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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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가뭇한 얼굴 위로 가시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장 형사는 그의 입술 끄트머리에 팬 자상을 응시했다. 아름다운 용모였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용모였으나 자상의 흉흉함은 그 완벽함을 뒤틀기에 충분했다.

기술이 좋은 세상이었다. 시기만 놓치지 않았다면 완전히 메꿀 순 없어도 눈에 띌 정도로 흉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고의적이라고 밖에 비치지 않은 흉터를 두고 장 형사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강기조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친모가 남긴 몇 안 되는 그의 유년 시절이 담긴 흔적. 불알 두 쪽 찬 놈치고 참 예쁘장했었다. 부친인 강진오 또한 한 가닥 날리는 외모이긴 했지만 친 가 쪽은 조금 더 진하고 굵직한 이목구비였다.

어찌 되었든 강기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곱상하게 빠진 용모를 가지고 칼부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장 형사는 얼음송곳같이 생긴 시퍼런 낯짝을 보며 조소를 흘렸다. 강기조와 시선이 얽혔다.

놈이 보낸 조선족의 칼에 박 경위의 목이 썰렸을 때부터 장 형사는 놈을 죽이고 싶었다. 반쯤 썰린 제 목을 부여잡고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놈을 죽이고자 마음먹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일 것이다. 놈이 가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지옥이다.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세상에서 숨을 꺼트리고 족적을 지우며 놈이 지어 올린 모든 것을 무너트리겠노라고……. 장 형사는 오래전부터 제 안에 살아온 악마를 인정했다. 박 경위는 어땠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제 죽고 없는 여자의 유지를 헤아리며 공무만을 집행하는 경찰이 되기에 장 형사는 지나치게 멀리 와버렸다.

박수영의 목을 감고 고개를 묻었던 강기조의 여자가 팔을 풀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몰라도 강기조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고양감에 낯이 벌겋게 물든 박수영이 울음을 글썽거렸다.

장 형사는 오롯이 강기조의 낯을 바라보았다. 감정이라곤 오직 제 쓰라린 것만 알고 제 달콤한 것에만 집중하는 사내가 어떤 식으로 낯을 일그러트리며 감각을 짜부라트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송연조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 굴절하는지 또한 그의 관심 대상이었다.

어쩌면 이 여자를 조금 더 요긴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도구로 쓰는 건 박 경위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장 형사는 박 경위가 아니다. 그녀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경찰답게 정의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형사는 정의로운 사내가 아니었다. 아니. 더 이상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옳다. 그는 눈앞의 사내를 무너트리고자 했고. 사내는 처음부터 도의를 따져가며 목적을 이루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네가 나빴어. 강기조. 장 형사는 눈을 번뜩였다. 그는 개암 색 눈동자 넘어 묽은 속살을 읽었다. 생각보다 폐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연조야. 여기 형사님이…….”

연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조를 응시했다. 구겨진 낯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연조는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 그를 길게 쳐다보았다. 수영의 손을 끌어당겨 그 뺨에 입을 맞추려고 할 때였다. 잡아 내팽개칠 것처럼 강한 악력이 그녀를 당겼다.

연조는 맥없이 끌려 그의 곁으로 돌아갔다. 우악스러운 악력이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더운 숨이 윗입술을 데우고 번득이는 이가 표피를 긁었다. 이제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연조는 무덤덤했다. 그가 뒤로 그녀를 밀었다. 정제되지 않는 감정이 갈색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연조는 노려보듯 그의 뒤를 응시했다.

수영이 무사한 것을 확인했다. 어쩌면 조력자를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장 형사……. 연조는 기조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았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장 형사가 등을 돌리자 수영은 분에 찬 표정으로 장 형사를 향해 역정을 냈다. 철없는 학생이 선생을 향해 대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색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찾아온 것부터 가택침입이라는 중죄였다. 그것도 형사가. 수영은 끝끝내 납득 하지 못하다가 순경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문이 닫히고 이중으로 잠금 되는 소리가 들렸다.

연조는 시선을 떼지 않고 남자가 제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손을 들어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라고 해서 굳이 봐주는 법도 없는 인간이니까. 그녀는 그가 번번이 제 애인들에게 손을 대는 것을 보아왔다. 예라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이니 무척이나 가학적이고 잔인할 것이다.

뺨을 후리거나 머리채를 잡고 침대에 던질지도 모른다. 당해 본 적은 없지만 그 얕은 인간성에 도탄을 금치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기조는 아니, 강근영의 손자 강기조는 여자든, 남자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제게 등을 돌렸던 인간이라면 그 보복은 더 하다. 연조는 언젠가 기조에게 ‘그런 식’으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번번이 그와 뒤틀렸으니까. 매번 그의 역정을 샀으니까. 두려워하지도, 비위를 맞추려 들지도 않았다. 연조는 언젠가 제 앞에서 애인의 머리채를 잡아 벽으로 집어 던지던 남자를 떠올렸다. 오늘은 그녀가 그런 식으로 던져질지도 몰랐다.

“사랑해?”

고개를 들었다. 단둘만 남은 너른 집이 동굴처럼 을씨년스럽다. 남자가 보기 싫어 시선을 어슷한 방향으로 떨어트렸다. 사랑하느냐는 물음은 근본에 닿을 수 없다. 결혼을 마음먹은 남녀 중 몇이나 상대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을까?

연조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여자였다. 어떤 사람도 마음에 둘 수 없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젠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버러지 새끼가 좋아?”

“그렇게 말하지 마.”

가죽으로 감싼 소파를 꾹 움켜잡았다. 구겨짐 한 점 없던 낯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통을 헤아릴 수 없었다. 왜 고통스러워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그가 괴로워하리라 생각했으면서도.

기조의 손이 그녀의 턱을 감싸 쥐었다. 턱을 부수고도 남을 악력이었다. 저릿하게 몰려오는 고통을 견디고 그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노여워하고 있었다. 악에 받친 눈이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길길이 날뛰는 감정들이 모두 그악스러웠다. 그의 손이 앞섶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입술을 질끈 물었다. 두툼한 손이 가슴을 만지며 젖꼭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이내 그녀를 밀쳤다. 푹신한 소파가 등에 닿았다. 이제 곧 시작될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을 수 없었다. 남자의 손이 팬티 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이 음핵을 누르고 마른 소음순을 비비더니 예고 없이 질구 안으로 들어왔다.

“으응!”

눌린 소리를 내자 그가 웃었다. 잘생긴 입술 사이로 낮게 흐른 웃음소리가 조야했다. 연조가 일그러졌다. 질구를 후벼 파던 손이 팬티를 벗겼다. 급작스레 닿는 공기에 가랑이를 오므리자 그가 음부를 찰싹 때렸다.

“앙……!”

재킷과 조끼를 벗어 던진 남자가 울적함이 남아 있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발목까지 닿는 치마를 배꼽까지 밀어 올린 그가 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앙상한 뼈대와 희미하다 못해 사라질 것 같은 윤곽.

오랫동안 그의 욕정을 자극해 온 여자였다. 먹이를 본 개가 침을 뚝뚝 흘리듯 그는 반사적으로 이 여자에게 발정해왔다. 일상이고 습관이 된 일이다. 팔뚝을 감은 시계를 풀어 집어 던졌다. 연조는 고가의 시계가 발치를 구르는 걸 열없이 바라보았다.

넥타이를 푸는 손길이 험악했다. 저 성급하고 성마른 손길로 그녀의 음부를 파헤치듯 뒤집어 놓을 것이다. 다리를 벌렸다. 남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가오는 손이 얕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상체를 낮추고 그녀의 사타구니에 코를 박았다. 이윽고 말캉한 혀가 밑에 닿았다. 음핵을 살살 건드리는 혀가 축축했다. 연조는 입술을 씹었다.

“응, 흐응…….”

가슴을 들썩이며 가랑이에 힘을 주었다. 그것을 재촉으로 알아들은 것인지 음핵을 물고 빠는 힘이 더해져 왔다. 가려웠다. 구멍이 옴찔거렸다. 더운 기운이 안면에 몰리며 혀가 이동하는 방향을 느꼈다. 턱과 윗입술 위에 난 수염이 소음순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가렵고 화끈거렸다.

수영과 이런 걸 할 때 어땠었지 생각을 했다. 막무가내로 매달린 만큼 그는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왔다. 그리고 정신없이 가랑이를 얽은 다음 쾌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끝내버렸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게 다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기조는 느리다. 이 사내는 모든 게 느리고 분명했다. 쾌감을 얼버무릴 여유 따위 주지 않는 것이다. 커다란 손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항문을 보고 싶은 건지 양 볼기짝을 조물거렸다.

개처럼 킁킁거리던 그가 질구 안에 뾰족한 혀를 넣었다. 그때부터 구멍을 흐르던 체액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간지럽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교성이 흘렀다. 음부 아래에서 그가 턱을 움직이는 모양이 고스란히 보였다. 질구가 뜨거웠다. 혀가 닿는 모든 곳이 아린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고 낮췄던 상체를 세웠다. 이제 구멍을 들쑤시는 건 혀가 아니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젖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왔다. 좁은 그곳을 꽉 채운 손가락의 느낌에 골반이 떨렸다. 남자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연조는 헐떡이며 그의 그림자가 제 몸을 덮는 것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맞추려 다가오는 것을 고개를 틀어 피했다. 그러나 이내 거칠게 돌려져 혀를 섞어야 했다.

“음, 흐응…….”

아랫입술이 씹히고 턱이 벌어졌다. 기조는 집요했다. 옅은 헐떡거림이 그의 품 안에서 부서졌다.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내벽을 문지르며 동시에 긁어내리는 행위에 연조가 울었다.

“아, 아흐응 싫….”

“좋아 죽는구만 무슨 소리야. 그 새끼는 이런 거 안 해줬지? 응?”

“마, 말하지 마…….”

“말해봐. 연조야. 그 새끼는 이런 거 안 해줬지?”

“아, 아냐. 하지, 하지 마.”

도리질했다. 이런 와중에 기조의 입에서 수영의 이야기를 듣는 건 싫었다. 어디선가 그가 보고만 있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수치스러운데…….

“네 보지에 손가락 넣고 피스톤질 한 적 없다고 말하라고.”

입술을 조가비처럼 다물자 그가 눈썹을 좁히며 난삽한 말을 지껄였다. 울먹이던 연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를 드러냈다. 이윽고 목덜미가 씹혔다. 낭창하게 휘던 허리가 크게 들썩여졌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출납을 반복하던 손가락에 하나가 더 늘었다. 연조가 골반을 뒤틀며 그의 가슴팍을 붙잡았다.

고가의 셔츠가 엉망으로 구겨졌다. 연조가 고개를 젖히며 숨을 몰아쉬었다. 꺽꺽대는 소리가 섞인 울음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사타구니가 사정없이 경련하며 음부가 발발 떨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몸이 욱신거리도록 화끈거렸다.

“아직 좆도 안 박았는데 이러면 곤란해.”

남자가 낮게 뇌까렸다. 연조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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