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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조가 하는 학교생활은 생활이라기보다 고난에 가까웠다. 역경과 시련이, 하루를 건너 다시 하루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연조는 얼마 전 이유 모를 모종의 이유로 생채기 난 얼굴을 흘깃거렸다.
한기조는 늘 멍을 달고 살았으므로 별일도 아니었으나 연조는 별일 아닌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 하얗고 예쁜 얼굴이 상흔으로 뒤덮일 때마다 속이 졸아들었다. 아무 상관 없는 애인데. 심지어 그 애는 저를 넌더리를 내며 지겨워하는데. 누군가 이유를 캐묻자면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 볼 때부터 마음이 갔다. 불미스러운 이유로 전학을 와 교실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송연조는 한기조가 좋았다. 좋아서 자꾸 말을 걸고 싶었다. 좋아하는 걸까? 그러니까, 이성으로, 이성으로 좋아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송연조는 원래 한기조 같은 애를 좋아한다. 좋아하다 못해 잊지 못한다.
“나 가방 좀 가지고 올게.”
청소를 끝내고 학원으로 가기 위해서 계단을 올랐다. 친구는 1층 복도에서 기다리겠다며 대꾸했다. 연조는 빠르게 계단을 통과했다. 오늘 기조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인불명의 이유로 그 애는 종종 학교를 빠지곤 했다. 불량스러운 애들이 모두 그렇듯 가끔 있는 일을 가지고 담임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연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기조?”
이유를 알지 못하는데 다시 한기조를 만났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미움을 받고 알지 못하는 이유로 무시당했는데 한기조를 만나고 만 것이다. 연고와 반창고가 바닥에 나뒹군 이후 나흘만이었다. 그날 이후 연조는 더는 그에게 시선을 줄 수 없었다. 우연이라도 시선이 얽히게 되면 발밑이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 왜…….”
“꺼져.”
컴컴한 음성이었다. 낮고 침침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연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먹을 쥔 소년을 빤히 바라보았다. 낯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새로운 멍이 자리 잡은 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멍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치스러움에 피부가 물든 것이었다. 연조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구린내가 나는 것을 알아챘다.
구린내. 구린내……. 오늘 기조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으레 그렇듯 학교가 아닌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여럿이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기조가 눈을 번득이며 으르렁댔다. 그러나 연조는 주춤거리는 기색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움칠거리며 물러났다.
“기다려.”
사물함에서 체육복과 카디건을 꺼냈다. 일주일 전, 날이 갑자기 서늘해졌다며 아빠가 입혀 준 덧옷이었다. 입고 벗기가 불편해 사물함 한구석에 박아 놓은 것이 이제야 기억났다. 연조는 카디건을 꺼내 무작정 기조의 머리 위에 덮어씌웠다. 저항은 없었다. 그저 손끝을 잘게 떨 뿐이었다.
연조는 그 손끝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젖은 손등이 축축했다. 소년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고양이처럼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손가락이라도 닿을라치면 입술을 깨물며 흰 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잘게 떨리는 손을 움켜잡고 교실 앞문을 열었다. 우르르 지나가는 남학생 무리를 피해 학교 뒷문까지.
제가 구정물을 맞은 것도 아닐 텐데 괜히 들키면 큰일 날 것처럼 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학교에서 엄마의 미술학원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남짓.
후문을 이용해 미술학원까지 당도한다 해도 골목골목마다 튀어나오는 사람을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연조는 숨을 고르며 옆을 흘깃거렸다. 한기조는 순한 양처럼 제 손을 잡고 따라오는 중이었다. 미지근한 체온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부드러이 감았다. 괜스레 가슴 한편에 이상야릇한 감각이 번졌다.
간신히 학원에 도착한 연조는 곧바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토요일이라 학원은 텅 빈 상태였다. 그녀는 연분홍색 카디건을 뒤집어쓴 채 유령처럼 선 소년을 바라보다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조금 뒤 카디건을 벗겨주었다.
“화장실은 저쪽이야. 샤워도 할 수 있어. 샴푸 있으니까…….”
핏줄이 터져 뭉친 눈이 그녀를 향했다. 웃음이 남아 옅게 진동하던 연조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흰 얼굴은 입술과 눈가가 잔뜩 터져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연조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형편없이 말라붙은 핏자국과 얼룩덜룩한 피부 위로 구정물의 잔해가 남아 떠도는 모습이 다리를 후들거리게 했다.
정말 고등학생들이 그랬을까? 하지만 기조는 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주말이라 더러 학교에 빠지는 애들이 있어 그의 빈자리 역시 티 나지 않았다. 연조는 손가락을 말았다가 피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를 가만히 보았다.
기조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울음을 터트리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이 정도로 성한 데 없이 맞으면 울음이 아니라 대성통곡을 하며 코를 훌쩍일 것 같은데 그는 무덤덤했다. 아니, 무덤덤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크릴 물감 따위가 묻어 변색된 바닥을 내려다보다 손을 들어 욕실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가 화장실이야. 머리도 감을 수 있고 몸도 씻을 수 있어. 옷은 그냥 우리 아빠 옷 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