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2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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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인이 자신보다 훨씬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과 합동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화젯거리를 만들기 좋고, 유명세에 탑승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노출되기 때문에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물론 항상 이점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다가는 안티 팬들에게 공격을 시달리거나, 기껏 잡은 합동 방송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확 묻혀버린다.
그러면서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자신이 크게 활약해버리면(속되게 표현해서 나댄다면) 주제 파악을 못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선라이즈 같은 경우 합동 방송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선배라고 딱히 엄격하게 분위기를 잡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만 잘 맞고 컨셉만 잘 짠다면 후배가 선배를 괴롭히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때문에 비교적 인지도가 적은 후배 입장에서 본다면 선라이즈 버튜버 사이의 합동 방송은 높은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인터넷 방송인에 비해 편한 분위기로 합동 방송을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리 선라이즈의 합동 분위기가 널널하다고는 하나 아리아의 존재는 조금 달랐다.
그녀가 어울리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성공한 방송인들이었고, 아리아는 그녀들 사이에서도 유독 빛나는 존재였다.
이른바 하늘 위의 하늘
21세기 민주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사람 사이 계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버튜버들은 아리아를 상당히 꺼려했다.
애초에 소속부터가 일본이 아닌 GB, 즉 해외였다.
아무리 일본어를 잘한다고는 하나, 결국 그녀는 외국인이었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거기에 평소 캐릭터 연기마저 퍼펙트한 구미호 아가씨를 연출하는 덕분에 더더욱 다가가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물론 그런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한 번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친절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가가는 걸 꺼려하질 않았다.
그리고 아리아와 함께 게임하기를 학수고대하던 5기생의 당돌한 리더, 숲의 마녀 컨셉을 가진 헤카테는 자신의 파트너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전방에 아리아 발견.”
“으아아,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물론이지! 아리아 언니는 도전을 피하질 않아.”
“그치만 아리아님이라구요? 아리아님!?”
“츠키노 선배님 너무 겁 드신 거 아니에요?”
섹드립을 좋아하는 발랑까진 꼬맹이인 헤카테와 마인크래프트에서 NPC급으로 살아가며 조용한 방송을 하길 좋아하는 츠키노의 조합은 러스트 방영 직후 최고의 케미를 보였다.
게임 스트리밍 전문의 3기생 선배 중 가장 온화하고 상냥한 츠키노의 손을 붙잡고 아리아를 습격하자는 계획을 세운 헤카테는 과감하게 마왕성(이라고 이름 지은 베이스 캠프)로 돌격했고, 츠키노는 그녀의 등 뒤를 따라 겁내며 돌격했다.
헤카테는 사악한 미소를 터트리며 아리아를 향해 다가갔고, 사거리 내에 아리아가 들어오자 과감하게 총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아리아의 게임 성향이다.
샌드박스 형 게임을 해도 게임을 하면 무조건 이겨야 했던 아리아는 선라이즈 러스트 서버에 들어온 지 하루만에 집 주변에 상당한 지뢰나 덫을 심어두었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게, 유리아는 예쁘게 건물 짓는 법은 알아도 이런식으로 방어 시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유리아의 아지트 인근은 당연히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마인크래프트라면 모를까, 러스트에 서툰 츠키노가 지뢰를 밟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펑!
탕!
지뢰가 터지는 소리와 총을 쏘는 순간은 거의 동시였고, 그 사이에 반응한 아리아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앗, 젠장!”
“으아앙, 헤카테 도와줘어.”
“앗, 선배 잠깐만ㅇ...”
울먹이는 선배를 매정하게 버리고 엄폐물을 찾아 움직이던 헤카테는 곰 덫을 밟아 움직임이 멈추었고
찰칵
탕탕탕
아리아의 탄이 그녀의 머리를 부수는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강마녀) : 항복! 항복!]
죽고나서 항복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겠지만, 게임에 숙련된 사람답게 그녀의 베이스를 습격하기 전 부활 포인트를 인근으로 옮긴 헤카테는 빠르게 항복했다.
역시 같은 팀일때는 세상 듬직하지만, FPS 게임에서 적으로 만나면 제일 싫은 사람이었다.
“어라, 츠키노 선배님이네요? 안녕하세요?”
“으아앙, 나는 습격에 반대했어, 반대했다구!”
3기생 호시이 츠키노
그녀는 선라이즈에 얼마 되지 않은 ‘청초’라인의 사람이었다.
자극적인 방송을 하기보다는 명절 여행에 차분하게 듣는 고속도로 라디오 방송처럼 온화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혼자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주 활동 분야는 마인크래프트였다.
선라이즈의 대형 콜라보 가운데 상당수는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고, 츠키노는 JP 서버 최장시간 마인크래프트 이력을 보유한 사람으로 뉴비들의 적응을 돕고, 매년 개최하는 마인크래프트 운동회를 통해서 이쪽 관련 콘텐츠를 꽉 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마인크래프트를 하지 않는 아리아와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아리아는 헤카테의 시체를 짓밟으며 다가갔다.
자신을 털러 온 사람과 정답게 인사하는 광경이 이상하긴 했지만, 츠키노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뭐랄까
내향적인 자신과는 정반대점에 있는 여왕같은 사람이었다.
“만나서... 반가워.”
“그러면 제 아지트로 오실래요? 여기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어, 그래요?”
“네! 개활지라서 총격에 대처하기 힘들거든요. 아차, 그리고 따라 오실때는 되도록 저와 꼭 붙어서 따라오세요. 이래보여도 지뢰밭이라.”
묘하게 생존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말에 츠키노는 그녀의 뒤를 따라 아지트로 걸어갔다.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살짝 길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집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츠키노가 물었다.
“설마... 아리아 씨는 지뢰 위치를 모두 외운거에요?”
“네, 고작 서른 개 밖에 안깔아서 어디에 심어 두었는지 대충 알아요.”
“...”
그거, 보통 외울 일인가?
아니 애초에 집 주변에 지뢰를 서른 개나 깔만큼 러스트가 풍족한 자원이 있나?
게다가, 그녀는 어제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다소 황당한 감정을 느낀 츠키노는 그녀의 집으로 들어왔다.
마왕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상위 티어의 건축물로 그럴싸한 저택이었다.
“저희 유리아 언니 대단하죠?”
“응. 역시 유리아답네.”
최근 들어서 접속이 뜸해지긴 했지만, 유리아는 선라이즈 내부에서도 상당히 마인크래프트 고수로 유명했다.
비슷하게 내향적인 사람이라 유리아와 제법 친한 츠키노는 아리아가 그녀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리아 씨는 유리아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에, 애초에 유리아 언니를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누군가를 진짜로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렇게 아리아는 유리아의 대단함을 이야기하면서 그녀에게 재료를 넘겼다.
“근데 아리아 씨, 이건...왜?”
“그거야... 지금 츠키노 선배는 제 포로잖아요?
일하세요 일.”
“에?”
아리아는 말하는 대신 무기를 꺼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쏴버리겠다는 그녀의 말에 츠키노는 울먹이는 소리를 내며 방송하는 동안 그녀의 아지트 증축을 돕는 노예가 되었다.
*****
[아리아 방송 요약
3기생 선배 츠키노 선배를 포로로 잡아서 하루종일 착취함.
끝]
나 저 사람 메이드 때부터 알았는데, 똘기 넘친다 진짜
승부욕 강하고 피지컬 좋고, 은근히 사이코패스라니까?
츠키노 선배 불쌍해 ㅋㅋ 선라이즈 최약체가 마왕성에서 노예 생활이라니...
츠키노가 누구임?
3기생에 유일한 청초 있음
아리아의 러스트 적응은 상당히 빠르게 끝났다.
게임에서 할 수 있는 것, 필요한 것을 파악하며 그녀는 방송 시작 전에 목표를 밝히고 그것을 우직하게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노가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그녀는 게임에 빠진 듯 러스트 일본 서버에 들어온 이후 쉬지 않고 움직이며 게임 적응을 마쳤다.
그러기에 헤카테의 당돌한 습격을 이겨내고, 츠키노를 노예로 활용하는 업적을 세웠다.
[어제 같이 한 츠키노에 대해 알아보자
츠키노는 3기생의 선배인데, 마인 크래프트 골수파임.
일일 방송 시간이 6시간을 넘어가는 마라토너인데, 컨텐츠 다수가 마인크래프트라 그냥 별명이 NPC임.
그래도 노래 방송도 잘하고, 친한 멤버끼리는 이상한 장난도 많이 치는데 피지컬이 워낙 안좋아서 별명이 최약체임]
ㅋㅋ어쩐지 목소리가 굉장히 순하더라
사실 성녀는 클레스타인이 아니라 츠키노 아님?
진짜 소심한 사람인데, 찌르면 놀리는 반응이 귀여우면서도 불쌍하네
그래도 어제 아리아랑 같이 하루종일 작업하면서 유리아 이야기 푸는 거 재밌지 않았음?
아리아의 방송 시간은 조금 짧은 편이다.
대신에 콘텐츠를 꽉꽉 채워 넣으면서 보는 내내 몰입감이 좋고, 긴장을 주고 푸는 게 익숙한 그녀의 방송은 어지간한 예능 프로그램보다 박진감이 넘쳤다.
느긋한 방송을 거의 진행하지 않아서, 그녀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재미와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아리아가 이런 게임 해서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듯? 일단 맨날 쏘고 죽이고 약탈하고 불 지르고 개발자들 가슴에 상처 새기고 게임 한 번 할 때마다 뭔 짓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이런 느긋한 것도 좋다]
맞음, 일단 채팅 읽는 빈도가 진짜 높아짐
스토리 진행할 때도 제법 읽은 편이긴 한데, 자원 노가다 할 때 채팅 자주 읽어줘서 좋았음
영어하고 일본어 동시에 튀어나오는 데 신기하더라…. 원래 이랬지 참
그래서 아리아의 러스트 방송은 생각보다 호평이었다.
그녀의 장점이 크게 살아나지 않을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이라 걱정했지만, 아리아는 자신의 넘치는 게이머 재능을 선보이지 않더라도 훌륭하게 토크를 이어나갈 수 있는 좋은 커뮤니케이터였다.
실제로 처음 보는 후배라도 낯을 가리는 츠키노와 세 시간 가까이 같이 작업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가?
거리감 두기 MAX에 가까운 츠키노와 잘 어울리는 것을 본 아리아의 팬들은 드디어 아리아가 선라이즈 멤버 대다수가 진행하는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기대감을 품었다.
혼자 기획하는 방송 혹은 오프라인을 통해서 기획하는 방송에서 항상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던 아리아가, 실시간으로 다른 멤버들과 무작위로 만나고 다양한 이벤트를 생성하는 오픈 월드 샌드박스 게임을 진행하는 것에 기대감을 품었다.
다른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이 보여주는 좋은 케미를 잘 보여줄것이라 기대한 까닭일까?
아리아의 러스트 방송은 다른 방송에 비해 조금 높은 평균 시청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을 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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