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87화 (287/307)

〈 287화 〉 286화.

* * *

유나는 샌드박스 형 게임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무언가 자신의 창작 욕구를 쏟아내는 행동에 어색함을 느끼는 그녀는 여러 장르의 게임을 도전하고 이겨내었지만, 자원을 채취하고 물품을 만드는 게임은 딱 생존 게임 정도가 한계였다.

창의력으로 승부하고, 노가다의 관성에 매몰되기 쉬운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나는 마인크래프트로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우연을 통해서 기적적인 방송을 연출하는 다른 선배들을 꽤 존경했다.

그러기에 선라이즈의 여러 전설을 만들어 낸 위대한 샌드박스 형 게임인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아리아는 왜 마인크를 안 하지?

­너무 아쉽다, 그녀가 다른 GB 선배들과 이야기 하며 게임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녀의 방송 일정을 생각해 봐, 마인크처럼 시간을 크게 쓰는 게임에 정을 붙이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어!

­워낙 중독성 강한 게임이고, 게임을 하면 승부가 강한 아리아는 이런 게임에 손 안대는 게 맞을지도?

방송하는 본인이 하기 싫다는데, 팬들이 어찌 하겠는가.

팬들은 여러 추측을 하면서 그녀의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하며 아쉬움을 달래던 차, 아리아가 러스트 게임 방송을 한다는 말을 듣고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GB가 아니네

­GB는 고작 인원이 다섯이니, 잘 운영되고 있는 일본 서버를 쓰는 게 맞잖아?

­그래도 아쉽다

이러한 아쉬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들은 게스트로 등장한 유리아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녀의 손에서 훈련되고 있는 아리아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신설 서버에서 나무를 캐고 돌을 캐고 생산 시설을 만드는 테크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에 모든 사람이 예상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순간 나오리라 생각했던 꽁냥꽁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유리아님, 여기 나무요!”

“거기 쌓아두고, 잠시 정찰 나가서 돌이 쌓인 곳을 알아보렴.”

“네에~”

평소 자존심 강하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아리아가 누군가의 말에 자연스럽게 휘둘리는 모습은 마치 유리아의 손길에 제대로 사육당하는 아리아의 모습이 절로 그려지게 되었다.

“유리아님, 여기 이렇게 해요?”

“그래 칭찬해주도록 하마! 참, 우리가 아까 랜드마크 삼았던 곳을 기점으로 우측으로 가면...”

“아하, 그러니까 대마를 캐서 천을 만들라는거죠?

근데 아까도 파밍 그렇게 했는데 또 해야해요?”

“원래 이런 게임은 그런 게임이란다.”

게임을 잡으면 빠르게 능숙해지고, 개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플레이 해가며 쌓아 올린 게임 고수 이미지 모습 대신 파릇파릇한 진짜 뉴비 모습은 꽤 신선하게 여겨졌다.

항상 듬직하던 아리아가 처음 하는 샌드박스 스타일 게임에 초보자처럼 적응해가는 모습은 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리드하는 유리아와 리드당하는 아리아의 모습은 마치 소꼽친구의 장난을 보는듯한 푸근함이 있었고, 그들의 분위기가 깊어지는 것은 게임 속 세상의 해가 진 다음이었다.

“으헤, 이렇게 유리아님이랑 같은 지붕 아래서 휴식을 취하니 기분이 묘한데요?”

“후후, 비록 여기에 있는 유리아가 원래의 이몸에 비하면 매력을 천분지 일도 담아내지 못하나, 유리아님의 곁에 있는 네가 평안함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도다!”

“타닥타닥 불타는 모닥불에 익어가는 고기, 별이 보이는 밤하늘에 바람만 겨우 막는 어설픈 건조물... 나의 곁에는 인생을 함께 보내주는 유리아님이 있고, 우리들이 함께 쌓아 올린 기지에서 보내는 하루라...”

3D 샌드박스 류 게임들이 그러하듯 텍스쳐의 질감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나, 아리아의 말이 이어질수록 상상력이라는 최고의 그래픽 카드가 작동되어 그런지 두 사람이 함께 누운 모습이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그러기에 홀로 진행했다면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 초보자 적응 구간을 유리아와 함께 드라마를 찍으면서 보내는 것으로, 아리아는 러스트의 게임 구조를 파악하게 되었다.

파밍을 하고 베이스 캠프를 세운 후 맵을 넓게 그려가면서 주울 수 있는 파밍 루트를 계산하고 무기를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한다.

자원이 쌓이고 상위 크래프트를 열어가며 차분히 성장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유리아는 그녀의 손에 무기를 쥐어 주었다.

“이건 총이야 총.”

“네, 알고 있습니다 유리아님.”

“내가 이걸 준 이유를 알겠지?”

“요컨대... 진짜 전투에 적응해보라는 말씀이시죠?”

“응, 실컷 쏴보고 와보렴.”

파밍을 하고 베이스를 다지는 와중에도 아리아를 위해 자원을 아껴 무기를 만들어 준 유리아의 무기를 받은 아리아는 비장한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석궁, 더블 베럴 샷건, 리볼버 등의 무기를 손에 든 아리아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 모두가 그녀의 텐션이 크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슛­탕 슛­탕~ 슛탕슛탕 슈우우웃­탕~”

기이한 콧노래를 부르며 총을 만지작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방금전까지 귀농 로맨스 예능을 찍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광기가 느껴졌다.

그런 아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늑대였다.

총을 처음 손에 쥐고 무기를 손에 든 사람이라면 당연히 총을 갈겨서 늑대를 노리겠지만 그녀는 어그로 끌리는 늑대가 다가오기 전까지 기다렸다가 차분하게 총을 쐈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머리를 맞춘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fps 게임 고수의 모습이 보였다.

­아, 러스트에는 헤드 샷 개념 없는데

­그래도 머리는 잘 맞추네

­그럼 뭐해, 추가 딜이 없는데

“뭐!?”

어찌나 당황했는지 듣기 드문 아리아의 원래 목소리가 잠시 세어나왔다.

속으로 놀라거나 말거나, 몸은 정직하게 움직여서 기이한 무빙을 선보이는 늑대를 손쉽게 처치한 아리아는 채팅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게임에 헤드 샷이 없나요?”

­네에

­애초에 동물 자원에 헤드샷 구현하면 소스 감당이...

­서버 안정성이 개판이니 어쩔 수 없지 뭐 ㅋㅋ

­그래도 사람에게는 헤드샷이 있어요.

“요컨대 인간형 npc들에게는 있다 이거죠?”

­그렇습니다. 이대로 과학자 레이드 가실?

­물론 지금 파밍으로는 조금 힘들겠지만ㅋㅋ

­그래도 활동 영역 넓히고 보급품 주워가면서 게임 하다보면...

그렇게 채팅창을 읽으면서 시청자들의 훈수를 들으면서 유리아가 말하지 않은 시스템들을 배우고 있을 무렵, 무언가를 발견한 아리아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라, 저기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네요?”

아리아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무언가가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 무작위로 야생 서버에 들어오는 야만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도, 그녀는 도망치기 시작한 캐릭터의 뒤통수에 석궁을 장전하고 그대로 머리를 쏴 맞추었다.

“휘유~”

­대단하네 역시 ㅋㅋ

­달려서 에임 흔들리는데 그거 계산하고 쏜거임?

­명불허전이네 진짜

­본 서버 기다려라 정말ㅋㅋ

­그런데 저거 누구임?

“근데... 저 사람 누구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채팅창이 올라왔다

[(최강_성녀): 언니이이!!!]

[(최강_성녀): 보자마자 사람을 쏘다니 야만인!]

[(최강_성녀): 정말이지, 언니 러스트 적응하는 거 도와주려고 했는데!]

최강 성녀

당연히 클레스타인이었다.

그녀는 러스트를 플레이하는 아리아의 첫 pvp 킬 리스트에 올라오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

선라이즈의 러스트는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약탈할 수 있고 파괴 행위가 이상하지 않은 게임에서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독점 금지법 등 여러 규칙을 세우고 나름대로 화기애애하게 놀고 있는 그녀들의 서버는 선후배가 뒤섞인 거대한 사교장에 가까웠다.

라고는 해도, 일종의 거대한 놀이터나 다를 바 없는 그 공간에서는 들어오는 것도 자유, 나가는 것도 자유, 누군가를 습격하고 집을 터는 행위도 자유였다.

다만 같이 움직여서 팀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고, 세 사람이 임시 동맹을 맺어 카르텔을 형성하는 행위는 금지였다.

사실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은 이런 오픈 월드 샌드박스 형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갈등 여지를 줄일 수 있는 수단에 대해 제대로 강구를 했었다.

그리고 이쪽 방면으로는 제일 잘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다름 아닌...

‘도박 킹’ 이나리였다.

모 만화를 흉내 내어 ‘정상 회의’같은 이상한 정기 회의를 만든 그녀는 무게감을 잔뜩 잡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왕성에 새로운 권속이 들어왔다.”

“새로운 권속이라뇨?”

“구미호 아리아다!”

구미호 아리아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존재의 그녀였다.

그리고 선라이즈 내부에서 발이 넓은 존재이기도 했다.

캐릭터와 캐릭터로 만나는 일은 없지만, 메이드 라의 어시스트를 받은 적이 있는 버튜버들은 제법 많았으니 말이다.

그녀의 데뷔 이후로 그녀와 함께 저마다의 이유로 방송하기를 희망했던 이들은 그녀의 데뷔 회사가 일본이 아니라 GB라는 사실에 절망했으며, 워낙 빠르게 성장해버린 그녀는 같은 버튜버 사이에서도 스타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다.

“라고는 해도 말이지, 사실 내가 너희들을 모은 이유는 그냥 간단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래.”

무게 잔뜩 잡던 목소리는 어디가고, 평소의 귀엽고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로 돌아온 이나리가 말했다.

“여기에는 평소 아리아를 만나지 못한 애들이 가득하잖아? 그래서 아리아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애들도 많고.”

실로 그러했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경우 워낙 기존에 장시간 플레이 하여 ‘서버 내 NPC’라는 별명을 지닌 버튜버들이 항상 오랜 시간 게임을 돌리고 있어서 그녀들을 상대로 같은 시간에 게임을 켜기 꺼리는 이들은 러스트로 달려 나와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성향을 굳이 분류하자면 마인크래프트를 주로 하는 버튜버와 러스트를 주로 하는 버튜버, 그리고 양쪽 게임을 오가면서 즐기는 버튜버가 있다고 보면 되었다.

현재 러스트를 플레이하고 있는 버튜버들은 공교롭게도 아리아와 처음 만나거나, 메이드 라 시절에도 그녀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천재 버튜버다, 방송파에 탄 버튜버다, 가요계의 일원이다, 방송계의 괴물이다, 뭐 이상한 이야기가 많이 있기는 한데... 사실 그녀는 우리와 노는 거 좋아하는 평범한 버튜버야.”

메이드 라 시절, 그녀와 자주 합동 방송을 기획했던 이나리의 말에 다른 후배들은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진지해 보이는 사람이기는 해도, 장난을 치면 잘 받아줘.

그러니까 거리감을 두고 너무 멀리하지 마렴.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친구’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나리의 목적은 사실 이거였다.

이렇게 여러 버튜버들이 한군데 모여서 실시간 소통하는 게임에 처음인 아리아에게 거리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다가가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처음 만나서 총을 쏴도 좋고 스크랩(러스트의 화폐)를 줘도 괜찮아.

유리아가 감싸고 돌 것 같지만... 뭐 어때? 우리 서버는 파트너의 손을 잡고 끊는 건 자유잖아?”

“그렇다는 말은...”

“응, 아리아를 두고 쟁탈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지.”

아리아를 두고 쟁탈전이라

참 기이한 울림이었다.

사실 별다른 악의는 없다.

친구와 누구와 친하게 노는 가?

그것은 자유였으니 말이다.

이나리는 그저 아리아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지니고 있던 다른 버튜버들의 장벽을 치워준 셈이었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처럼 ‘새로 전학 온 친구 아리아와 재미있게 놀아요’라고 두어번 강조한 이나리는 미소 지으면서 게임을 껐다.

“이나리를 해외 애들에게 넘겨줄 수 없지.”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으로 달력을 노려봤다.

선라이즈 글로벌 데뷔 2주년 기념 이벤트와, 선라이즈 JP의 크리스마스 이벤트가 적힌 달력을 바라본 그녀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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