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04화 (304/307)

〈 304화 〉 303화.

* * *

모든 계획은 순조로웠다.

아리아의 250만 구독자 달성 기념 라이브 티켓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언니의 충고에 따라 워커홀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송을 위해 시간을 쓰는게 아닌 개인 정비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된 탓인지, 개인 방송의 퀄리티는 이전에 비해 떨어졌지만 내 몸과 영혼이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소홀하게 했던 집안일에 집중하고, 옆집 윗집을 오가며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제빵을 한다거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등의 사교 활동(?)도 재개했다.

방송은 특별한 기획을 짜기 보다는, 선라이즈 팬들 대다수가 쉽게 보는 마인크래프트나 잡담 채팅을 바탕으로 ‘1인 기획자’같은 모습 보다는 ‘선라이즈 식 버튜버’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아리아는 획기적인 구독자 증가는 없었지만 아리아의 개인 굿즈와 후원채팅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마치 지중해 해변에서 우아하게 갓 만든 칵테일을 마시면서 느긋한 휴가를 보내는 일요일 아침만큼 우아하고 완벽한 일이었다.

“어이, 섹시골반 왔는가?”

“으흐흐, 이게 유나의 골반인거죠?

평소에 예쁘다~예쁘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그 가슴하고…”

나에게 생긴 ‘야한 구미호’라는 이미지만 빼면 말이다.

지금도 키가와 카가, 대낮부터 맥주를 깐 주당 듀오에게 놀림받고 있다.

“하아…”

선라이즈의 3D 아바타 혹은 방송용 아바타가 상당히 야한 모델들은 제법 있었다.

마치 유튜브의 심의규정을 아슬아슬하게 맞춘듯한 야한 아바타를 받은 이들은 대다수가 가슴이 일본 평균보다 큰 여성들이었다.

그 덕분에 성(?)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녀들의 ‘리미트가 풀린’ 토크 방송은 같은 여성으로서 듣고 있자면 귀가 뜨거워질 정도로 위험한 발언들이 많았다.

솔직히 야한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녀들의 솔직담백하다 못해… 그러니까 술 마시고 그곳의 털을 밀었다느니, 털 모양이 별 모양이었다느니, 가슴으로 과일을 으깼다느니 하는 발언들을 듣고 있자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야한 토크 달인들이 있는 선라이즈에서, 나는 그저 응애일 뿐이었다.

내 원래 모습을 마주보고는 야한 농담을 걸 생각도 하지 못하는 방구석 오타쿠 친구들은, 아리아의 아바타와 골반 무빙을 보고 아주 그냥…

어우…

“그거, 꼬리라니까요…”

“그거~꼬리라니까요~”

“아리아는~~죄가~~없어요~~몸이 엣치~~하게 태어난걸~~어쩌겠냐구요~~어쩌겠냐구요~~”

술에 잔뜩 취한 이 두 사람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내 말을 따라하며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두사람을 이어준것을 후회했다.

허리 아파서 거동 불편한 카가를 위해 친구를 붙여주었는데, 두 사람 이어준 은혜도 모르고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나오다니…

나는 빈 맥주 캔을 찌그러트리며 두 사람을 째려봤다.

“예쁜애가 그렇게 노려보니 부담스럽다 야, 안 그러니?”

“네 카가 언니! 제 친구가 이쁜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얼굴 빨개진 상태로 저희를 노려보는 게 아주…”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새로운 맥주캔을 딴 나는 ‘야한 몸을 가진 구미호, 그런데 야한 농담에 내성이 없는’ 이라는 오타쿠들이 환장할만한 설정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런 나를 보고 무어라 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술을 잔뜩 마셔 얼굴이 벌겋게 변한 나에 언니가 두 사람의 머리를 빈 쟁반으로 내려찍었다.

아니, 우리 집에 저런 쟁반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를 잠시

제대로 얻어맞은 두 사람은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비틀거렸다.

“너희 둘, 유나 놀리는 거 적당히 해.”

언니의 그 음성은 뭐랄까.

술을 마셔서 적당히 올라온 부드럽고 귀엽고 멜랑꼴릭한 톤이 아니라

가을임에도 스산함이 느껴지는 차가운 어조였다.

버튜버적으로 설명하자면 방송 3%의 확률로 나온다는 카리스마 유리아 모드

그러니까 언니가 정색빨고 진지하게 내뱉는 말에 두 사람은 휘청거리면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주정뱅이 두 사람을 수월히 조교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언니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흑흑, 역시 절 챙겨주는 건 언니밖에 없어요.”

“애초에, 유나를 이렇게 막 다룰 수 있는 건 나 뿐이거든? 그러니까, 방송중이면 모르겠는데 오프라인에서 유나에게 섹드립 치지 마.”

“...”

그러니까 날 놀릴 수 있는건 언니 뿐이라는 것이구나.

마치 나를 자기 소유물로 취급하는 듯한 언니의 당당한 발언에 나는 다른 의미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튼 두 사람 휴가 가는 동안 집 관리는 우리가 해줄테니, 술 그만 마시고 이제 방으로 올라 가.”

““넵!””

한 대 맞아서 그런지 묘하게 기합이 들어간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나갔다.

주정뱅이 둘을 무사히 퇴치한 언니는 능숙한 여관 주인처럼 술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무슨 상품 콜라보를 한다고 호로요이를 비롯한 낮은 도수의 술들을 샀기 때문에 네 사람이 마신것 치고 스무 캔이 넘게 나왔다.

“흑흑, 일본 여자들 무서워요.”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언니도 일본 여자인데?”

“언니는 그… 언니니깐요.”

“흐응,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암컷 무빙이야?”

언니도 선라이즈 버튜버답게 술을 마시면 리미터가 날라가는구나.

예전엔 절제했는데, 요즘은 안 그런단 말이지.

묘하게 나를 도발적으로 바라보는 언니의 눈매가 참 야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평범하게 술을 마신 언니의 텐션은 평소보다 높았다.

하긴, 언니가 내성적이었던 과거 시기에도 술을 마시면 속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시긴 했지.

아무튼 두 주정뱅이가 떠난 후 나는 세상 모든것을 다 꼬실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언니의 투정을 들으며,3D 라이브의 소박한 피로연을 마쳤다.

*****

아무튼 날이 밝아 월요일 아침

나와 언니는 멍한 눈길로 일본의 모든 그림들이 올라온다고 하는 픽시브를 확인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리아의 R­18 태그 급상승 1위…”

“남성향 여성향 1위 팬아트가 아리아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해야할까…”

“움직이는 그림 영역에서도 1위네… 유나가… 아니 아리아가 이런 야한 옷을 입고 으음…”

“언니,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선라이즈 최고 색기 포지션은 마녀 선배님이었는데, 이제 밀려난 것 같네.

역시 우리 유나야, 내가 선택한 여자 다워.”

“그런 소년만화 같은 대사 그만하시라구요!!

꼬리… 꼬리라구요! 이 폭실폭실한 꼬리의 무빙이라구요!

그리고 3D 일러스트 도안 그거 뭔가요? 검은색 전신 타이즈로 발과 상체를 모두 감싼다구요?

점잖은 제 3D 일러스트 복장에 그런 야한 디자인이 있었다구요?

이건 억지잖아요 억지!”

“음, 3D 일러스트 도안은 샤니 선생님이 담당했으니까, 따지려면 샤니 선생님에게 따져야하지 않을까?”

“아악! 그 여자 도대체 나를 얼마나 음탕한 여자로 보고 있는거냐구요!!”

내 분신이 일본 픽시브 야한 그림 랭킹 분야 1위를 싸그리 먹는다니, 정말이지 아침 대화로는 적절하지 못한 주제였다.

오타쿠가 된 이후 야한 그림을 보아도 멀쩡해진 나였지만, 최근 들어서 하도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선라이즈 최고 타격감 랭킹에 아리아가 올라올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저, 정말 아니거거거드든요! 카리스마 구미호인데요? 게임도 잘 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방송도 잘 하는 신세대 버튜얼 아이돌 유튜버인데요!!”

“그래, 그 카리스마 밈, 나에게도 있지.

하지만 유나야, 결국 인기를 끄는건 야한 일러스트야.

이 R­18이 달려있는 아리아의 일러스트와 그러지 않은 아리아의 일러스트의 좋아요 차이가 보이지?”

“...”

완패

문자 그대로 완패였다.

나에게 붙은 이 음탕한 밈은 도대체 언제 사라지는가?

이 고급 바디(3D 아바타)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두렵다!

이것이 바로 신의 견제란 말인가!

“그런데 유나는 왜 그렇게 정숙함에 집착하는 거야?”

“그거야, 저는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 온 유교 걸이니까요!”

“...아, 그래?”

만화처럼 눈을 일자로 만든 언니는 나를 살짝 흘겨보며 그런 반응을 보였다.

언니의 그런 반응에 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아니, 세상에 나처럼 유교관념 엄격한 현 시대의 진정한 규수가 어디있단 말인가.

“그 툭만하면 다리 노출하는 패션은?”

“그건 당당한 아름다움이잖아요. 유나라는 인간은 이렇게까지 스스로의 몸을 갈고 닦았다.

마치 헬창들이 근육을 자랑하는 그런 거라구요.”

“가끔 입는 등이 파인 복장도?”

“물론이죠!”

“그리고 툭만하면 언니 쓰다듬고 껴안고 멋대로 만지는 건?”

“언니를 사랑하니까 그 정도야 OK!”

“음… 그런 반응은 고마운데… 그러면 운동한다면서 다른 여자 애들 몸 만지작 거리는 건?”

“성애적인 의미가 없으니 괜찮죠.”

“그…그래.”

진저리나는 듯 고개를 흔드는 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언니가 내 변명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결국 언니도 일본의 여자란 말인가.

나처럼 이렇게 순수하고 청초한 여자를 그렇게 음탕한 여자로 바라본단 말인가.

세상이 미웠다.

그렇게 아침부터 멘탈이 깨져서 투덜거리고 있자니, 컴퓨터를 계속 만지던 언니가 나에게 트윗 하나를 공유했다.

[아리아의 3D 디자인을 맡은 샤니의 아리아 야짤 콜렉션]

어젯밤 술을 마시느라 확인하지 못했던 트위터 인기글이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아리아의 야짤을 보고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샤니, 너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리고 만다.

대식가 그림 작가님에게 헬스의 세계를 반드시 보여주고 말 것이다.

그런 다짐을 하며, 나는 ‘아리아의 에로한 바디’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샤니는 물론이고 내 동료 버튜버의 모든 트윗내용을 캡쳐하며 생사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짜

다들 미워

밉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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