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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끄트머리에서 학교는 급식소 시공을 시작했다. 긴 공사는 아니었다. 3주가량 진행되는 개별 도시락 지참에 학부모들은 별달리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조의 엄마는 조금 달랐다. 하나도 버거운데 둘은 어떻게 싸냐며 종일 불퉁했다. 시종일관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이었다. 아마 은조의 도시락만 쌀 수 있다면 불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조는 학급 통신문을 받아든 채 내내 구시렁거리는 엄마를 보며 ‘내 건 내가 쌀게.’ 하고 말했다. 그제야 엄마가 입을 다물었다. 연조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차별. 그러니까 엄마가 애정의 불평등을 드러낼 때는 본인이 버거워졌을 때다. 기분이 좋을 때, 혹은 컨디션이 나쁘지 않을 때는 퍽 균일해 보이지만. 애정의 함량이라고 해야 할까. 차별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때리거나 폭언을 쏟아붓는 건 아니니까. 만약 연조가 ‘엄마는 왜 은조와 나를 차별해?’ 하고 말한다면 ‘엄마가 너희를 차별한다고?’ 하는 말을 엄마에게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연조는 느낄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아차린 일이기도 했다.
언젠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은 친척이 그랬다. ‘은조는 딱 엄마 닮았네.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 연조는 몰라도 은조 너는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해. 알겠니? 언니처럼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되잖아.’ 시답지 않은 장난이었다. 연조가 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만큼 어릴 때였다.
아주 어렸을 때지만 기분이 나빴다. 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착한 애가 되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곁에 있던 엄마가 대신 화를 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연조 대신 역정을 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말이 연조를 상처 입힌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날 울었잖아. 나를 덩그러니 앞에 두고 은조와 비교했잖아. 뭉개고, 짓누르고……. 엄마마저 아무것도 아닌 양……. 그러니까, 그러니까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은조와는 결이 다른걸. 같은 딸이라도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그렇지만 연조에게도 때때로 참을 수 있는 한계란 게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연조를 달래는 대신 혼을 냈다. ‘어른이 장난치는데 울 게 뭐 있니?’ 그런 말이었다. 고작 장난에 불과한데.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친근하게 구는 것일 뿐인데. 은조가 예쁜 건 사실이니까. 둘이 닮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은조만 엄마를 닮은 것 또한 사실이라서. 엄마는 연조에게 은조가 가지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게 예쁜 얼굴이 아닐 뿐이지. 그러니 엄마는 차별을 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연조가 나쁜 것이다. 연조가 처음부터 잘못된 아이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좋은 것을 좋게 받아주지 못한 연조가 나쁜 거였다. 그러니 엄마는, 엄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느꼈다. 은조가 같은 방식으로 놀림을 받았을 때 엄마는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으리란 것을. 엄마는 연조를 좋아하지만 은조를 더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연조와 은조의 교복을 같이 세탁하지만 반듯하게 다려주는 건 은조에게만 베풀어지는 사랑이다. 자매의 밥그릇은 똑같지만 귀여운 캐릭터 도시락통은 은조에게만 사준 것이다. 은조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저녁이면 반찬은 부실하다. 하지만 연조는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오지 않아도 혼자서 밥을 차려야 한다.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다. 그러니 미움이 아니라 애정의 함량이 다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연조는 엄마의 차별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싼 도시락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컵라면을 사 온 나래가 뒷자리에서 목을 길게 빼며 물었다.
“연조야. 이 통 뭐야?”
“으응?”
연조는 어색하게 되물었다. 나래가 동그란 눈으로 답을 기다렸다.
“과일.”
“정말? 무슨 과일 싸 왔는데? 와 맛있겠다. 나 어제도 학원에서 컵라면 먹어서 질리는데……. 과일 뭐 싸 온 거야?”
“응? 수박이랑 참외.”
대충 얼버무리고 기조를 흘깃거렸다. 나래는 제게서 시선이 떠난 친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풀리지 않은 도시락통만 보고 있었다.
“이따가 나눠 먹자. 지윤이 손 씻고 오면 책상 붙여서…….”
“진짜? 그래도 돼?”
나래가 연달아 되물었다. 연조는 창을 바라보는 기조를 응시했다.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 왔을까? 왠지 사 왔을 거 같진 않았다. 종종 편의점에서 뭔갈 사 오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모를까.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급식소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걱정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가방을 안고 뭔갈 꺼내는 척 야무지게 묶은 도시락 천을 만지작거렸다.
나래가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연조는 떠들썩한 교실을 휙 훑은 뒤 일어나 가방에 있는 도시락을 하나 더 꺼내 기조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떠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봤을까 하는 마음보다 그가 예전처럼 도시락을 버릴까 봐 두려웠다.
미술학원에 왔다 간 이후 기조는 전처럼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다. 인사를 받아주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선을 회피하진 않았다. 가끔 복도에서 단둘이 마주쳤을 때는 제가 묻는 말에도 대답해 줬다. 병원에 갔느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 것뿐이었지만. 그러나 연조는 그마저도 괄목할 만한 발전이라고 믿었다.
‘먹어.’
도시락을 받은 기조가 연조를 응시했다. 그녀는 볼을 붉히며 입 모양으로 작게 달싹거렸다. 또 버리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자신이 없었다. 배를 곯을까 걱정돼 하나 더 준비했다. 기조가 아니었으면 그냥 집에 있는 반찬만 주워 담는 건데, 나물 반찬만 집어넣기 그래서 전날 저녁 장까지 봐와 제육볶음을 준비했다. 그 고생을 한기조가 알까. 전전긍긍하며 그를 계속 곁눈질했다. 다행히도 쓰레기통에 버리진 않았다. 먹을 건가? 응? 그냥 먹지. 제발 먹어줘. 맷집도 밥을 먹어야 늘어.
“연조야. 이리로 와.”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화장실을 갔다 온 나래가 손짓했다. 넋을 빼고 기조만 생각하던 연조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래를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책상이 모인 상태였다.
“한기조 쟤한테 할 말 있어?”
화장실에 다녀와 맞은편에 앉은 지윤이 의아한 듯 물었다. 연조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나 아까 오면서 네가 쟤한테 도시락 가져다주는 거 봤어.”
“뭐, 뭐? 언제?”
연조가 발개진 얼굴로 되묻자 지윤의 눈이 뾰족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변한 분위기가 얼음장 같았다. 연조는 혹시나 제가 되물은 말이 날카로워 보였을까 염려하며 주먹을 꼭 쥐었다. 지윤은 평소에도 다른 친구들보다 기조에게 관심이 많던 아이였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관심이 아닌 시선이 마주치면 낯을 붉히는 관심……. 어쩌면 연조와 같을지도 모른다.
곁에 앉아있던 나래가 수상한 기운을 눈치채고 ‘증거 있어?’ 하고 물었다. 앙칼스러운 어조였다. 연조는 멍하니 달아오른 낯으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문득 여자애들 사이를 지나가던 짓궂은 남자애 하나가 그들 사이를 끼어들었다.
“나도 아까 봤어. 송연조가 한기조한테 도시락 주고 가던 거.”
“…….”
“둘이 사귀나 봐.”
툭 하고 던지는 말이 짓궂었다. 연조는 고개를 들어 그를 노려보았다.
“정말?”
나래가 놀란 듯 소리쳤다. 가쁜 숨을 쉬던 연조는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기조에게 자주 아는체한 것. 평소 그를 자주 바라보던 것. 심지어 도시락을 챙겨 준 것까지 모두 들키자 또래 무리 사이에서 연조의 위치는 급격히 변했다. 정확히는 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지금부터는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꼴같잖은 변명으로 들릴 것이다. 연조는 씩씩대며 기조를 흘긋거리다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눈이 따끔거리며 물기가 비죽 치솟았다. 껄렁한 남자애들 몇이 몰려가 그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뺨이 벌벌 떨리며 손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야, 너 쟤랑 사귀지?”
“…….”
“야, 쟤 귀 장애 있어. 나 선일고에 아는 형 있는데 쟤, 누구더라. 김형일이었나? 아무튼 그 고등학생 형한테 맞아서 한쪽 귀 안 들린대.”
“뭐? 김형일? 얘가? 그럼 그 형님이랑 얘가 맞짱 뜬 거야?”
오고 가는 대화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연조는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인 기조를 보다 입술을 떨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자애들은 그랬다. 조금 모자라거나 혹은 왜소하거나, 산만한 또래를 상대로 서열 질을 했다. 연조 또한 그를 알고 있었다. 공공연한 괄시와 비웃음. 맹목적인 멸시와 하대 같은 것들이 기승을 부리는 학교의 생태를……. 숨이 막혔다. 이 시간 이후로 다시 기조가 저를 무시할까 봐 무서웠다. 그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 아니 사건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에게 베푼 친절을 부정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이게 쟤가 싸 준 거야? 반찬 완전 똑같은데?”
“와. 진짜네. 야, 송 오랑우탄하고 진짜 사귀…… 으악!”
낡은 목재로 이루어진 바닥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묵직한 소음에 사위가 얼어붙었다. 지윤의 매운 눈초리를 감당하고 있던 연조가 고개를 들었다. 둥글게 뭉쳐있던 무리의 한쪽 축이 무너져 있었다. 숨 막히는 기운이 교실 전체를 메웠다. 몰려있던 남자아이들이 걸음을 물렸다.
“다시 말해봐.”
감 때 사나운 기세였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수군거림도 멈췄다.
“으, 으흐……. 뭘, 내, 내가 뭘…….”
“현영훈.”
반쯤 매다 꽂혔던 아이가 덜덜 떨며 대꾸했다. 한기조는 그의 이름을 낮게 뇌까렸다.
“송 오, 오랑…….”
코가 깨진 아이가 홀린 듯 입술을 움직였다. 바닥을 짚은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눈이 흩뿌려진 목조 바닥에 닿았다. 그가 데워진 눈가를 문지르며 입을 달싹였다. 누런 이에 핏물이 고였다. 손등으로 코밑을 닦던 그의 머리에 의자가 내리꽂혔다.
“아악!”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앞면을 작살내기라도 할 듯 무자비한 폭력이 이어졌다. 중안부가 찍힌 현영훈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한기조는 평평한 바닥을 내리찍는 듯 거침이 없었다. 웅크린 채 바닥을 뒹구는 현영훈을 본 두세 명의 아이들이 달려들었으나 빠른 시간 안에 떨어져 나갔다. 마르기만 한 손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완력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긴 하지만 체격이 다부진 건 아니었다.
“살, 살려줘…… 흐윽.”
의자를 종잇조각처럼 집어 던진 그가 늘어진 몸을 질질 끌었다. 치아가 부러진 현영훈이 발발 떨며 빌었다. 한기조는 정말로 귀머거리라도 된 양 무감한 얼굴로 그를 벽에 꽂았다. 밀쳐진 현영훈이 오줌을 지렸다. 뜨끈한 물줄기가 바짓단을 적시고 지린내가 교실 안을 메웠다. 이윽고 뺨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철퍽, 철퍽…….
일방적인 폭력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반에서 깨나 힘 좀 쓴다는 남자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리려 드는 몇 녀석이 주먹질 몇 번에 날아가자 더는 달라붙지 못했다. 아니, 붙을 수가 없었다. 의자에 찍혀 중안부가 내려앉고 싶진 않을 테니까.
“으, 흣, 흐윽…….”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인 연조가 입술을 달싹였다. 현영훈의 거무튀튀한 얼굴은 피로 젖어있었다. 턱이 덜덜 떨렸다. 제게 가해진 폭력이 아닌데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얻어맞은 듯 살갗이 아려왔다.
“연조야.”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뒤를 돌았다. 나래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연조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완전히 뺨이 돌아간 현영훈이 축 늘어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연조는 어렵게 입술을 뗐다.
“기조야.”
현영훈을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를 보아왔지만 정은커녕 미운 정도 들지 않았다. 유인원이라고 했다. 거무죽죽한 피부가 유인원 같다고. 교실에서, 복도에서 매일매일 이죽거렸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현영훈 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아무리 미백크림을 발라도 하얘지지 않는데.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놀렸다. 친구들과 걷고 있으면 제일 못생겼다고 뒤에서 이죽거렸고 혼자 있으면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며 희롱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도 좋아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그래도 말려야 했다.
“기조야.”
반응하지 않았다. 연조는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기조야.”
듣고 있지 않았다. 듣기를 거부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지 마. 그러지 마. 기조야…….”
주먹이 멈추었다. 허공에 붕 뜬 그의 손이 엷게, 아주 엷게 흔들렸다. 핏물이 묻은 손등에 파동처럼 미약한 기운이 번졌다. 연조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느낄 수 있었다.
타격을 가하던 손이 제자리를 찾았다. 멱을 쥐고 있던 그가 손을 놓고 뒤를 돌았다. 뒤늦게 담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상황을 살폈다. 기조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그를 지나갔다. 연조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맥이 풀렸다. 담임의 눈길이 기조의 등을 떠나 제게 닿았다. 연조는 입술을 말아 문 채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