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병원은?”
“다녀왔어.”
“애는 어떻대?”
“잘 먹고, 잘 논대.”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연조가 카페에서 나오자 빠르게 자리를 바꿔 운전석으로 갔다. 연조는 조수석에 타고 경호원은 지하철을 타고 근무지로 복귀했다. 호젓한 계절이 돌아오자 녹색 잎들이 빠르게 시들어갔다. 텅 빈 나뭇가지를 쳐다보던 연조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피부과에서 뭐래?”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그의 눈가와 뺨을 더듬었다. 불길의 흔적이 남은 피부가 그녀의 얼굴을 구기게 했다. 손길을 거두어들이자 남자의 시선이 돌아왔다.
“치료받아.”
“싫다면?”
“내가 원해.”
빈틈없는 대답이었다. 인혁은 그가 치료받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연조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속이 탔다. 피부 치료는 시간의 문제라고 했다. 얼굴과 불에 탔지만 다행히 그을린 정도라고 할 수 있었고 진료 또한 고가의 비용이 들었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의지만 있다면 회복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를 두고 기조는 억지를 부렸다.
“기조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화상이?”
“생활에도 불편함이 없고.”
“내가 싫어. 내가 불편해. 그러니까 제발…….”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연조는 습관처럼 배를 안고 한숨을 쉬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어 물었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제발……. 그때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었던 거 지금까지 안 했잖아. 더 늦으면 더 안 좋아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그러나 기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조는 입을 꾹 다물었다.
기조가 차를 몰고 도착한 곳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였다. 식당을 함께하고 있어 그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신혼집은 이전에 그가 그녀를 감금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구조며 인테리어가 크게 다르진 않지만 연조는 그녀가 감금당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기조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끼니를 때울 만한 것으로 베이컨과 오믈렛 그리고 팬케이크를 시키고 테라스로 나왔다. 정오의 빛 속에서 물결치는 물비늘들이 아름다웠다. 주문을 하고 전화를 한 통 받고 온다던 기조가 그녀의 옆자리를 메웠다. 의자는 그네처럼 발을 구르면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매달아 놓은 의자였다. 둘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기 태어나기 전에 치료받고 회복되었으면 좋겠어.”
연조가 읊조렸다. 기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연조는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물었다.
“이유가 뭐야? 대체.”
“그냥, 그냥 네가 이걸 더 좋아할 거 같았어.”
이번에도 듣지 못한 척하거나 얼버무리는 줄 알았으나 웬일인지 그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뚜한 표정으로 바다를 쳐다보고 있던 연조가 그를 쳐다보았다. 방치의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하긴 이인혁이 말하길 대저 이유를 알 수 없거나 혹은 이유를 알리지 않는 일은 모두 그녀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강기조는 원래 그런 남자였다.
“내가 왜?”
가슴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그는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그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넌 그러니까 넌, 넌……. 내가 잘생긴 걸 싫어하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기조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연조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희푸른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 아래 빛무리들이 산란했다. 연조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맞아. 네가 너무 잘생겨서 내가 주눅 들었어.”
기조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의지를 굳힌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네가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
“내가 사랑했던 모습 그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나는 예전하고 그대로야.”
“아니. 아픈 얼굴 말고.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화상이 번진 눈가를 더듬었다. 결의로 단단했던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연조는 웃었다.
“주눅이 드는 건. 그건 다른 문제야. 그건 다르게 해결해야 할 문제인걸.”
“그렇지만…….”
“치료받겠다고 약속해. 내일이라도 당장 병원에 가겠다고.”
“…….”
“아기 태어나기 전에는 치료받겠다고 해.”
“그래.”
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조는 손가락을 거두어들였다. 기조가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아왔다. 연조는 뿌리치거나 피하는 대신 그의 다정한 체온을 느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마.”
언젠가, 언젠가. 아마도 새벽녘 그를 부둥켜안고 읊조렸던 말을 다시 속삭였다. 그 말은 사랑해달란 것과 같았다. 지겹도록, 물리도록 사랑해달란 말과 같았다. 그러면 언젠가 그의 옆에 서도 주눅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기조는 의미를 되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은 아름다운 빛을 내려다보다 가만히 입술을 포갰다. 상냥한 온기였다. 눈을 감았다.
“개처럼 사랑한다니깐.”
어느 새벽, 속삭였던 맹세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연조는 가만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다시 입술을 포갰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