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당들 104화
막간. 추적자들
‘뱃고동 여관’은 여느 때처럼 선원 과 상인, 용병과 병사들로 붐볐다. 도시에 드리운 완연한 활기가 골목 구석구석으로 스며든 탓이다.
“의뢰,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라니아의 선언에 동료들이 잠시 침묵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 은, 언제나처럼 아르날이었다.
“ 괜찮을까?”
“뭐가?”
“왕자님은 물론 좋은 분이지만, 음, 상황이 녹록지가 않잖아.”
그라니아는 조용히 치즈를 오물거 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용병이야. 윗분들의 복잡한 사정에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 누나.”
거칠게 수염을 기른 청년, 파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만 해도 봐. 기껏 피똥을 싸 가며 도시를 구하고도, 왕도에서 내 려온 명령 한 방에 날아가잖아. 게 다가 ‘꽁지 빼는 사자’가 왕이라도 되는 날엔.”
“왕자님은 신용 있는 고용주고, 백 전백승의 워로드야. 더 중요한 게 어딨어?”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던 수녀, 올가 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그건 맞는 말이야. 그리고 왕 자님의 군대도 엄청 불어났잖아. 도 시에서 쫓겨나긴 하겠지만, 전망이 어둡기만 한 건 아니고…… “대가리 수만 불어나면 뭐하냐고 요. 태반이 쭉정인데.”
아르날의 투덜거림에 그라니아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반이 쭉정이인 건 우리 용병대 도 마찬가지야, 아르날.”
“……참나, 그 말이 네 입에서 나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게 자랑 이야?”
“현실이지.”
두껍게 자른 치즈를 빵에 끼우며, 그라니아가 말을 이었다.
“거물이 되려면 명성이 필요해. 명 성을 얻으려면 성과가 있어야 하고, 성과가 있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 지. 울카르 왕자님의 막하로 들어가 면 모두 얻을 수 있을 거야.”
잠자코 앉아 있던 안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누님, 고원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아무리 울카르 왕자님이라 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곳이고, 서른 명도 안 되는 용병대는 순식간 에 먼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단 말입 니다.”
“울카르 왕자님은 8년 전에도 고원 에서 제국 놈들을 박살 냈어. 지금 의 왕자님은 그때보다 훨씬 노련하 고, 지혜롭고, 명성도 높지. 게다 가,”
“훨씬 가벼워졌지. 외팔이가 됐잖 아?”
그라니아가 가만히 흘겨보자, 아르 날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곤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아- 그 녀석을 잡았어야 하는데. 기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아르날의 한탄에 파렐이 인상을 찌 푸렸다.
“그 형님은……. 실력은 인정하지 만 조금,”
“조금, 뭐?”
“다들 알잖아. 가끔 좀 이상해지는 거.”
파렐의 말에 그라니아가 눈썹을 긁 으며 말했다.
“……파렐. 혹시 길리우스 아저씨 때문에 그런 거라면.”
“아니, 그런 거 아냐.”
손사래를 친 파렐이 횡설수설한다.
“그때야 뭐, 나나 길리우스 아저씨 나 마녀에게 홀려서 제정신이 아니 었고, 형님이 그런, 음, 실수를 한 것도……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드니 까 그랬겠지. 근데…… 하아.” 파렐은 한숨과 함께 맥주를 들이켰 다. 그러곤 맥주잔을 텅, 내려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그래, 그 새낀 좀 이상해. 길리우스 아저씨를 찌르곤…… 뭔 가, 뭔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단 말 이야.”
“파렐.”
“그리고, 처음 봤을 때 기억 안 나? 사람 모가지를 수십 개씩 엮어 서 질질 끌고 다니던 거? 그 새낀 완전,”
“파렐, 그만.”
“••••••후우.”
파렐이 팔짱을 끼자, 그라니아는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알아. 포이닉스가 싸움에 들 어가면 가끔 이상해 보인다는 거.”
“이상해지는 정도가,”
“하지만 파렐. 포이닉스는 네 목숨 을 구했어. 나도, 아르날도 여러 번 목숨을 빚졌지. 포이닉스가 없었다 면 도시는 불타고 재만 남았을 거 야.”
“……그리고, 포이닉스를 또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포이닉스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을 만나면, 함부로 이빨을 보이지 마. 알겠지?”
그라니아의 진지한 충고에 파렐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여관 1층 전체 에 드리운 정적과 절묘하게 맞아떨 어 졌다.
“뭐야?”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돌처럼 굳은 채 한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엔, 한 여인이 있었다.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부츠와 가죽 바지가 긴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실력 있는 장인이 무두질을 한 듯, 부츠는 결이 일정했고, 바지는 은근 히 광택이 감돌았다.
질 좋은 흰 셔츠에 황금 단추를 단 붉은 조끼를 입었으며, 방금 푼 망토를 팔에 걸친 채였다.
기묘한 옷차림이었다.
커틀이나 가운, 머릿수건 등 평범 한 여성들이 즐겨 입는 물건은 하나 도 없었다.
로브를 입지 않았으니 마법사 같지 도 않았고, 갑옷을 입지 않았으니 용병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남장을 한 것인가, 하고 착각하기엔 여인의 외모가 너무 아 름다웠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의 아 름다움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당한 키에 얇고 기다란 팔다리. 몸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 넘치는 곡 선. 칠흑 같은 머리칼에 대비되는 도자기 같은 하얀 피부, 날렵한 눈 매와 곧은 코, 갸름한 턱.
마지막으로, 시선을 모으는 새빨갛 고 도톰한 입술까지.
요약하자면, 치명적인 미녀였다.
“……와, X발.”
방금까지 한 대화도 잊고, 파렐은 천박한 감탄을 토해내고 말았다. 적 막을 깨는 소리에 여인의 시선이 파 렐에게 향했다.
꿀꺽.
파렐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 다.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여인의 새로운 면모가 보였기 때문이다.
새까만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담 겨있지 않았다. 핏기도, 표정도 없는 하얀 얼굴이 꼭 생명이 없는 인형 같았다.
여인은 얼어붙은 파렐에게서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곤 바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도 내 지 않았건만 수십 쌍의 시선이 따라 붙는다.
바 앞에 멈춰선 여인이 어린 여급 과 젊은 급사, 그리고 중년인을 차 례로 훑어본다.
“당신이 주인?”
“……예, 맞습니다.”
“피투성이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낮고 느릿한 목소리. 어딘가 기품 이 느껴지는 말투에 여관주인은 저 도 모르게 입술을 적셨다.
“네, 그, 어떤 걸.”
“……너무 시끄러운데. 조용한 곳 없어?”
여관주인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려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난감해했다.
“점원들이 다 미숙해서 제가 자리 를 비울 수가 없는데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여인은 말없이 허리춤에 매단 주머 니를 끌렀다. 그러곤 굳은살 하나 없는 새하얀 손가락이 금화 한 장을 집어 바 위에 올렸다.
“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열 장을 더 줄게.”
여관주인은 말없이 금화를 받아들 었다.
여인은 고귀한 생김새, 그리고 기 품 있는 말투에 어울리지 않게 퍽 털털한 편이었다. 빈방에 들어가 별 거부감 없이 더러운 침대 위에 걸터 앉는 걸 보면 그랬다.
그리고 여관주인이 이야기를 늘어 놓는 동안, 여인은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그저 가끔,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마침내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어?”
여관주인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코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일주일 전인가. 배를 타고 서쪽으 로 간다고 했습니다. 제국으로 가진 않았을 테니 아마 아비든으로 갔겠 지요.”
여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아는 게 있잖아.”
“……예? 그게 무슨,”
“숨기지 말고 털어놔. 난 포이가 어디로 갔는지 꼭 알아야 하니까.”
여관주인은 잠시 벙긋거리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그러곤 약간의 의심 을 담은 눈빛으로 물었다.
“포이닉스와, 아니, 포이닉스 경과 아는 사이이십니까?”
“응.”
“……어떤 관계시죠?”
“예의가 없네.”
뜬금없는 말에 여관주인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인은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사촌.”
“사촌? 포이닉스와 사촌이란 말씀 이십니까?”
“응. 그리고, 약혼녀이기도 해.”
“••••••예에?”
여인의 느긋한 고백에 여관주인이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사촌이…… 약혼녀라고 하 셨습니까?”
“응. 이제 말해줘. 네가 아는 걸.”
여관주인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 을 짓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포이닉스에게 사촌이자 약혼녀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그래? 왜 말 안 했지?”
“저야 모르죠. 혹시, 둘의 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있으십니까?”
여인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글쎄.”
“……그럼,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
“전, 포이닉스에게 신세를 졌으니 까요.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이 여 관은 잿더미가 되었을 겁니다.” 여인은 또다시 눈을 깜빡거렸다.
침묵이 이어졌다. 여관주인이 자리 에서 일어날까 고민하던 찰나, 여인 이 입을 열었다.
“포이닉스 오브 자하카르. 올해 21 살. 아버지는 정정하시고, 어머니는 포이를 낳다가 돌아가셨어. 하나 있 는 형은 몇 달 전에 죽었고, 사촌이 세 명 있어. 키는 나보다 한 뼘 반 크고, 몸무게는 두 배 조금 안 돼. 타고나길 장사에, 표범처럼 날래고 평생 잔병치레 한 번 없었을 정도로 건강해. 무술에 천재고, 말 타는 걸 아주아주 좋아하지만, 어머니 때문 인지 혈조술은 좀 부족해. 소랑 돼 지, 양을 좋아하고, 닭이랑 채소는 싫어하고, 생선은 못 먹어. 항상 자 신만만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랑 말 섞는 걸 싫어해. 술을 혐오하고 여자랑 어울리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나랑도,”
여인의 말이 느릿하게, 끝도 없이 이어지자 여관주인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잠깐, 아가씨, 그만하십시오.”
“왜?”
“포이닉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여관주인은 턱을 긁으며 난처한 표 정을 지었다.
“그래도, 포이닉스와 약혼한 사이 라고는 믿기지 않는군요.”
“믿기지 않는다고? 왜?”
“제가 아는 포이닉스와는 아주 다 르니까요.”
여인의 미간이 작게 움찔거렸다.
“달라? 어떻게?”
“음, 그게…… 포이닉스가 좋아하 는 음식도 모르시는 것 같고.”
“소랑 돼지, 양을 좋아해. 회향을 갈아서 뿌린 뒤에 핏기 있게,”
“아뇨, 아가씨. 포이닉스가 생선을 못 먹는다고 하셨죠?”
“응. 입에도 못 대.”
“제가 아는 포이닉스는 생선이라면 아주 환장하는 친구였는데요.”
“……생선을 먹었다고? 포이가?”
“예. 꼬치에 꿰어 통으로 굽는 것 도 좋아하고, 어포를 뜯어서 죽에 넣어 먹는 것도 좋아하고, 기름에 튀기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특히 맥 주를 곁들여 먹는 걸 즐겼죠. 지느 러미 달린 건 뭐든 먹어 치울 기세 였는데요.”
“……맥주까지?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리고 여자도 별로……. 음.”
여관주인의 표정이 흐려지자, 여인 이 주머니를 끌렀다. 그러곤 금은을 한 움큼 쥐어 내미는 것이었다.
“말해줘. 빨리.”
여인의 손에서 은화와 금화가 줄줄 이 흘러내렸다. 여관주인의 입이 조 금 벌어졌다.
“이, 이걸 주시겠다고요?”
“줄게. 빨리 말해줘.”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여관주 인이 고민에 잠겼다. 여인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고, 여관주인은 마침내 한숨을 쉬었다.
“……포이닉스의 약혼녀라고 하셨 죠‘?”
“응.”
“그럼……. 포이닉스에게 다른 여 자가 붙어 있는 걸 반기지 않으시겠 네요?”
“불의 마녀 이야기야?”
“네, 아시는군요.”
“포이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 동 행하고 있더라도 다른 마음은 없을 거야.”
여관주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 다.
“포이닉스는 그럴지도 모르죠. 하 지만 불의 마녀, 그년은 아닙니다.”
“왜?”
“저희 여관에, 다리아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리아와 포이닉스의 관계, 엘렌이 포이닉스의 관계, 엘렌과 다리아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표정하던 여인의 얼굴이 조금, 아 주 조금 일그러졌다.
“포이닉스가 떠나기 며칠 전, 다리 아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조용히 눈만 깜빡거리고 있 었다.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따라가겠 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가 말하길, 포이닉스 일행이 배를 타려는 건 거 짓말일 거라고, 분명 롱빌로 향할 거라고 했죠.”
“롱빌.”
“네. 그런데……
여관주인의 거친 볼을 타고 눈물방 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여인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날 밤, 다리아가 사라졌습니다.” 조용한 깜빡임. 교차하는 속눈썹.
“이튿날, 사흘 뒤, 일주일이 흘러도 나타나지 않았죠. 전, 아멜을 볼 낯 이 없습니다.”
깜빡임. 새까만 눈빛.
“순찰병들이 봤다고 합니다. 다리 아가, 그 아이가…… 불의 마녀와 함께 있는 걸요.”
깜빡. 무관심.
“경비대에 말해봤지만, 개 같은 새 끼들. 그 새끼들은 언제나 하는 일 이 없어요. 여관이 습격당했을 때도 뒤늦게 와서는 폼이나 잡고. 도시를 떠났을 거라니, 비렁뱅이들에게 납 치를 당했을 거라니, 예술가에게 사 지가 찢겼을 거라느니 개소리나 늘 어놓더군요.”
여관주인이 흐느꼈다.
여인의 깜빡임이 멈추었다. 검은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붉은 기운과 호기심, 흥미를 엿볼 수 있 다.
여인이 입을 열었다.
“예술가에게 사지가 찢겼을 거라 고?”
“으흠, 큼. 아, 예. 예술가요. 미친 놈이죠. 뒷골목에서 사람을 죽이고 피를 가져가는 놈이라는 소문이 돌 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난리 다가 요즘은 잠잠하네요.”
“……자세히 말해줘.”
“……당연한 것 아니오? 놈은 혈조 술사요. 피가 없어졌다는데, 그놈이 그걸로 무슨 장난질을 친 게 분명 해!”
당당한 풍채에 불독 같은 인상의 사내가 열변을 토했다.
그의 건너편, 양피지 두루마리가
널브러진 책상에 한 사내가 앉아 있 었다.
회색 머리칼의 사내. 우울한 분위 기를 풍기는 미남이었다. 그는 조용 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알겠습니다.”
생김새에 어울리는 묵직한 목소리. 얼굴이 붉어진 사내가 헛기침을 했 다.
“……흠, 내가 조금 흥분을 했군.”
“도시를 위하는 열정이라고 생각하 겠습니다. 경비대장님.”
“고맙소.”
“그럼, 의뢰해 주신 바는 확인했습 니다. 아침부터 찾아주셔서 감사합 니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경비대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이 축객임을 눈치챈 경비대장은 조용히 방을 떠 났다.
회색 머리칼의 사내는 조용히 양피 지를 뒤적거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 나고,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더크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 은 망토를 두른 사내들이었다. 외눈 의 사내를 필두로 한 현상금 사냥꾼 들.
“찾았어?”
“리드번에서 이곳까지 마을이란 마 을은 전부 뒤졌지만, 못 찾았습니 다.”
“그래, 고생했다.”
미남자는 사내들을 한 차례 훑어보 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다들 사우스하버는 처음이지? 술 취한 조랑말이란 곳에 가봐. 다들 아침을 먹고 있을 테니. 아, 더크랑 토비아스는 남고.” “ 옛.” 사내들이 우르르 나가는 동안, 미 남자는 양피지를 뒤적거렸다. 외눈 의 사내, 더크는 입술을 적시며 입 을 열었다.
“대장님.”
“음‘?”
“아무래도 이번 일은 힘들 것 같습 니다.”
“어째서?”
“목표를 찾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 까.”
“인상착의가 있잖아. 누구나 한눈 에 알아볼 수 있는.”
대장이라고 불린 미남자가 무덤덤 한 기색으로 말하자, 더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바일 후작이 죽어가며 주문을 쏘았을 것이라고, 대장님께서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후작의 주문을 맞고 무사할 수 있 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입 니까?”
“ 없겠지.”
“대장님!”
미남자는 양피지를 계속 뒤적거리 며 대답했다.
“후작이 최후에 쏘았을 만한 주문 을 알려달라고 했지.”
“예?’’
“새 후작이 직접 답장을 해주더군. 부패, 변이, 노쇠, 고문.”
“부패, 변이, 노쇠, 고문……
“부패의 저주라면 이미 먼지가 되 었겠지. 고문의 저주라면…… 악명 높은 동방의 암살자라도 자살을 했 겠지.”
미남자는 그렇게 말하다가 양피지 하나를 들어 더크의 뒤에 서 있던 청년에게 내밀었다.
“토비아스, 이 사람을 데려와. 돈을 적당히 쥐여주면 따라올 거야.”
“ 옛.”
토비아스라고 불린 청년이 방을 나 가자, 미남자는 또다시 양피지를 뒤 적거 렸다.
“문제는 변이의 저주와 노쇠의 저 주야. 후작이 쓴 주문이 그 둘이라 면, 암살자는 우리가 모르는 모습으 로 변해 있겠지.”
더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대체 무슨 수로 놈을 찾는단 말입니까?”
“인내심을 가져. 섣불리 일을 마쳤 다간 알파드 후작가의 분노가 우리 에게 닥칠 테니.”
그렇게 말하며, 미남자는 양피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일은 시늉만 하고 있으면 돼. 이런 영양가 있는 일을 하면서 말이 야. 자.”
“……이게 뭡니까?”
“ 읽어봐.”
“에레나르 라다칼린, 라-팔라이스 궁전 소속의 수련생, 17세, 금발의 아름다운 용모, 그랜드마스터 제마 르를 살해 후 도주…… 더크는 양피지를 홅다가 인상을 찌 푸렸다.
“잠깐, 라다칼린이면 설마……
“그 라다칼린 맞아.”
더크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전 반대,”
“선금받았어.”
미남자의 태평한 대답에, 더크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대장님! 알파드 후작가로도 모자 라서 궁전과 엮이겠다는 겁니까? 게 다가 라다칼린 가문이라니,”
“금화 삼백 장.”
“대체, 예‘?”
더크가 입을 벌렸다.
“금화 삼백 장 받았다고.”
미남자는 등받이에 기대며 피식 웃 음을 흘렸다.
“선금이 삼백 장이고, 죽이면 오백 장, 살리면 천 장이다.”
더크의 입이 더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지자, 미남자의 미소도 조 금 더 짙어졌다.
침을 삼킨 더크는 하나 남은 눈을 불태웠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대장?”
“넌 계속 암살자를 쫓아. 이 계집 은 내가 잡는다.”
“단서가 있으십니까?”
“사우스하버에서 ‘불의 마녀’라는 별명을 얻었더군. 하늘을 날며 불을 비처럼 뿌려댄다던가.”
더크는 양피지를 훑어보더니 미간 을 좁혔다.
“마법을 못 쓴다고 적혀 있는데 요?”
“금서를 들고 도망쳤다는군. 아마 그 금서를 통해 주문을 익힌 모양이
야.”
“금서라. 그것도 회수해야겠군요.”
“그래. 그것도 금화 천 장이다.”
“허, 미친 마법사 놈들. 근데 왜 제 놈들이 안 잡고 우리한테 의뢰를 했답니까?”
“궁전의 마법사들이 몇 명 왔는데, 은왕자의 살무사에게 잡혀서 물을 먹고 있다더군.”
더크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은왕자의 살무사라……. 냄새가 아주 고약한 것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언젠 안 그랬나. 그리고, 감수할 만한 거금이잖아?”
더크는 도주한 마법사에 대한 내용 을 쭉 읽어내려갔다.
“……울카르 왕자의 기사인 포이닉 스, 야만인 ‘붉은 곰’과 동행중. 배 를 타고 서부로……
“그 둘이 문제야. 피투성이 검사와 붉은 곰.”
더크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미남자가 말을 이 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 아주 괴물 들이 따로 없더군. 한칼에 수십 명 을 도살하는 검사와, 오우거의 목을 뽑는 야만인이라던가.”
목표물과 그 일행의 인상착의를 읽 으며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던 더크 는 안대 아래를 긁적거리며 대답했 다.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대장 님이 직접 나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큰 건이니까.”
미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리 를 쓸어넘겼다.
“근데 왜 서부로 갔을까? 서부에 뭐가 있길래.”
“제국으로 튀려는 거 아니겠습니
까?”
“글쎄. 아, 그리고. 도시에 머무는 동안 포이닉스라는 놈을 더 조사해 봐.”
“피투성이 검사 말입니까?”
“그래. 피투성이 검사, 핏빛 봉 화…… 또 뭐라더라?”
더크는 포이닉스에 대한 기록을 살 펴보았다.
“은왕자의 붉은 기사, 참수자, 마녀 의 수호자……. 하, 이 동네 사람들 은 별명 만드는 걸 어지간히도 좋아 하나 봅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을 수도 있어.”
“어떤,”
그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대장님, 토비아스입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토비아스의 표정 을 보고, 미남자는 일이 잘못되었음 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야?”
“데려오라고 한 놈 있잖습니까. 뱃 고동 여관의 주인.”
“근데?”
“죽었답니다.”
토비아스의 말에 미남자의 눈이 날 카로워 졌다.
“죽어?”
“예. 방금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갑자기 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토비아스는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지 으며 말을 이었다.
“시체를 발견한 게 어린 여자앤데, 예술가의 짓이라며 비명을 질러대더 군요.”
“……예술가?” “네. 뭐, 사지를 찢고 피를 가져갔 다나……
“ 하.”
미남자의 입이 비틀렸다. 늑대의 것을 닮은 사나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