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92화 (292/307)

〈 292화 〉 291화.

* * *

유나가 다음 날 일어난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새침한 표정으로 자기를 노려보던 사랑스러운 동거자의 얼굴이었다.

“언니 왜 화났어요?”

“어젯 밤에 한 거 기억 안나?”

“음주 방송을 한 것 까지는 기억나는데...”

“이 근육 바보, 바보! 멍청이!”

장난삼아서 화난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화를 낸 그녀는 유나를 때렸다.

술 마시고 기억 잃은 사람이 그 행동에 무슨 저항을 할 수 있을까?

유나는 그저 얌전히 그녀의 앙증맞은 언니 펀치를 맞으면서 그녀의 화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언니, 진짜 미안한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바보야! 내가 널 깨우러 들어왔다가...!”

“들어 왔다가...?”

“술 취한 모습 그대로 날 껴안았잖아! 방송 있다고 해서 깨워주려고 찾아갔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떼어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껴안겨서 자야 했잖아!”

그러니까 술을 잔뜩 마신 유나가 자신을 다키마쿠라 취급하듯 껴안고 잔 일에 불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렇게 화낼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유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잠깐, 깨우러 왔다구요?”

“빨리 일어나서 사죄방송이나 해! 너 지각이야!”

“에에에!?”

한평생 지각한 적이 없던 유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잠 든 시간으로부터 스무시간이 지나있었다.

주 단위로 일정표를 올리는 아리아의 방송이 8시간이나 지각을 한 상황이었다.

과연 휴대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문자가 왔었다.

큰일났다고 생각한 유나는 침대에 벌떡 일어나려고 했으나, 주량 이상으로 달려버린 몸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꺄악!”

“어, 언니 미안해요!”

기세 좋게 일어났던 그녀는 휘청거리더니, 침대 밖을 나오려는 나에를 침대로 쓰러트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휴대폰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이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러워서, 나에는 화내지도 못했다.

“어유, 술 냄새! 주정뱅이!”

“으아아, 언니 소리치지 말아봐요. 머리가... 머리가...!”

“무거워! 더듬지 마! 자연스럽게 키스하지 마!”

그렇게 주정뱅이 유나의 소란이 침실을 부산스럽게 한 후

냉장고에 기어가듯 움직여서 숙취 해소제를 마신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울린 후,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던 매니저와 연락이 닿았다.

“유나야, 괜찮니?”

수화기 속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유나는 죽고싶을 정도로 부끄러움 감정을 느꼈다.

세상에, 음주방송 후 기세에 올라 술을 마시고 하루 일정을 끝장내다니

난생 처음 쳐보는 대형 사고에 그녀는 머리가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죽을 거 같아요.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요.”

“쿠로가와 씨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유나는 썩은 동태 눈깔로 방송용 컴퓨터가 놓인 책상을 바라보았다.

잭 다니엘 위스키, 체리 히링, 바카디 럼, 오켄토션 싱글 몰트, 블랑톤 싱글배럴... 술에 관심 많은 자취생들이 한 번쯤 사보기를 소망했던 화려한 알코올 파티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헬쓱한 얼굴로 자신이 벌인 참상을 확인한 후 대충 주량을 계산했다.

“그러니까... 음...”

“어휴, 수화기 너머 알콜 냄새 나는 것 같다.

이 상태로 해명 방송도 무리니 그냥 SNS 켜서 휴방 죄송하다고 공지나 쓰렴.”

“아, 아뇨. 그래도 방송을 날려먹을 수는 없죠.

이나리 선배 본따서 사죄 방송이나 진행할게요.”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들은 지각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지각을 반쯤 컨셉을 삼아서 기상천외한 사죄 방송을 기획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아리아는 아니었다.

무언가 물의를 빚을만한, 인터넷상으로는 염상(?上)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송을 진행해온 아리아였다.

그런 아리아가 사죄 방송이라니

퍼펙트한 커리어를 쌓으려고 노력했던만큼 쓰라린 판단이었으나, 그래도 한 번 일어난 일에 후회하지 않겠다 다짐한 유나는 방송을 켰다.

[9시간 지각한 멍청이의 방송]

그렇게 타이틀을 설정한 유나는 5분 후 방송이 송출되도록 설정하고 다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

단기간에 큰 인기를 끌어모은 버튜버 아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였고, 그녀의 방송에 매료된 팬들이 190만명이 넘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만큼 안티팬들도 많았는데, 그들이 자주 하는 주장이 이러했다.

‘아리아의 방송은 너무 인공적이다.

그녀는 계산된 플레이만 진행하며, 본인이 내보이고 싶어 하는 것들만 연출한다.’

‘그녀는 고도의 상업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게임 플레이만 봐도 그렇다.

피지컬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게임 방송마다 최적의 플레이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녀는 작은 실수만 저지르지,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통은 일방통행이다.

슈퍼챗을 통해서 방송인과 시청자들이 거리를 좁히며 다가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재미있는 콘텐츠 기획만을 진행하지, 인터넷 방송 특유의 친근감이 떨어진다.’

몇 개의 게임 방송에서는 방송 조작을 의심받을 정도로 그녀는 계산된 플레이를 선보였고, 그녀가 평소 진행하는 발언 또한 그러했다.

물론 그녀의 방송을 보다보면 그런 사소한 지적은 잘 와닿지 않는다.

게임을 태하는 그녀의 태도는 진지했고, 본인이 밝힌대로 서브컬쳐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잘 버무린 RPG 게임에도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감탄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정교한 플레이는 아무래도 조작 의심을 일으킬만한 여지가 있었고, 온라인 게임보다 오프라인 게임을 자주 하는 그 모습에 이런 의심은 더더욱 깊어져갔다.

그런 와중에 다른 버튜버나 인터넷 방송인들에 비해 짧은 소통 방송은 그런 오해를 깊어지게 했었다.

그런 오명을 씻어낸 게 바로 그저께 있었던 소통 방송이었다.

술을 마시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털털한 방송에 시청자들은 아리아의 고민을 알게 되었고, 언제나 완벽한 구미호를 연기하는 그녀의 속마음에 있는 약한 모습과 어리광에 흠뻑 매료되었다.

평소에 고고하고 활기찬 이미지를 보이던 모습에 완벽하게 대비되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아리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대형 기획사에서 철저하게 연출된 기계 같은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실력 좋고 술 좋아하는 구미호라는 설정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중요시 여기는 롤플레잉을 무너트리고 취중진담을 말하는 그 모습에 반해버린 사람이 한가득했다.

그다음 일어난 9시간 단위의 지각 또한 마이너스 요소가 된 게 아니라 플러스 요소가 되었다.

음주 방송이 끝난 후 20시간은 그녀의 매력을 꽉꽉 눌러담은 키리누키 영상이 제작되고 커뮤니티에 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에 그 방송을 보지 못한 팬들은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환호했다.

그래서 방송이 열리기 무섭게 그녀의 팬들은 엉망진창이 된 구미호를 짓궂게 놀리기 시작했다.

­여어, 지각생 어서 오고

­선라이즈 최장 지각시간인 10시간이 코앞이었는데, 아쉽네

­여우야 말 좀 해보렴

­설마 술 마시고 뻗었다가 방금 일어난 거는 아니겠지?

물론 돈으로 후려패면서 말이다.

방송을 켠 이후 1분동안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후려치는 슈퍼챗을 얻어맞으며 숨소리만 내던 그녀는 큰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올렸다.

“지각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석적인 말이었다.

그만큼 사죄의 마음을 꽉꽉 눌러 담은 말이기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술이 동한 시청자들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응 아니야 지각 더 해~

­우리는 그냥 기다려 줄 수 있어

­ㅋㅋ 아 새벽조가 뻗으면 지구 반대편의 팬들이 알아서 공격해주는 데, 걱정하지 마

­아리아는 글로벌 구미호잖아, 너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이 많단다.

이후에는 시청자들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평상시라면 완벽주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칠 법했지만, 9시간 지각이라는 거대한 지각에 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놀림당했다.

그래도 완전히 기가 꺾일 리 없는 구미호는 시청자들의 예상을 깨는 방송을 시작했다.

“하아... 그래서 기존의 방송은 어떻게 되냐구요?”

“무리에요 무리, 지금 컨디션으로는 3D 게임 들어가면 죽을 것 같네요.”

“이렇게 된 이상 해장술 마시며 2차나 하죠.”

그것은 바로 술을 깨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이상한 논리로 시작하는 해장술 방송

“어디 보자, 이쪽 시간으로는 토요일 오전 열 시... 아, 네 일본이에요 일본.

대충 캘리포니아는 오후 6시고 뉴욕은 오후 9시니까, 대충 알아서 술 까세요.

아시아분들은 어쩌냐구요? 금요일 어차피 머리 깨지도록 술 마시고 왔을텐데 저랑 같이 2차나 3차 달리죠 뭐.”

­아니 미친 이게 무슨 말이야

­뭐? 술을 깨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아리아 술 좀 마실 줄 아네, 마더로씨아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 동무의 귀화를 반깁니다!

­해장술이라니, 이게 머선 단어고ㅋㅋ

“아, 운영에서 뭐라하면 아침 식사 방송으로 하죠.

뭐 오전 10시는 아침이 아니라구요? 제가 방금 일어났으니 아침인거죠.”

[9시간 지각한 멍청이가 밥먹는 방송]

그렇게 타이틀을 고친 그녀는 우버이츠로 식사를 주문한 후, 가벼운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요즘은 전어회가 제철이네, 고수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가 먹고싶다네, 초파리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네 뭐네 하면서 잘 풀지 않았던 일상 이야기를 듬뿍 풀기 시작했다.

평소 그녀의 일상 이야기가 다른 버튜버들의 만남 혹은 성우 같은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 평범한 이야기였다.

“아, 그리고 저번 달 가챠 카드 청구액을 봤는데요, 죽고 싶어졌더라구요.”

“제 불행을 발판 삼아서 여러분들은 좋은 카드를 얻으셨나요?”

이런 식으로 시청자들의 뼈를 때리는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평소 이야기하지 않았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확 드러낸 그녀는 가끔 두통을 호소하며 ‘아이돌 타임’이라는 명목으로 몇 번 방송을 비웠다.

누가 보더라도 술 마신 직후 방송을 켠 인터넷 방송인다운 모습이었다.

아이돌을 지망하는 구미호 아리아를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메이드 라이기도 한 털털한 여성을 좋아하는 팬들은 목소리 연기가 깨졌다는 이상한 지적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어리광에 어울려주었다.

“아, 잠시 자리를 비운 김에 배달한 음식도 가져 왔어요.

뭐 먹냐구요? 잠시만요...”

“아, 이건 한국식 생선국이에요. 대구탕이라고 하는 건데, 고추와 콩나물을 때려박아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살아나는 음식이죠.”

“쿡밥? 아뇨, 이건 국밥이라고 읽어요. 고기 들어간 국밥도 좋아하는데, 역시 술 마신 다음 날은 생선 베이스죠.”

이후에는 먹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 특이한 게,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은 주로 얌전한 모습을 보이며 조금씩 밥을 천천히 먹는 모습이 대다수였다.

흔히들 일본 여성들이 밥을 깨작깨작 먹는 그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예쁜 목소리로 성숙하고 얌전한 규수의 목소리를 연기하거나, 기모노를 입고 가슴골을 드러내며 남성을 유혹하는 꿀떨어지는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하던 아리아의 먹방은 그와는 달랐다.

배달 온 제법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밥솥을 들고 와 밥을 넣은 후 동봉된 파와 땡초를 넣었다.

그 후 다진 마늘을 가져와 두 숟가락을 크게 넣은 후 뜨뜬한 국그릇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을 선보였다.

­...???

­아니 저게 무슨

­마늘을 저렇게 많이 넣어?

­캬, 먹을 줄 아시네 ㅋㅋ 역시 대구탕에는 대파 좀 썰어 넣고! 고추 좀 썰어 넣어서 칼칼하게 해야지!

­어우야, 밥 떠먹는 거 봐, 회사인데 벌써 든든하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새벽 시장이 끝난 후 국밥집에 가서 밥 한그릇을 든든하게 말아먹는 시장 아재들을 떠올리게 하는 구수한 모습이 있었다.

평소에 하는 요리나, 주위 사람들의 평가로부터는 ‘완벽한 아가씨’에 가까운 모습을 연기하던 모습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런 모습 말이다.

“저 같이 예쁜 사람은 많이 먹어도 되요.”

자화자찬의 말을 이으며, 같이 배달온 김치전을 집어 먹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 밥을 먹으면 저렇게 먹어야지

­나는 저 음식을 모른다, 그런데 아리아의 밥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침이 고이네

­마, 먹방의 시조가 한국 아이가?

­와 진짜 소주를 까네, 해장술 한다는 게 진짜였어?

“치열스~ 건배~”

국밥을 먹을 때 만큼이나 시원하게 소주를 들이켜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이 방송이 ‘지각 사죄 방송’이라는 사실마저 잊은 채, 평소 듣기 어려운 아리아의 일상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낯선 컨셉의 방송은, 화가 잔뜩 난 마왕이 강림해서 두 번째 소주병을 까려는 아리아를 한껏 혼내고 나서야 멈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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