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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악당들-512화 (512/547)

나의 악당들 512화

67. 아이스보발트의 영주(5)

“괜찮냐?”

“……예, 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에곤은 등허 리를 주물럭거렸다. 폭음탄이 달린 화살에 머리를 맞고 넘어지며 돌부 리에 찍혔는데, 무언가 잘못됐는지 등허리가 찌릿찌릿하다.

훈련장에 따라온 사제들에게 치료 를 받긴 했다. 번쩍이는 손바닥이 부채질하듯 스치고 지나간 게 전부 이긴 하지만. 성당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은화 두어 닢은 봉헌해야 함을 에곤도 알기에 그마 저도 감사한 노릇이었으나, 못내 불 안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둔탁한 화살에 얻어맞은 머리에 별 이상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다. 보급 받은 묵직한 쇠투구에 두툼한 무장 모까지 받쳐 쓴 덕분이다.

키 큰 소년의 얼굴에서 작은 일그 러짐을 읽어낸 알반은 낄낄대며 그 를 비웃었다.

“그러게 왜 나서냐, 나서기를. 어린 놈■이 몸뚱이 귀한 줄 모르고.”

“화살 맞은 건 그냥 재수가 없던 거지, 제가 나서서 그런 게 아닌데 요.”

“아니기는, 나처럼 잘 사리고 있었 으면 그런 일이 있었겠냐?”

에곤은 중년인을 한차례 흘겨보고 는 입을 다물었다. 소년 역시 괜히 나서다 몸이 상한 것 같아 후회스럽 던 참이다.

목이 다 쉬도록 고함을 지르고, 두 려움을 무릅쓰며 선두로 나섰음에도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 난 일주일간 분대장 역할을 한 숙련 병이 ‘어린 녀석이 씩씩하다’며 어 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을 뿐. 장 교도, 하사관도 아닌 병사의 격려가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이제 다 끝났다. 얼른 돈 받아서 한 이틀 늘어지게 놀고 돌아 가야지……. 넌 어쩔 거냐?”

“……모병관을 찾아보려고요.”

“그놈 참, 고집하곤. 일주일 동안 그 고생을 하고도 병사가 되고 싶다 고?”

에곤은 약간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반의 미간이 좁혀졌다.

“으이구, 철없는 놈 같으니. 병사만 되면 큰 출세를 할 수 있을 것 같 으냐?”

“아무렴 밭 갈고 이삭 줍는 것보다 는 낫겠죠.”

“그건 적어도 몸 성히 늙을 수라도 있지, 브린스트만 해도 병사 노릇 하다 병신 된 놈이 어디 한둘이냐? 내가 딱 보니깐 넌 원체 몸이 비리 비리해서 하사관은커녕 졸병 신세로 청춘 다 허비할 게 뻔하다, 이 녀석 아.”

그 악담인지 만류인지 헷갈리는 말 에 에곤은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끝 내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소년이 지금껏 보기에, 장교나 하 사관은 물론이고 어깨띠 없는 병사 들 중에서도 만만한 자가 하나도 없 었다. 입대를 하더라도 사나운 병졸 들과 경쟁해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징집병들 틈바구니에서 우울한 기 색으로 걸음을 옮기던 에곤은, 훈련 대대의 주둔지에 다다를 무렵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고소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 탓이다.

도시에서 나온 잡부들과 상인들이 징집병들의 천막 사이를 분주히 오 가고 있었다. 커다란 참나무통을 굴 리고, 흰 빵이 가득 담긴 수레를 밀 고, 음식이 담긴 접시를 옮기고, 여 기저기 커다란 천을 까는 것이었다.

그 활기찬 풍경에 눈을 반짝이면서 도, 에곤은 조금 실망한 말투로 중 얼 거렸다.

“잔치라고 하더니, 도시에 들여보 내 주는 건 아닌가……

“하, 얼빠진 소리는.”

그에 반응한 건 앞서 걸어가던 분 대장이었다. 사슬갑옷 위로 덧입은 조끼에 숙련병 계급장을 단 그는 비 웃음 섞인 눈빛으로 에곤을 돌아보 았다.

“그럼 영주관으로 초대라도 해줄 거라고 생각했냐? 냄새 나는 징집병 들을, 천 명도 넘게?”

“아, 그게.”

“멍청한 소리 집어치우고 따라오기 나 해. 엉뚱한 천막 기웃거리다 시 비 붙지 말고!”

그를 따라 천막으로 돌아가며, 에 곤은 연신 주변을 흘긋거렸다. 징집 병들과 잡부들이 뒤섞이며 소란스러 운 와중, 주둔지 사이 공터에 놓인 긴 테이블과 그 근처만 조용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나운’ 머르그, ‘털보’ 헨리크, ‘쇠장갑’ 타가트, ‘괴 물 종자’ 골만 등 높은 지위의 간부 들이 덮개천 아래 띄엄띄엄 앉아있 었다.

“알반, 저기. 저기가 상석인가 봐 요.”

앞서가는 분대장이 들을까, 에곤은 작은 목소리로 알반에게 속닥거렸 다.

“영주님도 나오는 걸까요?”

“글쎄, 나야 모르지.”

중년인은 키 큰 소년이 턱짓하는 쪽을 흘긋 돌아보더니 말을 덧붙였

“뭐, 생색이나 낼 겸 얼굴을 비출 수도 있겠는걸. 이 정도 음식을 준 비하자면 금화깨나 썼을 테니……

“그렇겠죠?”

“뭘 그리 기대를 해? 영주 나리 얼굴을 봐서 어디에 쓴다고. 난 그 유-명한 ‘약혼녀들’이나 한번 구경 해 보면 소원이 없겠다. 이 비루한 곳에 데리고 나올 리는 없겠지만 말 이야.”

천막에 이르러서야 잡담이 그쳤다. 이미 주둔지는 반쯤 난장판이나 다 름없었으므로, 분대장은 어느 하사 관의 악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구(兵具)는 잘 갈무리해 두고, 바로 식사 시작한다! 각하께서 특별 히 준비해 주신 음식이니 감사히 즐 거 라고!”

에곤의 분대는 대답과 환호가 뒤섞 인 고함을 한차례 지르고 곧장 차려 진 음식으로 덤벼들었다. 지난 일주 일간 익힌 군기니 규율이니 하는 것 도 하얗게 부풀어 오른 빵 앞에서는 몽땅 잊은 모양새였다.

무려 천 명 이상의 징집병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푸는 것인 만큼 그 질에 대해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준비된 술과 음식은 의외로 괜찮았다. 아니, 생각 보다 훨씬 훌륭했다.

군문을 통해 출세하는 꿈을 품은 탓에 틈만 나면 하사관이나 장교들 을 훔쳐보며 붉은 군대에 대한 정보 를 수집하던 에곤 역시 정신을 차리 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저 효모를 넣어 부풀린 줄로만 알았던 커다란 흰 빵은 바질과 치즈 로 속을 꽉 채운 것이었다. 화덕에 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한 입 뜯어먹을 때마다 고소함과 노릇 함이 코와 입술을 번갈아 적셨다.

기름과 소금을 넉넉히 발라 직화로 구워낸 오리는 부드럽고 담백했다. 에곤이 매형과 함께 사냥터지기 몰 래 잡았던 산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쫄깃했고, 잡내도 나지 않았 다.

붉은색 과일소스를 끼얹은 돼지 등 심은 그가 지금껏 먹어본 고기 중 가장 신기한 맛이었고, 호두 가루를 얇게 입혀 기름에 튀긴 세이지 잎은 바삭하고 향긋했다. 달걀을 넣은 팬 케이크는 평소 에곤이 가장 좋아하 는 요리였으나 좀처럼 손이 가지 않 았다. 그걸 먹는 동안 다른 징집병 들이 고기를 몽땅 먹어치울까 걱정 스러웠던 탓이다.

다만 고기가 부족할까 걱정할 필요 는 없을 것 같았다. 도시에서 온 푸 주한이 공터에 고기마차를 대자, 하 사관들이 여럿 나서더니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건네받아 모닥불을 키워 굽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봐, 촌놈들! 좀 더 힘내서 먹으 라고!”

바쁘게 음식을 나르던 어느 잡부가 에곤의 분대를 돌아보며 장난스레 재촉했다.

“영주 나리를 벗겨 먹을 기회는 좀 처럼 흔치 않단 말이야. 세금 낸 걸 메꾸려면 지금의 두 배는 먹어야 해!”

에곤은 이내 사정을 파악할 수 있 었다. 아무리 영주관이나 ‘약혼녀들 의 저택’에 하인이 많다 한들 천인 분이 넘는 잔치 음식을 갑자기 준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도시의 여러 여관과 식당들 이 동원된 것이다.

손이 부족하여 직접 음식을 나르는 점주들의 입꼬리가 찢어지는 것을 보니, 영주가 천인분짜리 외상을 달 아두고 배를 쨀 만한 위인은 아닌 모양이었다.

풍성한 음식에 흑밀로 빚은 맥주까 지 더해지자, 징집병들은 건배하며 영주의 자비로움을 칭송했다. 천 명 이 넘는 사내들이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통에 해가 저물었지만 북문 인근은 낮처럼 밝았다.

“영주님이다.”

불콰해진 얼굴로 징집병들과 술잔 을 주고받던 어느 중사가 눈을 동그 랗게 뜬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억눌린 비명 같은 중얼거림을 듣고 주변의 병사들이 성곽 쪽을 돌아보 았다. 주둔지의 장교, 하사관, 병사, 징집병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리기 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 다. 에곤 역시 열댓 기의 기수를 보 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드펠켄 방백령의 주인이자 베르미 크-스트롬 제국후령의 종신원수이 신 포이닉스 폰 드펠켄 각하께서 납 신다! 모두 예를 갖춰라!”

검붉게 칠한 전신갑주을 걸친 기사 가 주둔지가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 다. 대부분의 징집병들은 저 흉측한 갑주만 보고도 기사의 정체를 알아 챌 수 있었다.

일명 ‘가시 돋친’ 프리츠. 붉은 영 주가 거느린 기사들 중 가장 포악하 기로 유명하며, 은연중 ‘경호대’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자였다.

그의 뒤로도 판금갑주를 갖춰 입은 경호대원들이 즐비했다.

민머리를 드러낸 땅딸보는 ‘대머리 드워프’ 스티드먼 경일 테고, 맹금 류를 닮은 투구에 장궁을 든 자는 ‘거인 사냥꾼’ 콜 경, 깃털을 형상화 한 철제 장식을 머리에 올린 여인은 ‘발키리’ 틸로리아가 틀림없었다. 그 외에도 십여 명의 기수가 뒤를 따르 고 있었으나, 붉은 군대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에곤도 그들 하나하나 를 모두 알아볼 수는 없었다.

물론, 그들의 경호대상을 발견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건장한 전투마가 조랑말로 보일 만 큼 거대한 두 뿔 마수를 보고도, 거 기 탄 남자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하 는 사람은 바보천치가 틀림없을 터 였다.

“……저게, 포이닉스 방백?”

에곤이 멍하니 중얼거린 말에, 옆 에 서 있던 알반은 기겁하여 하사관 들의 눈치를 살피고 동시에 소년의 팔을 잡아당겼다.

“방백 ‘나리’겠지, 이 자식아- 얼른 눈 깔아!”

에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 다. 하지만 그도 잠시, 소년은 호기 심을 누르지 못하고 흘끔흘끔 영주 일행을 살폈다.

머르그와 골만 등 여러 간부들의 마중을 받으며, 방백은 느긋이 바이 콘을 몰아갔다. 훈련대대장 머르그 가 무어라 보고하자 대충 고개를 끄 덕이며 옆에 있는 장한을 가리켰다. 장한이 막 투구를 벗은 덕에 정수리 부터 둥글게 벗겨진 머리와 입가에 있는 커다란 흉터가 드러났다. 에곤 은 그 장한이 드펠켄 방백령의 무관 장이자 전투여단장인 컨휘어임을 알 수 있었다.

붉은 군대의 2인자에게 잠시 시선 을 빼앗긴 것도 잠시, 에곤의 관심 은 재차 영주에게로 향했다.

‘적기사’, ‘젤른트리의 공포’, ‘광소 의 기수’, ‘불사자’, ‘칼날만의 학살 자’, ‘참수자’, ‘검 파괴자’, ‘붉은 영 주’ 등 온갖 이명을 가진 사내.

소년의 상상 속 포이닉스는 마수에 올라타 전장을 호령하는 무시무시한 거인이었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바이콘에 타고 있다는 점은 같았 다. 키가 큰 에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괴물 종자도 영주에 비하면 반 뼘은 작아 보였으니, 덩치도 대 단했다.

그러나 그의 옷차림이나 분위기 등 은 상상한 바와 전혀 달랐다.

일단 포이닉스는 생각보다 훨씬 젊 었으며, 비현실적인 미남이었다. 지 위와 명성 탓에 막연히 나이가 더 있으리라고 여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에곤이 보기에 기껏해야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적당히 그을린 피부 는 멀리서 보기에도 매끄러웠고, 높 은 코와 붉은 입술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눈썹은 곧고 짙었으며 눈 매는 길고 깊었다. 언뜻 차가워 보 이는 것 같기도 했으나, 나른한 하 품이 그런 느낌을 덮어버렸다.

무쇠룡의 가죽을 닮은 전신갑주 대 신, 그는 고급스럽지만 격식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느슨하게 늘어진 적색의 비단 가운 위에 금실로 장식 한 조끼를 걸쳤으며, 헐렁한 면바지 의 아랫단은 부드럽게 펄럭였다.

무기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고, 등자에 걸친 발은 질긴 장화나 철제 발덮개 대신 코가 둥근 슬리퍼를 신 고 있었다. 2월의 찬바람이 쌩쌩 몰 아치는 와중에 발꿈치와 복숭아뼈가 훤히 내보이니 에곤으로선 혼란스러 울 지경이었다.

완전무장한 경호대 사이에서 독보 적일 만큼 편한 옷차림을 한 영주는 뒤를 슬쩍 돌아보며 무어라 지껄였 다. 얼마쯤 뒤에서 말을 몰던 여검 객, 틸로리아의 얼굴이 붉어지자 그 는 주책맞게 낄낄거렸다. 앞서가던 프리츠가 무어라 타박하자, 영주는 그에게 중지를 들어보였다.

‘……뭐지? 저게 그 적기사가 맞 나?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소년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영주 와 경호대원들이 덮개천을 씌운 테 이블에 이르렀다.

골만 상사에게 바이콘의 말고삐를 넘긴 포이닉스는 테이블 가운데 놓 인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는 대신 징집병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일주일간 고생했다. ”

목청 한 번 돋우지 않고 흘러나온 목소리가, 어느새 조용해진 주둔지 전체로 울려 퍼졌다.

뭐지, 마법인가?-몇몇 징집병이 작 게 웅성대는 사이 영주의 말이 이어 졌다.

“마음껏 먹고 마셔라. 그리고 집으 로 돌아가서 새 영주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전해. ”

웃음기 섞인 말에 징집병들 사이에 감돌던 긴장감이 조금쯤 풀어졌다. 어느 용기 있는 사내는 맥주잔을 들 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멋진 영주님 만세! 주께서 자비로 운 영주님을 보우하시기를!”

“영주님 만세!”

징집병들이 환호하자 포이닉스는 크게 웃더니 손을 들었다.

“다만, 조금 천천히 마셔라. 멋진 영주 나리께서 내리는 맥주를 제정 신으로 맛보고 싶다면 말이야. ”

다시금 터지는 환호.

경호대원들을 뿌리친 영주는 커다 란 참나무통을 어깨에 짊어진 골만 과 함께 징집병들 사이를 거닐었다. 영민들과 떠들어대며 술잔을 채우고 부딪치는 동안 벨벳 슬리퍼에 진흙 이 잔뜩 묻어 괴물 종자와 신발을 바꿔 신어야 했지만, 포이닉스는 더 없이 유쾌한 얼굴이었다.

“으음?” 웃으며 천막 사이를 거닐던 영주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쩐지 설 레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던 에 곤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억, 으.”

흥미 내지는 호기심이 담긴 시선이 그를 내려다보자, 에곤은 저도 모르 게 몸을 굳혔다.

검은 눈동자. 심연을 닮은 어둠.

조금 취한 채 비틀거리던 소년은 아주 짧은 순간 영주의 속을 엿본 것 같았다. 매력인지 마력인지 알 수 없는 기운을 물씬 풍기는 눈빛.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끔찍한 무언 가…….

“어이. 야. 괜찮니?”

“에, 에?”

“ 괜찮냐고.”

포이닉스가 빙글거리며 술잔을 탁 부딪치자, 에곤은 퍼뜩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옙! 괜찮습니다, 각하!”

“으흠. 그래?”

“왜 그러세요?”

눈썹을 까딱거리는 영주 뒤에서, 에곤에게는 이제 낯익은 얼굴이 된 골만 상사가 나타났다.

“피곤해 보이네. 술을 많이 마셨 어?”

“아, 예. 조금-”

“일주일간 구르다 갑자기 술을 퍼 마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건 나 리께서 내리시는 거니까, 이거까지 만 마시고 그만 마셔. 응?”

“알겠습니다, 상사님!”

에곤에 이어 주변 징집병들의 술잔 이 채워지는 人}이, 그를 빤히 내려 다보던 포이닉스는 웃는 낯으로 그 와 잔을 부딪쳤다.

“어린 녀석이 고생 좀 했겠는걸.”

“아닙니다, 각하!”

“조심히 돌아가라.”

“예! 감사합니다, 각하!”

에곤은 씩씩하게 말을 뱉자마자 속 으로 자책했다. 그는 내일 해산하는 대로 소반할츠로 돌아가는 대신 모 병관을 찾아갈 셈이었다. 그런 계획 을 영주에게 말했다면 무언가 이득 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드펠켄 만세!”

“자비로운 영주께 축복을!”

“오냐, 너희들에게도 빛의 가호가 있기를!”

소년이 뒤늦게 용기를 내려던 즈 음, 영주는 이미 징집병들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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