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악당들-116화 (116/547)

나의 악당들 116화

30. 휴일(1)

옆 테이블에 둘러앉은 아미아스 패 거리는 식사를 하며 저들끼리 낄낄 거리고 있었다.

“벌써 은화가 넉 닢……. 오늘처럼 오십 일만 벌면 목장을 살 수 있겠 어. 닭은 지긋지긋하고, 소를 스무 마리쯤 사서 꽉꽉 채워 넣어야지.” 멀대 부니가 몽롱한 눈빛으로 말하 자, 주근깨 미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내새끼가 돼서 꿈이 그게 뭐 야?”

“넌 뭐 할 건데?”

“레머릭에 가게를 차리는 거야. 여 기만큼 큰 선술집을 열어서 용병들 을 등쳐먹는 거지.”

빡빡이 스티드먼이 이야기를 듣곤 쯧, 혀를 찼다.

“미라, 내가 보기엔 네 꿈도 그리 큰 것 같진 않은데?”

“그래? 그럼 우리 대머리 난쟁이 씨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데?”

“난쟁이라고 부르지 마.”

“알겠으니까 대답이나 해봐, 땅딸 보 씨.”

스티드먼은 작게 욕을 지껄이더니 대답했다.

“난 용병들을 쉰 명쯤 모아서 용병 대를 만들고 싶어.”

“그래서 뭐하게?”

“‘아사그’를 개척해서 땅을 받는 거지.”

“그딴 습지에 땅을 받아서 뭘 한다 고.”

미라가 심드렁하게 묻자, 스티드먼 은 자세를 낮추며 조용히 속닥거렸 다.

“괴물들을 사냥하는 거점으로 삼는 거야. 여기서 수렵제를 하는 것처럼, 용병이나 사냥꾼들을 모아다가 드레 이크를 잡는 거지. 가죽과 지느러미 를 벗겨서 팔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 걸.”

“드레이크가 그렇게 쉽게 잡혀 준 대? 너 같은 땅딸보는 한입에 집어 삼킬 놈들인데?”

“……내가 땅딸보라고 부르지 말라 고 했을 텐데.”

“네가 언제? 난쟁이라고 부르지 말 라며?”

“이 망할 년이,”

스티드먼의 머리가 시뻘게질 무렵, 리더인 아미아스가 잽싸게 중재했 다.

“그만해. 좋은 날인데 뭐하러 싸우 고 있어.”

“이년이 자꾸 성질을 긁잖아!”

“자자, 진정하고. 이봐! 여기 맥주 여섯 잔 가져와!” 잠자코 놈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나는 카운터를 돌아보았다.

“식사 끝났으니 맥주는 됐어!”

별안간 끼어든 내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자, 아미아스 패거리가 뭐하는 짓이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엘렌, 먼저 방에 올라가 있을래? 난 잠시 뒷마당에 있다가 들어갈 게.”

“……그러던가.”

엘렌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우테콰 이 맥주잔을 들며 말했다.

“난 술 한 잔 더 할 거다.”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따라 나와.”

“음? 나부크를 할 건가?”

“아니.”

난 아미아스 패거리를 돌아보며 말 을 이었다.

“이놈들 사람 만들 건데?”

여섯 쌍의 눈이 동그래졌다.

“뭘 쳐다보고 앉았어. 다 뒷마당으 로 나와.”

아직 여름이라 해가 길었던 탓에 횃불 두어 개를 내거니 사위가 낮처 럼 환해졌다. 뜨겁던 흙바닥도 식어 가고,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훈련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버텨, 이 등신 새끼야!”

고함을 내지름과 동시에 발을 내질 렀다.

쾅!

“컥!”

빡빡이 스티드먼이 형편없이 나뒹 군다.

그 옆에 있는 방패를 확 잡아당기 니 주근깨 미라가 이를 악물고 버텼 다.

“유연하게 버티라고, 유연하게!”

난 곧장 힘을 반전하여 그녀를 밀 어버리곤, 뒤늦게 내리쳐진 육척봉 을 잡아채었다.

“느리고, 뻔해! 더 과감하게!”

육척봉을 잡아당기자, 멀대 부니가 비틀거리며 딸려 나왔다.

“게헥!”

발을 걸어 부니를 자빠뜨리곤, 아 미아스가 내지른 나무 몽둥이를 피 하며 턱을 밀어버렸다.

제 동료들이 모두 바닥을 나뒹굴 자, 육척봉을 쥔 제네사가 나를 보 고 오들오들 떨어댔다.

“넌 대체 언제 움직일 거야?”

“흐극.”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제네사가 힘 없이 육척봉을 뻗어왔다. 자세는 좋 은데, 기백이랄 게 전혀 없다.

한 손으로 육척봉을 낚아채어 제네 사의 다리 사이에 넣고 비틀어버렸 다. 힘없이 자빠지는 제네사.

“다시, 자리 잡아!”

내가 고함을 지르자, 먼지투성이가 된 용병들이 허겁지겁 일어나 자세 를 잡는다.

“우테콰이.”

“흐, 간다!”

양손에 나무 몽둥이를 한 자루씩 쥔 우테콰이가 사납게 웃으며 용병 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천천히 돌아, 천천히!”

아미아스가 뭐라도 해보려 고함을 질러댔지만, 짐승처럼 달려든 우테 콰이가 자비 없이 몽둥이찜질을 퍼 부었다.

쾅, 쾅, 쾅, 쾅, 쾅!

두 호흡 만에 아미아스와 미라가 자빠졌고, 다음 두 호흡에 나머지 셋이 자빠졌다.

난 흙바닥에서 버르적거리고 있는 놈들에게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방어할 때 눈 감지 말라고 몇 번 을 말하냐? 공격을 끝까지 보면서 흘리려고 해야지, 몸에 힘 빡 주고 버티면 다 막을 수 있어? 니들이 오크야?”

“끄, 끄웅.”

“부니, 제네사. 장병기를 들었으면 그냥 냅다 찌르라고. 상대 숨통을 끊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군 방패 에 공격이 닿기 전에 먼저 찌른다는 생각으로, 일단 지르라니까?”

“……허윽, 아, 알겠어.”

“자, 이제 일어나!”

다섯 용병들이 바닥을 긁으며 일어 나고, 금세 도로 자빠졌다.

우테콰이에게 다음 라운드를 맡기 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었다. 그러곤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궁수 콜에게 다가갔다.

“할 만하냐?”

“후우, 후욱, 어.”

콜은 큰 나무에 기대어진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발로 디딤대를 딛으며 올라가는 게 아니라, 사다리 아래에서 양손만을 이용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 어 묵직한 사슬갑옷을 입은 채였다.

사다리 훈련을 끝낸 콜은, 이어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곤 팔굽혀펴 기 중에서도, 흔히 ‘배밀기’라고 부 르는 동작을 시작했다.

“이걸로 몇 세트지?”

“아홉, *후욱* 세트.”

음,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군.

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용병들을 돌아보며 손뼉을 쳤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 여기까지만 하자.”

“어흐으.”

“주, 죽겠어.”

앓는 소리를 내는 아미아스 패거리 에게 난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뭘 이 정도로 죽으려고 해? 1인 분 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험한데.”

용병들의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지 만, 딱히 반발하는 놈은 없었다.

“맥주 마실 생각 말고, 들어가서 삶은 계란이나 몇 개 까먹고 자라. 내일 해뜨기 전까지 여기로 다시 모 이고.”

내 말에 아미아스가 창백해진 얼굴 로 물었다.

“잠깐. 해, 해뜨기 전에? 그럼, 사 냥은?”

“당연히 가야지.”

“훈련을 하고 사냥까지 간다고?”

“왜? 실력 상승의 기회를 잡은 게 감격스럽냐?”

“......o 으”

아미아스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 을 다물었다.

하긴, 기사가 직접 땀 흘려가며 훈

련을 시켜주고 사냥까지 데려가 주 는데 불만을 품으면 그게 이상한 거 지.

롱빌에서의 나날이 흘러갔다.

새벽에 일어나 자유대련을 하고, 아침을 먹은 뒤 두어 시간쯤 쉬다 사냥을 나선다.

산기슭을 홅으며 소규모의 그린스 킨이나 아누파드 무리를 사냥하고, 롱빌로 복귀하여 성과를 제출한다.

저녁 식사를 한 뒤엔 단체훈련을 하고, 이른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꽤액, 꽥.

매일 같이 방을 비우던 내가 어쩐 일인지 점심나절이 되도록 나가질 않자, 뭉치는 신이 난 것 같았다.

그저께쯤부터 고개를 내민 엄니를 발목에 비벼댄다. 난 녀석의 배를 간질여주며 나무 그릇을 내려놓았 다.

설탕, 우유를 섞은 귀리죽이다. 야 생 멧돼지가 누릴 수 없는 호사에, 뭉치는 콧김을 뿜으며 허겁지겁 그 릇을 비웠다.

“오구, 잘 먹는다, 오구, 잘 먹어.”

새끼 고양이와는 달리, 새끼 멧돼 지는 어지간한 건 모두 잘 먹었다.

딱히 먹이를 구할 게 없으면 대충 먹던 걸 넘겨줘도 뭉치는 곧잘 받아 먹었고, 덕분에 근 두 달 만에 덩치 가 몇 배나 커져 있었다. 웰시코기 보다 조금 큰 정도?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뭉치는 낑낑 거리며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왔다. 그러곤 배를 깔고 누우며 자세를 잡 는 것이었다.

난 가만히 녀석의 털을 쓸어주었 다. 잘 말린 털 너머로 따뜻한 체온 이 전해져 왔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먹고 싶다. 내 가 전에 김치찌개 말한 거 기억나 냐?”

뭉치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꽥, 하고 작게 울었다.

“우리 어무니가, 다른 건 다 못해 도 닭도리탕이랑 돼지고기 김치찌개 는 진짜 기가 막히게 하셨거든.” 작은 속삭임에 뭉치가 숨을 죽였 다. 내 부드러운 손길에 녀석의 눈 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

“아무래도 매운 게 먹고 싶은가 봐. 짬뽕, 떡볶이, 김치죽, 아구찜, 뭐, 그런 거.”

이젠 썩 익숙한 상황인지, 뭉치는 내가 무어라 지껄이든 신경도 쓰지 않고 머리로 내 허벅지를 긁어댔다.

“쌀국수도 먹고 싶다. 신촌에 진짜 기가 막히게 하는 데가 있는데....... 내가 평생 쌀국수는 입에도 안 대다 가, 거기서 먹고 나선 완전 중독자 됐잖아.”

뭉치의 눈꺼풀이 살살 감기기 시작 할 즈음, 방문이 벌컥 열렸다.

“끝났어?”

“거의.”

허공을 부유하며 방으로 들어온 것 은, 당연히 엘렌이었다. 면바지에 셔 츠만 입은 녀석은 아직도 반쯤 눈을 감은 채였다.

“아니, 그렇게 푹 자놓고 아직도 졸려?”

“시비 걸지 마.”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 엘렌이 내게 수건을 건네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난 수건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 었다.

“이젠 그냥 자동이다?”

“빨리 ”

참나, 갈수록 양양이라더니.

고개를 내저은 뒤, 뭉치를 조심스 레 침대로 옮기고 엘렌의 머리를 수 건으로 털기 시작했다.

이젠 일상이 된 라임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난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엘렌의 머리칼을 꼼꼼히 말려주었다. 이어서 빗질까지 마치 니, 머리칼이 비 온 뒤의 유채꽃밭 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자, 끝.”

“으응.”

나는 완갑과 정강이받이만 착용한 뒤 벨트를 둘렀다.

엘렌은 가죽조끼에 슬링백을 두르 고 로브까지 걸쳤다. 그러곤 작게 하품을 하더니 내 팔에 걸터앉았다.

“가자.”

오늘은 쉬는 날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첫째 는 아미아스 패거리에게 재정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주일간의 빡센 일정으로 여섯 용 병은 크고 작은 상처와 피로를 얻은 상태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느긋이 치료를 받고, 장비를 점검할 수 있 는 날이 필요했다.

두 번째 이유는 엘렌 때문이었다.

“너, 좀 신나 보인다?”

“응? 아닌데?”

엘렌은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돌렸 지만, 바람을 맞고 깨어난 녀석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설렘이 가득 했다.

“남의 실험실 가는 게 그렇게 신 나?”

“……신난 건 아니지만, 좀처럼 드 문 일이긴 하지.”

지금 나와 엘렌은 영주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롱빌의 영지마법 사인 마스터 캐스라이트의 실험실에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별 안면이 없는 사람을 자신의 실 험실에 초대하는 마법사는 무척 드 무니까.”

“음, 그래?”

“응. 마음씨가 좋은 분 같아.”

마스터 캐스라이트와는 이미 만나 본 적이 있었다. 남작부인의 소개로 함께 식사를 했는데, 한눈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 이었다.

우리는 영주관 옆에 자리 잡은 실 험실에 도착했다. 한쪽에 장작 창고 가 붙어있는, 굴뚝이 세 개나 달린 벽돌 건물이었다.

문고리를 잡고 두어 차례 문을 두 드리자, 중년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 내었다.

“포이닉스 경, 엘렌 양!” 마스터 캐스라이트는, 누가 봐도 포근한 느낌을 받을 만한 아주머니 였다. 깔끔하게 빗어넘긴 반백의 머 리칼과 넉넉한 살집, 빙글거리는 커 다란 미소가 인상적인 분이다.

“아름다운 정오죠? 이쪽으로 와요.”

마스터 캐스라이트의 실험실은, 음, 좀 세련된 주방처럼 생긴 곳이었다.

온갖 약초와 재료를 보관한 선반이 삼면을 채우고 있었고, 한쪽엔 장작 이 여섯 층으로 정갈하게 쌓여 있었 다. 거기에 크고 작은 가마솥과 모 래시계, 풀무, 막자사발, 투명한 유 리병, 두꺼운 책 등이 깔끔하게 정 리되어 있었다.

멍하니 방 안을 둘러보는데, 아주 머니는 우리를 차탁으로 인도했다. 차탁에는 온갖 종류의 음식들이 펼 쳐져 있었다.

복숭아, 견과류, 무화과, 생강을 섞 은 꿀 절임, 노릇노릇하게 구워 사 과잼을 얹은 스콘, 통밀과 계란을 섞어 버터에 구워낸 쿠키, 허브를 뿌려 향을 낸 쇼콜라틀…….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 치스러운 음식들이었다. 물론, 맛있 는 간식을 만들어 주변과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인 중년의 마법사에겐 그 리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다.

호화로운 간식이 차려진 차탁에는 먼저 온 손님이 앉아있었다.

“남작부인께서 와 계셨군요.”

“반가워요, 포이닉스 경.”

내가 남작부인과 인사를 나누는 사 이, 마주 앉은 엘렌과 마스터 캐스 라이트는 이미 본격적인 대화를 시 작한 뒤였다. 밀라놀어지만, 무슨 소 린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화 말 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