이후 본인의 의욕이 가득할 때는 몰라도 어느 정도 관성이 생긴 이후에 본인이 피로감을 느끼고 연기 집중도가 떨어지면, 심각한 슬럼프가 찾아오게 되죠.”

“요컨대...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겁니까?”

“라인 문고에서 요구하는 것은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버튜버가 아니라, 라인 문고의 존재감을 알리고 꾸준히 이를 홍보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아닌가요?”

매니저였던 사람답게 본질을 꿰는 말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라인 문고에서 요구하는 것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웹소설을 유튜브 구독자층에 전파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혁신과 새로운 도전이기는 하나, 일본의 조직 문화는 보수성을 추구하는 관료주의적 시스템이 몹시 강하다. 하물며 대기업에 속하는 라인이면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기에, 리스크 관리라는 매력적인 단어는 나키타 대리에게 강하게 들어왔다.

“높게 날아오른 새는 길게 추락하는 법이죠.

하물며 에우로페는, 아니 마코토 씨는 한 번 추락한 적이 있는 새에요.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무너지고 말거에요.”

“확실히... 마코토 씨의 근무 환경과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기존의 버튜버 공식에 그녀를 적용시키는 건 맞지 않겠군요.

그런데 유나...씨? 당신이 말씀하신 이유는 두 가지인데... 마지막 하나는 뭡니까?”

“마지막으로는, 그녀의 주요 시청자들 때문이죠. 방송 시간을 줄이고, 방송을 보는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게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제가 그녀에게 요구한 ‘고정된 방송 시간’이 나온것도 이런 이유에요.”

“주요 시청자라고 말씀하신다면... 아!”

“네, 인터넷을 오래 사용하는 오타쿠들보다는, 웹 소설을 읽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을 노린 셈이죠. 오늘 밤 열 시에는 무조건 에우로페가 방송을 하고, 그녀의 방송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사이다. 서로 이런 약속을 나누는거죠.

바쁜 직장인들은 다음 날 출근을 생각해서 일찍 자고, 그녀의 방송을 보지 못한 날에는 한 시간 분량의 방송을 몰아보는 것으로 키리누키 없이도 방송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죠.”

그녀의 설득은 나키타 대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흔들었다.

에우로페의 방송 시간에 대하여, 컨설턴트인 유나의 말을 설득하고자 재무지표를 꺼내온 자신이 병신머저리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의 주장은 강력했다.

나키타는 눈앞의 여신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비즈니스 파트너끼리의 애프터케어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고마우시다면 다음에는 회사 차원에서 또 근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식으로 돈을 주시던가요.”

나키타는 눈앞에 있는 여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지 알고 있다.

자신과 상담하고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방송을 켜고 잡담을 하며 슈퍼챗만 받아도 그 시간에 대기업 부장보다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이 농담처럼 들렸다.

‘진짜인데.’

악녀 캐릭터에게 꽂혀서 라인 문고에서 계약한 오디오북 녹음을 따낼 생각이 가득했던 유나는 자신의 말을 ‘일본식 비즈니스인들의 돌려 말하기’라고 알아들은 것처럼 보이는 나키타 대리의 모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유행은 순식간에 번진다.

라인 문고를 뒤에 업은 아가씨 캐릭터의 등장에 기존의 버튜버들은 자신들의 방송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방송 시간과 효율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연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뭐 우리 회사는 덜하지만.”

“애초에 요즘 후배들 채용 이야기 들어보면 정말 장난 아니더라구요...”

“네에, 그런 10000:1 경쟁을 뚫고 들어온 후배들에게 재능의 벽을 실감시켜준 유나의 말 잘 들었어.”

“우씨...”

바깥에서는 여왕처럼 구는 유나였지만 집안에서는 짐승­굳이 비유하자면 대형 리트리버에 가까운­이 되어 나에의 쓰다듬는 손길을 즐기는 축생 비스무리한 존재가 된다.

에우로페의 데뷔 방송 일주일이 지나고 신인(?人) 보다는 신인(?人)에 가까운 괴물을 만든 유나는 그 총명함과 재치가 모두 사라진 얼굴로 나에에게 얼굴을 비볐다.

“헤에, 부족한 언니 에너지 보충중.”

남들은 부담감을 느낄 정도의 미녀였지만, 그녀의 못 볼 꼴을 아주 잘 보아온 나에는 귀찮다는 손짓으로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최근에 다시 코로나 번지기 시작했으니, 유나도 조심 좀 하렴.”

“헤헹, 어차피 전 이제 안 나갈 거에요. 최근 들어서 너무 외부활동을 많이 해서 이제 집에 틀어박혀야 한다구요.”

나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예전의 유나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말이지만, 성우 연기와 타 레이블의 버튜버 신인 지도라는 굵직한 일을 마친 유나는 문자 그대로 지쳐버렸다.

좋아하는 동생의 라이브 콘서트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그녀는 목표했던 금액을 모으고 난 이후 그야말로 방전된 배터리처럼 누워버렸다.

그러기에 최근 하는 방송도 새로운 기획보다는 느긋한 게임을 켜고 가벼운 잡담을 하는 시청자 소통 방송이 잦아졌다.

다른 버튜버들과 다르게 그런 방송이 상당히 부족한 편인 아리아의 소통 방송은 그동안 질문에 굶주렸던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달래주며 콘텐츠 기획 방송보다 우월한 수입을 올리며 그녀의 얇아진 통장을 두껍게 만들어주었고­동시에 방송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이제 당분간 좀 쉬려구요.”

유나의 쉰다는 진짜 쉬는 게 아니다.

자신이 직접 두 발로 뛰며 많은 것을 주도하던 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준 판에 끼어들고 편하게 방송하고 싶다는 말에 가까웠다.

기초 대사량이 높은 사람이 운동을 해야 제대로 쉬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유나는 어느 정도 방송을 뛰어 줘야 휴식을 느끼는 인터넷 방송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에는 눈을 반짝였다.

“최근 선라이즈 버튜버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게임이 하나 있긴 한데... 유나야 어때?”

“그게 뭔데요?”

“이거야 이거.”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나에는 하나의 게임을 그녀의 스팀 게임함으로 보냈고, 생전 처음 이런 게임을 본 유나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했다.

“이거... 다 쏴죽이고 빼앗으면 되는 게임인가요?”

“응, 언니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주렴.”

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하였는가

유나는 나에의 말에 아무런 의심을 가지지 않고 게임을 다운 받았다.

이내 그녀의 화면에는 Rust 라는 게임 문구가 띄워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에는 소설 속 흑막 캐릭터처럼 크게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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