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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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집애’는 은화아파트 단지 내 운영되는 미술학원 원장의 큰딸이라고 했다. 기조는 학교에서 한 무더기 여자애들과 화장실을 가는 그녀를 종종 발견했다. 계집애는 그때마다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저 때문에 타박을 들은 뒤 또 죽도록 맞은 그의 사정은 알지 못한 채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거뭇한 얼굴에 긴 생머리, 까만 바둑알 같은 눈동자가 감람 열매를 떠올리게 했다. 인사를 걸 때마다 그는 고른 치아와 선홍빛 손톱 따위에 눈길을 주었다. 쉬는 시간마다 사물함 뒤에서 멍청한 놀이에 열을 올리는 놈들이 이 계집애더러 까만 오랑우탄이라며 히죽거렸다. 살갗이 남들보다 어두워 동물원 철창 속의 고릴라 같다며 조롱하던 기억이 났다. 그때마다 눈앞의 계집애가 발간 얼굴로 씩씩대며 주먹을 그러쥐던 일도…….

털 달린 짐승을 닮았다며 이죽거리는 게 곧 죽어도 넘길 수 없었는지 한번 그런 일을 당하면 그녀는 종일 앓는 얼굴로 제 자리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한기조는 제 친구들을 뒤에 두고 다가와 아는 체를 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랑우탄은 생각나지 않았다. 동물원 속 냄새나는 짐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는 체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연신 웃으며 제 주변을 배회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저러다 말겠지. 관심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식어버린다. 그게 또래들의 생리였다. 그러나…….

“너 얼굴 아픈 거 같아? 맞았어? 누구한테?”

어느 날인가였다. 소리 없이 다가온 계집애가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아한 얼굴이었다. 염려로 가득한 눈이 크고 둥글었다. 기조는 그 낯이 가증스러워서 제 뺨에 손을 대려는 걸 거칠게 뿌리쳤다. 노인에게 맞은 것을 생색내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다시 마주한 검은 눈이 가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그렇게 걱정하면서, 제 모친에게 일러바쳤다고 생각하니 아주 작고 사소한 행동마저 가증스러웠다.

조심스레 건너오던 손이 허공에 떨어졌다. 일그러짐 없는 소녀의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돌아갈 줄 알았는데 계집애는 할 말이 있는지 쭈뼛거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기조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연고와 반창고였다. 목이 탔다. 그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차 없이 쳐냈다.

연고와 반창고가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계집애의 눈가에 눈물이 일렁거렸다. 속이 시원했다. 가슴 한편에 찌릿하게 타고 오르는 것은 쾌감이었다. 기조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손에 들린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작은 얼굴이 못내 일그러졌다. 그녀가 작게 읊조렸다.

“이거, 이거 여기 두고 갈게. 너 얼굴 흉 질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어릴 때 생긴 상처는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어. 안 그럼 흉 진다고……. 넌 얼굴도 예쁜데……. 아, 아니. 미안 이제 말 안 할게. 안녕.”

계집애가 뒤를 돌았다. 연고와 반창고를 제 책상에 올려둔 뒤였다. 그는 분을 꾹꾹 눌러 참은 뒤 그녀가 교실 문을 나서기도 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을 본 계집애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곁에 선 친구들이 ‘연조야 괜찮아?’ 하고 달래주었다. 그러나 결국 울음이 터졌다. 기조는 짜증이나 발에 치이는 걸상 따위를 발로 찼다. 그렇다고 젖은 얼굴이 잊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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