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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 강기조를 처음 본 것은 연조와 처음으로 여행을 갔던 날이었다. 숙소는 대학 선배가 운영하는 펜션이었다. 펜션 전체를 이틀 정도 빌리는데 꽤 거금을 치른 그는 저녁이면 마당에서 바비큐를 할 요량으로 장소를 잡았다.
전공이 역사학인 그는 유적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마음에 들었고 연조는 한껏 들떠 하는 수영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장을 봐 왔다. 펜션에 미리 봐둔 식자재를 두고 드라이브 삼아 교외를 나갔다 올 때였다. 수영은 펜션 근처 주차된 검은 차량이 신경 쓰였지만 연조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땅거미가 질 때였다. 긴 외출로 피로함을 느낀 연조는 쉬고 있겠다며 펜션에 머물고 수영은 다음 날 이동할 거리를 계산해 주유를 하고 돌아왔다.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펜션 앞에 주차된 여러 대의 검은 차들. 현관에서부터 느껴지는 불길함.
문을 열기도 전 그는 낯선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남자를 조우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굉장히 장신의 남자였다. 기다랬고 건장했다. 각이 잡힌 근육은 두툼함을 더했는데도 날렵하고 근사했다.
거뭇한 피부에 밝은 갈색 눈. 음울했으나 날카로운 눈매였다. 단조롭고 정제된 인상이었으나 이목구비 자체에서 오는 화려함은 사나운 기세와 맞물려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머리 한 올부터 발끝까지 각이 잡힌 사내였다. 시계 찬 팔목과 손등. 핏줄이 불거진 손등……. 수영의 기억은 늘 이런 단편적인 편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누구…….”
“이런 버러지 만난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어?”
무표정한 눈이 수영을 훑고 지나갔다. 연조는 소파에 앉아 맥없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쾌해 보였으나 동요하는 빛은 없었다. 수영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녀는 퍽 익숙한 것 같았다.
“대답해. 송연조.”
“여긴 왜 왔어?”
“……몰라서 물어?”
“나가.”
부엌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남자가 입술 끝을 비틀었다. 흰 이가 붉은 어스름에 물들었다. 수영은 언제나 그날의 마지막을 되새기며 분을 곱씹었다. 무지막지한 힘에 이끌려 차에 태워지던 연조. 발치를 나뒹구는 식자재. 스며들던 비감과 무참함. 그보다 자꾸만 뒤돌아 저를 보던 연조의 눈.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침범하기 시작한 폭력들. ‘강기조’란 이름으로 일상처럼 배어든 폭력. 수영은 여전히 자신이 어떻게 연조를 만날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그러나 그보다 신기한 것은 연조와 그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성교이다. 강기조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수영과 연조는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내내 수동적으로 굴던 여자이기에 언감생심 바란 적도 없던 일이건만. 그날 밤 여자는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고무된 기색이나 고양감에 차오른 빛 하나 없이. 편집증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남자에 대한 불신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침대 위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야성의 밤. 산란하는 도시의 불빛들이 여자의 어깨와 쇄골을 밝혔다. 저를 벗고 기다리는 여자를 두고 혼란스러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담금질하듯 저를 깎아내리는 데만 집중하는 그녀였지만 수영이 보기에 연조는 단정한 미인이었다. 다만 도드라지지 않을 뿐. 대체 어째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데 길이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눈 씻고 봐도 절대. 본인의 입으로 피부색이 어두워 무얼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연조는 무얼 입어도 지나치지 않았다. 다만 꾸며 본 일이 드물고 맵시 있게 차려입는 재주가 부족해 언제나 심심한 차림일 뿐이다.
어쩌면 자기애를 잃어 스스로를 돌보는 것에 무관심한 것일지도 모른다. 수영은 부딪혀 오는 여자를 거부하지 않았다.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은 성애를 시작하기 직전 연인이라기보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결의를 다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은 주저하지 않았다.
목을 감아오는 손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첫 행위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사정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뻣뻣하게 누워 다리를 들어 보이는 여자의 눈이 담담했다. 서질 않았다. 발정하기 힘들었다.
허공에 떠 있던 두 다리가 허리를 감았다. 눈썹과 눈썹 사이, 나붓한 목선과 오목한 쇄골. 수영은 그녀의 야릇한 윤곽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허리 짓 하는 사이 땀이 차올라 끌어안은 팔이 끈적끈적해졌다. 사정을 마치고 넓적다리와 오금을 닦을 때였다. 문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진인 줄 알고 헐레벌떡 옷을 움켜쥐었으나 문짝이 떨어져 나간 것일 뿐이었다.
강기조는 떨어진 문짝 앞에 있었다. 벗은 몸이 추워서 와들와들 떨렸다. 남자의 시선 죽음을 걷고 있었다. 그는 반쯤 부수다시피한 문짝을 뒤로하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한 눈으로 연조를 돌아보자 그녀는 조용히 이불로 가슴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침착한 눈빛이었다.
별안간 머리채가 끌려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메다 꽂히는 것처럼 강한 충격이 안면을 강타했다. 구둣발이 머리와 등을 밟았다. 비명 대신 급한 숨이 그의 등을 감쌌다. 이 씨발 새끼가……! 적나라한 욕설이 그의 귀를 후렸다. 툭툭 뇌까리는 어조는 아니었다. 정말 잘근잘근 씹어 물기라도 하듯. 쏟아지는 구둣발보다 그따위 너절한 욕설이 뇌리 속에 남은 것을 보면 그도 이상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씨발, 너 내가 몸뚱이 함부로 굴리지 말랬지?”
기조는 그의 등을 감싸는 여체를 들어 올렸다. 발가벗은 여자의 어깨를 쥔 남자는 미치광이 같았다. 우레 같은 소리가 오피스텔 전체를 울렸다. 터질 것처럼 부릅뜬 눈이 괴상했다. 사람이 미쳐도 이렇게 미칠 수 있나? 숨을 몰아쉬는 남자가 여자의 목과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찢어발길 것 같은 기세였다.
수영은 깨진 코를 덜덜 떨며 부여잡았다. 이를 악문 연조가 남자를 노려보더니 그의 뺨을 후렸다. ‘철썩’하고 돌아간 뺨이 곧장 돌아왔다. 짙은 어스름 속에서 독 같은 미소가 번졌다. 미치광이 같았다.
“후.”
별안간 두툼한 손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뭐하……악!”
비명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여자는 버둥거리며 제 밑으로 들어온 손을 떼어내려 했다. 수영이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쓰레기처럼 걷어차이기만 할 뿐이었다. 여자를 한 손에 쥐고도 남자는 수영을 개새끼처럼 두들겨 팼다. 발길질 몇 번 끝에 늑골이 나갔다.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정욕으로 휩싸였던 나신이 오한으로 떨렸다. 연조가 버둥거리자 그는 그녀의 두 손목을 한 번에 감아쥐고 밑을 훔쳤다. 길고 냉엄한 손가락이 수영이 드나들었던 구멍에 침입했다. 그는 구멍 속에 남은 이물에 악귀처럼 변모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웠다. 숨 막히는 침묵이 좁은 방안을 파먹었다. 연조가 울었다.
그녀는 치욕스러워 하면서도 노여워했다. 호흡 때문에 벗은 가슴이 오르내렸다. 엉망으로 우는 모습에도 그는 구멍 속에 있는 체액을 꺼내는 데 집중했다. 때때로 연조가 악을 지르며 도리질을 했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가 마침내 주저앉으려 할 때였다.
남자는 그녀의 팔을 제 목에 두르게 한 뒤 다시 밑으로 손을 넣었다. 고양감으로 가쁜 숨소리가 귀를 후볐다.
“아, 아흐! 흐읏, 응! 으으응! 아, 그만, 그만!”
교성이 귓가를 들쑤셨다. 할딱이는 숨소리에 젖은 비음이 섞여들었다. 수영은 덜덜 떨며 음부 안으로 짓쳐 드는 손가락을 응시했다. 여자의 샅이 발발 떨리며 경련했다. 비부가 보일 정도로 넓게 벌려진 음부에 애액이 묻은 손가락이 출납했다.
마치 남자의 좆이 구멍에 박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연조가 앙알대며 훌쩍였다. 오금이 저린지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것을 그가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음핵과 질구를 희롱하던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났다. 양껏 쑤셔 박는 모양새에 수영이 마른침을 삼켰다. 울먹이던 연조가 다시 울음을 터트리며 도리질을 했다.
그는 불거진 앞섶을 그녀의 아랫배에 비비며 벗은 젖가슴에 입술을 맞췄다. 연조가 그를 밀어내려 버둥거렸다. 젖무덤에 턱을 비비고 젖꼭지를 쭉쭉 빨던 남자가 게슴츠레 눈을 뜬 뒤 수영을 응시했다. 조악한 미소가 잘생긴 입술을 물들였다. 수영은 벌벌 떨며 발기된 성기를 감추었다. 지퍼를 열어 기립한 제 성기를 꺼낸 그가 연조의 앞에 보였다. 놀란 연조가 그의 가슴팍에서 떨어져 나오려 허우적거렸다. 젖을 주물거리던 그가 연조의 음부를 손바닥으로 몇 번 쓸더니 침대에 그녀를 쓰러트렸다.
“아흑!”
단말마 같은 교성이 침실을 울려 퍼졌다. 잡아먹을 것처럼 그녀를 올라탄 그가 음부에 대고 제 성기를 비비기 시작했다. 바로 삽입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으나 그는 애를 태우듯 그녀의 질구에 조준만 할 뿐 삽입은 하지 않았다. 연조가 울며 이불을 쥐었다. 간질거림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섧게 흐르는 교성이 신경질적이었다. 수영은 코피를 닦으며 숨을 죽였다.
“해달라고 해.”
“흐응……흣, 흐윽.”
“박아달라고 해.”
“싫어. 싫어. 저리 가…….”
연조가 입술을 씹었다. 발갛게 든 물은 분명 욕정이었다. 수영은 줄줄 흘러내리는 피를 멈추지 못해 덜덜 떨었다. 그를 본 연조가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 꼿꼿이 선 유두를 남자가 이로 긁었다. 그녀의 허리가 움찔 떨렸다.
“씨발. 박히지 못해서 보지가 떨리는 주제에…….”
연조가 그를 사정없이 노려봤다. 다리가 성큼 들어 올려졌다. 그는 허벅지에 그녀를 앉히고 수영이 볼 수 있도록 넓게 음부를 보였다. 연조가 앙알대며 그를 할퀴기 시작했다. 그는 연조의 젖가슴을 살짝 때린 뒤 무섭게 노려보았다.
“잘 봐. 너는 내 여자를 만족 시키지 못해.”
그건 수영에게 하는 말이었다. 씩씩대던 연조가 울음을 터트렸다. 수영은 늑골이 나간 채로 발발 떨며 개처럼 웅크려 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경멸과 모욕에 눈알이 터질 정도로 열패감이 일었다. 수영이 욱여넣었던 질구에 남자의 거대한 성기가 들어갔다. 그는 봉긋 부푼 음핵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야윈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었다. 연조가 허우적거리며 그를 밀어내다 말고 그의 팔뚝을 긁어 내렸다.
느리게 허리를 움직이던 그가 부푼 가슴을 움켜쥔 뒤 동작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이를 박고 순흔을 새기던 남자가 발갛게 물이 오른 연조의 귓바퀴를 씹었다. 수영은 비장한 얼굴로 빳빳이 굳어 제 아래 깔려있던 연조가 생각났다. 다른 여자 같았다. 너무도 달라서 ‘내 여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숨이 넘어가도록 보채던 연조가 혀를 섞는 키스 한 번에 경련을 하며 절정을 맞이했다. 질구에서 뿜어나오는 물줄기에 허리를 떨었다. 수영은 축 늘어져 사내의 품에 안긴 여자를 응시했다. 의식이 없는 것처럼 늘어진 여자를 그가 수영이 볼 수 없도록 감싸 안은 뒤 이마에 입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