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6/46)

2. 어느 하루.

“어때?”

“예뻐.”

“아까 거도 예쁘다며. 다 예쁘면 어떡해?”

“다 예쁜 걸 어떡해.”

연조의 불평에 기조가 맞받아쳤다. 연조는 한 시간 째 전신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희의 발레 공연을 앞두고 ‘센스’와 ‘에티튜드’를 고루 갖춘 옷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문에 보름 전부터 백화점이라면 백화점, 편집샵이라면 편집샵. 고급 의상실이라면 의상실까지 전부 뒤진 참이었다.

결국 사흘 전 기조의 선택으로 하나를 고를 수 있었고 그것으로 일단락된 듯했으나 정작 공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다시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치원 앞에서 마주친 시희의 단짝 친구 어머니가 너무도 우아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아이참. 자세히 보라니까.”

연조가 투덜거리며 빙그르르 돌아보였다. 그러나 기조는 정말로 다 예뻐 보인다며 한결같은 말만 했다. 연조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긴 저 남자에게 뭘 기대할까. 까마득한 학창 시절에도 그녀에게 콩깍지가 씌여 있던 남자였다. 당장 그녀가 종량제 봉투를 걸치고 나간다 해도 박수를 칠 것이다.

“정말이야. 정말 다 ‘교양’ 있고 ‘우아’해 보여.”

기조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연조는 전신거울 앞에서 맵시 있게 떨어지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쇼핑이라면 딱히 관심 없는 연조였으나 딸의 첫 공연이었다. 당연히 강남의 모든 백화점과 편집샵과 의상실을 뒤져서라도 그녀와 딸을 돋보이게 만들 옷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그 날을 위해서 필라테스와 요가까지 끊은 그녀이니까.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짓거리의 연속에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시희의 공연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젠 밥 좀 제대로 챙겨 먹고. 그 빌어먹을 한약 다이어트도 그만하고.”

무섭게 씹어 뇌까리는 모습이 으르렁거리는 검은 짐승 같았다. 특히 한약 다이어트를 입에 담을 때는 더욱 그랬다. 연조는 뒤돌아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한 달 전 시작한 한약 다이어트는 그녀의 간과 위장을 착실하게 망쳐 놓았다.

본래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둘째인 기연을 낳고 나서부터는 부쩍 살집이 붙었기 때문이다. 항상 마르고 날씬했던 연조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기조가 딱히 별말을 하지 않아 살이 그렇게 찐 줄도 몰랐던 연조는 그 무렵 처음으로 학부모 다과회에 다녀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두 손을 모아 열심히 꿈질거리던 연조가 그를 흘깃거리며 중얼거렸다. 남자의 사나운 눈이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당초 다이어트라면 돈은 쓸 가치도, 시간을 들일 이유도 없다며 으름장을 놓던 기조였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건 찬성해도 고의적으로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는 반대라고 하던 남자였다. 그러니 배고픔을 참고 저녁을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성토하듯 그녀를 식탁 앞에 데려다 놓더랬다.

“뭐가 조금밖에 안 남아?”

“아니. 한약 말이야.”

연조가 꿍얼거리며 대꾸하자 기조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있는 한약을 모조리 버리라는 지시였다. 연조가 놀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남편의 눈은 완고했고 죽어도 틈을 내주지 않을 기세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토한 거 사흘 전이야. 아직도 그 소리가 나와?”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연조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기조는 일어나 냉랭한 얼굴로 뒤돌았다.

“집어 든 거 다 포장하라고 했어. 그만 가자. 점심이랑 디저트 먹어야지.”

어렵게 뺀 살은 보이지도 않는 듯. 아니. 다시 찌우는 게 목적이라도 된 양 기조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보나마나 잔뜩 기름진 육류 요리일 게 뻔했다. 연조는 한숨을 푹 쉰 뒤 그를 따랐다.

* * *

점심으로는 브라질식 스테이크를 먹었다. 모든 부위의 스테이크를 한 덩이씩 썰어 접시로 내어오니 커다란 그릇이 세 접시가 넘었고 동시에 가니쉬와 스튜, 샐러드 따위를 종류별로 내어오니 그것도 대여섯 접시가 넘었다.

솔직히 다 먹지 못하는 건 그도 아는 바였고, 이렇게 무작스레 음식을 시키는 건 그녀를 다시 살찌우겠다는 그의 의지였다. 연조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살 빼면 너도 좋지 않아?”

“난 항상 네가 좋지.”

“그게 아니라 보통 남자들은 좀 마른 여자를…….”

“난 네가 좋아. 연조야. 마르든 뚱뚱하든 상관없어.”

스테이크를 한입씩 썰어 연조의 그릇에 덜어주던 기조는 마찬가지로 한입씩 썰어 시희의 그릇에도 덜어주었다. 토끼 모양의 당근을 오물거리던 시희는 아빠가 썰어준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시희야. 맛있지?”

“응! 아빠도 당근 먹어!”

시희가 유아용 포크로 당근을 쿡 찍어 기조에게 내밀었다. 기조는 고개를 숙인 뒤 입을 벌려 딸이 내민 당근을 먹었다. 시희가 방글거리며 웃었다. 연조는 기조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한숨을 푹 쉬며 시희의 잔머리를 정리했다.

시희는 올해 다섯 살. 세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는 어엿한 누나였다. 한 해 전부터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방과 후 유치원에서 마련한 수업 중 발레와 피아노 수업을 들었다. 네 살짜리 애가 무슨 발레에 피아노냐며 기조는 썩 탐탁지 않은 듯했지만 연조는 달랐다. 어쨌든 간에 또래가 듣는 수업이라면 무슨 수업이든 듣게 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시희는 발레를 좋아했다. 선생님도 시희의 팔다리가 길어 발레를 하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다섯 살에 발군의 재능을 보이는 딸이라니! 연조가 마다할 리 없었다. 소질이 있다면 무조건 시켜야 하고 없다고 해도 놀이 삼아 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학부모 다과회였다. 유치원은 살벌하기까지 하다는 학군에 있었다. 당연히 고위층을 이루는 상류층의 남녀가 짝을 이뤄 얻은 아이들이 주 원생이었다. 아니. 부모가 고위직에 종사하지 않는 아이가 없는 듯했다.

어쨌든 연조는 지고 싶지 않았다. 시희가 태어나고 나서부턴 사업을 확장시키며 분야와 갈래를 넓히기 시작한 기조는 언뜻 보기엔 견실한 사업가로 보였다. 특히 시희가 생기고 나서부턴 풍기는 분위기도 좀 달랐다.

두 눈만 형형하게 번뜩이는 짐승 같던 예전과 달리 기다랗고 날렵한 체구에 금욕적인 마스크는 그 견실한 사업가의 인상에 한층 더 신뢰감을 주었다.

“딴짓하지 말고 밥 먹어.”

시희의 머리를 다듬던 연조에게 기조가 잔소리했다. 연조는 어린애처럼 투덜대며 다시 포크를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슬하에 아이까지 둘 있는 남자치곤 과하게 잘생긴 얼굴이다. 어떻게 늙지도 않는지 젊고 푸릇했던 20대보다 화려함이 더욱 짙어진 느낌이었다.

“시희야. 엄마보고 스테이크 먹으라고 해.”

토끼처럼 아삭아삭 소리 내며 당근을 먹는 시희에게 기조가 말했다. 시희는 키득거리면서 연조 쪽으로 그릇을 밀었다. 별수 없이 연조는 포크로 안심 스테이크를 푹 찍어 입에 넣었다. 가장 지방이 덜한 부위였다.

* * *

“안녕하세요. 이연수라고 합니다.”

틀어 올리지 않은 기다란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떨어졌다. 반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여자는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하고 교양있는 사모님이었다. 들은 바로는 국내 유수 재벌가의 며느리라고 들었는데 기억이 흐릿했다. 삐딱한 눈으로 여자를 보고 있던 기조가 연조의 팔꿈치에 밀려 고개를 숙였다.

“강기조라고 합니다.”

“우리 아빠예요.”

빼먹은 말을 연조가 덧붙이기 전 시희가 재빨리 붙였다. 그들 앞에 선 여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방긋거리는 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시희. 아빠 많이 닮았구나.”

시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기조는 견실한 사업가인 척 변모하기 위해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던 미소를 입가에 자아냈다. 시희의 옆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여자아이가 제 엄마를 흘깃 보더니 보송보송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기조는 연분홍색 연습용 발레복을 입은 딸과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둘, 모두 긴 머리를 높이 묶은 뒤 틀어 올려 너끈한 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뜻 키 차이가 별로 나 보이진 않지만 시희가 손을 잡고 있는 아이. 그러니까 마주 선 여자의 딸인 유주가 한 뼘 정도 컸다. 시희도 자신을 닮아 늘씬하고 하얀 편인데 같이 선 유주에 비하면 시희는 다소 작아 보였다.

기조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유치원에서 마련한 학부모 다과회를 다녀온 연조가 이 여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던 것이 떠올랐다. 연조가 아닌 다른 여자에 관한 말이라면 길 가는 개가 짖는 소리보다 무의미하게 들리는 기조였다.

연조가 아니었다면 들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닫게 했을 이야기를 연조라서 귀에 담아주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다과횐지 뭔지 유치원 원장의 주최로 열린 모임에 다녀온 여자는 사흘 내리 이 여자가 얼마나 맵시 있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주절거렸다. 두서없이 늘어놓는 말 속에서 주제는 하나였다.

그 여자가 부러워.

부러울 이유가 없는데. 연조는 모든 걸 가진 여자이니까.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걸 들어 줄 테니까. 세상 어느 여자도 너만큼 아름답진 않은데. 괜스럽게 적개심이 돋았다. 딸의 단짝이라는 아이의 모친에게 가시를 내세운다면 그밖에 없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연조를 깎아내리는, 그리하여 그녀를 부식시키고 마모시키는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리하여 아주 작은 돌조각이라도 망설임 없이 으스러트렸다. 대상에 상관없는 적의는 과거의 자신을 향하기도 했고, 그의 갓난 딸을 향하기도 했다.

“유주한테서 많이 들었어요. 유주가 댁에 방문했을 때…….”

“어머.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우리 시희 친구인데 당연하죠. 그때 막내하고도 참 잘 놀아줬어요. 유주가.”

연조가 손사래를 치며 기연을 돌아보았다. 여자의 시선이 기조의 품에 안긴 기연에게 닿았다. 그녀는 익숙하게 기연을 귀여워하며 대화를 이었다. 기조는 아들을 고쳐 안으며 여자의 말을 들었다. 낯을 가리는 유주가 시희를 사귀어서 얼마나 친구가 많이 생겼는지. 그래서 시희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시희처럼 착하고 예쁜 아이가 딸의 단짝 친구가 되어서 정말이지 감사하다고 했다. 기조는 으레 붙이는 말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제 딸이 착하고 예쁘단 것만큼은 진실하다고 여겼다.

“다음에는 같이 놀러 와 주세요.”

연조가 방문을 부탁하며 미소 지었다. 기조는 얼마 전 아내에게 들었던 일을 되감았다.

요 며칠 전 시희가 유치원을 마치고 유주를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다고 했다. 평일의 한낮이라고 했으니 기조가 집에 없을 때였다. 저녁을 먹이고 보내려 했으나 유주의 집은 너무 늦게까지 친구의 집에 머무르면 안 된다며 운전기사를 보냈다.

직접 데리러 오는 것도 아니고 운전기사를 보내다니. 기조는 그때야 유주의 집이 어지간한 사업을 하는 중산층의 가정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유달리 사교성이 좋은 시희는 친구를 가장 활발히 사귄다는 일곱 살이 되기 전인데도 덥석덥석 친구를 데려와 제일 좋아하는 친구라며 인사를 시켰다.

낯가림이 강했던 기조의 어린 시절과 사뭇 상반된 모습이었다. 연조는 누굴 닮아 저렇게 사람을 좋아하냐고 물었지만 기조가 생각하기에 시희의 성격은 어린 시절의 연조였다. 사람에 대한 작은 적개심도 없는 아이는 흔한 시샘이나 질투조차 없이 무구했다.

“모쪼록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가 실례가 많았겠지만…….”

“아뇨. 정말이에요. 유주가 방문해 줘서 저희야말로…….”

유주의 모친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기조는 감흥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인영을 응시했다. 남자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바글거리던 인파가 두 쪽으로 쪼개지는 물결처럼 갈라졌다.

“어머.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하더니.”

연조와 가닥이 잡히지 않는 수다를 떨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소리 나지 않게 다가와 익숙하게 허리를 감는 모습이 누가 보아도 여자의 남편인 걸 알 수 있었다. 기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찍 끝났어.’ 들리지 않도록 저들끼리 속삭임을 주고받던 남자가 여자의 귓불에 부드러이 입을 맞추었다.

모친의 손을 잡고 있던 유주가 방방 뛰며 팔을 벌렸다. 언뜻 보기에도 기조와 키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는 어린 딸을 향해 너그러운 미소를 짓더니 한팔로 딸을 안아 올렸다. 주기적인 운동과 관리를 하는 것인지 기조가 보기에도 탄탄한 체구는 늘씬하면서도 미끈하며 탄력 있었다. 셔츠 안에서도 마디마디 탄력 있는 근육은 일상의 느슨함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증거. 조간신문의 앞면과 뉴스 헤드라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룹의 총수치고는 지나치게 젊고 기려한 남자였다.

“차태건입니다.”

아내의 허리를 한팔에, 딸의 엉덩이를 다른 한팔에 받쳐 든 남자가 완만한 미소를 지었다. 기조는 그 온유한 미소에 나른히 눈을 접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강기조입니다.”

* * *

다섯 살. 조막만 한 애들이 하면 뭘 한다고 강남의 대극장까지 잡아가며 공연 일을 잡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만 관람석에 앉기 직전 대기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인물들을 보며 연조가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긴장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시야에 걸리는 족족 그가 투자 건으로 미팅한 클라이언트 내지는 투자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병원 재단의 이사장부터 고위 공무원까지. 고작 다섯 살 먹은 아이들의 공연 일을 강남 대극장으로 잡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 대기실에 모인 학부모의 면면을 둘러다 본 기조는 열리지 않는 대기실의 문을 응시했다. 어수선한 사위 속에 넘치는 열기와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 방금 끝난 공연의 말미를 이어가는 듯 끊이질 않았다. 기조는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었다. 한 꺼풀씩 들뜬 기색을 비친 이들은 자녀의 이야기를 나누는 척, 저마다 다른 목적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듯했다. 그 속에서 연조는 긴장으로 굳어져 기조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나 이상하지 않아?”

“어디가?”

“전체적으로. 아까 유주 어머니 봤지? 엄청…….”

“네가 더 예뻐.”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더 맵시 있어 보여. 진짜야.”

기조가 연조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앞에서 다른 여자의 자랑을 하는 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였다. 심술이 났는지 입술을 삐죽거리는 연조가 손거울을 들어 연신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기조가 웨이브를 넣은 연조의 머리를 부드럽게 빗어 내렸다.

“애들 진짜 잘하더라.”

“응. 우리 시희가 제일 예뻤어.”

거의 기계적으로 딸과 아내를 찾는 모습에 연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기조는 진실만을 고백하고 있는 터였다. 그의 눈에 가장 예쁜 여자. 눈에 들어와 박히는 여자는 세상에 단둘밖에 없었다.

“어. 저기. 시희다.”

카멜 코트를 소공녀처럼 차려입은 시희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왔다. 연조는 달려가 시희를 안으며 볼에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을 받은 시희가 똑같이 연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모녀는 한동안 서로밖에 없는 듯 꽉 끌어안았다가 자기들끼리 속삭이기를 여러 번이었다. 기조는 뒤따르는 비서에게서 꽃다발과 아들을 바꾸어 안은 뒤 딸에게 달려갔다.

“이제 다 끝났어?”

“응.”

“나 어땠어? 아빠.”

“최고였어. 우리 딸. 정말 우리 딸밖에 안 보이더라.”

“정말?”

소회를 묻는 시희에게 기조가 재빨리 대답했다. 시희는 기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볼우물이 패도록 한아름 웃는 모양에 기조는 가슴이 터질 듯 했다. 아.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가 우리 딸이라니! 남들이 보면 우습다고 여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배고프지?”

“응!”

시희는 아침을 제외하면 종일 과일과 쿠키 종류만 먹었다고 했다. 연습 시간이 긴데다 공연 시간이 어중간해서 따로 점심을 챙길 시간이 없다는 게 공복의 이유였다. 두 살배기 동생에게도 공연의 감상을 물어대는 딸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저…….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드시겠어요?”

유주를 챙긴 유주의 모친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기조는 걸음을 멈추고 연조를 흘깃 바라보았다. 볼이 발그레 물든 연조는 곧바로 기조를 흘깃거렸다. 반색하는 수준이 거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유주의 모친은 학부모 다과회에서 아이돌급의 인기라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는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그럴까?”

넌지시 자신을 떠보는 연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표정을 대놓고 구길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대체 좋아하는 이유마저 납득할 수 없는데. 연조는 좋아 죽는 것 같았다. 기조는 연조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제 엄마처럼 반색하는 딸을 슬쩍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주의 부친이 예약했다는 레스토랑은 극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텔에 위치해 있었다. 호텔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 치고 모던한 감각의 인테리어와 조명이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길쭉길쭉한 팔다리 덕에 조숙한 인상을 풍기던 유주는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제 부친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시희야, 여기 앉아.”

먼저 착석하여 제 앞자리를 가리키는 유주가 시희를 향해 활짝 웃었다. 두 아이 모두 신이 났는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기조는 떨떠름한 빛을 삼키며 유주의 부친 앞에 앉았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시희가 가리는 게 없어 그런지 일전에 유주와 함께 점심을 하러 왔을 때 아주 잘 먹었거든요.”

유주의 부친이 시희에게 점심을 먹인 적이 있었나? 고개를 돌려 연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맞닥트려지자 연조는 눈가를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조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외를 응시했다.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씨받이니, 대리모니 증권가에서 도는 민망한 소문과 달리 자연스러운 한 쌍이었다. 유주의 모친을 보는 남자의 눈은 갓 결혼한 신랑의 눈처럼 다정했다. 유주의 모친 또한 마찬가지였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양이 지라시로라도 듣기 민망한 난잡한 소문 속에서 결혼한 남녀답지 않았다.

하긴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은 일 아닌가. 해신 그룹 총수와 안주인 간의 사이가 실제로는 어떤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시희에게 극진한 것만은 감사했다.

“아빠. 유주네 아빠가 여기서 나 보글보글한 음료수 사 줬어. 복숭아 맛이 났는데…….”

시희가 기분이 좋은지 기조를 올려다보며 연신 말을 붙였다. 기조는 딸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시희의 이마에선 땀이 살짝 묻어났다. 그는 딸아이에게서 코트를 벗긴 뒤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당겨 주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딸아이를 극진히 대해 주셔서…….”

“아뇨. 시희가 저를 잘 따라줘서 고마웠죠. 그렇지? 시희야. 다음에도 유주랑 아저씨한테 놀러 와. 보글보글한 음료수 또 사 줄 테니까.”

유주의 부친에게 이름이 불린 시희가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체 이 집 여자들은 저 집안사람하고 눈만 마주치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는 병이 있나. 기조는 치미는 염증을 꾹 누른 뒤 입꼬리를 말았다. 켜켜이 스미는 감정을 곧이곧대로 게워낼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한 요리가 나왔다. 통으로 구운 칠면조와 관자, 바질과 페퍼, 허브 따위를 곁들여 훈제한 흰살생선 요리가 메인인 코스였다. 모던함과 캐주얼함을 표방한 레스토랑답지 않게 손에 잡히는 라기올 나이프와 테이블 웨어 모두 고급이었다.

기조는 여전히 나이프를 쥐는 일이 서투른 연조를 대신해 생선 요리를 연조의 몫으로 덜어 주었다. 칠면조는 대기하고 있던 서버가 다가와 먹기 좋을 크기로 잘랐다. 식후주로 포트 와인을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보글보글한 음료수’ 다시 말하면 알코올이 들어가 있지 않은 샴페인이 제공되었다.

연조는 제 몫으로 기조가 덜어준 칠면조를 한입씩 먹으며 유주의 모친과 대화를 나눴다. 긴 머리에 투명한 피부가 결혼 10년 차의 주부로 보이지 않았다. 우윳빛 매끈한 피부와 엉킴 하나 없는 긴 머리. 나붓한 속눈썹과 사과 빛 뺨. 유주와 꼭 닮은 눈매가 우아하고 귀티났다.

“입에 좀 맞으세요?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지 못해서 저희 가족이 자주 오는 레스토랑으로 모셨는데 괜찮으실지…….”

유주의 어머니가 공손한 말씨로 말을 붙였다. 연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염려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고 했다. 저녁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넘쳤다. 애초에 공통분모가 그밖에 없었다.

남편들이 사업을 한다고 해도 분야가 다르니까. 엄밀히 말하면 유주의 부친은 기업가였고 기조는……. 어쨌든 해외 쪽의 일을 포함한다고 해도 마피아 내지는 조폭으로 생각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럼 강유와 승유는 학원에 있는 건가요?”

“아뇨. 집에서 과외 선생님을 만나고 있어요. 지금쯤 올 때가 되었는데……. 아! 저기 오네요.”

극장에서도 뵈지 않는 두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한창 학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두 아들이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비치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유주의 모친이 환한 얼굴로 아들들을 맞이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연조는 화들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초등학생들이라고 들었는데 키는 엉겁결에 일어난 그녀보다 훨씬 컸다. 170cm? 큰 아이로 보이는 조숙한 소년이 그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소년이라기에는 조숙한 생김새가 부친과 꼭 닮은 생김새였다. 둘째로 보이는 소년 또한 부친을 닮긴 했지만 외탁한 흔적이 짙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울지 않고 있는 기연을 돌아보았다. 기연이도 크면 저렇게 많이 클까? 요즘 애들이 불쑥불쑥 많이 자란다고는 들었는데 초등학생까지 저렇게 클 줄은 몰랐다.

“아……. 저희 애들이 좀 크죠? 아빠 닮아서…….”

유주의 모친이 낯을 붉히며 웃었다. 겸연쩍은 미소가 가득한 얼굴에 대고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당황한 시선을 감추었다.

“키가 크면 좋죠. 두 아드님이 이렇게 장성하니 든든하시겠습니다.”

다행히도 기조가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뒤늦게 등장한 오빠의 등장에 유주가 더 싱글벙글해졌다. 두 오빠 모두 어른만큼 키가 커서 그런지 유주를 다시 보자 막내티가 확연히 났다. 덕분에 요즘 들어 시희의 오빠 타령이 이해되었다. 한 달 전 시희는 유주와 함께 유주의 아빠를 만나러 해신 그룹의 사옥을 찾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이 철렁였지만 시희는 배시시 웃으며 엄청 잘생긴 유주의 아빠가 보글보글한 음료수도 사주고 솜사탕도 사 줬다며 자랑을 했다. 아마 그때 유주의 오빠들을 본 모양인지 돌아와 자기도 오빠를 낳아달라며 억지를 부리던 게 엊그제의 일.

오빠를 대체 어떻게 낳느냐며 기연이가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라 일러도 시희는 듣지 않고 오빠 타령을 해댔다.

“시희야. 안녕.”

“안녕. 승유 오빠.”

보글보글 음료수에 빨대를 꽂고 마시던 시희가 승유의 등장에 허리를 폈다. 눈에 띄게 다소곳해진 자세와 부끄럼이 가득한 얼굴이 기조의 품에서 응석을 부리던 때와 천지 차이였다. 아주 시집가도 되겠네란 빈정거림이 나올 정도로 달라진 시희의 태도에 웃음이 났다.

간단하게 샐러드와 요거트를 주문한 승유가 식사를 끝내가는 시희에게 요거트를 권했다. 평소 유제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시희였기에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던 연조는 흔쾌히 받아드는 시희를 보고 그놈의 오빠 타령이 이해가 됐다. 더불어 급속도로 다소곳해진 이유까지도.

“시희는 요거트 안 좋아하지 않나?”

문득 관자놀이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연조는 고개를 돌려 딱딱한 목소리로 묻는 기조를 바라보았다. 기조의 물음에 시희가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언제? 나 요거트 완전 좋아하는데?”

퉁명스럽게 되묻는 음성이 새침했다. 기조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요거트를 왕창 떠먹고 있는 딸을 향해 한 번 더 물었다.

“아침에 아빠가 복숭아랑 멜론에 찍어 먹으라고 요거트를 주면 복숭아랑 멜론만 먹잖아.”

“그건, 그건…….”

“꿀을 안 뿌려줘서 그래요. 그렇지? 시희야.”

문득 맞은편에 앉아 요거트를 한입씩 먹고 있던 승유가 불쑥 끼어들었다. 기조가 퍽퍽한 눈으로 돌아보자 승유는 모친을 닮아 예쁘장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소년답게 청량하고 싱그러운 미모가 미소에 도드라졌다. 누구도 화를 낼 수 없게 만드는 미소였다.

“꿀을 뿌려주면 시희가 좋아할 거예요. 아저씨.”

공손하게 대답하는 승유를 보는 기조의 눈이 사뭇 차가웠다. 연조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기조는 냉랭한 눈을 거둔 뒤 디저트로 나온 셔벗을 시희에게 내밀었다. 이젠 요거트는 그만 먹고 아빠가 준 셔벗이나 먹으란 뜻이었다.

문득 그들의 맞은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유주의 모친이 입을 가린 채 작게 웃고 있었다.

* * *

“우리 기연이. 레스토랑에서 안 칭얼거리고 얌전히 있어 줘서 고마워.”

환경이 바뀌면 통 얌전히 있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기연이 유독 오늘만은 얌전했다. 이렇게 어린 아기는 오랜만이라며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는 말에 유주의 모친에게도 고이 안겨준 기연이었다.

시희와 달리 예민한 기연은 예민한 만큼 낯을 가리는 일도 심해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 쓰던 보모조차 기연이 따르는 보모 한 명으로 통일했다. 그런데 오늘은 유주의 모친 품에서도 무척 조용했다.

웬일로 이렇게 얌전할까. 의심이 들 정도로 새근새근 잘 자는 기연을 연조가 들여다보았다. 기연은 시희와 세 살 차이가 나는 아들이었다. 여러모로 둘째를 갖는 일은 피하고 싶어 회피하던 중 들어선 아이라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연이 찾아오지 않은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게 됐다.

“기연이 자?”

피곤한지 유주네와 헤어지자마자 차 안에서 잠이 든 시희를 안아 든 기조가 연조에게 물었다. 연조는 날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기연을 안았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 아이들 방에 불을 켰다. 시희를 기연의 옆 침대에 눕힌 뒤 일어난 기조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는 기연을 들여다보았다.

양팔을 벌린 채 나비잠을 자는 아들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기조는 아이의 포동포동한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연조의 허리를 안고 침실을 나왔다.

“피곤하지?”

아일랜드 바에 앉아 찬물을 따르던 기조가 소파에 널브러지듯 쓰러진 연조를 바라보았다. 저녁을 하는 동안 마셨던 셰리주가 지나쳤는지 아직도 정신이 흐릿했다.

“응. 내일 주말이라 다행이야.”

연조가 나른한 얼굴로 속삭였다. 찬물을 들고 온 기조가 연조에게 권했다. 연조는 망설이다가 일어나 찬물을 조금 마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시희가 유주 작은 오빠 좋아하는 거 웃기지? 조막만 한 게 저도 여자라고 완전 다소곳해지더라.”

연조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덕분에 기조는 또 똥 씹은 얼굴이 되어선 그녀의 곁에 퍼질러 앉았다.

“시희는 시집 안 보낼 거야.”

“어머.”

“정말이야.”

“그건 강기조 씨가 결정하는 게 아닌데?”

농기 가득한 얼굴로 키득거리자 기조가 눈썹을 좁혔다. 연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기조는 좁혔던 눈썹을 꿈틀거리며 시희가 잠든 침실의 문을 바라보다 연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딱 이대로만 지냈으면 좋겠어. 너랑 나. 시희. 기연이.”

연조는 남편을 응시했다. 반듯한 칼라에 감미롭고 그윽한 셰리주 향기가 묻어났다. 어깨를 감싸지 않은 손이 연조의 하얀 턱을 더듬었다. 힘줄이 불거진 손등은 조악하면서도 우아해 보였다. 무얼 할 작정인지 남자는 1억에 달하는 고가의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둔 뒤 다시 연조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성애에 대한 욕구가 느껴지는 손길이 물렁한 귓불과 귓바퀴를 더듬었다. 즉각적으로 신호를 알아챈 연조가 엉덩이를 뒤로 물려 슬그머니 손길을 피했다. 곧바로 남자의 입술이 쫓아와 립스틱이 닦이지 않은 입술을 베어 물었다.

한 번에 겹쳐 든 숨결이 입안으로 조급하게 흘러들었다. 목덜미에 묻은 니치 향수의 깊은 우디 향이 콧속으로 스몄다. 급작스레 맞닿는 살결에 연조가 파드득거리며 그를 밀어냈다. 화장대에서 공들여 붙인 속눈썹이 달랑거릴까 걱정됐다.

“지금?”

“싫어?”

“너, 너무 갑작스러운데?”

“오늘 해도 되잖아.”

“꼭 오늘…….”

“주에 다섯 번은 하기로 했는데 요새 피곤하다고 네 번으로 줄였어. 그런데 어제도 안 했고 오늘도 안 하면 언제 채우냐고.”

말문이 막혔다. 그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보통 몇 번을 해야 애 둘을 키우는 부부에게 적합한지 알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댔던 신혼을 생각하자면 주 4회 관계를 갖는 지금도 적기는 했다.

그때는 시희를 배고도 치근덕거리며 엉켜 들려 했으니까. 시희를 출산하고도 붙어먹지 못해 안달 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기조는 절간에서 도를 닦는 수도승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연조는 그를 때때로 감당하기 버거웠다.

어쨌든 나이가 들면 성욕이 줄어든다고. 듣자 하니 횟수가 줄어들면 자연스레 욕구도 줄어든다고 했다. 주에 갖는 횟수를 줄이면 기조도 자연스레 그쪽으론 좀 덜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지금까진 겪은 바로는 도리어 골만 잘 낼 뿐 효과는 없었다.

“피곤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 말고 네가. 술도 덜 깼잖아.”

기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조는 연신 말문을 더듬으며 그의 가슴팍에 손을 댔다. 밀려나지 않는 흉근은 예나 지금이나 탄탄했다. 연조는 손바닥 아래서 느껴지는 근육질의 흉근을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아주 작은 나태함도 허용하지 않는 남자였다. 무식하게 저돌적이던, 혈기 왕성하던 건달 시절에도 운동이라면 새벽같이 일어나 할당량의 운동을 소화했다고 했으니까. 잠을 좀 덜 자더라도 그것만큼은 빠짐이 없었다.

“요즘도 새벽에 운동해?”

엄밀히 말하자면 아침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간에 기조는 일어나 홀로 몸을 풀었다. 푸시업부터 벤치프레스까지. 부위별로 근육의 밀도를 높이려는 운동은 섹스와 함께 그가 가장 공들여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왜?”

“아니. 그냥.”

“계속하고 있어. 하고 나서 애들 아침도 챙기고.”

기조가 무성의하게 읊조리며 연조의 턱에 입을 맞췄다. 반지를 낀 손이 브래지어 안으로 들어왔다. 밀려드는 손길이 구렁이처럼 소리 없었다. 연조는 젖꼭지를 할퀴는 손가락을 느끼며 비음을 흘렸다. 그것을 동의로 알아들었는지 이후로는 거침이 없었다. 젖무덤을 빙글빙글 돌리며 가슴을 쥐었다가 피는 일련의 행동들은 정욕으로 성급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입술을 물려 들러붙는 행동에 연조는 눈썹을 좁혔다. 근육으로 부푼 가슴팍이 그녀의 말랑한 젖가슴을 뭉갰다.

“응, 흣…….”

미끄덩거리는 혀가 입안으로 들어와 농탕을 쳤다. 비음을 흘리던 연조가 익숙하게 얽어드는 혀를 밀어내려 끙끙거렸다. 아무리 급해도 안 씻고 섹스하는 건 질색이었다. 결국, 그의 팔뚝에 주먹질까지 하며 입술을 떼어냈다.

“씻고 해.”

눈을 흘기며 그를 떼어내자 기조가 곧바로 양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연조는 소파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욕실로 걸어갔다. 기조가 그 뒤를 따랐다.

“너 먼저 씻으려고?”

“같이 씻어.”

진주 귀걸이를 뽑아 정리하던 연조가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는 이미 헐거운 타이를 풀고 있었다.

* * *

물기에 젖은 등에 판판한 가슴팍이 맞닿았다. 부옇게 차오르는 욕실의 부스 안에서 둘은 한동안 그윽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를 닦고 머리를 물에 적신 뒤 얼마 되지 않았던 연애 시절처럼 서로의 몸을 더듬었다.

체구 차가 극심한 둘은 나란히 설 때나 마주 설 때나 어른과 아이처럼 또 남자와 소녀처럼 비쳤다. 실로 그런 커플은 본 적이 없기에 유주의 모친과 부친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평소에는 190cm 넘는 기조를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 앞에 서도 으레 그들은 그런 모습이었기에 체격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기조 외에는 다른 남자를 접할 일이 없어, 외출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기조가 부리는 부하 직원들부터 그가 붙인 운전기사까지. 어지간한 운동선수 뺨치는 키에. 체격은 얼마나 좋은지. 다들 씨름 선수를 하다 온 것 같았다.

굳이 기조처럼 키가 2m에 달하는 장신이 아니라고 해도 어깨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남자들 사이를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180cm 이상의 남자들이 평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조의 손이 연조의 얄따란 허리를 잡았다.

“이제 다이어트 하지 마.”

“……응.”

“허리에 살이 다 빠졌어.”

“좋지 뭘.”

“싫어.”

기조가 어린애처럼 입술을 비틀었다. 고개를 숙인 그가 어깨에 입을 맞춘 뒤 옆구리를 부드럽게 둥글리며 밋밋한 아랫배를 만졌다. 덧그리는 손길이 달콤했다. 음부를 찌릿하게 데우는 감각에 연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조야.”

“애 뱄을 때 통통하게 물이 올라서……얼마나 예뻤는데.”

“뭐?”

“가슴이랑 엉덩이 말고도 잡을 데가 많았다고. 허벅지도 통통해서 좆을 넣고 비벼도 좋고.”

“넌 진짜…….”

“조붓한 게 꼭 네 구멍 안에 있는 느낌…….”

“어우. 진짜!”

뒤돌아 어깨를 찰싹 때린 연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키득거리며 연신 자신을 들이밀었다.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이미 발기한 성기를 연조의 엉덩이에 비비던 남자가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티 나지 않게 피하며 가슴을 주무르는 것만 허용하던 연조가 마지못해 키스를 허락했다.

“응…….”

뜨끈한 살덩이를 비집고 나오는 교성이 농익은 동시에 달짝지근했다. 아랫배를 어루만지던 기조의 손이 젖은 음모를 문지르며 아래로 내려갔다. 뜨끈한 열기로 지글거리는 음부가 살짝 들리며 가랑이 사이가 벌어졌다. 기조는 그녀의 등을 강하게 안으며 허리와 엉덩이 사이 잘록하게 팬 골에 성기를 문댔다. 기립한 성기가 움푹 팬 지점을 몇 번이고 치대다 아래로 내려가 동그란 엉덩이를 쿡쿡 찔렀다.

“아, 흐읏……. 음, 아!”

연신 존재감을 알려오는 귀두에 연조가 가볍게 몸을 떨며 수도꼭지를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내빼지는 엉덩이가 우스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힘을 꼭 주고 있는 외음부는 그보다 더한 감각을 원하는 양 옴찔옴찔 떨리고 있었다.

“하.”

“아으응…….”

기다란 물건이 다물린 외음부를 찔렀다. 연조는 스스로 음순을 헤집고 벌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굴곡이 분명한 근육 덩어리들이 연조의 등에 밀착되어 쾌감을 돋구었다. 언제나 이 순간이 좋았다.

그에게 감싸여 완전히 파묻히는……. 이제는 어제가 된 저녁. 맞은편에 앉았던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늘씬한 체구에 맵시 있는 여자였다. 다소 연조에 비해 키가 크기도 해서 또래의 여자들과 거니는 순간이면 무리 중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인데도 제 남편과 붙어 앉아 있으니 작은 다람쥐 같았다. 그 여자가 보기에도 연조와 기조는 그런 모습일까. 새삼스럽게 큰 남자가 그녀의 가슴을 한아름 움켜 잡았다.

“그만, 그만 넣어줘…….”

입안이 탔다. 음부가 찌릿거리며 발가락이 곱아 들었다. 아찔한 만큼 머리도 어지러워서 버티고 선 것도 힘들었다. 연조의 부탁에 기조가 입술을 미끄러트렸다. 갈라진 외음부와 비문을 핥고 싶었다.

“빨고 싶어.”

“…….”

“박기 전에.”

* * *

욕실을 나와 부부 침실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꽤 긴 시간 서로를 핥았다. 달콤한 향이 나는 스크럽 제품으로 기조를 꼼꼼히 씻긴 연조는 기조 또한 그녀를 꼼꼼히 씻고 부드러이 쥐었다가 문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달랑 안긴 채 침실로 옮겨졌다. 일련의 행동들이 그녀를 겁박하고 강제로 취하던 날의 그를 떠올렸다. 그런데도 이제는 소름 돋지 않았다. 한 자락의 서늘함 또한 없었다. 그 시절의 기조가 가엾고 측은할 따름이라……. 제게 이해받지 못하고 또한 사랑받을 수 없어 억에 잠겼던 소년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리라.

“하으, 읏!”

밑구멍을 빨고 싶다며 부러 삽입을 미루던 기조가 들린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귀두에서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쿠퍼액을 손가락에 묻힌 그가 이미 젖은 구멍을 더듬었다. 공기 중에 음부가 드러난 연조는 왠지 발갛게 익었을 것 같은 구멍을 떠올리며 할딱거렸다. 이윽고 긴 검지가 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기조는 다른 손으로 미끄덩거리는 음부 전체를 매만지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의 물건에 맞춰 조형된 양 벌어진 소음순과 구멍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부드럽게 피스톤질하며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는 교성을 들었다.

“앙, 아……. 하아응…….”

애액으로 범람하는 구멍에서는 이미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조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환히 들린 음부를 바라보았다. 좆이 벌떡거리며 환장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는 구멍 안을 느리게 휘젓다가 내벽 안에 도톰히 부푼 부분을 긁고 튕기며 자극했다. 쿨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애액이 찔끔찔끔 샐 때마다 음핵이 불거지며 동시에 단단해졌다.

연조가 덜덜 떨며 골반을 뒤틀었다. 그는 들썩이는 엉덩이를 바로 잡은 채 손가락의 출납을 반복하며 입술로 음핵을 둥굴렸다.

“아, 아으으! 흐응! 아, 아! 기조야. 기조야! 제발!”

연조가 고개를 젖힌 뒤 발발 떨었다. 느리게 왕복하던 손가락이 빨라지고 있었다. 거침없이 안을 튕길 때마다 엉덩이가 더욱 치켜 들려지며 물이 튕겼다. 연조가 도리질을 하며 그를 밀어냈다. 기조는 앞뒤로 휘젓다가 양옆으로 흔들며 음핵을 쭉쭉 빨았다. 연조가 부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제 음부에 고개를 묻고 음핵을 쭉쭉 빠는 남자의 머리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아윽! 아아!”

눈물이 터졌다. 발끝부터 치미는 오르가슴이 머리 끝까지 혈관을 타고 올라와 터질 것 같이 만들었다. 견딜 수 없는 감각에 자지러지며 마지막으로 물을 쏟을 때였다. 기조가 그것을 받아마시려 궁둥이에 턱을 대고 있었다.

“흐으윽! 하지 마!”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어 낼름낼름 핥는 남자를 기겁하며 밀어냈다. 그러나 기조는 엉덩이를 꽉 끌어안고 마지막 한 점까지 핥을 기세로 소음순과 대음순을 핥았다. 남자의 말캉한 혀가 구멍 안으로 침범했다.

다시 한번 찾아드는 가려운 감각에 구멍을 옴찔거렸다. 그리고는 더 희롱당하기 전에 재빨리 소리쳤다.

“나도, 나도 해줄게.”

“난 네 걸 더 핥고 싶은데…….”

“이미 했잖아.”

“그럼 내 위로 올라와.”

나지막한 목소리에 연조가 움찔 떨었다. 머뭇거리며 그를 보고 있으려니 참을성 없는 남자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 뒤 제 배에 올려놓았다. 희붐한 불빛 속에 드러난 남자의 입 모양이 외설적인 단어를 입에 물었다.

‘69.’

낯이 화드득 달아올랐다.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의 손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내린 뒤 다시 낯 뜨거운 소리를 지껄였다.

“보지 빨게 해줘야지.”

* * *

방망이 같은 성기를 입에 물고 세게 빨아들였다. 해가 지나도 별 나아지지 않는 실력이건만 기조는 참 좋아했다. 연조가 열심히 하는 탓도 있었다. 애무와 전희에는 재능이 없는 타입이라 평소에는 시중을 받는 양 가만히 누워 있었으나 오늘은 그의 위에 엎어져 물건을 빨고 있었다.

“응, 으으! 하아…….”

막대사탕을 붙잡고 빠는 양 서툴게 성기를 빨고 있을 때였다. 한층 과감해진 혀가 조붓한 구멍 안을 휘저으며 핥았다. 음핵을 꾹꾹 누르며 긁는 손길이 얄미웠다. 연조는 뿌리 아래 달린 주머니의 주름까지 꼼꼼히 핥으며 선단을 애무했다. 음부에 코를 박고 있는 남자에게서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앞뒤로 기둥을 문지르자 반투명한 씨물이 튀어 올랐다. 연조는 귀두 끝을 혀로 문대며 자극했다. 애써 그를 사정하게 했다고 좋아할 무렵 구멍 안을 파고들던 남자의 혀가 외음부 전체를 넘어 비부까지 핥으려 했다.

“아아! 뭐하……! 읏!”

놀란 연조가 잡힌 엉덩이를 뒤틀었다. ‘싫어!’ 제법 우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남자의 샅을 짚고 선 그녀가 손에 잡히는 대로 살갗을 긁었다. 핥을 수 있는 모든 곳을 핥은 남자가 아쉽다는 양 마지막으로 음핵에 입을 맞추고는 엉덩이를 놓아주었다.

“너, 너……!”

눅지근하게 젖은 신음 소리가 여전히 밭은 숨과 함께 섞여 입 밖으로 샜다. 제가 듣기에도 그 소리는 이상야릇했다. 한껏 어깨를 움츠린 채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낮게 웃던 기조가 옹송그린 연조의 손목을 잡아 제게로 끌었다.

“아직, 아직 박지도 않았는데 어딜 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읊조림이었다. 연조는 치한에게 손목이 붙잡힌 것처럼 앙알대며 풀썩 쓰러졌다. 왠지 모를 기대감에 어깨가 들썩거려졌다. 남자의 손이 동그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연조는 몽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식후주로 마신 포트 와인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작은 접촉에도 쉽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방금만 해도 그랬다. 사실 원하지 않는 곳까지 들추어 핥는 일이야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연조로서는 끔찍한, 닿기 싫은 곳까지 파헤치려 지분거리는 일은 꽤 잦아서 주의를 주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기조는 조심하다가도 결국에는 제 성에 찰 만큼 그녀를 지분거렸다.

그러니 이리 놀라울 일도 없는 일이다. 살갗이 좀 닿는다고 심장이 두근댈 게 뭔가. 이제 결혼 10년 차에 알 만큼 서로를 알아 더는 새로울 것도 없는 상대인데. 그런데도 기조를 볼 때마다 때때로 터질 만큼 낯이 달아올랐고 귓가에 자맥질 소리가 들릴 만큼 세차게 맥이 뛰었다.

기조도 그럴까? 기조도 그녀를 바라볼 때면 가끔, 가끔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여자로 보일까.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앙! 흐읏!”

엉덩이의 둥근 선을 더듬던 남자가 연조의 양 젖꼭지를 쥐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당겼다. 연조는 할딱거리며 그의 손길을 받아냈다. 앙알대며 터져 나오는 교성이 음란했다. 연조는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그의 선단을 움켜잡았다.

“으응, 흐으……. 해, 해줘.”

“뭘?”

“아아. 기조야. 제발…….”

이리저리 엉덩이를 흔들며 구멍 안으로 그의 성기를 집어넣으려 애를 썼다. 속부터 애를 태우며 올라오는 간지럼에 명치까지 근질거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며 전희의 시간을 즐기고 있던 기조가 애액으로 홍수가 난 음부를 더듬으며 속삭였다.

“박아달라고 해봐.”

“흐윽……. 바, 박아줘.”

“내 보지에.”

호흡까지 음란한 단어가 그의 붉은 입술에 올랐다. 연조는 놀라 그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단어를 곱씹었다. 거부하려 도리질 치자 그가 허리를 물렸다. 잡고 있던 성기가 쑥 빠져나갔다. 미칠 것 같았다. 울컥거리며 애액을 흘리는 구멍은 그의 굵은 성기를 먹고 싶어 안달을 내는 중이었다.

연조는 훌쩍이며 그를 노려보다가 작게 속삭였다.

“박아줘. 내 보지에.”

“좋아.”

물러났던 성기가 구멍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미끈거리는 안은 그의 성기 모양에 맞춰져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가 공들여 맞춘 틀처럼. 환장하게 좋은 구멍의 내부가 질척거리며 들러붙었다.

“흐읏…….”

한 번의 삽입으로 발끝까지 짜릿해진 기조가 묵직한 신음을 뱉었다. 허공에 다리가 들린 연조가 발버둥치듯 다리를 흔들었다. 기조는 그녀의 다리를 제 허리에 단단히 끼운 채 추삽질을 시작했다. 샅과 샅이 부딪히는 소음이 난잡했다. 질퍽하게 젖은 살갗이 부딪힐 때마다 연조가 흔들렸다. 안을 채운 내부의 굵다란 성기가 뿌리 끝까지 박힐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돌덩이 같은 어깨와 가슴팍을 더듬었다. 미칠 것 같았다.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지금의 이 감각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연조는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목에 고개를 묻었다. 허리를 흔들며 박을 때마다 구멍 안으로 흘러드는 씨물이 사랑스러웠다.

연조는 응얼대며 연신 그를 불렀다.

“기조야. 기조야. 아, 아……! 좋아, 좋아! 흐으윽…….”

내벽을 난도질하는 성기에 맞춰 숨이 터져 나왔다. 연조를 들어 올린 남자가 허벅지에 그녀의 엉덩이를 올려놓고 얕게 박음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젖가슴을 그의 가슴팍에 문대며 흔들었다. 정신이 흐릿해졌다. 고개를 박고 있던 연조가 그의 어깨며 쇄골, 목덜미 따위를 혀로 핥으며 조금씩 씹었다. 뿌리 끝까지 박힐 때마다 시야가 가물거렸다.

할딱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아랫입술을 핥자 그가 입술을 맞춰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젊고 잘생긴 얼굴이 묘하게 앳돼 보이기까지 했다. 사과 빛으로 달구어진 뺨이 소년처럼 사랑스러웠다. 연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안으로 밀어두었던 속삭임을 내뱉었다.

“너도, 너도 좋아?”

혀끝이 닿을락 말락 한 상태였다. 연신 골반을 튕기며 투실투실한 엉덩이를 주무르던 기조가 움직임을 늦췄다. 연조는 비음이 실린 읊조림을 추스르려 마른침을 삼켰다. 남자는 그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물어왔다.

“섹스가?”

“내가.”

황당한 물음이었다. 기조는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앙알거림을 삼키려 안간힘을 쓰는 아내를 깨닫고 더욱 허리를 바쁘게 놀렸다.

“무슨 말이야.”

“내가, 아직도 내가 좋으냐고. 아응! 아, 아! 아읏!”

볼록 도드라진 곳을 툭툭 치며 뭉개자 연조가 부르르 떨었다. 자지러지는 소리가 고양이 같았다. 기조는 쾌감에 덜덜 떠는 여자를 꽉 안은 뒤 귓불을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연조는 그의 답을 기다리며 목을 감았다.

“그런 걸 질문이라고…….”

귓불을 물고 자근거릴 만큼 자근거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아래를 치받는 움직임은 거셌다. 연조는 물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환장해서 네 궁둥이에 들러붙는 건 난데…….”

“아, 아으으! 하응!”

“말했잖아. 난 애들 아빠보다 네 남자로 사는 게 어울리는 남자라고.”

둘씩이나 되는 애들의 밥을 차리고 젖먹이 아기의 분유를 흔들어도 강기조는 강기조다. 송연조를 갖지 못해 비루먹을 개자식이 되었던 그 강기조였다. 연조가 설마 이걸 잊을 리 있을까 싶었다.

그가 아무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애들의 아빠라고 해도 본질은 연인인데. 그녀의 남자인데. 여전히 내가 좋으냐니. 내가 네게 여자로서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들려서 허탈했다. 그녀의 남자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조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앞에 설 이유가 없었다.

“말해 줘.”

가녀린 음성이 연약하게 떨렸다. 기조는 여자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여전히 씹어 먹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기조는 잘록한 허리를 감아 당겨 안은 뒤 시선을 맞추었다.

“환장할 만큼 좋아.”

물기로 축축하던 눈동자가 엷게 떨렸다. 기조는 그 사랑스러운 눈가에 입을 맞춘 뒤 굳혔던 표정을 풀었다. 연조는 가만히 그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품에 안겼다. 기조는 작은 몸을 안고 다시 한번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쉬지 않는 용두질에 연조가 자지러졌다.

파정의 끝에 둘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오래도록 키스했다. 상대가 흘리는 모든 체액. 땀과 눈물 같은 진득한 분비물이 한없이 달콤했다. 달콤하여 깨져 죽으리라. 범람하는 감각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채워져 끝없이 일렁거렸다.

연조는 잠들기 전, 그 속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속삭이지 못한다면 자랄 수 없는 한 줄기를 외마디 고백 삼아 나직이 속삭였다.

“사랑해, 기조야.”

들었을까? 그것을 기조가 들었을까. 잠이 들어 닿지 못하고 고스란히 흩어졌을까.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었다. 고른 숨소리와 일정한 맥만이 들려와도 괜찮았다. 사랑을 고백할 시간이라면 그들에게는 언제나 충분하니까. 그러나 연조는 한 번 더 흘려보내기로 했다.

“사랑해, 기조야.”

영원히, 영원히 사랑해.

눈을 감았다. 따끈따끈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뒤 가물거리는 꿈속으로 의식을 맡겼다. 미동하지 않던 기조의 입꼬리가 엷은 호를 그린 것은 그 무렵이었다.

* * *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부부는 정오의 햇살을 받으며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기연이 태어나며 마당이 있는 복층 주택으로 이사한 그들은 1층은 거실과 아이들의 방으로 만들었고 2층은 부부만의 침실로 꾸몄다. 게다가 입주용 가사 도우미와 보모들. 아이들 전용의 운전기사들의 휴게실을 꾸미느라 부지가 꽤 많이 필요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연조의 말에 단번에 주택과 부지를 매입할 것을 결심한 기조는 인구 포화로 빡빡한 수도권에서도 너르고 전망이 좋은 주택을 매입해 기연이 태어나기 전 단장했다.

덕분에 활동량이 많은 시희는 주말만 되면 마당을 뛰어다녔고 기연은 마음껏 빽빽 울 수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질펀하게 구른 부부는 정오가 넘도록 뒤척거리며 침대를 구르다 시희의 울음소리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시희야, 왜 울어? 응?”

주말이면 시희를 봐주는 도우미 선생이 울먹거리는 시희의 뒤에 있었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지금까지 통 울지 않는 딸의 서러운 얼굴에 연조는 놀라 선생을 쳐다보았다.

“아. 그게 별게 아니고…….”

“엄마. 흐윽, 흐윽……. 아빠 사자가 죽어버렸어.”

시희가 두 눈을 발갛게 물들인 채 코를 훌쩍였다. 애들의 엄마란 것도 잊고 자정 동안 질펀하게 침대며 바닥을 뒹군 탓에 시희의 울음에 곧바로 반응하기 힘들었다.

“아빠 사자?”

“으응…….”

시희가 안아달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연조는 퍼뜩 가운의 옷깃을 여민 채 시희를 살그머니 안았다. 그러다가 대충 닦고 잠이 들었던 새벽을 떠올리며 다시 시희를 내려놨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시희가 버둥거리며 그녀의 목을 끌어안았다.

볼을 비비며 칭얼거리는 탓에 더럭 겁이 났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떼어낸 것은 기조였다. 침대에서 한동안 마른세수를 하던 남자는 시희를 달랑 안아 들어 도우미 선생님에게 안겼다.

그리고는 결린 목소리로 ‘정리하고 나갈게요.’ 하고 읊조렸다. 콧등이 벌게진 젊은 선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시희를 고쳐 안았다.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기조의 긴 팔이 그녀를 감았다.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 위로 쓰러지자 그가 어린 개처럼 킁킁대며 그녀의 목과 가슴을 핥았다.

“주 선생님 얼굴 빨개진 거 봤어?”

“뭐?”

“선생님 너 보고 얼굴 빨개졌어.”

떨떠름한 기분을 숨기며 속삭였다. 기조가 낮게 웃으며 그녀의 가랑이를 파고들었다. 음부 사이를 헤집는 손길에 버둥거리며 손길을 걷어내려 했다. 남자의 까칠한 턱이 탱탱한 가슴살과 젖무덤을 뭉갰다. 낮게 키들거리는 소리가 야릇했다. 연조는 괜히 앳된 여자의 얼굴이 생각나 그를 밀쳐냈다.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

“됐어.”

“자를까?”

“뭘?”

“주 선생인지 뭔지. 애 하나 못 봐서 고용주 침실 앞까지 쳐들어오고.”

“시희가 우니까 감당이 안 돼서 그런 거지. 시희는 한 번 울면 감당 못 해. 알잖아.”

기조는 말이 없었다. 연조는 그의 가슴팍을 가볍게 밀어내며 욕실로 향했다. 여전히 눅진한 기운 속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떨떠름할 필요도 없는 일을 갖고 감정을 소모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샤워기의 온수 아래서 세수를 하고 있으려니 익숙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연조는 그를 흘깃 쳐다본 뒤 자리를 비켰다. 기조의 손이 욕실을 나가려 하는 연조의 손목을 잡아 돌려세웠다. 예고 없는 완력에 연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먼저 씻어.”

“어딜 가.”

“시희한테 가봐야지.”

“애한테 씹질한 냄새 맡게 하려고?”

뇌까리는 목소리가 음산했다. 씹어뱉듯 한 음절 한 음절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아프게 박혔다. 연조는 무엇 때문에 그가 이토록 비틀어졌는지 생각했다. 어찌 됐든 낮에는 할 마음이 없었다. 선생님이 있다고 해도 두 아이 모두 엄마의 손이 간절한 나이였다.

주말이라 해서 느른히 누워 육아를 쉴 마음은 없었다. 기조 또한 아이들을 챙기는 데 소홀히 하지 않는 편이라 그녀를 따를 줄 알았다. 굳은 얼굴로 그를 오도카니 쳐다보았다. 남자의 손이 스크럽 제품을 짜 그녀의 가슴을 문댔다.

“내가, 내가 할게.”

살갗에 닿는 행위가 부담스러워 그를 걷어내려 했을 때였다. 그의 손이 엷게 떨렸다. 연조는 그를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왜 화났어?”

허공에 띄워진 손을 잡았다. 기조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연조는 컴컴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스크럽을 짜 똑같이 그의 가슴팍을 부드러이 씻어주었다. 지난밤 씹어놓았던 자리까지 꼼꼼히.

“나는 괜찮아. 그냥 좀…….”

그녀가 무언갈 잘못한 것이라면 여기서 사과하고 끝내고 싶었다. 애까지 챙겨야 하는 마당에 다른 문제로 진을 빼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 식으로 밀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어젯밤에도 날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결국에는 그 문제였다. 튕기는 물방울에 따끔거리는 눈을 닦았다.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진 시희의 얼굴과 비슷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만졌다.

“미안. 난…….”

“키스해.”

“기조야.”

“넣을래.”

키스하면서 넣을 거야. 마른 목소리로 속삭인 그가 발기하기 시작한 물건을 잡게 했다. 눈 밑이 파드득 떨렸다. 미끄덩거리며 손에 잡히는 물건이 따뜻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표피를 감미하는 그녀에게 입술이 부딪혀 왔다. 연조는 어젯밤보다 무작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목을 안으며 구멍 안을 내어주었다.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내내 그의 용두질을 받아냈던 음부는 이미 퉁퉁 부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수월하게 받아냈다. 달뜬 비음과 밭은 호흡이 욕실 안을 그득히 메꾸었다. 문득 그의 흐트러진 가슴팍과 가운 차림에 수줍게 볼을 데운 여자가 떠올랐다.

기조는 매력적인 남자였다. 불혹의 나이가 멀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아니. 도리어 나이를 먹을수록 농익은 외피는 화려하면서도 무게감이 있어 더욱 근사해졌다. 그러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눈독 들일 수밖에 없는 남자이니. 그게 좀 씁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너무 잘생겨서 탈이야.”

키스를 하다 말고 숨을 고르며 읊조렸다. 형형하면서도 어딘가 애처로운 눈이 그녀를 우두커니 응시했다. 그리고는 입술을 물고 싶어 다시 찾아들었다. 연조는 혀를 섞다 말고 굵어지는 성기의 감촉에 비음을 흘렸다.

“으응…….”

질구 안을 왕복하는 성기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파정에 가까워졌을 때 연조는 꽉 안은 목에 손톱을 세웠다. 출납을 반복하던 남자가 질펀하게 사정했다. 연조는 쌕쌕대며 그에게 안겨 있다 말고 나지막이 입술을 뗐다.

“어쩌겠어. 잘생긴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숙명이지.”

* * *

샤워를 대강 하고 나온 연조가 1층 거실에 내려갔을 때 주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희가 소파에 앉아 기연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시희를 보러 나간다며 기조가 대충 물을 끼얹고 나가자 연조는 밑을 정돈한다며 욕실에서 꽤 긴 시간 끙끙 거렸기 때문에 거실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주 선생님은?”

“갔어.”

“어디에?”

“집에.”

“아직 근무시간인데……. 혹시 집에 무슨 일 생겼대?”

“아니.”

찬물을 따르기 위해 주방으로 갔던 연조가 뒤를 돌았다. 편안한 니트에 면바지를 입은 기조는 아이들에게 순흔이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옷으로 가린 터였다. 기조의 대답에 연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앞으로 볼 일 없을 거야.”

“기조야.”

“그냥 내 마음이야. 그러고 싶으니까. 더 이야기하지 말자.”

기연을 앉고 시희를 봐주던 기조가 고개를 들었다. 오도카니 맞붙는 시선이 진득했다. 연조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인을 관리하는 것이라면 온전히 기조의 몫이다. 더는 말을 붙이고 싶지 않다는 태도에 입을 다물었지만 정말 잠시간에 일어난 그 일이. 그를 어지간히도 상처 입혔나 보다 싶었다.

괜스레 내쫓지 않아도 될 사람을 내쫓은 건가 싶었지만 그보다 기조의 반응이 더 신경 쓰였다. 시희에게서 눈물을 글썽거렸던 이유를 듣고 늦은 아침을 챙겨 먹은 뒤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차만 타면 두 아이 모두 곯아떨어지는 타입이라 차 내부는 한적했다. 굽이지는 도로를 부드럽게 달리는 차는 아이들의 쌔근거리는 숨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았다. 담홍색, 물크러지 듯 흐르는 땅거미를 보는 연조의 손이 커다란 손에 감싸였다. 유유히 흐르는 하늘을 보던 연조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낮에 예민하게 굴었던 거 미안해.”

“응.”

“기분 나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어.”

“기분 나쁘지 않았어.”

“…….”

“네가 나에게 상처 입힌 건 없어. 그러니까…….”

기조는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는 그를 학대하던 조모에게조차 저항하지 않을지언정 상처받지 않았다.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조뿐이었다. 그를 흠집 내어 망가트릴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여자. 오직 그 여자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그를 어르고 달래 사랑으로 충만히 달아오르게 할 여자 또한 연조 하나뿐이다. 연조는 그에게 무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적정한 단어를 고르는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의 차는 어느새 작은 전망대에 닿아 있었다.

“상처받지 마.”

“…….”

“상처받지 마. 기조야.”

오도카니 앞을 더듬던 연조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양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막막하며 동시에 아득한 눈동자에 목이 말랐다. 속을 간질이는 기운이 입술을 슬그머니 데웠다. 감각이 나른히 그녀를 달구었다.

“내 이 번드르르한 낯짝은 널 위한 거야. 그리고.”

“…….”

“상처 줘도 상관없는데…….”

문득 어린 개처럼 킁킁거리며 그녀를 할짝거리던 아침이 떠올랐다. 그다지 다른 눈빛. 순하고 뭉툭한, 그러나 밀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사나워지는. 우묵한, 물이 괴어 버거울 정도로 그녀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

“밀어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의 사납고 아름다운 개.

“응.”

고개를 끄덕였다. 엄지로 그의 눈가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살그머니 감도는 발그스름한 빛들이 모이지 않도록 꾹꾹 눌렀다. 그리고 무얼 더 할까 고민한 다음 몸을 일으켜 입술을 맞추었다. 촉- 촉-. 내리 닿는 감각이 황홀한 듯 점점이 모여들던 서러운 기운들은 사라지고 한 꺼풀의 미소만이 남았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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