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90화 (290/307)

〈 290화 〉 289화.

* * *

유나의 운동량은 거짓을 조금 보태자면 육상 선수들이 오프 시즌에 하는 운동량에 맞먹는다.

마스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다른 헬스장 멤버들이 그녀를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운동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 저렇게 예쁜 사람은 계속 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저렇게나 노력하는구나’하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체육 업계에 속한 사람들은 ‘선수도 아닌 외국 여성이 저렇게 홀로 열심히 운동 하는 데 질 수 없다!’는 식으로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 결국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은 헬스장 주인인 사카모토였다.

일 년 전 그녀의 외모와 근육 상태만 보고 한 달 요금 3만 엔이 넘는 고급 헬스장 쿠폰을 반년 치 무료로 푼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은 사카모토 씨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유나의 운동이 끝나기 무섭게 스포츠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유나 씨, 요즘 들어서 열심히 운동 하시네요?”

“아, 네. 슬슬 몸을 만들어야 해서요.”

그 말을 듣던 주변 헬스인들이 잠시 몸을 휘청거렸다.

아니 그러면 지금 몸은 뭔데?

그런 의문 가득한 시선을 알아차린 사카모토 씨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유나의 몸은 현대 여성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몸매였다.

단련하기 어려운 근육들을 단련하면서도 그 정도를 과하게 하지 않아 근육이 크게 부풀지는 않았지만,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오른것처럼 보였다.

매끈한 다리의 종아리 부분은 힘을 주면 튼실한 근육이 드러났고, 허리 라인은 같은 여성을 동성애자로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 그러면 드디어 헬스 대회에?”

“무슨 소리예요? 그냥 춤추기 적합한 몸을 위해서 당분간 밸런스 좀 맞춰야해요.”

“아하, 대형사에 데뷔하시는구나.”

뭐 외모만 보자면 아이돌에 가까웠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사카모토 씨는 부잣집 따님들이 연예계에 흥미를 느끼고, 지하 아이돌로 데뷔하는 언더 그라운드 아이돌이 아닌 옆 나라 한국처럼 대형 소속사에 출발선을 끊는 한국식 아이돌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헬스장의 마스코트 같은 유나에게 내심 고마움을 잔뜩 느끼던 사카모토 씨는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처럼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혹시 필라테스 쪽 알아보고 계시죠?”

“네, 안 그래도 필라테스 쪽 알아보고 있어요.”

필라테스는 아름다운 체형을 가꾸기 위한 실내 체조 운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유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포츠 의학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인이었다.

헬스장에 볼 수 있는 헬스 트레이너가 아닌 진짜 전문가 말이다.

“제가 안 그래도 좋은 사람 알고 있어요. 그 혹시 아시나요? 한국의 대형 아이돌 기획사 출신인 사람인데... 최근에 AKB 쪽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온 언니가 있어요.”

“오, 그래요?”

“뭐 유나씨라면 언제든지 아이돌 업계에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니, 이럴 일이 있을 줄 알고 준비해둔 게 있죠.”

“그, 그래요? 하지만 지상파에 데뷔하려는 게 아닌데...”

“무, 물론 취미로 춤! 좋죠! 유나 씨 정도 되는 분은 그냥 유튜브에 춤 추는 영상만 올려도 100만 구독자인가 뭔가, 그거 금방 하실거에요!”

유나는 이 유복하고 젊은 헬스장 주인의 오해를 굳이 풀 생각은 없었다.

난처하게 웃으며, 솔직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녀는 헬스장 주인인 사카모토 씨가 알려주는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기록했다.

그렇게 헬스장에서 일련의 헤프닝이 지나간 후

운동을 마친 유나를 반겨주는 것은 인근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온 유카하라였다.

“유키하라 언니, 아무래도 트레이너 알아보는 일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응, 그러니?”

“방금 어떤 일이 있었냐면...”

유나의 이야기를 들은 유키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나 정도 되는 사람에게 그 정도 호의를 베푸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언니가 그때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건데...”

“응, 죽어도 너랑 같이 헬스 안 해.”

지구상에서 유나의 애교섞인 목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흘려낼 수 있는 철혈의 심장을 가진 매니저는 어림도 없다는 듯 못을 박았다.

그녀와 같이 운동했다가 일주일 내내 근육통이 사라지지 않아 집에서 바닥을 기어가며 생활했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린 유키하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유나 너도 참 대단하구나, 춤을 위해서 몸 상태를 조절한다니...”

“에이, 이 정도가 뭐가 대단해요? 저야 버튜버로 아이돌 활동하는 거니 조금 더 자유롭죠.

한국에 데뷔한 애들에 비하면...으으!”

당장 구글에 한국 아이돌 식단(Korean Idol Dish)만 검색해도 결과가 보인다.

그 상태에 영양제를 달고 살면서 운동을 빡세게 하고 몸을 관리하는 건 기본이고

완벽한 춤선을 나오게 하려고 코어 운동을 빡빡하게 시키는 한국 아이돌에 비해서야... 근육 좀 생긴다고 흉볼 사람 없는 지금 환경은 훨씬 편했다.

“그래서 당분간 춤도 준비한다고?”

“춤도 춤이고, 3D 아바타 받으면 솔로 콘서트 기획하려구요.”

의욕에 가득 찬 유나의 말에 유키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록 그녀의 동기가 ‘자식을 저버린 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성공했다는 자식이 되었음을 알리고 싶다’라는 마음가짐에 가까웠지만,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회사 좀 제대로 쪼아주세요.

솔직히 제가 벌어준 게 얼마인데, 회사 스테이지 못 빌리는 건 아니겠죠?”

“내가 나모를 머리로 들이받는 일이 있더라도 9월에서 10월 사이에 라이브 진행하게 해줄게.”

아리아가 버튜버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라면

유키하라 또한 매니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위치였다.

버튜버가 성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성우 오디션에 보내고, 천만 넘는 게이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새긴 후 라인과 협력하여 라인 문고와 연을 만든 유키하라의 수완은 도저히 입사한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은 사회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니까.

“그나저나 왜 다른 버튜버들이 이런 마인크래프트 같은 샌드박스 형 게임 방송을 즐기는 지 알 것 같네요.”

“편하잖아.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안부인사도 전하고, 가볍게 장난도 칠 수 있고.”

“아아, 이나리 선배랑 노는거 정말 재미있었어요.

솔직히 뭔가 열심히 기획하지 않더라도 속 편하게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러스트 방송을 시작한 지 일주일 째

아리아는 츠키노 이후로 많은 버튜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기존에 친분을 나누었던 용사 에이아나 연금술사 다비같은 선배도 있었지만, 합동 방송 횟수가 적었던 헤카테나 교류할 일이 드물었던 3기생의 카오루나 5기생의 샤토라 같은 멤버들도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아리아는 왠지 외국인이라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들이었으나, 인간 윤활제에 가까운 이나리의 적극적인 만남 주선, 한밤중의 도박 파티로 친분을 거나하게 다진 이후 평범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같은 서버에 있으면서 얼굴을 마주치고, 시비를 걸거나 장난을 치고 상대방의 방송에 들어가서 채팅을 남기는 식으로 장난을 걸었다.

방송 성향이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보다는 개인 방송이 잦은 다른 버튜버에 가깝다는 소리가 쏙 들어갈 정도로, 아리아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일본 선배들과 잘 어울리기 시작했다.

츠키노처럼 사람 자체가 워낙 소심해서 아직 그녀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그래도 러스트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함께 합동 방송을 기획하기 시작하며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한 이후 그녀는 확실히 이쪽 사람들과 어울렸다.

“합동 방송 기획을 크게 잡지 않아도, 같이 높은 탑을 쌓아보자, 라는 식으로 의기투합 될 수 있었으니 말이죠. 평소 부족했던 시청자들과의 소통도 이번참에 많이 나누고.”

“하긴, 유나의 방송은 딴 건 다 좋은데, 소통 방송이 조금 많이 부족한 편이였으니 말이야.”

“으음... 확실히 그렇네요.”

아리아의 소통 방송은 솔직히 말하자면 슈퍼챗 읽기 방송에 가까웠다.

물론 아리아는 라디오 토크 같이 주제를 바꿔가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섭렵하고 있는 인터넷 밈만 하더라도 일본, 미국, 한국 세 나라를 통틀어 풍부한 편이었고, 사람들은 밈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리아에 큰 호감을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첫 슈퍼챗 방송이 돈으로 혼쭐나는 영상이 많아서 그런지, 아리아는 그런 소통 방송을 상당히 적게하는 편이었다.

제발 팬들이 돈을 가져가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돈에 알게 모르게 부담을 느낀 듯 아리아는 그런 방송을 잘 열지 않았고, 이렇게 목적성이 희미한 샌드박스 형 게임을 방송하면서 그간 부족했던 소통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언어 이슈를 뛰어 넘는 힘이 있었다.

비록 일본 선배들과 놀 때는 영어의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그녀들과 있지 않고 홀로 방송을 진행할 때는 채팅창을 자주 확인하고 영어로 말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리아가 일본어를 쓴다고 떠날만큼 매정하지도 않은 팬들은 이런 방송 진행에 익숙해진 이후 느긋해진 템포로 그녀의 방송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의 일본어와 영어의 발음은 아나운서 급이었으니 듣고만 있어도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소통이 부족하다라...”

“하긴 데뷔한지 반 년도 안되어서 지상파에 나오질 않나, 성우 활동을 뛰지를 않나, 문자 그대로 대기업의 버튜버 교육을 진행하질 않나...”

“뭐, 그럼 당분간 진솔한 소통 방송을 기획하도록 할까요?”

“응?”

일정을 조율하던 유나는 진솔한 소통 방송을 할 기회가 당분간 없다고 생각했다.

몸을 조율하기 시작하면 식단도 조절해야 했으니, 입영 통지서를 받은 청년이 입대 직전에 온갖 식품을 즐기는것처럼, 자신도 즐겨야한다고 생각했다.

“진솔한 소통 방송하면 그거죠 그거.”

“...너 설마?”

“헤헹.”

제 캐릭터를 닮아 여우의 코웃음같은 소리를 낸 유나는 요망하게 혀를 내밀었다.

유키하라는 황당해하면서도, 그녀의 새로운 소통 방송을 허락했다.

****

아리아의 방송은 재미있다.

당연했다, 200만 구독자 도달을 바라보는 버튜버의 방송이 재미가 없다면 문제가 있으니 말이다.

게임이면 게임, 노래면 노래, 커뮤력이면 커뮤력, 드립이면 드립, 클립 각이면 클립 각

방송에 대한 깊은 이해로 본인의 넘치는 매력을 쏟아붓는 그녀의 방송은 항상 평균 시청자 2만 명은 가볍게 찍을 정도로 대단했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언제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방송에 재미를 가져오던 그녀는 그동안 질주했던 것을 멈춘 듯 최근 들어서 느긋한 템포로 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시청자들 또한 그녀의 방송 흐름에 나름대로 적응에 성공했다.

비록 10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느긋한 방송 템포로 시청자들과 특유의 드립을 치거나 바보같은 연기를 하면서 배꼽 빠지는 상황을 몇 번 연출한 아리아의 방송은 ‘이렇게 해도 재미있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녀가 빠른 템포로 박진감 넘치는 방송을 하건, 느린 템포로 차분한 방송을 하건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은 그녀에게 신뢰를 넘어선 충성을 바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대감 가득 찬 시청자들의 시선을 즐기듯 채팅창을 바라보던 아리아는 갑자기 캠을 켰다.

물론 얼굴이 나오는 캠이 아니라 손 정도가 나오는 캠이었다.

유희왕이나 포켓몬스터 카드 배틀, 바이스 슈발츠 같은 카드 게임팩을 까는 것처럼 세팅한 책상 위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술?

­사케, 보드카, 위스키, 맥주?

­심지어 소주도 있네...

­파티인가? 아닌데? 구도를 보면 혼자인데?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의 방송은 무려 야식&술 방송이랍니다~!

어떤 분에게는 아침 식사 방송이, 어떤 분에게는 저녁 식사 방송이 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술이라구요 술!”

그리고 이미 한잔 걸치기라도 한 듯 기분이 한껏 좋아진 아리아의 목소리와 함께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여러분들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한 바, 당분간은 먹고 마시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구요?”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맥주를 한 캔 땄다.

찰칵하는 시원한 음성과 함께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아리아가 맥주를 마시는 소리가 ASMR 방송처럼 울렸다.

꿀꺽­꿀꺽­꿀꺽

세 번의 목 넘기는 소리 이후, 텅 빈 맥주캔을 흔드는 아리아의 앙증맞은 양손을 본 시청자들은 흥분의 채팅을 보냈다.

우리 아리아는 술도 잘 마신다, 이러면서 말이다.

그렇게 아리아의 첫 술방송이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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