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89화 (289/307)

〈 289화 〉 288화.

* * *

아리아

당당하고 프라이드가 있고 그것을 받쳐줄 실력이 있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에 유행을 선도하는 버튜버인 그녀는 아주 간만에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그러니까 괴물이라구요?”

“으...응.”

물론 고리타분한 일본 요괴 사전에 의하면 구미호는 확실히 괴물이 맞다.

하지만 아리아는 괴물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홀리는 요망한 여우에 가까웠다.

아니 적어도 아리아 자신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부터 알게 된 츠키노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녀와 친하지 않은 다른 집단의 버튜버들 사이에서 자신이 약간 괴물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쇼크를 받은 반응을 보였다.

꽃보다 아리따운 자신이 괴물이라니

아리아의 두 눈동자에 동공지진이 발생했다.

­괴물이래 괴물ㅋㅋ

­아니 근데 일본인들은 영어만 들어도 몸서리치지 않나?

­일본 여행 가봤는데 제노포비아가 좀 심하긴 했지 ㅋㅋ

­솔직히 말하자, 아리아의 스테이터스만 때놓고 보면 괴물이긴 해

­나는 츠키노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 게임이면 게임, 노래면 노래, 드립이면 드립

뭐 빠지는 게 없잖아?

“미, 미안해!”

“아, 아니에요!”

후배의 격한 반응을 알아차린 츠키노는 다급히 사과했고, 아리아는 손사래를 쳤다.

특유의 말버릇인 ‘이야이야이야’를 연달아 외친 아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그, 그냥 아리아가 다른 버튜버들과 자주 만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

사실은 이렇게 상냥하고 착한 아이인데...”

상냥하고 착한 아이

그것이 아리아에 대한 평가였다.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묻는다면,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는 대답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그러했다.

일단 그녀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익숙했다.

자신과 정반대 성향을 지닌 헤카테에게는 말썽꾸러기 동생과 놀아주는 언니처럼 대했다.

그러나 내향적인 자신에게는 함부로 말을 걸지 않았다.

자원을 교환하거나, 같이 파밍을 하러 적대 NPC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식이었다.

버튜버인 주제에 타인을 대하는 게 서툰 편인 츠키노는 그런 거리감이 좋았다.

“그야... 츠키노 선배님은 살짝 타마랑 비슷한 느낌이 나서요.”

“아... 타마쨩!”

그렇다.

사실 아리아는 아싸 오타쿠를 대하는 데 나름 전문인이었다.

당장 그녀와 함께 사는 나에도 과거에는 손꼽히는 아싸 오타쿠였고

지금도 아싸 오타쿠로 이름 높은(?) 타마와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리아였다.

최근 들어서는 같이 게임하는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이나 만나본 천부적인 인싸 아리아에게 있어서 아싸의 심리적 거리감을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츠키노 선배는 뭐랄까, 같이 있으면 포근포근하다고 해야 할지, 푹신푹신하다고 해야 할지, 생김새 그대로 양털 같은 분이시네요.”

“으응, 고마워! 아리아쨩도 생각보다 말캉말캉거려.”

물론 게임 자체는 아리아에게 붙잡힌 츠키노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꼴이지만, 피지컬이 안 좋고 단순한 반복 노가다를 좋아하는 츠키노에게 있어서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편했다.

“으아아아, 나는 왜 신경 써주지 않는 데!”

“그거야 헤카테는 툭만하면 나 쏘려고 하잖아?”

“으아아, 나 선배인데, 선배인데!”

“꼬우면 결투에서 이기던가.”

물론 서로 푸근한 짐승의 털에 휩싸인 듯한 꽁냥거리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츠키노와 아리아와 다르게, 헤카테와 아리아의 관계는 끝도 없이 까부는 동생과 그것을 멀쩡히 제압하는 멋진 언니 분위기였다.

두 사람은 이미 몇 차례 결투, 문자 그대로 서로 뒤돌아서 열 걸음 움직인 후 뒤를 돌아 총을 쏘는 결투를 세 차례 진행했고, 아리아의 총알이 헤카테의 머리를 세 번 꿰뚫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와 저게... 소문만 듣던 아리아의 피지컬?

­진짜 사기다 사기. 에임 핵 아니야?

­그러면 신고 당했겠지 ㅋㅋ

­저 사람은 그냥... 그래...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츠키노의 팬들은 솔직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자신들의 츠키노 이모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피지컬을 목도했기 때문일까?

팬들 또한 세 사람의 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방송을 즐겼다.

“헤헤, 아리아 언니야~”

“또또, 말 막히니까 사투리로 나 부르는거야? 언제는 후배라면서.”

“아이 참, 언니야~ 내가 언제부터 그랬어요~”

불리하면 튀어나오는 헤카테의 애교 가득 섞인 사투리 일본어는 확실히 매력이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떼를 쓸 때도, 말을 안 듣는 동기생 언니들을 설득할 때도 쓰는 그 마성의 목소리에 아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감굼해둔 헤카테를 풀어주었다.

세 번 덤벼서 세 번 다 발린 헤카테는 이번에는 덤비지 않았다.

단지 두 사람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면서 까불거리기 시작했다.

그날의 방송은 세 차례 결투를 제외하고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버튜버들이 하는 마인크래프트 방송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원 노가다와 파밍 노가다, 그리고 건축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무언가를 때려 부수고, 죽이거나 미션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아리아의 평소 게임 방송과는 확연하게 다른 방송이었다.

한 차례의 러스트 적응 방송, 그리고 오늘 방송을 포함하여 두 번의 러스트 방송에서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낯선 것이었다.

두 번째 러스트 방송이 끝난 이후 당연히 그녀의 커뮤니티에는 여러 목소리가 오갔다.

[아리아 러스트 방송]

[솔직히 나쁘다고는 말 못하겠음.

일단 그녀는 항상 방송을 진행할 때 높은 긴장을 가진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폭풍처럼 무언가를 진행하고 몰아친다고 해야할까, 스토리를 감상하는 게임에서도 효율을 추구하는 게 마치 김치 게이머 같았는데...

지금처럼 느긋하게 방송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확실히 아리아가 방송 텐션이 높긴 하지

­그래도 아리아는 콘텐츠가 다양한 편이잖아? 그녀의 느긋한 모습은 소설 읽기 방송에서 찾으라고

ㄴ아니지, 그 방송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우리와 소통하는 일이 드물잖아?

ㄴ이거 맞다. 그리고 그 방송을 일종의 ASMR 방송에 가깝지 않나?

­나는 러스트 같은 게임 방송 지루해서 못 보겠다.

­동의함, 거기에 일본어를 못하는 데 일본 선배들하고 이야기하는 거 따라가기 힘듬

[요즘 좀 처지는 기분임]

[물론 아리아가 다른 버튜버들과 사이가 좋고 꽁냥꽁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좋은데, 게임 자체가 너무 루즈해서 못 보겠음. 항상 그녀의 방송은 시끄럽고 화려해서 좋았는데, 맥도날드에서 항상 감자튀김만 먹다가 갑자기 샐러드 먹은 기분]

­맥날 샐러드 맛있는데

ㄴ그게 아니잖아 ㅋㅋ

­근데 이게 원래 선라이즈 방송임. 다른 캐릭터들과 기획 외의 합동 방송을 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케미를 즐기는 거임

­맞음, 그동안 아리아의 행보가 특이했던 거임, 단독 데뷔라 그런가?

ㄴ 솔직히 그녀가 다른 버튜버처럼 기수 데뷔를 했다면 지금쯤 걔들하고 자주 어울려서 이런 글도 안 보였을 듯

커뮤니티의 흐름은 대체적으로 호감에 가까웠다.

아리아의 신규 유입 팬들이라면 모를까, 기존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을 즐겨보던 팬들은 이런 방송 흐름에 익숙했다.

오히려 단독으로 데뷔했기 때문에 혼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아리아가 대단한 편이었다.

마라톤 게임에서 항상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해야 할까

아리아의 방송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기에 이렇게 숨을 돌리는 느긋한 게임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런지 불호를 표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이러했다.

[그러니까, 딴 건 다 좋으니 영어로 좀 해줘]

언어 문제였다.

아리아의 시청자의 6할은 해외 시청자들이었다.

당연히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아무리 양덕들이 일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들 결국 영어로 소통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본어를 영어로 동시 송출해 줄 수 있는 소통 방송이 아닌 이상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당연했다.

이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유나와 유키하라는 다소 심각한 얼굴로 커뮤니티 조사 보고서를 읽었다.

“음, 역시 이런 문제가 생기네요, 제가 말할 때 영어와 일본어를 자주 섞을까요?”

“그러면 대화의 흐름이 깨져서 불편할 걸?”

“대화를 마친 후 영어로 번역해주는 건요?”

“그게 제일 그럴싸하긴 한데...”

사실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일본어로 선배들과 이야기하고, 시청자들에게 따로 영어로 설명하는 것 말이다.

문제는 한두 번 진행하는 방송이면 모를까, 이런 샌드박스 게임은 장시간 접속하여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은 까닭에 권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 선배들하고 합동 방송 기획을 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때는 명확한 게임이 있었잖아? 이건 말이 게임이지 일종의 소통 방송에 가까웠고.”

“일본어를 잘하는 저는 일본 선배들과 친해질 수 있는데, 팬들이 언어에 부담감을 느끼네요.”

게임 자체에 흥미를 붙이긴 했으나 방송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평범한 게이머라면 모를까, 버튜버인 유나에게 있어서는 복잡한 일이었다.

“어휴, 얼른 GB 쪽에서 2기생들 데뷔시켜서 그쪽 몸집 좀 키우면 좋겠는데.”

사실 이번 일은 언어가 맞는 사람들을 데려가면 되었다.

“아직 애들 한창 뽑는 중이라면서요.”

문제는 자격 심사가 굉장히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경쟁이 일만 대 일이었다.

한 명의 채용자를 위해 지원자가 만을 넘어간다는 기적적인 숫자 덕분에 GB는 사실 반쯤 마비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지금 이대로 진행하는 수 밖에.”

모든 팬들을 안고 갈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일본쪽 팬들의 유입을 생각해도 조금 손해긴 할건데.”

“괜찮아요. 데뷔 7개월 차에 185만 찍었는데, 감소 되면 뭐 어때요.

애초에 제가 이렇게 확 클 수 있었던 것도 회사 때문인데 말이죠.”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이면서도 개인 버튜버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던 유나였다.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해외 지사의 행보 덕분에 피해를 보는 게 아깝긴 해도,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현재 GB의 인원이 고작 다섯이고, 다른 개인 버튜버와 합동 방송을 굉장히 꺼리는 회사 지침을 무시하고 행보하기에는 쌓아둔 것이 아까웠다.

“해외 팬들을 노릴 수 있는 콘텐츠들을 조금 더 구상해보는 수 밖에 없겠네.”

결국은 콘텐츠 창출이었다.

해외 팬들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방송 시간을 늘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냥, 러스트 조금만 진행하다가 서버가 리셋되는 시차에 떠나도 되지 않아?”

솔직히 이게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었다.

“아뇨, 선배에게 괴물 소리 듣고 있을 정도로 제가 다른 버튜버들과 거리감이 확 생겼는데, 제가 어찌 그러겠어요?”

“에휴, 결국 그거였구나.”

버튜버가 좋고 버튜버들을 덕질하기 위해 버튜버 활동을 시작한 유나가 그런 소외감을 반길리 없었다.

파티가 열리면 주인공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유나는, 파티의 중심에 다가가면 다가갔지, 파티장에 거절당하고 쉽게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거리감을 느꼈던 일본의 다른 버튜버들과 기필코 공략...아니, 친해지고야 말겠다는 유나의 굳센 다짐을 들은 유키하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차피 새로운 팬들은, 3D 라이브 콘서트로 확 끌어올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한 유나는 직접 의뢰한 3D 아바타의 샘플을 유키하라에게 보여주었다.

지금의 방송용 아바타보다 월등히 뛰어난 아바타를 본 유키하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유나의 그 말이 전혀 허황되어 보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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