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중간 과제
결국 치열한 가위바위보 끝에 ‘유비 현서’, ‘관우 하영’, ‘장비 용석’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보고는 ‘노식 최운’이라나?
한나라 마지막 충신이라는 노식 장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에서 왠지 ‘늙은 방식(老式)’이라는 느낌이 가시지 않아서 ‘스승님’이라는 호칭만 허락하고 ‘노식 최운’이라는 이름은 반려했다.
유관장 놀이에 푹 빠진 녀석들.
특히 하영은 자신이 관우 포지션이기에 무기를 82근 청룡언월도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하영의 피지컬이 각성자 중 낮은 편이긴 하지만 범인을 월등히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들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을 테지만, 휘두를 수나 있을까?
무기를 휘두를 때 생기는 관성에 의해서 앞으로 고꾸라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그러면 청룡언월도는 코스튬일…….
불현듯 ‘그림자 관통술’을 하영에게 부여할 때 보았던 툴팁이 생각났다.
용석에게 장팔사모를 주문하라고 닦달하는 하영에게 ‘전력 분석관의 눈’을 시전했다.
그리고 ‘그림자 관통술(B)’ 정보를 확인했다.
* * *
그림자 관통술(B)
언제나 바닥에 붙어 있는 그림자. 그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림자를 꿰뚫어 본다면 그림자의 뒷면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을겁니다.
효과 : 자신의 그림자의 뒷면과 시야에 존재하는 그림자의 뒷면을 연결해 물체를 관통시킵니다.
효과 : 자신의 그림자를 꿰뚫고 들어간 물체는 관성의 영향을 반대로 받습니다.
* * *
툴팁의 효과가 조금 불친절해 보이지만 정리하자면 자신의 그림자 쪽으로 찌르는 행위는 바닥을 향해 찌르는 행위로 관성이 아래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편 그림자에서 튀어나올 때는 그림자에서 위를 향해 튀어나오게 되는데 그때 관성의 영향을 반대로 받게 되면 아래로 찌르는 관성이 그대로 위로 작용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찌르는 관성이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이 있지만 늘어나면 늘어나는 족족 관성에 영향을 미치는 질량.
그런 의미에서 82근 청룡언월도가 아니라 들고 다닐 수만 있다면 820근짜리 청룡언월도를 사용하면 더 강한 공격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하영이 상대방 가까이 가서 공격할 일도 없이 제자리에 서서 공격해도 되니 이동 속도에만 지장이 없을 정도면 될 일.
하영의 이동 속도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무거운 무게야 실험을 통해 알아보면 되니 문제없다.
그렇게 하영이 모르는 사이 하영의 두 번째 훈련 스케쥴이 결정되고 있었다.
자신은 쌍검을 쓰고 있으니 자웅일대검을 만들 필요 없다는 현서에게 두 검의 모양이 너무 다르다고 타박하던 하영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떨었다.
몸을 떠는 하영과 같이 내 핸드폰도 떨렸다.
도착한 문자 메시지.
[내일 오후 1시 가람관 4층 소회의실에서 1학기 중간고사 반별과제 브리핑이 있으니 참석 바랍니다. *불참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지도 교수가 책임져야 합니다.]
뭐만 하면 지도 교수가 책임져야 한단다.
원래 이런 것인지 나한테만 따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지 조교수가 처음이다 보니 알 수는 없지만 성장하는 유관장에게 불이익 가지 않게 김창식 팸이 뭘 준비해놨는지 보고는 와야지.
그런데…….
아직도 유관장 놀이에 푹 빠진 녀석들.
아주 황충과 조운도 영입하자고 난리다.
그렇다면, 황충, 조운 생각도 안 나도록 굴려 줘야지.
“야! 이 녀석들아! 저녁 훈련은 언제 시작할 거야? 집합!”
* * *
다음 날. 가람관 4층 소회의실.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반별과제는 전 학년이 동일했기에 전 학년 모든 지도 교수들이 모여 북적북적했다.
오후 1시가 되고 한승태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집어 들고는,
“아, 아, 점심시간도 30분밖에 안 남았고, 바로 오후 수업 있으신 분들도 계실 테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브리핑을 시작했다.
“1학기 중간 반별과제는 항상 협동력에 초점을 맞춰 온 것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새로운 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반 구성원들과 함께 팀을 짜게 된 만큼 합을 맞추고 협력해서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팀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계신 최운 교수만 빼면 모두들 경험해 보셨으니 아는 상황이겠지만, 최운 교수를 위해서 짚고 넘어갑니다.”
대놓고 너 하나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고 있다고 면박을 주는구나.
“자, 그러면 협동력은 어떻게 평가하느냐? 협동력 테스트에 전통적으로 가장 적합한 과제이자 팀원 간의 합과 적절한 체력 안배가 관건인 디펜스 과제로 평가하려 합니다. 1학기 중간 과제에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과제이기도 하고 효과 하나는 정말 탁월한 과제이니만큼 지도 교수님들 모두 수긍하시리라 믿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그러면서 나를 쳐다보는 건 뭐냐?
우리 반이 3명뿐인 것 때문에 항의라도 할 줄 알았나 봐?
나도 반별과제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친 상황이라 지금 우리 반에 가장 불리한 과제부터 해결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이 바로 디펜스 과제 준비.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승태를 보면서 왼쪽 입꼬리만 살짝 올려 주었다.
썩은 미소.
내 썩은 미소의 전염력이 좀 대단한지 한승태의 표정이 썩기 시작했다.
“어흠, 참고로 과제 당일 결원이 생긴다면 지도 교수의 학생 관리 능력 부족으로 여기고 참석한 인원만으로 과제를 진행해야 하니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중간 과제 점수도 최종 교수 평가에 10% 반영되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반별로 과제 준비 잘하시길…….”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쏘아보고 나가는 한승태.
마치 이대로 우리가 준비한 것이 끝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은 식상하다.
감독 시절 경기 전 기자 회견에서 할 말이 궁해진 상대 감독이나 선수들이 짓던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상대에겐 져 본 적이 없으니까.
지도 교수들이 모두 일어나 삼삼오오 모여 나가는데 사대천왕 중 하나인 차진산 교수가 내게 다가온다.
표정을 보니 선전포고를 할 기세인데?
“이봐, 떨거지. 너희 반 3명 휴학했다며?”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그냥 반 대항 결투면 될 것을 왜 귀찮게 디펜스 따위를 하는 건지. 아무튼 나랑 내기 하나 하자.”
대뜸 내기를 하자는 차진산.
무슨 내기를 뭘 걸고 하자는 건지 궁금하긴 했다.
“무슨 내기? 뭘 걸고?”
내가 흥미를 보이자 걸려들었다는 듯 미소를 짓는 차진산.
미소인지 인상 쓰는 건지 모르겠다.
“너희 반에 있는 양현서 있지? 어차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할 지도 교수 밑에 있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다. 그러니 이번 디펜스 과제에서 우리 반 성적이 더 높다면 현서를 우리 반에 넘겨라. 대신 우리 반에서도 한 명을 너희 반에 보내 주지.”
학생이 물건도 아니고 뭔 개소리인지.
“학생들의 의사는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 그것을 떠나서 중간에 학생들 반을 마음대로 바꿔도 문제 없는 건가?”
너무도 상식적인 내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 마라. 이미 내가 한스…… 흠흠…… 아무튼 해결해 놨으니까 네가 수락만 하면 된다.”
그렇군.
이 무데뽀가 왜 이러나 했더니 한승태가 충동질을 했던 거구먼.
다른 사대천왕에 비해 반 구성원의 재능도 밀리고 실제로 등수도 밀리는 상황이다 보니 현서를 데려가서 그 간극을 메워 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그런데 어쩌나, 근육 바보들만 뭉친 차진산의 2학년 D반한테는 도저히 자신이 없는데, 질 자신이…….
“그렇다면 만약에 우리 반이 이기면?”
차진산이 내 질문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참나, 이봐. 떨거지. 양현서가 아무리 2학년 톱이라고 해도 26등 30등 데리고 6인용 디펜스를 과연 제대로 치러 낼 수나 있을 것 같아? 이런 지도 교수 밑에 있는 양현서가 불쌍하구먼. 역시 양현서는 내 밑으로 와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해.”
그 양현서가 내 밑에서 한 달 만에 A급 스킬을 습득했습니다만?
“그래, 뭘 원하지? 그 3명으로 우리 반을 이긴다면 원하는 건 뭐든 주지.”
원하는 것을 다 준다라.
순식간에 ‘전력 분석관의 눈’으로 가오충이라 좋은 장비들을 주렁주렁 달고 회의에 참석한 차진산의 장비를 스캔했다.
그리고 딱 하나 눈이 번쩍 뜨이는 장비가 보였다.
이렇게 되면 또 얘기가 다르지.
용석의 느린 스피드를 커버하기 위해서 조금은 시간이 걸리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뭐든 말이지? 그 말 후회 하지 말길 바라.”
“미친 새끼. 아이템에 눈돌아 갔냐? 너나 나중에 딴말하지 마라. 크크크.”
차진산의 너머로 우리의 대치를 흥미롭게 보고 있던 김란주 교수가 보였다.
“김 교수님, 우리 이야기 다 들으셨죠? 괜찮으시다면 교수님께서 우리 내기 공증 좀 서 주시죠. 혹시 차 교수가 내기에 지고 발뺌할 수도 있으니.”
“이 비각성자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뭐라고? 너 그냥 여기서 죽…….”
“좋아요! 제가 공증을 서죠. 양현서 학생은 저도 탐나기는 하는데, 저는 학생을 물건 취급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할게요.”
마지막 도발에 급발진하려는 녀석을 김란주 교수가 적절히 제지해 주었다.
그런 김란주 교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너 이 새끼 밤길 조심해라! 내가 언제고 날 잡아서 손봐 줄 테니까!”
발광하는 차진산을 뒤로하고 이제 특성 디버프는 신경 꺼도 되는 용석의 새로운 훈련은 무엇으로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교수 연구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