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03화 (303/307)

〈 303화 〉 302화.

* * *

3D 아바타는 신나고 짜릿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유나가 아니다.

가상 속의 구미호 아리아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나를 잠시동안 지배했다.

그만큼 3D 아바타를 움직이는 것은 끝내주었다.

내 자신이 구미호 아리아가 된 것 같은 이 일체감… 이 감각은 정말 최고였다.

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진행하는 평소의 방송보다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기뻤다.

춤 추며 노래하기

링피트 어드벤쳐를 풀3D로 진행해보기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선배들을 껴안아보기 등등

3D 아바타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이제 남은 건 유리아 쓰다듬기!”

“현실의 나를 쓰다듬어.”

“그치만, 가상의 유리아님하고 현실의 나에 언니는 다르다구요.”

이제는 익숙해진 언니의 묘한 경멸이 담긴 시선을 받으며 나는 헤헤 웃었다.

현실의 언니는 귀여워 죽을 것 같은 이미지라면

유리아님은 뭐랄까

귀엽다는 말로 표현이 부족하다고 해야할까.

귀엽긴 한데 가끔씩 카리스마가 넘치고, 붉은 눈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 라고 말할 때면 그냥 한 명의 여자가 되어서 꺅꺅 소리를 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현실의 언니를 좋아하면서도 가상의 유리아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캐릭터 과몰입 오타쿠라고 해도 좋았다.

3D 아바타를 가진 나는 현실의 언니와 가상의 언니 양 쪽을 덕질할 수 있었으니,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어쩌다가 존경 그 자체였던 유나가 이렇게…”

“저를 이런 오타쿠로 만들어 버린 건 언니잖아요? 언니 책임이죠 뭐.”

“유나야… 언니는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

어쩐지 침울해 하는 언니를 앞에 두고 나는 간만에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동안 푹 재운 닭고기 사이에 야채를 가득 집어넣고 소스를 붓으로 바른 후 오븐에 집어넣었다.

달그락 거리는 냄비에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샐러드를 준비하기 위해 야채를 씻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선 언니는 익숙한 동작으로 과일을 썰고, 삶아진 감자를 으깨고는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리기 시작했다.

“오이는요?”

“오이는 싫어.”

오이는 쓴 맛이 나서 싫어하는 탓에 깨끗하게 씻은 오이는 내 입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두 사람이 일하기에 조금 좁은 주방이지만 나와 언니는 호흡을 맞춰가며 간만에 정찬을 준비했다.

이전에는 이런 식사를 자주 준비해주었는 데 말이지.

입 짧은 언니를 위해 온갖 MSG를 써가면서 맛있게 요리를 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떠오른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붙어서 마른 인형같던 언니는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움이 만개했다.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남자들이 주시하는 게 느껴졌고, 번화가를 걸을 때면 아이돌 제의를 받기도 했다.

뭔가 나만의 소중한 보물같던 언니에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그런 언니가 되었다고 해야할까.

귀여운것에 환장하는 일본 기준에서 본다면 언니는 딱 이 나라의 취향에 맞는 아름다운 조건을 갖췄으니 말이다.

일단 잘 나가는 버튜버에 돈도 잘 벌고

바깥에 나가길 싫어하니 문제 생길 일도 없고

나에게서 가사 노동 하는 법을 배우고, 아침마다 주부 프로그램을 보고 나에게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를 해줄 정도로 요리에도 익숙해졌다.

만났을 때 요리 하는 법도 모르고 음식을 제대로 데우는 법도 몰랐던 언니가 이렇게 어깨를 맞대고 주방에서 요리할 정도로 성장하다니

눈가가 살짝 매워졌다.

“유나야 왜 그러니?”

“그냥 고마워서요.”

“뭐래.”

처음에 우… 아… 그, 그러니까… 같은 말로 어설프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언니가 내 감정을 읽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주는 것도 감동이라면 감동이었다.

그 덕분에 요즘 방송에 몰입해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과거 내가 언니에게 해주었던 것 만큼, 언니가 나를 보살펴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튼 유나는 뭐 하나에 집중하면 너무 그쪽에만 매달려서 문제라니까?

이렇게 언니랑 같이 시간도 좀 보내고 그래 줘.”

“제가 잘못했어요.”

오늘 이렇게 성대한 식사를 차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요즘 유나라는 사람은 동거인으로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도 드물어졌고, 같은 공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일이 줄어들었다.

몇 번 언니가 눈치를 주긴 했는데, 최근 들어 워낙 벌인 일들이 많아 그것들을 수습하느라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크게 혼이 났다.

화난 언니의 손에 붙잡혀 숨막힐듯한 키스를 몇 번 나눈 끝에 정신 차릴 수 있었다.

우리 언니는 제대로 봐주질 않으면 화를 내는 그런 욕심쟁이니 말이다.

내가 아무리 언니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으로 백만 번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을 입 밖에 내주지를 않으면 섭섭한 게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3D 아바타를 받고 여러 번 방송을 진행한 이후

나는 그동안 일에만 집중해서 언니에 대한 관심을 소흘히 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언니와 보내는 시간을 늘이기로 했다.

비록 매니저 일을 했던 과거만큼은 무리지만, 저녁 식사만큼은 같이 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식구(??)라는 것은 결국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그래도 예전이라면 혼자서 한 시간 넘게 걸렸던 식사 준비가 두 사람이서 하니 30분도 안되서 끝났다.

오븐에 구운 닭, 진득하게 우려낸 스튜, 신선한 가을 야채를 이탈리안 드레싱으로 버무린 샐러드, 그리고 이웃에게서 얻어온 맛있는 밀 빵이 차려진 테이블에 앉으며 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저녁 일정을 비우고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일까?

맛있는 요리에 뇌가 즐거워진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우리 둘 합하면 구독자가 400만명이에요.

400만명이면 어디보자, 도쿄만큼은 무리지만 요코하마보단 많네요.”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렇게 금요일은 무조건 치킨을 먹는 날이야! 라며 선포를 하면 팬들이 여기에 맞게 움직여주지 않을까요?”

“게임같은 이야기인걸? 무슨 새로운 법령을 세우는 것 같아.”

“오늘 밤은 치킨 나이트! 이러면서 팬들이라면 근사한 치킨 요리를 먹는 이벤트를 여는 건 어때 보여요?”

“그거 되게 한국적인 이야기다.”

“아하, 그런가요?”

“응, 최근 한국 시청자들이 많이 늘어나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한국 이야기를 듣거든.

치맥 문화라거나, 양념 치킨같은 이야기를 해 주거든.”

“이참에 패밀리마트 치킨이나 로우손 치킨과 협업을 해서 매주 금요일 밤에는 치킨을 먹어보자고 하는건 어떨까요?”

“그거 재미있겠다! 아니 근데, 밥 먹으면서도 일 이야기야?”

“아하하핫,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어쩌다보니 일 이야기로 번지긴 했지만, 간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언니와 저녁 식사를 마친 나는 언제나처럼 방으로 들어가…지는 않았고, 설거지를 마친 후 언니가 깎아주는 과일을 먹으면서 TV에 연결된 유튜브로 버튜버들의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요즘 GB 선배들이 일본 선배들하고 합동 방송 하기 시작했네요.”

“응, 마나와 클라티에의 어설픈 외국어 토크 이후로 더더욱 그런 것 같아.”

“뭐랄까, 저도 그럼 언니와 방송할 때 영어로 진행할까요?”

“흐흥, 이제는 언니 영어 제법 늘었단다? 듀오링고 1.5년이면 외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구!”

하긴 최근 들어 언니가 영어로 적힌 슈퍼챗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묘하게 외국인이 많은 언니의 방에 시청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슈퍼챗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

덕분에 선라이즈 최고 슈퍼챗 수익을 올리던 언니의 수익이 더더욱 늘어나 뉴스에도 몇 번 실렸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인기 영상들을 확인하다가 눈에 띄는 게 있는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저희들 아이돌이면서 왜 ‘오늘의 팬티는 무슨 색깔?’ 이런 게 방송 하이라이트로 키리누키 따지는 거죠?”

“글쎄, 우리 회사 버튜버들이 청초하다는 생각은 딱히 안 드는 데 말이지.”

“어라, 저는 꽤 청초를 지킨다고 보는데요?”

어설프게 야한 토크를 주제삼으려다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털린 후 차라리 청소컨셉을 지키자고 판단한 나는 청초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3D 방송에서 그렇게 골반을 흔들고는?”

“...네?”

언니는 대답하는 대신 유튜브 검색창에 ‘아리아 골반 댄스’를 검색했다.

검색된 상위 동영상 5개 모두가 시청 이력이 있는 언니의 유튜브 아이디가 살짝 신경쓰였지만, 아무튼 영상을 눌러 내용을 확인한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어떻게?”

영상 속의 구미호는 클럽에서 나올 법한 시끄럽고 화려한 음악으로 조명을 받으며 골반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아니… 방송 중에 저런 동작을 취하긴 했는데…

저건 유려하게 움직이는 꼬리 보라고 저렇게 춤 춘건데…

“에…에!?? 에에에????”

저게 저렇게 천박한 춤이 된다고?

“풉, 우리 유나는 아직 어린이구나.”

“하, 하지만 아리아는 저렇게 천박한 여우가 아니라구요!”

“이미 유튜브는 아리아 섹시 댄스로 물들였단다.

언니는 걱정이야, 우리 유나가 저렇게 야한 춤을 잘 출줄 어떻게 알았겠니?”

“저, 전혀 야하지 않다구요! 꼬리! 꼬리를 보라구요!”

“하지만 시청자들이 보는 건 꼬리가 아니라 바스트모핑과 골반의 움직임이지.”

나는 홀린듯이 3D 아바타로 춤추고 있는 아리아의 꼬리…가 아닌 엉덩이 라인을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인 내가, 아니 캐릭터를 조작하는 내가 보더라도…

저건 너무…

야했다!!

“아, 덧글 보렴. 서큐버스의 재림… 유나야? 유나야?”

나는 언니의 뒷 말을 듣지 못하고 방으로 뛰어갔다.

우리 구미호가 저렇게 야할 리 없어!

저건 유교 걸인 내가 결코 용납하지 못해!!

이건 악마의 편집이라고!!

속으로 표현 못할 비명을 지른 나는 이 일을 상담하기 위해 유키하라 언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붙잡았다.

나는 절대 저렇게 야하고 천박하지 않다고!

절대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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