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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깨진 코는 간신히 복구되었지만 밑바닥으로 떨어진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수영은 종종 납치되었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어느 날은 연조 대신 여자를 붙여주겠다며 그가 클럽으로 불렀다. 둘만의 시간을 가지자며 그를 호출한 곳은 VIP룸이라고 써진 공간이었다. 막상 들어가니 남자는 호화스러운 술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수영은 시답지 않은 말을 건네며 술을 먹이는 남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술을 홀짝였다. 고작 양주 반병에 정신이 흐려질 체질은 아닌데 기묘하게도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벗은 몸의 여자가 눈앞에 있었다. 수영은 발기된 제 성기를 부드럽게 문지르는 여자를 보며 그녀를 떨쳐내지 못해 일그러졌다. 밀폐된 방안이었다. 그가 일어난 제 성기를 보며 일그러지자 여자는 최음제 때문이라며 그를 달랬다. 수영은 호흡을 정리하며 전후 사정을 생각했다.
강기조. 그가 연조에게서 저를 떼어내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약효가 돌기 시작한 수영을 밀폐된 방안에 가두고 여자를 던져준 것이다. 모멸감에 이가 잘근잘근 씹혔다. 들러붙는 여자를 떼어내려 노력했지만 여자는 진절머리나도록 그에게 들러붙어 성교하길 원했다.
포근한 가슴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긴 팔이 그의 허리를 안고 볼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였다. 밀어내고 밀어내도 밀려나지 않았다. 수영은 주먹을 쥐었다.
그녀와 성교한 것은 반쯤은 선택이었다. 발정제의 약효가 아닌 선택. 그와 밤을 보내지 않으면 사창가로 팔려간다고 울먹이던 여자 때문이었다. 거짓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여자는 정말로 울었고 정말로 그의 발치에 매달려 빌었다. 그 눈이 절박하다고 했으면 믿어줄까?
그리고 연조는 그날 밤을 인화한 사진을 보고도 무감한 얼굴이었다. 언제 사진이 찍힌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집에 도착한 봉투는 그와 그 여자가 뒹굴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강기조가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연조의 낯빛은 굳지 않았다. 이따위 짓을 할 만한 사람이라면 강기조 밖에 없으며 그가 벌인 일이라면 더 들어 볼 것도 없이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아닌 폭력. 그러니 강기조는 헛수고한 것이다. 수영은 그 모든 게 우스웠다. 연조는 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기 위하여 저를 택한 여자였다. 그에게 무슨 마음을 가진 건지 알 수 없으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수영은 그녀가 가여웠다. 가여워서 함께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