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01화 (301/307)

〈 301화 〉 300화.

* * *

“저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새삼스럽게 왜 그래?”

“너무너무 예쁜 거 같아요.”

나에는 한심한 얼굴로 동거인을 바라보았다.

기타 장비 비용을 제외하고 단순히 모델링 제작 비용만 300만엔 짜리를 손에 넣었다고는 들었지만 뭔가 이렇게 나사 풀린 모습을 보일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멍한 표정으로 아리아의 브로마이드를 쓰다듬는 변태적인 행동에 온갖 기행에 익숙한 나에마저도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 일단 축하하기는 한데.”

“하지만 언니, 제 구미호는 진짜 죽여주게 예쁘다니까요?”

어쩌다가 인싸 그 자체였던 인간이 이런 노답 오타쿠가 되었는가

스스로 되묻던 나에는 해답을 내리길 포기했다.

이런 식으로 기행 트리거가 켜진 유나는 불가해의 존재가 되었다.

이해하는 쪽이 스트레스가 되는 그런 존재다.

“GB 선배들보다 먼저 얻게 되었는데 뭐라 안해?”

“GB 선배들은 죽어도 같은 모델러 팀이 만든 아바타로 데뷔하겠다고 했어요.

비록 그 팀이 코로나로 인해서 작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현재 다섯 분 가운데 세 분은 마무리되었고 두 분 작업 들어갔다고 하더라구요.”

“뭐 서양은 모르겠지만 일본은 이런 데 은근히 깐깐하니까, 3D 아바타 데뷔에 문제없어서 다행이네.”

“헤헤헤헤, 에헤헤헤헤.”

“데뷔에는 문제없지만 유나가 고장났구나.”

도대체 둘 사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마치 생전 처음으로 한정판 게임 CD를 구하고 기뻐하는 오타쿠같지 않은가?

어쩌다가 듬직하고 존경 그 자체였던 유나가 저런 푼수 오타쿠가 된 건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한심해보였다.

아니 실제로 한심했다.

“언니보다 좋아?”

“어, 언니보다요?”

“그래, 아리아가 언니보다 좋아?”

이전이라면 바로 언니가 최고야, 언니가 제일이야! 라고 반사적으로 말하던 유나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지만, 유나가 진짜 오타쿠가 되어서 기쁜 감정이 든 나에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읽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맹목적이던 유나가 이렇게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심지어 술도 마신 게 아닌데 말이다.

“바—보. 언니가 세상 제일인거 몰라?”

“하, 하지만 3천만원... 아니아니 300만엔 짜리 아바타는...”

“뭐, 확실히 시범 영상 보니 대단하긴 하네.”

솔직히 버튜버로서 부러웠다.

회사의 계약을 통해 선라이즈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고급스러운 3D 모델을 얻었지만, 유나가 얻은 아리아의 머리카락 퀄러티와 꼬리의 복슬복슬함은 정말 우주 제일이었다.

솔직히 기존 방송 아바타가 아닌 3D 아바타로 방송을 하는 편이 더 좋아보일 정도로 대단한 성질이었다.

“그, 확실히 이름을 언급해서 안 되는 그 회사 출신 답네.”

“헤헤, 그쵸? 역시 서양은 돈 주는 만큼 서비스가 좋네요.

이 아바타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일단 들어간 리깅 작업부터 말씀해야겠네요.

꼬리 부분 조작에 대해서는 손과 연결해두어서...”

실실 웃으면서 자기 아바타를 자랑하는 유나의 모습을 보다가 왠지 약이 오른 나에는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래도 좋기만 한지 이불에 누워서 웃는 유나는 아예 3D 아바타와 연결된 상태로 잠을 자려는 듯 화면 속에 움직이는 구미호 아바타를 조작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 한심한 모습을 보며 당분간 얼굴 보기 어렵겠구나 생각한 나에는 투덜거리면서 그녀를 위한 3D 아바타 공개 방송 프로그램 썸네일을 제작해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3D 아바타를 가지게 된 버튜버야 말로 진짜 버튜버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선라이즈의 버튜버로서의 시작점에 오른 셈이었다.

언젠가 저 산만한 꼬리의 구미호와 함께 가상의 무대에 오를 날이 오지 않을까

오게 된다면 그리 멀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에는 제법 신경을 써서 아리아의 3D 아바타 방송 썸네일을 제작해주었다.

****

[아리아의 3D 라이브 모델 떴다]

[오는 토요일에 피로연 예정]

당연히 그녀의 3D 모델 데뷔 소식은 버튜버 커뮤니티에 빨리 퍼졌다.

아리아의 팬들은 ‘벌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제작된 아바타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게 데뷔한 지 일년이 넘어가는 GB 1기생들은 아직 아바타를 얻지 못했는데, 그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가 벌써 3D 아바타를 얻었다는 소식은 방송내적으로는 모를까, 방송 외적으로는 대단히 서열을 중요시 여기는 선라이즈의 풍토에 어긋나는 행적이었다.

아무리 아리아가 단독 데뷔에 독특한 행적을 보여주었고, 부정할 수 없는 선라이즈의 훌륭한 버튜버이기는 해도, 과한 특혜 논란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타 플랫폼으로 찾아가 방송한 사실에 대해서 아직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오가는 마당에 난데없는 3D 아바타의 발표는 반발을 살수 밖에 없었다.

­이건 좀 아니지, 편애 아님?

­ㄹㅇ 다른 선배들은 아직도 팔을 못 움직이는데 후배라고 온 애가 벌써 꼬리치고 다니네

­구미호니까 꼬리 치는 거 정상 아님?

ㄴ조용히 하고 분위기 좀 읽어 제발

­본인들이 괜찮다는 데 왜 뭐라함? 마나만 하더라도 인용 RT한 다음 보러 가라고 말했어

­에오스하고 셀레네도 자기들도 보러간다고 말했음 ㅇㅇ

­GB에서 특혜 논란이라니 이상하네. GB는 일본하고 달라, 일본 서버에 통용되는 상식을 들이대지 마셈

ㄴ그래서 느그 오시는 팔 못 움직이제?

­분쟁 유도 ㄴㄴ해, 싸울거면 마이너 게시판으로 가서 다투라고

버튜버에 대해 어지간하면 호의적인 이야기를 하던 커뮤니티도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선라이즈의 잘못도 있고, 회사와 계약한 모델러의 불성실함이 문제가 되긴 했었다.

워낙 영세한 시절부터 힘을 내며 커 온 회사였기 때문에 실적주의 보다는 선배들부터 챙기고 차근차근 혜택이 내려가는 식으로 발전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오래 전 아바타를 받은 2기생의 멤버가 새롭게 아바타를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기고, 이전의 아바타에 비해 훨씬 퀄러티가 떨어지는 아바타를 받는 경우도 생겼다.

특히 아바타를 활용한 신의상을 받지 못한 멤버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하며 민감해져있는 상태에서 최근 잘 나가는 선라이즈의 공식 막내인 아리아가 3D 모델 아바타를 받은 것은 풍토를 깨는 행동이었기에 더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러한 여론 속에서 아리아의 3D 모델이 공개 되었다.

선라이즈 방송인들이 3D 모델을 사용하며 방송하는 특유의 스테이지에 짠하고 아리아가 나타났다.

푸른 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 설정에 따라 바뀌지만 기본적으로 짐승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눈동자, 비단 전통옷을 개량해서 만든 오리엔탈 풍 드레스, 그리고 기분에 따라 색이 바뀌는 특유의 하얀색 꼬리

설정화로 자주 보던 아리아가 팔 다리를 매끄럽게 흔들면서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여러분 안녕~ 아리아야 아리아~”

귀엽고 예쁜 목소리가 귀를 간질거렸다.

그녀의 말에 쫑긋쫑긋하고 움직이는 여우 귀와, 손 동작에 맞추어 움직이는 풍성한 아홉 여우 꼬리로 인해서 그런지 넓은 스테이지가 전혀 휑해보이지 않았다.

“이거 봐, 손이 이렇게 이렇게 움직인다? 다리도 이런 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고.”

그녀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온 몸을 퍼득거리며 움직이던 아리아는 점점 더 동작을 빠르게 취했다.

처음에는 큰 폭으로 3D 콘서트장을 걷는다거나,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며 섹시한 포즈를 짓기도 하다가, 몸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화려하게 움직이는 여우 꼬리를 자랑했다.

그러다가 춤추듯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스텝을 밟고, 팔 또한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머리카락, 가슴, 꼬리, 옷자락이 화려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에 맞추듯 조명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 화려한 모습에 평소 그녀의 팬들인 털뭉치단은 물론이고, 무언가 논란거리를 꺼내기 위해 찾아온 어그로성 시청자들마저 물 흐르듯 움직이는 그녀의 아바타의 움직임을 보고 채팅을 멈추었다.

우아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동작을 보던 시청자들은 이내 귀에 익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자아, 이렇게 정식으로 3D로 찾아오게 되었는 데, 아리아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갑니다.”

“아리아의 타이틀곡, ‘이 푸른 혜성에 빌어’를 춤과 함께 선보일게요.”

­아니 잠깐, 그 곡을 춤 추면서 부른다고?

­보컬 곡으로 춤을 추겠다고?

­아 일단 응원봉 흔들어!

다른 선라이즈의 버튜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어려운 난이도를 지닌 아리아의 타이틀 곡 ‘이 푸른 혜성에 빌어’

숙련된 가수조차 제자리에 서서 호흡을 관리해야 부를 수 있는 노래의 배경음이 깔리기 시작하고, 눈을 감았다가 뜬 아리아는 자신의 타이틀 곡을 부르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경이였다.

­이게 무슨.

­꼬리 움직이는 거 봐 자연스럽네

­아... 이게 라이브? 진짜 라이브?

­아니 사람의 호흡이 어떻게...

­저, 저게 진짜 아이돌?

모니터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춤의 완벽함

흐트러지지 않은 차분한 호흡과 훈련된 성량으로 나오는 깔끔한 보컬

그리고 애니메이션 3D 아바타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아리아 본인의 박력

이 모든 박자가 맞춰졌기에, 그녀의 3D 아바타 데뷔 방송에 찾아온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구미호에 홀린 듯 방송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의 방송은, 아리아의 역대 방송 최고 동시 시청자인 8만4천명을 찍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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