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상태창 2개-9화 (9/140)

<9화>

야, 너두 할 수 있어!

2010년 늦은 봄.

공장을 나서는 한 남자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 물량이 많아 아침부터 제법 바쁘게 일을 했지만, 일을 마치고 축구를 하러 가는 순간은 언제나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오늘은 어떤 훈련을 할지 상상하며 길을 가는데 그 길을 막고 선 한 남자.

얼마든 지나쳐 갈 수 있었지만,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운명적인 이끌림?

이대로 지나친다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은 느낌?

무엇이 되었든 남자는 인도 한 가운데 서서 자신을 향해 빙그레 웃고 있는 남자에게 서서히 다가섰다.

“뭐지? 당신 누구야?”

남자는 질문을 하면서도 자신과 상관없이 그냥 길 한 가운데 서 있었을 수도 있는데 대뜸 ‘정체를 밝혀라!’ 따위의 질문을 해 놓고 보니 민망해졌다.

자신의 즐거운 시간을 늦춘, 축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든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과했다는 생각에 사과를 하려는데,

“저메인 스피어. 맞지?”

“어떻게 알고 왔지? 정말 당신 누구야?”

저메인 스피어라고 불린 남자가 경계심을 드러냈다.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벗는 남자의 머리칼과 눈동자는 검은색이었다.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고 있자니 그 남자의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거린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을까?

그 순간 검은 눈동자의 남자는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 * *

[이름] 저메인 리처드 스피어

[직책] 스톡스브릿지 파크 스틸즈 소속 센터포워드

[성격] 승부욕 넘치는, 다혈질, 의협심

[능력] 힘:B- 민첩:B+ 체력:B-

[특성] 정의의 사도(A), 투잡러의 열정(B), 탁월한 스피드(B)

[스킬] 스피드 드리블러(B), 감각적 칩슛(C)

[평가] 대기만성의 유망주. 가득찬 그릇을 넘치게 할 한 방울의 물만 있다면 재능이란 것이 폭발할 것입니다.

[근황]

- 공장 일을 하는 내내 계속 축구를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만 생각했습니다.

* * *

“축구를 더 잘하고 싶지 않나요?”

“당연하지!”

저메인 스피어라 불린 남자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사적으로 대답을 해 버렸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축구를 더 잘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저메인 스피어.

그 모습에 빙그레 웃던 검은 눈동자의 남자가 말했다.

“내가 그 방법을 아는데 알려 줄까요?”

“어떻게 하면 되지?”

“간단합니다. 공장 일을 하는 시간에도 축구를 한다면 당신은 분명 더 축구를 잘하게 될 거예요. 너무 간단해서 황당한가요? 누군 몰라서 그렇게 안 하는지 아냐고 말하고 싶은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현실은 주급 5만 원을 받는 투잡을 가진 축구 선수니까요. 그러니까 제 팀으로 오세요. 제가 돈 걱정 없이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축구만 할 수 있게 해드리죠. 비록 지금은 잉글랜드 내셔널 리그(5부) 소속이지만, 당신이 내 팀에 와준다면 나는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으로 향할 겁니다. 약속해요.”

저메인 스피어는 홀린 듯 그 손을 잡았다.

그 손을 맞잡고 있는 검은 눈동자의 남자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메시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스킬 ‘전력 분석관의 눈(B)’이 ‘전력 분석관의 눈(A)’으로 진화합니다.

- 이제 ‘전력 분석관의 눈(A)’이 근황을 2개까지 확인 가능합니다.

- 당신의 말이 대기만성의 유망주에게 벽을 깰 수 있는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 대기만성의 유망주의 재능이 흘러넘치기 시작합니다.

- 스킬 ‘정문일침(頂門一鍼)(A)’이 생성됩니다.

* * *

[정문일침(A)]

침술로 정수리에 침을 놓는 것처럼 당신의 한마디는 깨달음의 단초가 됩니다.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로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보세요.

효과 : 키워드를 통해 깨달음을 줍니다.

효과 : 정문일침이 성공할 경우 대상의 성장 속도가 50% 상승합니다.

* * *

10-11시즌 최운의 팀 핼리팩스 타운에 영입되어 잉글랜드 내셔널리그(5부) 리그 26득점으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3시즌 만에 팀을 다이렉트로 잉글랜드 챔피언십까지 끌어 올리며 재능을 폭발시킨 저메인 스피어의 위대한 결단의 순간이었다.

* * *

각성자의 시대에 새로운 가치에 대한 투자 차원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및 거대 자본들의 대량 투자로 지어진 미리내 헌터 아카데미.

투자받은 자본으로 플랙스 한 결과 전사학부의 각 학년별로 5반씩 총 20반에 반별 지정 훈련장이 배정될 정도로 넓은 부지와 시설을 갖게 되었다.

2학년 E반의 훈련장.

원래는 평준화를 거쳐 편성된 반에 편의상 붙인 A, B, C, D, E 라는 명칭이 유독 올해 2학년 반에서는 등급 표기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나친 자격지심일까?

미리내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수업이 끝나고 반별로 모여서 지도 교수와 훈련도 하고 지도도 받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 있었다.

매일 계속되는 반별 지도 훈련을 위해 모든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일주일에 수업이라고는 2학점짜리 한 타임밖에 없는 조교수는 먼저 나와 훈련 시설이나 점검하고 있어야지.

미리 나와서 한참을 이것저것 만지고 있는데 현서를 시작으로 안경 꼬맹이와 다소 우울해 보이는 학생 하나가 훈련장에 모습을 보였다.

말없이 꾸벅 인사만 하고 가볍게 훈련장을 돌기 시작하는 현서와 싸가지 없이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안경 꼬맹이, 그리고 순박한 인상의 노안을 자랑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학생.

쭈뼛쭈뼛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어중간한 오후 3시에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물어오는 학생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 미소에 용기를 얻었는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저, 교수님. 사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지용석 학생.”

“아, 교수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손사래를 치는 학생에게 웃으며 재차 존댓말을 했다.

“괜찮습니다. 이게 습관이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니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어젯밤에 찬호, 성군이, 지형이가 기숙사에서 짐을 싸고 있길래 궁금해서 어디 가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랬더니 올해는 지도 교…… 흡! 아무튼 글렀다면서 오늘 휴학계 내고 바로 방 뺄 거라고 하더라고요.”

뒤늦게 입을 막아 봤자…….

아무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설마 이렇게 하루 만에 휴학하는 학생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방금 가서 확인해 보니 기숙사 방은 비워져 있고, 세 녀석이 휴학한 것이 교수님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고 있어서…….”

“허허허…….”

용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들이 휴학하는 것은 좋다 쳐도 그게 내 탓이라니…….

그렇게 환경 탓이 자연스러운 녀석들이니 27, 28, 29등이었겠거니 싶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에 30등 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석 학생, 그 학생들이 그만둔 것이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해요?”

노빠꾸 질문에 당황하는 용석.

“사실 내가 전사학부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교수님들과 비교해서 실력이 없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그건 헌터로서의 실력이지 지도 교수로서의 실력은 아니에요. 아직 지도 교수로 선도 보이지 않은 교수를 지레짐작으로 평가하고 휴학해서 1년을 허비한다? 그 학생들이 불쌍하네요. 적어도 이 사람이 교수로서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을 한 후 휴학을 하든 자퇴를 하든 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 * *

[이름] 지용석

[직책] 미리내 헌터 아카데미 2학년

[성격] 희생적인, 이상적인, 노력하는

[능력] 힘:A- 민첩:D- 체력:A0 마력:D+

[특성] 노력 천재(A), 뿌리내린 다리(F), 몸치(F)

[스킬] 웅크리기(C)

[평가] 대기만성의 유망주. 가득 찬 그릇을 넘치게 할 마지막 한 방울의 물만 있다면 재능이란 것이 폭발할 것입니다.

[근황]

1. 친구들이 휴학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휴학을 할지 고민 중입니다.

2. 차진산 교수의 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실망했습니다.

3. 저주받은 특성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 * *

말하는 중 사용한 ‘전력 분석관의 눈’에 드러나는 용석의 고민들.

학생 자료에 상담 일지를 보면 각성하기 전 댄서를 꿈꾸던 용석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크루를 이루고 각종 대회에 참가해 수상을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데 각성을 하면서 갑자기 발동작이 느려지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동 속도 50% 감소 디버프가 달린 특성 ‘뿌리 내린 다리’, 높은 확률로 사지가 통제가 안 되는 디버프가 달린 특성 ‘몸치’.

댄서에게 치명적인 두 가지 특성 때문에 결국 댄서의 길을 접고 헌터 아카데미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입학할 때는 힘과 체력이 모두 B+였고, 노력 천재라는 A급 특성도 가진 그였기에 엄청난 관심을 받았지만 저주받은 특성으로 인해 하나둘 관심이 끊기고 학급 꼴등으로 조롱받는 신세가 되었다.

“용석 학생, 아니 이제 말 편하게 할게. 용석아. 내가 전투력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지만, 사람 개조는 내 전문이거든. 너를 보니까 딱 감이 온다.”

사람 개조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일까?

흠칫거리며 몸을 웅크리는 용석의 어깨를 잡고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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