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99화 (299/307)

〈 299화 〉 298화.

* * *

자사의 캐릭터 가치를 엄청 중요하게 여기는 선라이즈는 비밀 유지 조약과 캐릭터 가치 유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기에 유나는 내심 혼날 각오를 하고, 평소 연습 시간보다 훨씬 일찍 회사에 갔으나...

놀랄 정도로 별 일이 없었다.

결국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유나는 자신의 매니저인 유키하라를 찾아가 이실직고를 하였다.

당연히 유나의 매니저인 그녀는 이번 일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유나의 예상 외로 쿨했다.

“아, 그거?”

“...네.”

“우리 유나 하고싶은 거 다 해.”

“에?”

“매니저 출신에, GB 마케팅을 담당할 정도로 현실 감각 있는 사람이 외국 진출에 활동했는데 회사에서 굳이...?”

“근데 저희가 동인 써클도 아니고, 회사에 시스템이 있고 규율이 있는 데 그게…가능해요?”

당연한 소리였다.

학교 동아리에서도 특정 인물에게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준다면 문제가 일어나는데

수백 명이 있고 큰 돈을 만지는 조직인 기업에서 몇 사람을 위해 특혜를 만들어 주는 건 기업이 아니라 동인에서나 생각할법한 발상이었다.

아무리 아리아가 대단한 캐릭터라고 한들, 자기 멋대로 활동하고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면, 회사의 규율을 누가 중요하게 생각하겠는가?

“유나야, 우리 회사에서 버튜버에게 제공하는 게 뭐가있지?”

“기존 선라이즈 소속 버튜버들이 만든 클러스터에 들어오게 하는 세계관 공유, 회사의 인적 자원 및 기술 지원, 마케팅 서비스요.”

한마디로 말해서 신입 버튜버를 ‘선라이즈 n기생의 일원’이라는 명목을 부여해서 갓 데뷔한 신입과 업계의 최정상을 달리는 선배와 자연스럽게 합동 방송을 성립하게 만드는 세계관 공유(유나는 이것을 브랜드 파워 빌리기)

개인 버튜버가 고생해서 알아봐야 할 굿즈 제작 서비스는 물론이고, 회사의 이름으로 일류 일러스트레이터 및 모델러는 물론이고 트레이너와 기술자를 고용해서 높은 완성도의 버튜버를 탄생시킬 수 있는 인적 자원 및 기술 지원

그리고 회사와 연기자와 함께 만들어낸 버튜버를 회사 차원에서 홍보하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미디어에 노출시킬 수 있는 마케팅 서비스

이러한 것들은 개인 버튜버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번거롭고 바쁜 일이었다.

능력이 있다고 한들,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약속 잡기도 힘들고 지불한 금액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값을 받을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의뢰한단 말인가

캐릭터 디자인을 받고 난 후에도 3D 아바타를 만드는 모델링과 리깅을 해줄 사람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구한다 하더라도 개인을 상대로 어떻게 완성된 퀄러티를 보장받는 단 말인가

어찌어찌 인맥을 동원해서 업계 최고 선배 부럽지 않은 캐릭터와 모델을 받고, 뛰어난 방송 실력을 지닌 버튜버가 되었다고치자

그 이후에는?

아무런 인맥 없이 데뷔한 방송인이 어떻게 성공한단 말인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선택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노출이 될 만 한 인터넷 방송인 플랫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고 하늘 성공하는 데 한 세월이 걸린다.

블루 오션이었다가 레드 오션이 된 지금 버튜버 시장의 진입 장벽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고, 누군가가 말하길 ‘어설픈 각오로 오타쿠의 돈을 가져갈 생각 하지 마라!’라는 발언 이후 어줍잖게 ‘오타쿠니까 대충 해도 통하겠지?’하는 마음가짐으로 버튜버 시장에 도전했다가 사라진 사람은 만 명이 넘었다.

이런 시장에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 선라이즈의 버튜버로 데뷔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득이 되는 일이다.

버튜버 팬들 절반 넘게 잡아먹고 있는 선라이즈의 신인이라는 타이틀 자체로만 홍보가 되니 말이다.

이러기에 지금도 선라이즈에 입사하고하는 버튜버 지망생들은 해마다 늘어갔다.

그런만큼 회사는 캐릭터 관리에 진심을 다해 매달렸고, 버튜버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해치는 비밀유지 조약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관리했다.

매니저 일을 해본 유나는 그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어제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사고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다, 유나는 지금 너의 디자이너닌 서니 선생님과 매달 두 세번씩 밥을 먹으러 다니는 친목을 쌓았네? 거기에 사비를 들여서 모델러를 따로 구해서 3D 아바타가 곧 나오게 되었고.

선라이즈 컨텐츠 제한으로 협박하려고 하니 지상파 진출이다, 서양에는 공포 게임 스트리머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다가 프로게이머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FPS 게이머네?

거기에 인기는 얼마나 좋은지 유나와 합동 방송을 원하는 다른 매니저들의 기획서가 매일같이 들어오고,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아니라 트렌드를 읽는 퍼스트 무버네?

매니저 활동 당시에는 선라이즈 최초로 잠정 은퇴가 확정된 쿠로가와 씨를 담당하여 독특한 이미지를 가진 버튜버로 만들어낼만큼 시장 읽는 눈이 똑바르네?”

비록 아리아가 초창기에는 메이드 라 시절 그녀를 알고 있던 버튜버들과 함께 놀러 다니느라 합동 방송을 자주 하긴 했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기에 바빴다.

다른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못할 실력으로 자신만의 색을 강하게 만들어 낸 아리아는 선라이즈의 다른 버튜버와 함께하는 일이 드물었으나 그만큼 자신만의 색으로 강하게 빛났다.

그러기에 선라이즈가 자랑하는 끈끈한 버튜버 시스템 없이도 워낙 빛날 인재였다.

거기에 일러스트레이터와 친밀한 관계를 다지고, 사비를 들여 300만엔 가까이 되는 금액으로 자신의 3D 아바타 모델을 만들만큼 수입도 괜찮고 인맥도 괜찮다.

자신의 방송 재능만 믿지 않고 시장을 분석하고 여러 번 남다른 콘텐츠 기획으로 독보적으로 성장한 아리아는…

“그러니까, 회사는 저의 독립을 걱정한다구요?”

“저번에 슈퍼챗 정산 비율 조정 계약하면서 그렇게 안 느꼈어?”

“아하.”

“거기에 그냥… 유나가 유나했네. 그렇게 믿는거지 뭐.

유나라면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 행보를 하지 않았겠나?

한국 버튜버 시장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한거지 뭐.”

“...그, 그런 비전은 없었는데.”

“그럴것 같더라. 그나저나 어떻게 버튜버 이름이 유나땅이지? 풉.”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회사의 경영진 치고는 조금 무책임하고 멍청해보이는 전략이었지만, 워낙 혼자 알아서 잘 날뛰는 야생마인 유나의 고삐를 잡는 건 리스크가 있는 행동처럼 보이기에 회사의 선택은 손해를 보지 않는 무빙이었다.

거기에 유나가 깜짝 합동 방송 계기가 ‘공포 게임의 공포를 없애는 아리아의 공포 게임 가이드 콘텐츠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해 완성도가 떨어지기에 A/S 서비스를 하러 왔다’고 못박은 덕분에 논란이 적었다.

물론 회사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본사 소속의 엔터테이너인 버튜버 아리아의 돌발 행동에 대해 우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는 식으로 개인의 돌발 행동이라고 정리를 했지만 말이다.

“그냥 유나에게 뭔 생각이 있겠지, 유나가 생각하기에 한국 버튜버 판이 나쁘지는 않아보이나? 회사 진출을 걱정해야하나?”

“라고하기에는… 저번의 No Japan 운동이 조금 크긴 컸죠. 그건 무리죠.”

아무리 한국 유교걸인 유나가 보더라도, 일본과 한국간의 국민 감정이 나쁜 지금 한국으로 진출하는것은 무리였다.

“그냥 한국에 있는 선라이즈 팬들을 선라이즈 버튜버가 챙겨주었다.

이 정도 이벤트로 끝내는 게 좋을거에요.”

“그러니? 으음, 조금 아쉽네. 안 그래도 요즘 미카엘이 다른 회사 사무실 U 소녀 소속 한국인들과 함께 게임 자주해서 한국 진출각이 보이는 가 싶었는데.”

이후에는 ‘다시는 운영과 협상 없이 함부로 합동 방송 하지 않을게요.’라는 식으로 사과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일이 끝났다.

여기서 사죄의 포인트는 운영의 허락 없는 무단 합동 방송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운영의 허락이 있다면 이런 합동 방송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과문을 작성한 아리아의 사과글 게시 이후, 커뮤니티는 또다시 불타올랐다.

사실 선라이즈는 지나칠 정도로 자사의 버튜버들을 아꼈다.

물론 아낀다는 게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지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선라이즈 의외의 소속 버튜버와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의 합동 방송을 거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선라이즈 버튜버들은 데뷔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자사에 소속된 버튜버가 아닌 다른 이들과 합동 방송을 하기 시작하며 운영의 통제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리아의 행보는 어찌 보면 이런 반항적인 행동에 방점을 찍은 셈이었다.

버츄얼 유튜버, 즉 버튜버가 다른 플랫폼인 트위치로 넘어가서 방송을 한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아리아가 보인 이번 반성문을 선라이즈의 쇄국 정책의 철폐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때문일까?

아리아의 사과문을 시작으로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은 다른 회사 소속의 버튜버는 물론이고, 기존부터 게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든, 혹은 데뷔 이전부터 알게 되었든,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되었든, 혹은 다른 버튜버의 팬이었든 간에 접점이 있던 버튜버들을 상대로 거리낌없이 합동 방송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비유하자면, 내수 시장만 돌리던 선라이즈에서 드디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외수 시장에 나아가는 셈이었다.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팬들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팬들이 커뮤니티에서 뜨겁게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논조는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선라이즈의 인원 보충은 거의 1.5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로 소극적으로 일어났고, 아무리 기존 캐릭터간의 케미가 좋다 한들 방송에는 변화가 찾아와야 하니까.

캐릭터의 유지야 선라이즈 버튜버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었고, 팬들은 자신들의 최애가 새로운 버튜버와 어떤 케미를 만들어 낼 지 궁금해하며, 굳게 닫힌 선라이즈의 변화를 반기며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불타오른 정도는 한국의 것에 비하면 가벼웠다.

지금 한국 버튜버 커뮤니티는 불타오른 정도가 아니라 축제가 일어난 격이니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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