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1/46)

* * *

“에드거 앨런 포.”

서점의 공기는 아늑했다. 미장이 잘된 외관과 단색으로 마감한 벽면에서 오는 단조로운 분위기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연조는 포의 단편선을 읽고 있었다. 저자의 이름을 읊조리는 음성이 활자 속을 헤엄치고 있던 그녀를 깨웠다.

“좋아해요?”

“……네?”

“포의 책만 읽고 있어서요. 그러니까…… 몇 주째요.”

놀란 눈을 하고 경계할 때였다. 남자는 괜한 것을 질문했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연조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자가 짓는 순한 눈웃음에 책을 덮었다. 독서를 방해했다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저도, 저도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합니다.”

“아…….”

“감각적인 작가예요. 추리소설의 포문을 열었다는 평과 별개로…….”

더듬거리며 늘어놓는 이야기가 두서없었다.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빌미로 말을 걸려고 했는지 어느새 그것을 잊은 남자가 연조를 빤히 바라보았다. 붉어진 콧잔등과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균열이 이는 것처럼. 천천히……. 연조 또한 말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이토록 오래 얽혀있는데도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일주일 뒤 다시 그가 말을 걸어왔을 때 피하지 않았다. 한 달째 에드거 앨런 포의 책만 사들이는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말을 거는 횟수가 잦아지고 길이가 길어질수록 남자의 콧잔등을 장식한 붉기가 진해졌다. 연조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호감의 표시일지도 모른다고. 남자가 여자에게 호감을 드러낼 때. ‘당신과 교제하고 싶습니다.’라는 생각을 드러낼 때. 신호등처럼 불을 켜는 것일 거라고.

그리고 연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남자를 떠올렸다. 남자라면 한기조. 이제는 강씨가 된 한기조 밖에 모르므로 몹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알고 있는 남자의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협소한 연조의 인간관계에 수영은 유일무이하게 먼저 호감을 드러내 준 사람이었다.

애달픈 일이라면 애달픈 일이었다. 한기조도 정나래도 모두 연조가 먼저 호감을 드러내며 다가간 사람이었다. 그녀가 유지하는 얄팍한 관계의 당사자들 또한 모두 연조가 노력해서 유지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수영은 특별했다.

연조가 노력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서지 않아도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들려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으로서도 유일한데 그런 ‘남자’로서도 유일했다. 어쩌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였다.

수영을 만난 지 보름을 조금 넘겼을 무렵. 연조는 우발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부딪혀 오는 수영을 밀어내지 않았다. 난삽한 여자관계를 지속하던 기조가 넌더리가 날 때였다. 더는 잠식되고 싶지 않아서 회사를 나오고 싶었지만 남자는 미친개처럼 물고 놓지 않았다.

비슷한 식으로 반복되는 모욕도 지겨웠다. 그녀는 다음날 점심을 약속하는 남자를 쳐다보며 전날 밤 제 앞에서 가운만 입은 여자를 안고 서류를 받아들던 남자를 떠올렸다. 열기로 데워지는 낯과 달리 피는 식다 못해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우그러드는 연조의 발간 얼굴을 면밀하게 살피는 눈동자가 징그러웠다. 그녀는 뒤돌아서는 순간까지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저기. 그래서 말인데……. 영화, 영화 좋아, 아니 영화 보실래요?”

“……어떤 영화요?”

“이번에 개봉한 건데 송은아 나오는 거요. 추리물인데 좋아하실 거 같아서…….”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추리소설은 좋아하지만 추리가 가미된 장르의 영화는 피하는 편이었다. 화면이 전하는 압박감은 활자가 전하는 압박감과 미묘하게 달라서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조는 거절하지 않았다. 다른 영화를 보면 안 되냐고 다시 제안하지도 않을 작정이었다.

수영은 저와 크게 다른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연조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그녀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 대번에 알고는 했다. 연조는 수영이 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내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기조에게 도시락을 내밀 때 그랬으니까. 거절할까 두려웠고 거절에 대한 상처로 잠식될까 두려웠었다. 연조는 제게 티켓을 꾸물꾸물 내미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부딪히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게.

한기조는 제게 이토록 조심스럽지 않았다. 존중이 과해 말문을 더듬거리지도 않았고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도 않았다. 비트적거리며 다가서는 것은 늘 연조였다. 상처 입은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진물이 흐르는 채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는 것.

그를 알고 매일 연조가 해 오는 일이었다.

“좋아요. 그럼 내일…….”

“예! 예! 내일, 내일 영화관 앞에서 봐요. 제가 진짜 맛있는 데 알거든요. 친구가 데리고 가 준 곳인데…….”

수락의 뜻을 보이자 수영은 왁자지껄해졌다. 거절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연조는 그를 바라보며 의식적으로 미소 지으려고 했다. 기조가 저를 바라볼 때 이랬을까. 별거 아닌 거로 날아갈 듯 좋아하고 대단하지 않은 것을 대단한 것으로 곡해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데. 그에게 대단한 존재라도 된 양……. 시선을 돌렸다.

“저……기분 나쁘셨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냥…….”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아니에요. 제가 말이 없는 편이라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좋아요.”

“아, 그런가요? 제가 좀 성격이 이래서……. 불편하신 줄 알고…….”

수영이 고개를 숙여 뒷목을 문질러 보였다. 남자의 위로 한기조의 잔상이 겹쳐졌다. 연조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그의 그림자를 지워 내려 애썼다. 수영은 그 어디에서도 한기조가 떠오르지 않을 만한 남자였다. 키나 체구뿐만이 아니라 이목구비와 성격까지. 심지어는 직업과 버릇도 달랐다.

마주 서면 제가 자아내는 그림자로 그녀를 모조리 삼키는 한기조와 달리 남자의 그림자는 그녀와 나란했다. 굽을 신으면 남자와 비슷해졌고 단화를 신으면 고개를 조금 들어야 했다. 같이 걸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시선을 얽을 때 긴장되는 일도 없었다. 한기조와는 다르다.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때때로 모멸감에 속이 아플 일도 없었다. 편안한 사람이었다. 서툴지만 다정했다. 섬세하고 진중하고 연조의 외양을 평가하지 않았다. 작은 부분 하나라도 잊지 않고 배려했다.

그리고 가끔은 왜 연조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연조를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이 쉬워서. 그래서 세상에는 호감보다 비호가 사랑보다는 증오가 팽배했다.

남들과 두드러지는 특별함이 없다면 호감을 끌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정을 받을 일도 적은 것이다. 그녀가 한때 첫눈에 빠진 한기조조차 그 잘난 외양으로 모두를 아우르던 남자가 아니던가. 껍질을 무기 삼아 휘두르고 다니며 그녀에게 제 여자들을 과시하고 다니는 남자가 그였다.

“저……. 싫으신가요?”

“예?”

“손, 손 만지는 거요.”

컴컴한 영화관을 나와 한적한 골목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연조는 슬그머니 제 손을 쥐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수영이 데리고 가려 하는 식당은 영화관과 꽤 거리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갑작스레 물어오는 그가 느닷없었지만 연조는 남자와 데이트한 일이 없으므로 이런 질문에 당황스러워해야 하는지 어째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답을 해 줘야 하는 일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연조 씨가 싫으면 안 하…….”

“저는, 저는 상관없어요.”

슬그머니 쥔 손길이 사라지려 할 때였다. 연조는 다소 건조하게 대꾸했다. 내딛는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들여다보았다. 홍조를 두른 그의 볼이 움찔거렸다. 이렇게 보니 나름대로 귀엽게 생겼다. 잘생긴 건 아니지만. 연조는 이제 잘생긴 남자가 싫었다. 외양이 아주 예쁘고 화려하게 생긴 여자들과 친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 반대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피곤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지는 진심들이, 그에 상하는 제 마음이 그녀의 호흡을 하나씩 끊어 놓았다.

연조는 그러한 고통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있었다. 좋아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다 배신감에 둔통을 앓는 일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다. 왜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어코 혼자가 되려 하는지. 부식되어 가는 삶을 느낄 때마다 연조는 목숨을 끊고 싶었다. 모든 게 기조를 만나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그럼, 그럼 손잡아도 돼요?”

“……네.”

“감, 감사합니다. 연조 씨. 정말 연조 씨는 상냥한 분이시군요.”

“……그럴 리가요.”

눈을 내리깔았다. 애정에 가득 찬 시선을 받아내기 힘들었다. 수영은 편안하지만 그녀를 편안하게 만드는 그의 근원 모를 애정들이 부담스러웠다. 심지어는 저가 그를 이용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마음을 얻기 위해 공들일 필요도. 감정을 다쳐가며 끝끝내 기대감 따위와 비슷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갑갑할 정도로 순한 이 사람에게 미안했다.

“어서 밥 먹으러 가요. 거기 된장찌개랑 제육볶음 진짜 맛있어요.”

‘진짜’를 강조하기를 여러 번. 그들은 20분 뒤 북적거리는 식당 한가운데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제육볶음과 찌개가 나오기 전 애호박 볶음과 미리 부쳐둔 명태전 따위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명태전을 하나 집어 오물오물 먹는데 수영의 시선이 그녀에게 빤히 닿았다.

“왜요?”

“아뇨. 그냥, 그냥 맛이 어떤가 싶어서요. 잔뜩 자랑했는데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해서.”

그가 다시 뒷머리를 긁었다. 연조는 명태전을 전부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수영은 별거 아닌 것으로 겁을 먹었다. 해도 되는지. 해도 되지 않는지. 과민하다 생각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보통의 반응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이렇게까지 연조를 존중해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조의 의견을 묻고 존중하고 그녀의 기호와 선택을 조심스레 살피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연조를 그런 식으로 여겨 준 적이 없었다. 기조와는 정반대였다.

“맛있어요. 전부. 애호박 볶음도 맛있고요. 안 먹어봤지만 제육볶음도 맛있을 거예요. 분명히.”

“하, 하하. 다행이네요.”

수영이 쑥스러워했다. 그래. 기조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수영이 작은 것 하나하나 그녀를 배려하고 걱정한다면 기조는 작은 것 하나조차 양보하는 일이 없었다. 내키면 잘해주지만 내키지 않으면 연조를 눈앞에서 치우려 했다. 본심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연조는 그렇게 느꼈다.

제 생일에 제 옆에 앉혀 밥을 먹여주다가도 그다음 날이면 제 앞에서 다른 여자의 그릇에 스테이크를 옮겨 주며 미소 지었다. 알 수 없는 고양감에 밤잠 이루지 못하던 그녀가 우습단 듯이. 마치 그녀가 특별하다고 여겼던 어떤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헷갈리다가 바보처럼 우두커니 남겨지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이었는지 이제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잘하게 횟수를 세자면 너무 많아서 괴로웠다.

다만 그저 그를 생각하노라면 연조를 괴롭히는 것만이 목적인 것 같았다. 여지를 주는 일은 그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고 그가 남긴 여지 속에서 그의 뜻을 읽으려 매양 번민하는 일은 그녀의 일이었다. 지금에 와선 그저 아무 뜻이 없는 놀이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다 보면 언젠가 그가 제 옆에 와 서 줄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죽어도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다.

“수영 씨는 제가 좋으세요?”

“……예?”

“제가 좋으신가요?”

양념에 달달 볶인 고기가 한 그릇 푸짐하게 나왔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매콤한 향기가 났다. 그러나 둘 모두 젓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수영은 느리게 눈을 끔뻑이다가 작게 대답했다.

“예. 좋습니다.”

단호했다. 의지가 서린 대답은 버벅거림이 없었다. 연조는 그를 우두커니 쳐다보다 되물었다.

“왜요?”

“그게 왜…….”

“그냥 궁금해서요. 궁금하면……안 되는 건가요?”

“연조 씨 저는…….”

“정말로, 정말로 궁금한 거예요. 지금까지 절 좋아하는 남자분은 없어서요. 한 번도 만나질 못했어요. 그런 사람…….”

미움받는 일에 익숙했다. 누군가 저를 좋아해 주는 일보다. 먼저 좋아하는 일이 많았다. 어릴 때는 그래도 성격이 활달해 여러 친구를 사귀었다. 사람들이 저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 적에 일이다. 엄마가 저를 은조와 은밀하게 차별한다는 것조차. 심지어 그 차별의 이유가 외모란 것조차 몰랐었다. 모르니 용감했다.

못생겼다고. 너는 예쁘지 않다고. 그런 말을 언제 처음 들었더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엄마에게 달려가 정말로 그렇냐고 여러 번 물었는데. 엄마는 절대 연조가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나쁘단 말을 반복했지.

‘울면 더 못생겨져. 연조야.’

그날로부터 스무 해가 더 흘렀지만. 연조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잊지 않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 훗날에야 엄마로부터 상처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못생긴 애가 날 좋아하면 좀 그럴 거 같아.’

이인혁이 그랬나? 저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의 일인데. 기조와 담배를 피우며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 적이 있다. 이인혁의 생각이 그럴진대 그와 함께 다니는 기조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고민이 들었다.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그는 그저 허공을 문지르고 있었고 이인혁이 지껄이는 소리를 배경음악처럼 듣고 있었다.

그 뒤로는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물로 얼굴을 벅벅 씻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과 코를 뜯어내고 싶었다. 거울을 보는 일이 실망스러운 일로 바뀐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에는 얼굴에 난 여드름 하나. 정리되지 않은 눈썹 하나가 그토록 신경질이 일어 거울만 붙들고 살았었다.

“저는 안 예쁘잖아요.”

“네?”

수영이 되물었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연조는 갑갑했다. 조금 짜증이 일었다. 여기서 이런 걸 묻고 대답을 듣는 게 중요한 일인가 싶어 얼버무리려 했다.

“안 예쁘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요.”

“…….”

“정말입니다. 연조 씨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모,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

“안 믿으시네요.”

수영이 물을 마셨다. 연조는 입을 다문 채 그를 응시했다. 딱딱하게 굳은 그녀의 표정을 본 남자가 인상을 조금 찡그리더니 다시 운을 뗐다.

“저도 잘생긴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웃는 모습은 좀 귀엽잖아요. 그렇죠?”

수영은 밝게 얘기했다. 자기도 자기가 잘생기지 않은 걸 아는데. 웃는 모습이 귀엽단 것도 안다고 했다. 연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수영이 조금 소리 내 웃었다.

“그거면 된 겁니다. 연조 씨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그래요. 키도 작고 왜소하고……. 키도 썩 안 큰데 눈도 작고 뭐……. 예쁜 구석이 없죠. 그래도 어색한 얼굴은 아니라고 했어요. 전 여자친구도요. 그 친구가 그러길 제가 웃는 게 귀엽다고 하더라고요. 아, 전 여자친구 얘기 꺼내는 건 좀 그렇지. 오해하지 마세요. 막 대학 입학했을 때 미팅으로 사귀고 한 달 후에 헤어졌으니까. 엄청 오래된 일이에요.”

수영이 변명했다. 연조가 신경 쓰지도 않은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본 수영은 횡설수설했다. 마지못해 연조가 ‘신경 안 써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씩 웃으며 밥을 한술 떴다.

“우선 먹고, 먹고 얘기하죠. 다 식게 생겼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념 된 고기를 한 젓가락 크게 가져간 뒤 우물우물 씹어 먹었다. 웃는 것도 귀여운데 먹는 것도 좀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같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품에 안겨 새벽을 뒤척거려도 괜찮지 않을까. 나래는 한 평생 같이 살 사람은 무조건 편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느낀 바가 큰 듯했다.

종알종알 떠드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열심히 끄덕여 주었지만 연조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편한 사람이 없었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도 없었다. 기조를 한창 좋아하던 순간에도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기조와는 미래를 그리기 힘들었다. 그와 연인이 되길 바란 적도 없는데……. 사실은 같은 공간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던 것 같다.

좋아해도 그랬다. 그를 좋아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 가장 많이 느꼈던 생각은 이젠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단 것이었다. 그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상처 주어도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갑각류처럼 단단해져서. 허물을 벗어날 때마다 단단해지는 외피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조가 느낀 사랑의 소회는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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