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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죽었을 때. 아니, 연희가 죽어갈 때 장 형사는 목이 반쯤 썰려 숨을 껄떡대고 있었다. 목이 썰렸는데 왜 총을 쥘 수 없을까. 손목이 썰린 것도 아닌데. 잘린 단면에서 피가 죄 쏟아지고 있는데 그런 우둔한 생각만 들었다. 하긴, 제정신이 아니니 그렇게 멍청할 법도 하지.
연희는 똑똑했다. 어느 때고 이성을 잃지 않았다. 정의로웠고 경찰다웠다. 끝내 인간성을 잃지 않았고 도덕성을 버리는 일도 없었다. 존경할 만한 여자였다. 사랑할 만한 여자였다. 장 형사는 피떡이 된 채 널브러진 남자를 응시했다. 시끄러운 사내였다. 약혼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악을 쓰는데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정 부장이 손을 쓰자 그는 이내 조용해졌다.
“이 순경.”
“예? 예…….”
“치워.”
“어, 어……. 그게, 그게 말입니다. 형사님, 구, 구급차를 먼저…….”
앳된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장 형사는 그의 뺨을 후린 뒤 턱을 들게 했다. 겁에 질린 순경이 눈을 몇 번 끔뻑이더니 얼빠진 얼굴로 박수영을 끌어다 뒤편에 치워놓았다. 정 부장이란 사내는 장 형사를 보더니 히죽 웃었다.
“이래도 돼? 당신 형사잖아.”
정 부장이 물었다. 심심한 말이었다. 장 형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경찰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보직을 수행했는데도 박 경위와 그는 몹시도 달랐다. 박 경위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장 형사는 아니다.
“아무렴 어떨까.”
장 형사가 정 부장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박수영이 그에게 협조한 까닭은 애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세부적인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설사 말했다 하더라도 거짓으로 꾸몄을 것이다. 그를 따르는 순경 둘조차 속여 먹었는데 박수영에게 거짓을 늘어놓고 설득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일례로 그는 강기조의 집에서 여자를 불러낸 뒤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불허한 것은 당연히 장 형사였다. 그는 강기조의 앞에서 여자를 죽이고 싶었다. 그가 하나 남은 인간성을 잃고 무너지는 모습을 꼭 보아야 했다. 장 형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인간성을 잃었던 것처럼.
기둥에 묶여 의식을 잃은 여자를 응시했다. 연희와 같은 나이의 여자다. 키도 비슷했고 마른 체구도 얼추 비슷하다. 게다가 임신을 한 것까지…….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터였다. 오늘 죽는다 해도 별로 아쉬울 게 없었다. 부둣가의 문이 열렸다. 강기조가 혈혈단신으로 왔을지 궁금했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놈은 두고 오라 했는데.
어스름에 잠긴 부둣가에 기다란 실루엣이 어슷거렸다. 장 형사는 고개를 들어 사내를 보았다.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사내가 바늘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