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악당들 159화
40. 다시, 추적자들(3)
“포이.”
뭉치는 영주관의 안뜰에서 나를 기 다리고 있었다. 양손을 뒤로 숨기고 시선은 내리깐 채였다.
“추운데 여기서 기다렸어? 방에 들 어가 있지.”
“에, 아니에오.”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던 뭉치는 푹 하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재성함미다.”
“뭐가?”
“사람 주겨써요. 포이가 시키지 안 함미다, 저 주겨써요. 재성함미다.”
“……내가 시키지 않았는데 사람을 죽여서 죄송하다고?”
“네, 그거요. 그거 마저요.”
내 경험상, 질책을 받기 전에 실수 를 먼저 시인하는 건 꽤 좋은 처세 술이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 특히 잘 먹히는 스킬이지.
“끄 ” O •
별로 달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난 뭉치의 보스가 될 생각이 없을 뿐더러, 녀석이 하는 말은 핀트가 약간 어긋나있었기 때문이다.
a 흐”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에 대 해서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고민하 다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우스운 일이다.
이 세상에 온 뒤로 내가 죽인 사 람의 수가 200명도 넘는다. 그런 주 제에 살인을 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으려 했다 니.
“오늘 일은 잘했어.”
“......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어린 하녀들 을 일별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죽인 늙은이, 마우리오라는 놈인데 완전 인간 말종이더라고.”
“에, 말쫑?”
“나쁜 놈이라고. 잘 죽였어.”
“ 아.”
내 뜬금없는 칭찬에 뭉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 지만, 뒤꿈치를 들썩거리는 게 기분 이 썩 좋아진 모양이다.
“하지만, 뭉치야.”
“네?”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거야.”
“운 조아써요?”
“그래. 이번에는 죽어도 싼 놈이었 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대하는 병사들을 피해 녀석을 안 뜰 한쪽으로 데려가며 말을 이었다.
“네가 덜컥 죽여버렸는데 알고 보 니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으면 어 떡 해?”
“에……
‘어떻게 하는데요?’ 하는 물음이 너무나 쉽게 읽히는, 검고 커다란 눈동자.
나는 눈썹을 긁적거리며 어깨를 으 쓱거렸다.
“너는 물론이고 나한테도 나쁜 일 이 생길 거야. 으음, 마음이 아플 수도 있고, 현상금이 걸려서 쫓겨야 할 수도 있고.”
“네에.”
멀뚱멀뚱한 눈빛에 한숨이 절로 나 온다.
“……어쨌든 사람은 함부로 죽이면 안 돼. 사람을 죽여야 할 것 같을 땐 되도록 나한테 물어보고.”
“네, 알게씀미다.”
명령조로 하는 말에는 대답이 썩 경쾌하다. 문득 검객의 배경 이야기 가 떠오른다.
동방의 다섯 왕국 사이에서 암약하 는 조직인 ‘무검회(無劍會)’. 그 무 검회에서 비밀리에 길러낸 일종의 히트맨이 바로 검객이었다.
고장 난 도덕관이나 명령에 익숙한 태도는 아마도 그런 배경에 의한 거 겠지.
“그래도, 뭉치야.”
“네?”
“사람을 죽이는 건 아주……. 음, 무거운 일이야. 나한테 허락을 얻었 다고 해서 살인으로 인한 짐이 덜어 지는 건 아니라고.”
“에……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해. 그 판단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나한테 물어보고. 알겠지?”
뿌듯하게도, 뭉치의 얼굴도 어느새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내 말을 곱씹는 듯 침묵하던 녀석은 이내 고 개를 끄덕거렸다.
영주관의 뒤뜰에 들어선 우리를 가 장 먼저 맞이한 것은, 우테콰이의 호통이 었다.
“포이닉스, 또 늦었다!”
“……몸 괜찮냐, 너? 오늘까지는 쉬지?”
“안 된다. 더 쉬면 암소 엉덩이처 럼 퍼진다.”
한창 훈련 중이었는지, 우테콰이의 벌거벗은 상체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놈의 근처에는 부니를 제외 한 아미아스 패거리가 먼지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헤엑, 헥. 오셨습니까, 나리.”
“부니는‘?”
분분히 인사를 하던 녀석들 중, 민 머리에서 김을 펄펄 풍기고 있던 스 티드먼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끄응. 그, 벨딘인가 뭐시긴가 하는 필경사 나부랭이한테서 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아침부터?”
“예. 하여튼간 그 썩을 놈, 설레발 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까요.” 녀석의 투덜거림에 나는 피식 웃음 을 흘렸다.
“그 설레발, 내가 시킨 건데?”
“어, 예?”
뒤뜰에는 마검사 시모스도 나와 있 었다. 내 시선에 흠칫한 것도 잠시,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 왔다.
“포이닉스 경.”
“너도 같이 훈련하고 있었어?”
“예. 하나 남은 눈에 적응도 할 겸, 그, 꼽사리 좀 꼈습니다.”
“그래?”
내가 시모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암회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마검사 시모스, 아니, 청발의 모시 스는 여전히 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었다. 닷새 전에 보여준 내 사기극 이 꽤 그럴듯했던 모양이다.
“……시모스.”
“예, 예?”
“이따가, 음, 해 질 때쯤 잠깐 얘 기 좀 할까? 물어볼 게 있는데.”
내가 싱긋 미소를 짓자, 그녀는 마 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 습니다.” 재개된 훈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뭉치였다. 뭐, 뉴페이스니까 당연한 거지.
새벽 산책을 하느라 충분히 몸이 풀린 상태였기 때문에, 난 곧장 녀 석과 대련을 해보았다.
상대를 죽이기는커녕 되도록 다치 지 않도록 해야 하는 싸움을 뭉치가 이해할까 걱정했는데, 녀석도 대련 은 알더라.
“자, 편할 때 시작해.”
“……에.”
방패를 두드리며 말하자 뭉치는 조 금 망설이는 기색으로 몽둥이를 고 쳐 쥐었다. 썩 내키지 않아 하는 표 정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저거,”
“ 오.”
근처에서 짧은 감탄성이 흘렀다. 뭉치의 기세 때문이었다.
어수룩함과 수줍음, 그리고 약간의 푼수끼가 느껴지던 분위기는 한순간 에 사라진 채였다. 녀석은 마치 서 늘하게 벼려낸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풍겼다.
“흠.”
기분 좋은 호승심이 가슴을 두드린 다. 즐거운 대련이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예감은 완 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뭉치와의 대련은 재미도, 영양가도 없었다. 기량의 차이라기보단 상성 의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나는 방어를 굳힌 채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하여 상대 를 찍어누르는 스타일이었다.
포이닉스의 기억과 함께 되살아난 무술, 울카르의 기사들과 수련을 하 며 익힌 노하우들, 우테콰이가 가르 쳐준 나부크 등이 곁들여지긴 했지 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반면 뭉치는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 며 한 방을 노리는 스타일이었다.
이러한 상성 탓에 뭉치는 내 방어 를 뚫을 수가 없어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나는 녀석을 잡지 못해서 술 래 노릇이나 하는 판국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미 없 는 대련을 끝마쳤다.
“됐어, 그만하자.”
“……네, *헤엑* 네엡 탁월한 몸놀림과 유연함을 기반으 로 한 곡예에 가까운 퍼포먼스는 놀 라웠지만, 뭉치는 체력이 좀 약한 편이었다.
하긴. 캐릭터 시트로 따지면 건강 이 엘렌보다도 떨어지는 형편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그것보다 더 의외인 것은, 녀 석의 검술이었다.
뭉치는 몽둥이끼리 마주치는 것을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힘이 부 족해서 피하는 건가 싶었는데, 억지 로 붙어보니 격검 자체가 좀 어설펐 다. 냉정히 평하자면 사우스하버에 서 만났던 용병인 그라니아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이다.
내 실망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숨 을 고르던 뭉치의 얼굴이 어두워졌 다.
“저, * 후우* 다른 거 조아요.”
“다른 게 좋다고?”
“네. 칼싸움 못해오. 다른 거, * 헤 에* 조아요.”
“……검술은 특기가 아니다, 이거 야?”
“마저요, 특기. 숨기, 던지기, 그리 고, 어, 독 쓰기가 특기에오.” 라고 말하며 히, 웃는 것이었다.
……검술이 약점인 검객이라. 어쩐 지 기시감이 드는군.
뭐, 무기술보다 인술과 체술 계열 에 특화된 빌드니까 당연한 거긴 한 데. 어쩐지 헛웃음이 나오는 건 어 쩔 수가 없다.
“웃을 수 없다! 뭉치, 실력 형편없 다!”
“엑.”
헤실대는 뭉치를 움츠러들게 만든 건 이를 훤히 드러낸 우테콰이였다.
“이 잇.”
놀란 것도 잠시, 뭉치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우테콰이를 노려보았다. 놈은 껄껄거리며 육척봉을 들더니 뭉치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흐흐, 눈알 뒤집지 말고 덤벼라. 나, 포이닉스 아니다. 내숭 떨 필요 없다.”
뭉치가 허락을 구하듯 나를 돌아보 았다. 썩 사나운 기세다.
“으......”
......•
문신 특화 광전사와 인술 특화 검 객의 대련이라.
결과가 뻔히 보였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왜 하필이면 뭉치지?”
“뭉치가 왜?”
스티드먼의 되물음에 주근깨 미라 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긴, 이 등신아. 포이닉스 님이 전에 기르던 돼지 이름이 뭉치잖 아.”
“어, 맞다. 그랬지.”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미라 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뭔가 절묘하지 않아? 이름도 그렇 고, 하필이면 돼지가 사라진 직후에 쟤가 나타났잖아.”
미라는 그렇게 말하며 뒤뜰의 외벽 구석을 곁눈질했다.
거기엔 이국적인 동방의 미녀가 시 무룩한 얼굴로 쪼그려 앉아있었다. 옆구리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과 먼 지투성이가 된 옷에서 그녀가 겪은 고초가 엿보였다.
“그래서? 쟤가 그 새끼돼지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포이닉스 님이 어물쩍 넘어가는 걸 보면 수상하지 않아?” 미라의 빛나는 눈을 마주 보며 스 티드먼은 냉소를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돼 지가 어떻게 사람이 되냐, 이 멍청 한 년아?”
“……멍청한 년? 이 대머리 땅딸보 새끼가-”
미라가 무어라 으르렁거리려던 차, 리더 아미아스가 그녀를 만류했다.
“성질 낼 기운 있으면 슬슬 정리나 하자. 두 분도 곧 끝날 것 같으니 까.”
아미아스가 가리키는 것은 뒤뜰 한 가운데를 차지한 포이닉스와 우테콰 이였다.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둘은 곰이나 황소처럼 어깨를 맞댄 채 엎치락뒤 치락하고 있었다.
저돌적인 돌격을 흘려낸 우테콰이 가 거구로 찍어누르며 기술을 걸려 던 차, 쓰러진 포이닉스가 다리를 뻗었다. 우테콰이가 허벅지와 허리 를 옭아맨 다리를 떼어내자, 포이닉 스는 이번엔 발목과 오금을 노렸다.
포이닉스의 끈질긴 공세에, 우테콰 이는 결국 목을 내주고 말았다.
얼굴이 평소보다 배는 시뻘게진 우 테콰이가 제 목을 조이는 팔뚝을 두 드리자, 포이닉스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세 판 만에 따낸 승리였다.
“Ah, fidhos!”
몸을 일으킨 우테콰이가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며 무어라 투덜거렸 다. 아미아스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 물주머니를 내밀었다.
우테콰이에 이어 물주머니를 건네 받은 포이닉스는 목을 축인 뒤 머리 위로 물을 끼얹었다. 조각 같은 근 육을 타고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흘 러내렸다.
“……와, 미친.” 조용히 마른침을 삼키는 미라를 뒤 로하고, 궁수 콜이 포이닉스에게 다 가갔다.
“포이닉스 님.”
“어?”
“누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디서?”
“2층에 있는 세 번째 창문입니다. 왼쪽에서 세 번째요.”
포이닉스는 물을 축이며 그쪽을 살 폈다. 그러곤 피식 웃음을 흘리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데?”
“두 분이 나부크를 시작하실 때부
터입니다.”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콜의 어깨 를 두어 차례 두드렸다.
2층에 잠시 들렀다가 방으로 돌아 온 나는 눈썹을 긁적거리며 엘렌에 게 물었다.
“……왜 아침부터 명상이야? 밥이 나 먹으러 가자.”
침대 위에서 명상을 하던 녀석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고개를 가로저 었다.
“지금 식사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주문을 새로 깨우쳤어. 두 개나.”
“••••••아하.”
하긴, 이번에 레벨이 한꺼번에 오 른 탓에 보너스를 많이 분배했지.
이름 : 엘렌
레벨 : 22
클래스 : 원소마법사
능력치 : 남은 보너스 - 1
근력 - 12(14) 민첩 - 12(14)
건강 - 16(22) 마력 - 37(88)
스킬 :
바람주먹 3pt, 춤의 정령 2pt, 칼바람 lpt
불꽃화살 5pt, 불타는 무기 2pt, 화염구 2pt
냉기분사 3pt, 서리나비 2pt, 서리송곳 2pt, 냉기갑옷 lpt
전격 lpt
녀석이 새로 익힌 주문은 두 가지 였다.
첫 번째는 ‘칼바람’.
좁은 범위에 절삭피해를 입히는 풍 계 마법이다. 나와 처음 만났을 당 시, 엘렌이 ‘서풍의 지휘봉’의 힘을 빌려 부리던 주문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냉기갑옷’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냉기 계열의 방어 마법으로, 사용하기 까다로운 구석이 있긴 해도 나름 쓸만한 스킬 이다. 엘렌의 빈약하기 그지없는 생 존성을 조금이나마 보완해줄 주문이 다.
“……근데 표정이 안 좋네? 주문이 늘었으면 좋은 거잖아.”
“뭐, 나쁜 건 아니지.”
엘렌은 입술을 댓 발 내민 채 말 을 이었다.
“그래도 거슬려.”
“거슬리다니?”
“원하던 주문이 아니란 말이야.”
“……고작 그거 때문에?”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거’라니. 난 근 한 달 동 안 명상을 하며 대지 계열 주문들만 복기했단 말이야. 그런데 또 엉뚱한 주문을 익히다니.”
“주문을 복기했다고? 그런 식으로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거였어?”
“재능에 따라 다르지. 이 방법으로 성과를 거둔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말한 성과란, 내가 찍어준 적도 없는데 혼자서 익힌 ‘전격’을 이르는 것이었다. 당시 캐릭터 시트 를 보고 잠깐 당황했던 기억이 난 다.
섭섭해하는 엘렌을 내려다보며, 나 는 씩 미소를 흘렸다.
“어떤 주문을 익히고 싶었길래 그 래?”
“••••••있어.”
“뭔데? 말이나 해 봐.”
“네가 알면 어쩔 건데?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
“으음.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한 번 말해봐.”
“궁금하잖아.”
옆에 나란히 앉아 채근하자, 엘렌 은 못 이긴 척 대답을 내놓았다.
“……땅의 통로.”
“땅의 통로?”
대지 계열의 2.5랭크 스킬이다. 마 법사 시렌이 드라이어드의 수염인가 뭔가를 이용해서 부린 적이 있는 주 문이기도 하고.
“저번에 보니까 쓰기 까다로운 마 법인 것 같던데.”
“……효율이 좋지는 않지만, 응용 할 방법이 무궁무진한 주문이란 말 이야.”
“뭐, 그런가.”
나는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의 문을 표했다.
“근데, 대지 계열 주문을 익히겠다 고?”
“그러고 싶었지.”
“네가 잘 다루는 건 화염, 냉기, 바람 계열 주문들이잖아. 그쪽 계열 을 특화하는 게 낫지 않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녀석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 저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중요한 건 균형이야. 다섯 원소를 모두 자유자 재로 다룰 수 있어야 진정한 대마법 사가 될 수 있어.”
“……음, 그래?”
다섯 원소를 모두 자유자재로 다루 는 마법사라. 말하자면, ‘올마스터’ 쯤 될까?
게임에서는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다섯 원소를 모두 익힐 수는 있겠 지만, 스킬 포인트가 모자라서 똥캐 가 되기 십상이니까. 궁극기도 제대 로 못 배우겠지.
문득 트릭스터가 떠올랐다.
얼번메 주제에 화염 계열의 궁극기 인 ‘용의 숨결’까지 쓰던 버그 캐릭 터…….
그러고 보니 엘렌은 이미 여러 차 례 공짜 스킬 포인트를 얻은 적이 있었다. 이대로 성장하면서 스킬 포 인트를 충분히 얻는다면, 진정한 올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에이, 설마.”
“뭐가?”
엘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나 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식사를 마친 뒤, 뭉치와 함께 영주 관을 나섰다. 녀석의 장비를 사기 위해서였다.
아미아스 패거리도 함께였다. 횃불 이나 기름, 화살 등 보충할 물자가 많다나.
엘렌은 새로 익힌 주문을 수련해보 겠다며 영주관에 남았고, 우테콰이 는 잠이나 더 자겠다며 방으로 돌아 갔다.
아미아스 패거리가 잡화상에 들르 는 동안 우리는 병구점을 찾았다. 조그만 영지라서 그런지 무기와 방 어구는 물론이고 옷까지 같이 팔더 라.
나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방패 를 골랐고, 투창도 몇 개 챙겼다. 방어구는 영 쓸 만한 게 없어서 그 냥 스킵했다.
루푸스라고 했나? 그 갑옷 괜찮던 데, 다이오네아한테 부탁해서 또 빌 려야겠다.
한편 뭉치는,
와, 이게 다 얼마야.” “히.”
이것저것 많이도 챙겼다.
신발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가벼운 부츠도 한 켤레 집었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로브와 완갑도 한 쌍 골랐 다. 송곳처럼 생긴 대거와 짧은 칼 을 한 자루씩 골랐고, 가벼운 단검 도 다섯 자루 챙겼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뭉치는 한참 동안 병구점 안을 두리번거렸다.
“왜, 뭐 찾는데?”
“Xiao nu. 그, 이러케, 화살 쏘는 거요.”
녀석의 몸짓을 알아본 점주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혹시 쇠뇌 말하는 거면, 그런 건 없소. 안 팔아.”
“쇠뇌 안 팔면, 줄 주세오.”
“줄이라니?”
“네. 쇠뇌, 줄 주세오.”
“그것도 없소. 우리는 완성된 장비 를 팔지, 줄 같은 건 안 판단 말이 오.” “우으.”
뭉치가 귀엽게 울상을 지은 덕인 지, 점주는 덤으로 녀석이 찰만한 검대(劍帶)를 내어주었다.
은화를 열다섯 닢이나 내고 병구점 을 나올 즈음.
“포이.”
사들인 장비들을 모두 차려입은 뭉 치는 허리춤에 착, 손을 얹은 채 나 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쇠뇌를 구하지 못해 실망한 기색이었는데, 지금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눈을 초롱거 리고 있다. 뭐지?
“……음, 잘 어울리네?”
“헤.”
정답이군.
물자 구입을 마친 아미아스 패거리 와 합류한 뒤엔, 한가로운 거리를 둘러보며 영주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의외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