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화 〉 2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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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방송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사라진 덕분인지, 유나의 삶은 이전보다 한결 여유롭게 변했다.
옆에서 보던 사람이 강박증을 느낄 정도로 빡빡하게 짰던 일정들이 풀어지고, 그녀는 여유로운 자유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그만두었던 협곡에 들어가 챌린저 등반에 다시 도전해보거나
클라티에에게 배운 그림 기술을 복습하면서 직접 썸네일도 그려본다거나
아니면 일본에 건너온 한국산 웹소설들을 읽으며 낄낄거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유나가 프로게이머인 동생놈의 방송에 찾아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누나도 스트리머 동생도 스트리머
참 보기 드문 조합이지만 한 사람은 일본의 버튜버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 팀 소속의 프로게이머였기에 접점은 없는 편이었다.
유나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유나의 동생인 세호는 프로게이머 사이에 부드럽고 샤방한 외모로 이름 높았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인기 투표 3위 안에 꾸준히 들어갈 정도로 실력과 외모를 둘 다 겸비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오타쿠임을 숨기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들에게도 인기가 좋았고, 오랜 기간동안 좋은 폼을 보여주었기에 팀에서도 사랑을 받는 프로게이머였다.
그랬기에 그의 방송은 언제나 많은 시청자로 붐볐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방송에 시청자로 돌아간 유나는 게임 보는 눈도 기를 겸, 그의 플레이를 뜯어보며 게이머의 감을 되찾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들려왔다.
“최근에 유나땅 방송 보는데 너무 귀여워 죽겠어.”
“그게 뭔데 씹덕아? 아니, 어떻게 유나땅을 모를 수가 있지?”
“아 제 팬분들은 그 방 놀러가서 막 제 이름 팔고 그러시면 안 돼요.”
유나땅?
누나의 이름을 이렇게 막 불러?
이 개자식이 미쳤나?
순간 그런생각이 들었지만, 유나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흔한 이름도 아니었지만 드문 이름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튜브에 유나땅을 검색했다가, 한국에 활동하는 버튜버에 유나라는 이름을 쓰는 버튜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따.
“이 오타쿠새끼가…”
그렇게 말하는 유나도 오타쿠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근래 들어서 한국 포탈은 아리아 채널, 아리아 갤러리 정도만 챙겨보는 유나였기에 그녀는 오랜만에 매니저의 기억을 되살려 한국의 버튜버 시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선라이즈 사무소는 몰라도, 옆 동네 사무소인 무지개 엔터테인먼트에서 무지개 KR을 출범하면서 시작을 끊었으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규모를 가지고 있던 한국 시장이었다.
버튜버 문화가 워낙 마이너하다 보니, 한국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기 보다는 일본으로 넘어와서 일본 버튜버의 방송을 보는 이들이 절대 다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모지는 아니었다.
일본이나 영어권 버튜버를 보고 버튜버에 흥미를 가진 이들이 영입을 위해 키리누키 채널을 만들었고, 일반인들이면 모를까 기존에 오타쿠 컬쳐에 관심이 많은 오타쿠들은 버튜버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워낙 스트리밍 문화가 강한 한국인 덕분에, 한국의 오타쿠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실시간 스트리밍 버튜버 방송에 녹어들었고, 그에 따라서 적지만 꾸준하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게 한국의 버튜버 시장이었다.
“어라… 신기하네.”
오타쿠 문화 입문을 일본에서 한 덕분에 한국에 오타쿠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나였다.
그녀의 인식에서 ‘한국’에서의 오타쿠들이란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항상 구석에 두 셋이 모여서 미쿠땅이니 뭐니 하면서 음침하게 떠들던 기분 나쁜 남자애들이었다.
정작 오타쿠가 된 이후에는 그냥 애들이 자기 좋아하는 주제가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에게 말 걸 용기도 없는 쫄보들이라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새삼스럽게 한국의 오타쿠 시장에 대해 크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나는 시장 조사 겸 분위기 파악을 위해 트위치에 방송중이던 한국 버튜버의 방송에 들어갔다.
선라이즈 버튜버 오타쿠였던 동생이 국적(?)을 바꿀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이름을 쏙 가져온 것 같은 유나땅 방송을 말이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버튜버 유나땅은 아리아의 공포게임 해석 가이드를 보며 공포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복실복실한 분홍 머리카락
조금 야하게 생긴 눈매
천사 컨셉인듯 머리 뒤에는 천사링이 반짝거리고 있고
단아하고 깔끔한 흰색 교복처럼 생긴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플레이 화면을 정신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유나땅 겁에 질렸네
저렇게 무서운가?
“으아아앙 이거 무리야 무리!!”
공포 게임을 도전하게 된 스트리머들을 위한 구미호의 플레이 가이드를 곁눈질하며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겁이 많은 사람들은 무서운 걸 알아도 놀래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도 그럴게,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공포 게임인 환원은 스토리 텔링이 기가막힌 게임인지라 아리아로 진행할 당시에 게임 설계자의 의도를 분석하기 보다는 게임 플레이에 집중한 편이었다.
깜짝 놀래킨다거나 무서운 상황을 연속으로 제시하여 사람을 공포로 몰고가는 게 아니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자극, 대만 공포게임 특유의 종교적 신비가 섞여 들어간 공포 분위기는 일종의 예술성마저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공포를 자아냈기에 가이드로서는 그다지 도움 되지 않았다.
“음, 이거 제작자의 미스인 셈인가.”
요컨데 스토리로 감동 주는 게임에는 아리아의 공포 게임 해석 가이드가 무리인 셈이었다.
“아니 그런데, 저 분은 왜 공포게임 초보인 분이 끝판왕을 잡으셨지?”
한국 특유의 스트리머 놀리기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유나의 자연스러운 의문이었다.
버튜버 유나땅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환원(Devotion)이라는 게임인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솜씨가 상당히 예술적이고 자연스러운 편이기에 공포 게임을 세세하게 분석하다가 결국 반쯤 포기한 게임이었다.
그만큼 공포게임 좀 한다는 스트리머들에게는 상당히 스트레스가 큰 편이었고, 스토리에 몰입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느끼는게 많아지는 게임이기에 공포 게임 내성이 높은 아리아도 ‘이건 상당히 무섭네요’라고 평가했다.
뭐 그 덕분에 게임이 더욱 유명해진 덕분에 ‘공포 게임 4대천왕’느낌으로 한국 인터넷 방송판의 시청자들이 제일 자주 외치는 공포게임 추천 리스트에 오르긴 했지만…
아무튼 이 게임은 아리아의 공포 게임 가이드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게임이었기에 버튜버 유나땅은 게임을 진행할수록 겁먹는 반응을 자주 보였고, 시청자들은 ㅋㅋㅋㅋ 거리며 즐겁게 관전했지만 가이드 제작자인 유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도 버튜버 유나의 공포 게임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일단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당황하는 리액션은 상당히 큰 편이었고
목소리 자체가 워낙 귀염기 가득하다 보니 듣는 맛이 넘쳤다.
게임에 몰입하는 스타일인 듯 호흡이 거칠어지고 시야가 계속 흔들리는 편이었지만 스트리머의 당황하고 있는 감정이 화면 너머로 느껴진 탓인지 보는 맛이 넘쳤다.
거기에 시청자들의 슈퍼챗, 그러니까 도네이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래는 반응을 보이는 덕분에 놀리는 맛이 한결 강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올려라 유나!
시선이 흔들리니 도망가다가 자꾸 부딪히지!
아이고ㅠㅠ 힘내세요.
게임 겁나 무섭긴한데 유나 반응이 너무 웃겨 ㅋㅋ
그래도 진행은 빠르다. 역시 아리아 가이드;
유나 패닉 겁나 웃기네 ㅋㅋ
즐기는 시청자들, 두려워 하는 시청자들, 안타까워하는 시청자들 사이에 누군가가 사죄의 말을 올렸다.
정확하게는 사죄의 의미가 담긴 100만원 도네이션이었다.
콘텐츠 제작이 미흡해서 미안해요 ^^;
피해자의 아버지가 광기에 물들어 사악한 신을 섬기게 되며 집 안에 설치한 제단을 조사하던 유나땅이 게임을 멈출 정도로 커다란 금액에 그녀는 두 눈을 멍청하게 깜빡거렸다.
“아이고 아리아님 10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100만원 후원 리액션이 없어서… 그런데 콘텐츠 제작이 미흡하다…뇨?”
게임을 잘 못 추천해줘서 미안하다.
놀려서 미안하다.
뭐 그런 식으로 악질 시청자들이 사죄하는 후원 채팅이 몇 번 들어와서 괜찮다고 답하던 유나땅은 시청자의 사죄 내용이 ‘콘텐츠 제작이 미흡해서 미안하다’라는 내용에 고장이 난듯 말을 버벅거렸다.
콘텐츠 제작?
지금 유나땅이 하고있는 게임 개발자인가?
???
잠깐, 그게 아니라 아리아의 공포 게임 해석?
??????
아니 설마???
걘 유튜브에서만 활동하잖아??
고장이 난 건 버튜버 뿐만 아니었다.
한국인 버튜버 방송을 볼 정도로 버튜버에 해박한 시청자들 또한 고장난 반응을 보였다.
그중 누군가가 외쳤다.
잠깐! 저 사람!! 진짜다!!
진짜 아리아라고?
저 아이디 예전에 아리아가 녹음한 에픽세븐 아리아 콜라보에서 영어권 스트리머 방송에 나온 적 있는 그 아이디임!
진짜라고?
아니 혼모노?
진짜 아리아????
“서서서서 설마 지지지지. 지지지인….짜?”
버튜버판의 레드 오션에 정점에 오른 선라이즈 소속의 버튜버 아리아가 무소속의, 그것도 판이 좁은 한국의 버튜버 시장에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실시간 시청자 600명 정도가 모인 소소한 방송, 비유하자면 조그만 체육관을 빌려 무대를 하고 있던 사람의 공연에 월드 투어를 다니는 스타 가수가 출연한 셈이었다!
당황하는 유나땅을 향해, 아리아의 이름을 쓰는 시청자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100만원의 도네이션이었다.
그 게임을 찍을 때는 아무래도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다보니, 저도 콘텐츠 제작치고는 굉장히 낮은 완성도를 보였네요.
“지지지지. 진짜 한국인? 한국어로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어머나, 제 국적은 비밀이랍니다♡
시청자와 스트리머가 1:1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지양해야 할 행동이지만, 그 대상이 동종업계의 선배, 그러니까 진짜 버튜버인 아리아라면 다른 이야기였다.
“호호호, 혹시 디디디. 디스코드 가능하세요?”
트위치 주소에 적힌 계정에 팔로 드렸어요.
개인 DM으로 보내드릴게요.
채팅마다 100만원 씩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도네이션의 흐름에 버튜버 유나땅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버튜버계의 거물인 선라이즈의 버튜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그것도 한국어로?
이 소식이 커뮤니티에 빠르게 전파되자 시청자들이 쏟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튜버 유나땅은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트위터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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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트위터의 공식 인증마크를 지닌… 버튜버 아리아가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트위터를 연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공포 게임을 해서가 아니라, 진짜 아리아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방문에 디스코드를 열어 1:1 메시지, 그러니까 DM을 통해 알게된 아리아의 아이디를 초대했고…
“안녕하세요? 선라이즈 GB 소속의 프로젝트 드림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리아입니다.”
하꼬 스트리머이자 한국 초창기 버튜버인 유나땅의 방송에
업계 유명인사인 아리아가 목소리로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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