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열병
예쁜 게 좋았다. 떡도 보기 좋은 떡이 맛있다고 이왕이면 모양이 예쁜 게 최고였다. 떡과 케이크도 모양 예쁜 게 잘 팔릴진대 사람이면 어떻겠나. 그래서 연조는 예쁜 친구들이 많았다. 못생긴 친구가 싫은 건 아니었다. 그냥 예쁘게 생긴 애들한테 자꾸 말을 걸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예뻐졌는지 묻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있고 싶었다. 그 애들이 머리를 높이 묶은 모습이 예뻤고 주름 많은 치마를 입고 걷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런 애들이 연조를 좋아해 주는 게 좋았다. 다행히도 연조는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다. 수줍음이 많기는 했지만 또래보다 조숙한 편이어서 연조는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친구가 많았다.
때때로 연조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어도 연조는 그 애와 금방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지 않는다 해도 마주했을 때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은 없었다. 정리하자면 연조는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활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천성이 다정하고 상냥한 덕에 누구와든 잘 어울렸다.
그런 연조를 싫어하는 애는 한기조밖에 없었다. 한기조로 말하자면, 그 애로 말하자면 그 애는, 한기조는……. 좀 미친 애였다. 한기조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늘 분에 차 골이 나 있거나 그게 아니면 표정이 없었다. 저 혼자 창백하게 굳어 상대를 노려보지 않으면 무감각한 얼굴로 창을 더듬었다. 그 애의 담임도, 그 애의 조모도 그 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왜 온종일 골을 내고 있는지 골을 내지 않으면 왜 무표정한지.
물론 연조도 알 수 없었다. 그녀도 그게 궁금했다. 가끔은 다가가 물어보고 싶은데 그 애가 전학 오기 전 저보다 두 살이나 많은 고등학생을 두들겨 패 입원을 시켰다고 해서 물어보기 무서웠다. 들은 바로는 한쪽 눈이 실명했다고 했는데 정말인지. 정말이라면 왜 그런 일을 한 건지. 왜 그렇게 그 오빠를 싫어했던 건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을 수도 없고 가까이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 애를 알고도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특하게도 한기조는 반년 동안 어떤 소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작은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고 살았다. 꼭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 살았다. 그래서 연조는 가끔 그 애가 그림자 같다고 생각했다.
교실 한구석에 눌어붙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렇게 점점 괴리되어 사는 것 같았다. 차라리 예전 학교에서처럼 바람 잘 날 없이 소란을 일으키는 게 낫지 않을까. 적어도 그게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그 애는 과묵했다. 반듯하고 멀끔한 얼굴과는 달리 늘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인상을 썼다. 꼭 세상의 모든 것을 눌러 참는 것처럼…….
그런 그를 두고 여자애들은 자주 수군거렸다. 조가비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어도 그림이 되는 얼굴이니 당연했다. 그를 떠도는 소문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고 을씨년스러웠지만 적어도 교실 구석에서 창을 더듬는 한기조의 얼굴은 밀랍을 조각한 인형이었다. 반면 소문에 지레 겁을 먹은 남자애들이 말을 거는 일도 없이 흘깃거렸다. 무슨 얘기든 다들 듣고 기피 대상으로 삼은 것 같았다.
‘들었지? 전에 있던 학교에서 담임 고막 터트린 애래. 선일 중학교 학주였다는데. 아는 척하면 안 돼. 알았어?’
이런 얘기일 것이다. 이런 얘기라면 연조 또한 들은 바 있었다. 담임 선생을, 저보다 체구가 20cm나 차이 나는 어른의 이마를 깨고 고막을 터트렸다고 했다. 관자놀이가 피투성이가 된 선생은 아직도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과장된 이야기일 것이다. 과장되어야 마땅한 일이기도 했다. 소문이 그토록 제각기 다른데 원형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연조는 교무실에서 흘러나오던 말소리를 기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담임이 악의적인 소문만 짜깁기하여 그를 낙오시키고자 하던 것 말이다.
다들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타나면 쉬쉬했고 사라지면 험담을 늘어놓았다. 간혹 그를 처음 본 여자애들이 달아오른 눈길을 주긴 했지만, 예의 그 어줍은 험담을 듣고 나면 눈길을 거둔 뒤 관심이 없었던 척을 했다. 그를 두고 아이들이 하는 말들은 비슷했다. ‘고막을 터트린 것이 아니라 눈알을 터트렸다고 했어.’ ‘ 그게 아니라 커터 칼로 손가락을 자른 거야.’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정말이라면 학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애가 그런 일을 저지르기에는……. 너무 연약해 보였다.
“안녕. 우산 같이 쓰고 갈래?”
연조는 노란 우산을 빙글 돌렸다. 입이 찢어져라 어색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 애는 웃지 않았다. 연조는 비가 오는 운동장을 흘깃거렸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을 때만 해도 가랑비가 운동장을 적시고 있었는데 학교가 끝마칠 즘에는 학교가 다 잠길 정도로 굵은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려?”
한 번 더 물었다. 한기조는 입가에 상처를 매달고 있었다. 푸른 멍과 붉은 생채기가 꽃무덤처럼 그 애의 입가에 피어 있었다. 연조는 그녀도 모르게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아프지도 않은지 그저 하얀 얼굴이었다.
“너 귀 안 들려?”
장난치듯 다시 물었다. 반응이 없었다. 당장 기분 나쁜 건 아니지만 이제 곧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다. 그녀는 상처를 주렁주렁 매단 남자애의 얼굴을 살폈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남자애치고 작달막한 키에 거무죽죽한 얼굴을 한 남자애들과 달리 그 애는 안경도 쓰지 않고 거무죽죽하지도 않았다.
“야.”
겁도 없이 야라고 했다. 말없이 비 오는 밖을 쳐다보고 있는 한기조의 팔을 툭 건드렸다. 시선이 돌아왔다. 서느런 눈이었다. 어제 무슨 일인지 저 혼자 씩씩대며 숨을 고르고 있기에 오늘도 그럴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같이 쓰고 가자고. 데려다줄게.”
연조가 다시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소년의 시선이 기울어졌다. 달뜨고 앳된 눈이다. 날카롭고 형형한 눈매와 달리.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기껏해야 저와 같은 열여섯, 남자애였으니까. 붉은 멍이 얼룩덜룩한 흰 얼굴에 스산한 푸른빛이 비쳤다. 뚜한 시선이 닿았다가 멀어졌다.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폭우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연조는 다소 멍한 눈으로 그 애의 바짓단이 젖는 것을 응시했다. 색이 빠진 바지에 흙탕물이 튀었다.
“야! 혼자 가면 어떡해?”
뛰어가 붙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몸이 먼저 나갔다. 연조는 헐떡이며 그를 따라잡았다. 한기조는 이미 교문을 지나고 있었다. 무시하고 싶은데 무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기조’ 같은 것을 보면 말이다. 병적인 일이었다. 혀 짧은소리를 내며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도 노점상이 길가에서 파는 병아리를 모두 사고 싶다고 울던 아이였다. 여타 또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귀엽기는커녕 알록달록한 염색약을 뒤집어쓴 병아리가 아파 보였으니까.
제 신변도 책임지지 못하는 어린 아이인 주제에,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꼬마가 그토록 집요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한기조에게 끌리는 건 당연하다. 연조는 스스로를 그렇게 변명했다.
“나, 너희 집 알아. 너, 너 할머니랑 같이 살잖아? 그렇지? 저기, 저 은화아파트 뒤에…….”
돌연 걸음이 멈췄다. 이제 돌아봐 주려나 싶을 찰나 연조는 엉덩방아를 찍었다. 노란 우산이 진흙탕이 되어버린 운동장에 나동그라졌다. 소년의 바짓단을 적시던 누런 흙탕물이 그녀의 교복 치마를 물들이고 있었다. 가슴팍에 닿았던 손을 생각했다. 거칠고 무정한 손길이었다. 연조는 자신을 매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멍하니 응시했다. 내리 찌르는 눈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둘은 한참이나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먹구름이 게워내는 비가 연조를 흐렸다. 그녀는 소년이 딱딱한 얼굴로 돌아서는 것을 쳐다보다 시선을 내리깔았다. 저 눈으로 담임의 고막을 터트린 것일까. 그래서 이리로 쫓겨나듯 온 걸까.
벌렸던 입이 다물어졌다. 입안으로 스며든 비가 텁텁했다. 자리서 일어나 우산을 집어 들었다. 훌쩍임이 나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