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미끼
대한 스킬 연구 학회.
각성자의 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분야가 바로 각성자 관련 연구였다.
그중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가 바로 스킬 분야.
대한 스킬 연구 학회의 연구로 웬만한 C급 스킬까지는 생성 조건과 훈련 방법 등이 공개되었다.
즉, 각성만 하고 조건만 맞다면 노력만으로 웬만한 C급 스킬은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작년 추계 포럼에서 고려 아카데미 쪽 스킬 연구부가 공통 패시브 스킬이면서 모든 전사 계열 헌터들이 누구나 갖기 원하는 스킬 중 하나인 ‘통증 감소(B)’의 생성 조건과 훈련 방법들을 정리해 공개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많은 투자를 유치해 업계 4위에서 3위로 뛰어올라 2위인 대성 아카데미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성 아카데미와 미리내 아카데미.
하지만 스킬 연구부에서 특별한 성과는 없었고, 다행히도 고려 아카데미 측도 이번에는 특별한 성과가 없었기에 별다른 이슈 없이 무난하게 지나갈 줄 알았던 춘계 포럼.
비각성자 하나가 발표하겠다고 내놓은 논문의 주제가 공개되자 학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유지되어 온 스킬 체계와는 전혀 다른 체계의 스킬의 발견.
이것은 새로운 가능성이었으며 기존의 스킬 체계의 권위자들에 대한 도전이었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주목받는 1인은 태평하게 점심 식사를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김란주 교수 : 어젯밤 잘 잤어요?
- 나 : 네, 교수님도 별일 없으셨죠?
- 김란주 교수 : 나야 뭐 문제가 있을 리가…….
- 나 : 저도 괜찮습니다.
- 김란주 교수 : 오늘 몇 시에 포럼이죠?
- 나 : 포럼은 오후 2시부터 시작이고, 나는 저녁 식사 후에 8시에 발표입니다.
- 김란주 교수 : 그래요. 오후 시간에는 나도 약속이 있어서 저녁 먹고 발표에 늦지 않게 갈게요.
- 나 : 네, 알겠습니다.
- 김란주 교수 :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조심해야 돼요! 알겠죠?
- 나 : 그 얘기 한 번만 더 들으면 100번째인 것 같습니다만…….
- 김란주 교수 : 아 미안 ㅋㅋㅋㅋㅋㅋㅋ
카톡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한 후 식당을 나와 2학년 E반 훈련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보는 용석이도 오늘은 E반 훈련장으로 와 있었다.
여기저기 쓸리고 멍든 자국이 보이긴 하지만 왠지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차진산이 그래도 ‘맹세의 서약서’는 무서운가 보군.
E반의 유관장은 오늘 저녁 발표에서 스킬 시연을 위해 나와 함께 가기로 했다.
스킬 시연은 총 3회에 걸쳐서 한다.
첫 번째 시연은 ‘감각 둔화’를 시험하기 위해 마약 탐지견을 이용해 진행.
두 번째 시연은 ‘신호 차단’을 시험하기 위해 전파 차단을 실험.
세 번째 시연은 가장 중요한 ‘시전자 인식’ 확인을 위한 먼지구름 외각 표적지 맞추기로 진행할 예정이다.
모든 스킬은 시전자를 인식하여 시전자에게는 디버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데, 이 부분을 시험하기 위해 유관장이 먼지구름을 생성한 후 바깥쪽에 임의의 표적지들을 세워 외부에서 불러 주는 표적지를 순서대로 맞추는 방식으로 이 부분을 검증하게 된다.
즉, ‘시전자 인식’만 확인이 된다면 ‘그림자 연막탄’이 단순히 시너지 쌓기에 불과한 연계 행위가 아닌 독립된 하나의 스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미 E반 훈련장에서 수차례 검증을 통해 ‘시전자 인식’이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기에 이 부분은 걱정도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
그래서 한편으로는 의아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라도 미리내 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여 주길 바랄 정도로 대성과 고려가 바짝 쫓아왔나 싶기도 했다.
유관장을 데리고 훈련장 밖에 나가자 보이는 털털거리는 승합차.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강한이었다.
“형님, 고맙습니다.”
“고맙긴? 우리 최 교수 일인데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이 정도면 30만Km는 타지 않았을까 싶은 승합차의 핸들을 잡고 너스레를 떠는 강한 형님.
“얘들아, 인사드리고 타라. 전강한 현역 B급 헌터님이셔. 오늘 너희들을 포럼장으로 태워다 주실 분이시지.”
현역 헌터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며 차에 타는 E반.
“나는 비밀병기를 챙기러 가야 해서 따로 가야 하니까 이 차 타고 가서 먼저 대기실에 가 있어.”
“네, 교수님!”
“그럼 형님. 잘 부탁합니다!”
“최 교수, 걱정 마! 내가 이래 봬도 한때 특종 사냥하느라 이녀석과 함께 전국을 누비던 몸이라고.”
누가 뭐래도 강한 형님의 운전 실력은 믿을 수 있지.
E반 녀석들을 승합차에 태워 보내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 포럼에서의 발표를 위해 아카데미에서 준비해 준 차량.
이름도 잘 모르는 고급 외제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 아카데미의 품위 유지를 위한 대여.
원래는 귀빈을 모시는 의전용 차량인데 나를 위해 기꺼이 내줬다.
그리고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위치 추적기 정도는 달려 있지 않을까?
잘하면 실내에 도청 장치 정도도?
어차피 미끼가 되기로 한 이상 상대방이 더 잘 찾아서 물 수 있는 위치 추적까지 되는 미끼가 된다면 나야 더 좋지.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걸자 시동이 걸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이래서 좋은 차들을 타는구나 싶다가도 다시 한번 정신을 다잡았다.
미끼를 던지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해 두었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것이 각성자의 세계다.
아직은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세계이기에 나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변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카데미를 나서는 순간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취직 취이익
- 다람쥐가 굴을 빠져나간다.
- 서서히 미행하겠다.
- 현재 예상 경로는 A.
- 경로 B. C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길 바란다.
미리내 아카데미 정문.
학교 마크가 붙어 있는 고급 차량과 ‘한 컵 도시락’ 스티커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승합차가 연이어 빠져나갔다.
* * *
아카데미를 빠져나온 후, 시내 쪽을 향해 차를 몰며 생각을 정리했다.
‘한승태 쪽에서 분명히 수를 쓸 거야. 예상되는 방법은 3가지 정도.’
빨간불에 걸려 정차한 사이 내비게이션의 경로를 살펴보았다.
시내를 지나 포럼장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
그 코스에 산속으로 난 길로 약 10여 분을 가야 하는 코스가 있었다.
다른 코스도 2개가 더 있었지만, 한참을 우회해야 하는 코스였다.
‘첫 번째는 저 산속 코스에서 매복을 하고 기다리다가 차를 막아서는 방법.’
신호등의 신호를 보는 척하면서 룸미러로 뒤에 서 있는 차량을 확인했다.
‘한 컵 도시락’ 로고가 박힌 검은색 승합차.
아카데미에서부터 뒤를 쫓아온 차가 분명하다.
가끔씩 다른 길로 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나타나는 것이 미행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두 번째 방법은 저런 차량으로 미행을 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덮치는 거지.’
곧 신호를 받아 출발해 시내를 지나 산길의 초입을 향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량이 점점 줄어드는데 ‘한 컵 도시락’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 방법은 첫 번째, 두 번째 방법을 다 쓰는 거지.’
앞에서 길을 막고 뒤따르는 차로 퇴로를 차단하는 것.
얼마 가지 않아 간이로 설치한 표지판이 보였다.
- 500m 앞 공사 중 차량 통행에 유의 바랍니다.
그리고 여전히 뒤따르는 ‘한 컵 도시락’.
아무래도 한승태는 일을 확실히 하기 원했나 보다.
300m쯤 더 진행하다 보니 저 멀리 경광봉을 흔들며 차를 막아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사용 작업복이었지만 딱 봐도 떡대가 무시무시한 노동자들.
그리고 바짝 붙어 따라오는 ‘한 컵 도시락’
순간 고민을 했다.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차로 밀어 버리고 달려 나갈 것인가?
이 생각은 떠올림과 동시에 접어두었다.
저 중에 혹시나 정말 일용직 노동자가 있어도 문제고 각성자의 이능은 상식을 초월하는 경우도 존재했기에 차량 자체를 먹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각성자가 있다면 놈들의 포위망 안으로 자진해서 뛰어드는 꼴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 분석관의 눈’으로 스캔해서 저들이 가진 스킬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차로 밀어 버리는 것은 기각.
이런 상황을 염려해서 보험을 이중으로 들어 놨지만, 그래도 지금 제일 피해야 하는 상황은 적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주변 지형을 살폈다.
왼쪽은 낙석 주의 표지판이 붙은 암벽.
오른쪽은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는 비탈길.
지형을 확인한 순간 공사 구간 10여 미터 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서서히 차를 멈추는 듯하자 다가오는 노동자들.
차가 멈추는가 싶을 때쯤 지체 없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고 액셀을 밟았다.
급발진에 놀란 노동자들이 움찔하는 사이 가드레일을 뚫고 비탈길로 떨어지듯 미끄러져 내려가는 차량.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승태에게 몇 번은 더 확인을 했다.
혹시 차량이 파손되어도 내 책임은 없는 걸로.
그저 나를 이 차에 태우기에 급급했던 한승태는 몇 번이고 다짐까지 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노동자 코스프레한 각성자들과 ‘한 컵 도시락’ 승합차에 도시락 대신 실려 있던 각성자들이 우르르 비탈길로 떨어져 내렸다.
어림잡아도 열댓 명은 되어 보인다.
사이드 미러로 뒤를 확인하다 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졌을까?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져 오는 아름드리나무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 쾅!
광음과 함께 먼지와 낙엽이 휘날리고 뒤쫓던 각성자들은 먼지와 낙엽 사이로 몸을 날려 일단 차량의 문이란 문은 다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열려 있는 운전석 문.
“놈이 도망쳤어! 이미 빠져나갔다고!”
운전석 문 쪽으로 달려왔던 각성자가 소리치자 각성자들이 서둘러 시야를 가리는 먼지와 낙엽을 뚫고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개중에 바람을 사용하는 각성자가 있는지 멀리 날려가 버리는 먼지와 낙엽들.
하지만 놈들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뭐야? 어디로 사라진 거야? 모두 흩어져서 찾아!”
사방으로 흩어지는 각성자들.
내가 딱 원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이야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다들 흩어졌지만 놈들 중 적어도 한둘은 다시 차 있는 곳으로 와서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나도 준비를 마쳐야겠지.
차 밑에 드리운 그림자와 동화되어 있던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