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악당들-26화 (26/547)

나의 악당들 026화

7. 하수도(4)

엘렌은 점박이 알을 살펴보곤 얼굴 을 하얗게 물들이며 말했다.

“•••포이, 도망쳐야 해.”

“가자.”

왜냐고 물으며 시간을 끄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녀석의 표정이 심각한 상황을 충분 히 설명해 주고 있었고, 나도 짐작 이 가는 바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 다. 어차피 발목까지 물이 첨벙거리 고 있었기에 기도 비닉이고 뭐고 최 대한 빠르게 달려갔다.

그렇게 1분쯤 달렸을까?

첨벙!

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물을 가르는 부피감과 질량감이 묵 직한 소리를 통해 전해져 왔다.

“엘렌, 더 빨리!”

“하욱, 학-”

엘렌은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있었 지만... 너무 지친 탓에 좀처럼 속도 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승수, 이 멍청한 자식아!

퇴로는 생각했으면서 정작 엘렌의 체력은 신경 쓰지 않다니! 이런 상 황도 예상했어야지!

마음 같아선 녀석의 석궁이라도 들 어주고 싶지만, 나도 원방패에 랜턴을 들고 있던 터라 여의치가 않았다.

첨벙! 첨벙!

물소리는 급격히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놈의 정체를 확언할 수는 없었지만 - 사람의 주먹만 한 알을 낳고, 물 과 흙이 모두 있는 곳에서 서식하는 동물 아니, 괴물은 그렇게 많지 않 을 것 같다.

사실 짐작 가는 놈이 있다. 놈은 지하도가 아닌, 토굴에서 등장하는, 꾸어어어!

괴물의 포효가 뒤통수를 때리자 나 는 황급히 랜턴의 불빛을 뒤로 비춰 보았다.

수로 양 끝으로 첨벙거리며 물을 밀어내는 비대한 꼬리, 우둘투둘한 비늘이 돋아난 등판, 그리고 세로로 쫙 찢어진 포식자의 눈.

놈은 언뜻 보기에 6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악어였다.

놈은 지구에선 동물이라 칭하지만, 그 크기와 위험성은 괴물이라고 하 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엘렌은 놈의 포효를 듣고도 좀처럼 속도를 못 내고 있었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이 끝도 없이 녀석의 발을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후우.”

나는 랜턴을 대충 바닥에 내팽개치 고 펄션을 뽑아 들었다.

내가 멈춰 서자 엘렌은 서너 걸음 쯤 더 걸어가다 덩달아 멈춰 섰다.

“왜 멈춰! 얼른 가!”

녀석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내게 마 주 고함을 질렀다.

“야! *하악* 뭐, 뭐하, *하욱* 는, 거야!”

“가! 난 알아서 도망칠 테니까!”

“후웁, 싫어!”

젠장, 저놈의 똥고집!

그러나 녀석과 투닥거릴 시간이 없 었다.

촤악

마치 바가지로 흩뿌린 것처럼 얼굴 에 구린 냄새를 풍기는 물이 잔뜩 튀었다.

수로를 따라 맹렬한 속도로 헤엄쳐 온 악어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아가리를 위아래로 쩍 벌리며 덤벼 들고 있었다.

벌어진 아가리는 내 몸의 절반쯤은 한입에 씹을 수 있을 것 같이 커다 랬다.

“ o 그 ’’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반사 적으로 움직였다.

이를 악물며 놈의 어두운 아가리 속으로 칼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런데 놈의 입천장에 칼끝이 닿기 직전.

후웅.

이런 미친, 이걸 피한다고?

놈은 몸을 날린 와중에도 순식간에 허리를 뒤틀어 내 칼을 피했다. 덩 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활한 반응이 었다.

그 직후, 대각선으로 벌어진 아가 리가 맹렬한 기세로 닫혔다.

콰직!

“끄으윽-”

간신히 허리를 젖히며 방패를 내민 덕에 몸이 씹히는 것은 피할 수 있 었다.

원방패가 놈의 아가리 안쪽에 끼어 있었기에 놈의 입천장은 내 목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숱한 생명들이 죽음 직전에 맡았을 끔찍한 입 냄새와 사신의 낫처럼 목 에 드리운 톱날 같은 이빨.

어둠 너머에서 섬뜩한 빛을 내뿜는 파충류의 눈.

그것들이 죽음의 형태를 이루어 내 게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다.

“끄으으,”

느려진 세상 속에서, 나는 펄션으 로 놈의 옆머리를 내리찍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솟아난 초인적인 힘이 놈에게 깊고 커다란 상흔을 남 겼다.

콰직!

놈이 놀라서 물러서 주길 바랐지 만, 거대 악어는 세찬 분노로 주먹 만 한 눈깔을 이글거릴 뿐이었다.

회오리치는 분노가 내 팔을 뒤틀었 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잠시 버텼지 만, “억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혔다. 나는 외마디 소리만을 남기며 수로에 처 박히고 말았다.

악어가 1톤이 넘는 체중을 이용해 죽음의 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후웅, 첨벙!

“끄, 끄륵,”

회전은 계속되었다. 악어는 내 방 패를 깨문 채로 두 바퀴, 세 바퀴… 미친 듯이 몸을 뒤틀며 나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퍼억!

으, 어디에 부딪혔는지도 모르겠다. 어깨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라리 방패가 놈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 나버렸다면.

아니면 어깨에 연결된 방패의 스트 랩이 조금만 약해서 끊어졌다면.

방패를 놓고 몸을 뺄 수 있을 터 였다.

“그륵, 흐억……

그러나 방패는 기대 이상으로 튼튼 했고, 내 몸뚱이를 단채 악어의 회 전에 휩쓸려 끊임없이 회전했다.

마구잡이로 내팽개쳐진 탓에 머리 가 울렸고, 어깨가 욱신거렸으며, 코 와 입으로 흘러든 구정물 때문에 숨 이 막혔다.

나는 그 와중에도 가까스로 펄션을 휘둘렀다. 그러나 중심도 잡지 못하 고 팔만 휘두른 정도로는 거대 악어 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빠악!

으,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흐려진 시야 너머로, 언뜻 벌벌 떨 고 있는 엘렌이 보였다.

저 멍청한 건 도망치라니까 왜 저 러고 있냐…….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엘렌이 악을 쓰며 고함을 질렀다.

“포이, 눈 감아!”

“흐으- 뭐.”

아련하게 들리는 고함에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익숙한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퉁!

내가 본능적으로 눈을 감자마자, 내 뒤통수 어림에서 ‘쨍그랑!’ 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끼에에에!

뭐 뭐지?

거대 악어는 몸을 비틀며 날 한쪽 으로 던져 버리더니 수로에서 미친 듯이 몸을 뒤틀었다.

만신창이가 된 내가 멍하니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에, 엘렌이 비명 과도 같은 고함을 질렀다.

“일어나! 지금 죽여야 해!”

그와 함께 알싸한 향이 코끝을 스 쳤다.

고춧가루, 혹은 비슷한 무언가가 내는, 통증에 가까운 강렬한 냄새였 다.

아차, 지금 냄새나 맡을 때가 아니 잖아!

단숨에 방패를 벗어던진 나는 욱신 거리는 몸을 재빨리 일으켰다.

그리고 집중-

당연하게도, 내 몸은 여기저기가 쓸리고 깨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 다. 구정물에 섞여들던 피들은 내 부름에 응해 펄션으로 뭉쳐 들었고, 나는 즉시 땅을 박찼다.

끼에에.

거대 악어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고성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고 있었 다. 놈이 꿈틀거릴 때마다 더러운 물보라가 거세게 튀어 올랐다.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마치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골키퍼처럼 말이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드러난 틈새를 노려 놈의 배에 펄션을 내질렀다.

푸욱.

놈의 뱃가죽은 두껍고 튼튼하기 그 지 없었다.

그러나 요사스러운 핏빛을 내는 펄 션은 인간을 초월한 근력에 의해 휘 둘러졌고.

찌지직.

그 뱃가죽을 천 조각처럼 갈라버렸 다.

나는 수로에 처박힌 채 전력으로 몸을 뒤틀어 펄션을 내리그었다.

허연 뱃가죽에 붉은 금이 길게 그 어졌고, 이내 붉은 선은 터지듯 벌 어지며 내용물을 바깥으로 토해내었 다.

후두둑!

그 섬뜩한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잽싸게 수로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포이!”

“억- 아파, 임마!”

갑자기 달려든 엘렌이 내 어깨를 붙들며 매달렸다.

으, 무게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 지만, 전신이 욱신거린 통에 버티기 가 힘들었다.

하지만 상념도 잠시, 아직 등 뒤에 서 거대 악어가 첨벙거리고 있었다.

“윽, 엘렌, 일단 피해야……

더러운 수로를 뒹군 터라 냄새가 심할 텐데, 녀석은 떨어질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엘렌의 허리를 안아 들곤 악어에게서 이십여 미터 쯤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야 녀석을 내려놓았다.

끼에에…….

저 멀리서, 자신의 내장을 깔고 앉 아 버르적거리던 거대 악어가 숨을 거두었다.

그제야 나는 벽에 기대어 미끄러지 듯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젖었지 만…… 하, 상관없다. 어차피 저 빌 어먹을 악어 때문에 온몸이 구정물 로 절어 있었으니까.

“허억, 흐으…. 와, 진짜- 진짜로 죽을 뻔했다.”

“야, 그거 뭐였냐? 고춧가루?”

숨을 고르며 물어보았지만, 엘렌은 대답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 었다.

으, 랜턴을 버리고 온 통에 뵈는 게 없다. 근데 얼핏, 녀석의 두 주 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 같았 다.

“야, 이, 등신새, 끼야.”

“•••어, 어?”

“너, 너 진짜-”

엘렌은 언뜻 울먹이고 있는 듯 떨

리는 목소리로 성을 내었다.

“진짜, 너 진짜 뒤지고 싶냐?”

“뭔데, 갑자기 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발 끝으로 내 정강이를 ‘뻑!’ 소리 나도 록 걷어차 버렸다.

“아악! 야!”

미친, 꼬발로 맞았어, 겁나 아파!

내가 녀석에게 성을 내려던 차.

“너, 내가 경고하는데,”

엘렌이 한껏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 언가 말했다. 발음이 너무 뭉개진 터라 말뜻을 이해하기가 힘들 정도 였다.

“한 번만, 더- 먼저 가라, 느니, 도 망치라, 느니, 그딴 소리 하면….”

녀석은 크게 코를 훌쩍이곤 잠시 침묵하더니 크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알겠어?”

“참, 야. 내가 언제 또 그랬다고-”

“저번에도 그랬, 잖아, 멍청아!”

빡!

씨앙, 맞은 데 또 맞았다.

정강이받이를 샀어야 했는데!

잠시 후, 지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

나는 돌계단에 걸터앉은 채 피가 줄줄 흐르는 뒤통수에 붕대를 가져 다 대었다. 패시브 스킬인 ‘흐르는 피’ 효과가 있으니 잘 누르고만 있 어도 지혈은 될 것이다.

그때, 내 찌그러진 견갑(W甲)을 풀던 엘렌의 손이 퉁퉁 부어오른 어 깨를 스쳤다.

“아윽- 야, 조심 좀 해! 금 간 것 같단 말이야!” 내 말에 엘렌이 미간을 찌푸리며 타박한다.

“조금 스친 거 가지고 엄살은. 덩 치는 산만 해가지고.”

뭐라 반격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눈꺼풀이 애벌레처럼 퉁퉁 불어 있 는 게 보기 짠했기 때문이다.

“으휴.”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가 죽 튜닉의 옷깃을 붙잡고 잠시 머뭇 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짜증을 낸다.

“아이씨— 이, 이거, 다, 단추 좀 풀 어봐.”

“아, 네가 좀 풀어줘라. 손 없는 거 안 보이냐?”

“…아이씨, 짜증 나….”

녀석은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조심 스러운 손길로 단추를 풀어 앞섶을 열더니 물을 부어 상처를 씻어 내어 주었다.

“으, 차거.”

붕대를 매어주는 엘렌의 손길을 따 라 팔을 들어 올리며 문득 질문했 다.

“야, 근데 너 아까 쏜 유리병 있잖 아.”

“•••어, 뭐?”

붕대를 감아주던 녀석은 뭔가 다른 생각에 잠겨있었는지 내가 말을 걸 자 화들짝 놀라며 더듬거렸다.

“뭔데, 왜 그래?”

“어? 아니, 아니야.”

“너 괜찮냐?”

“어, 괜찮, 윽, 고개 돌리지 마. 그 - 붕대 엉키니깐.”

아니라곤 하지만 쇄골을 스치는 녀 석의 손길에서 격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슬쩍 곁눈질해 보니 녀석은 열이 오른 듯 목덜미가 벌겋게 물들어 있 었다.

많이 피곤한가? 혹시, 어디 아픈 걸까?

하긴, 벌써 하수도에 내려온 지 벌 써 열 시간이 지났는데, 안 피곤할 리가. 그리고 이렇게 더러운 환경에 서 구르다 보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 이라도 병에 걸리는 법이다.

빨리 수습하고 올라가야겠군.

“그래서, 너 아까 쏜 거.”

엘렌이 석궁으로 쏜 것은 일종의… 최루약((崔浪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담긴 유리병이었다.

“일종의 최루약이랬지? 뭐로 만든 건데?”

“•••후우, 흐흠. 여관 뒤에서 방아풀 을 좀 땄어. 그거랑 노점상에서 산 타라진을 갈아서 섞은 거야. 양이 부족해서 고운 모래도 조금 섞었 고.”

아, ‘타라진’은 나도 안다. 일종의 향신료인데 지구의 것이랑 비교하자 면, 새까만 페페론치노 정도로 생각 하면 될 것 같다.

“이야, 그런 건 또 언제 만들었 냐?”

“•••너 그 노처녀랑 뒹굴 때 심심해 서 이것저것 만들었다. 왜.”

“아아, 야! 아프다고. 살살 좀-”

“제대로 묶어둬야 할 거 아냐? 가 만히 좀 있어.”

근데, 잠깐. 얘가 뭐라고 했지? 내 가 노처녀랑 뒹굴어? …포이닉스의 몸으로 그런 행운을 누린 기억은 없 는데.

“잠깐. 너 혹시 그라니아 말하는 거냐?”

“어. 맞는데?”

태연한 투로 남을 후려치는 모습이 참... 녀석답다고 해야 하나.

하, 그라니아는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 정돈데, 노처녀라니? 그럼 서 른 살 독신남인 난 뭐가 되냐? 괜 히 빡치네.

그건 그거고, 나는 조금 놀란 심정 으로 엘렌에게 말했다.

“허, 명상한답시고 여기저기 그렇 게 싸돌아다니더니, 아주 기특한 준 비를 해뒀네?”

문득, 돌난간에 기대어 둔 석궁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설마….

“야, 너 그럼 혹시… 최루탄 쏘려 고 저거 산 거야?”

내 물음에 엘렌은 당연한 거 아니 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나 마법사야. 고작 돌조 각이나 쏘려고 은화를 여섯 닢이나 썼겠어?”

마법이랑 최루탄이랑 무슨 상관인 진 모르겠지만.

“•••진짜로? 미리 생각해 둔 거라 고?” “그래. 감 익히려고 병 무게도 철 탄에 맞춰뒀는데.”

오, 녀석. 좀 달리 보이는걸?

마법 못 쓰는 찐따라고만 생각했는 데,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하고 있었 잖아?

“근데 왜 나한텐 말 안 했어?”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몰랐으니 까. 좀비나 벌레들한테 이런 걸 쏴 봤자 아무 의미 없잖아.”

“아하. 그래도 이런 건 말해 뒀어 야지. 엄청 유용한데.”

내 타박에 녀석의 입꼬리가 슬쩍 꿈틀거렸다.

“•••유용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 거 아녔으면, 난 지금쯤 죽었어.”

녀석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으이구, 귀여운 놈.

“또 이런 거 있으면 미리 말해둬. 나도 알아야 너랑 손발을 맞추지. 또 뭐, 만든 거 있어?”

“흐흠. 독병이랑 화염병도 몇 개 만들어 두긴 했는데.”

“•••뭐‘?”

기분 탓이겠지만, 녀석의 콧대가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다. 어깨가 한껏 치켜 올라간 모습이 퍽 우스웠 지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그런 건 또 어떻게 만들었냐?”

“그리 어려운 방법은 아냐. 독병은 광대버섯이랑 자귀를 말려서 갈아 넣고 거기에 은방울꽃의 진액을 첨 가했어. 간단하지만 쓸 만한 마비독 이지. 화염병은, 올가 수녀님이 노친 네 잡화상에 간다고 해서 화염꽃 기 름을 사달라고 부탁했거든? 근데 기 름만으로는 점성이 부족하니까 풀 역할을 해줄……

그렇게 조잘조잘 설명을 늘어놓는 엘렌을 보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 느새 피로도 잊었는지 손의 떨림도 잦아든 모습이었다.

그 의기양양한 꼴이 퍽 우습긴 하지 만- 그래. 눈물 콧물 찔찔거리는 것 보다야, 이게 훨씬 보기 좋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