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46)

* * *

“장 형사 그 새끼 짭새 맞아?”

이인혁이 물었다. 기조는 듣지 않았다. 이인혁은 전화를 건 상대가 박수영이란 것을 알아냈다. 연조가 문밖을 나선 지 오 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수단이 좋은 놈이었다. 그는 기존 연조가 들고 다니던 휴대폰을 버리고 새 휴대폰에 추적 장치와 통화 내용을 녹음하여 송신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했다. 그를 알 리 없는 연조는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기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기뻐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는 거 같았다.

“미친. 짭새 새끼가 민간인을 납치해? 씨발. 민중의 지팡이라더니 이건 뭔…….”

눈치를 보지 않고 뇌까리던 놈이 어두운 얼굴을 한 기조를 살폈다. 그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납덩이가 침잠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한숨을 삼킨 뒤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고속도로를 타는 중 전화가 울렸다. 짭새도 아니고 짭새 흉내 내는 짭 경찰과 그의 시다 짓을 하는 배신자 놈이었다.

“받아?”

기조에게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요 며칠 밥도 안 처먹고 약만 하던 인간의 얼굴은 측은지심이 들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래 가지곤 장 형사의 멱을 따기도 전에 병실에 드러누워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송연조가 그를 거절했다는 말은 일찍 들었다. 여자를 보쌈해 오면서도 이건 가망 없는 일이라고 되뇌면서도 ‘어쩌면’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리될 일인 것이다. 송연조는 낙태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태어날 애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집도 들어가지 못한 채 바싹바싹 말라가는 놈을 보면 태어날 애와 송연조보다 눈앞의 작자가 불쌍해지는 것이다. 대꾸 없이 낚아채는 남자를 염려 가득한 눈으로 보며 장 형사를 생각했다.

“강기조입니다.”

버석한 음성이 차 안을 울려 퍼졌다. 둘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어차피 내막이야 다 아는 사실이고 강기조는 장 형사에게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다. 강기조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수영 거기 있나?”

박수영. 박수영……. 눈동자를 굴렸다.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기조가 안면 근육을 비틀었다. 험악해진 남자가 상스러운 소리 한번 없이 장 형사를 압박했다.

“놈에게 뭘 건네기로 한 거지?”

기계 너머 울리는 음성은 낮고 우울했다. 경찰이 아닌 여타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내와 맞붙는 느낌이었다. 장 형사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를 생각하면 의아했으나. 박 경위의 죽음은 그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형사의 말소리가 낮아지고 느려질 때마다 심란한 마음이 가중되었다. 장 형사가 정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면, 박 경위의 죽음을 고스란히 돌려줄 의향이라면…….

“임신한 여자야. 도리는 지켜.”

그래. 결국은 이리될 터였다. 이리 절박하게 매달리고, 간구하고, 갈증을 내다 모조리 빼앗겨 으스러지거나 혹은 죄 잃어버리거나. 사람이 얼마나 추잡해지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 혹은 목숨들. 이름을 모르고 스러졌던 어느 우둔하고 우매한 이들이 모두 그랬다. 재화든, 권력이든, 잃지 않기 위해 그득그득 끌어안고 있다가 어느 망종에게 끝내 모두 잃고 말았다.

이인혁은 언젠가 그런 날이 강기조에게도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아닌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기조 또한 제 손으로 목을 눌렀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잃지 않기 위해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그것이 재화가 아닌 사람이라 한들 다를 바가 어디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혁은 그날이 오늘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