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나에겐 있고 너에겐 없는 것
“정말 안 되겠습니까?”
- 그나마 자네가 우리 구단을 3부까지 끌어 올린 것을 감안해 최대한 쥐어짠 예산이 그것이네. 그 이상은 무리야.
“하아… 알겠습니다.”
기껏 최적의 선수를 찾았는데 영입을 할 수 없으니 난감한 상황.
드링크 워터를 영입하기 위해 단장이 접촉을 해 보았지만 이미 2부 리그 팀인 레스터와 링크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3부 리그에 갓 올라온 팀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여지를 남기며 2부 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의 주급을 준다면 고려는 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사실 헬리팩스 타운 입장에서는 3부 리그 최고 수준의 대우도 부담스러운 실정이었다.
사실상 영입은 불가능.
하지만 끝까지 미련이 남았다.
스피어의 라인 브레이킹에 맞춰 날아드는 드링크 워터의 롱 패스.
그 둘의 시너지로 활성화되는 ‘정확한 역습(A)’이라는 시너지 스킬까지 생각하면 드링크 워터는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단장에게 드링크 워터의 에이전트의 연락처를 얻어내 전화를 했다.
이전부터 쏠쏠하게 써먹었던 ‘기적의 논리왕’을 활용해 드링크 워터를 설득해 볼 요량이었다.
-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기적의 논리왕’을 발동시켰다.
- 스킬 ‘기적의 논리왕(A)’을 사용합니다.
- 이제 모든 말에 논리력 5가 추가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핼리팩스 타운의 감독 최운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화를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처음에는 귀찮다는 느낌으로 전화를 받던 에이전트가 ‘기적의 논리왕’ 효과로 다행히 드링크 워터와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 네, 전화 바꿨습니다.
“드링크 워터 선수 반갑습니다. 저는 핼리팩스 타운의….”
- 아, 잠시 뒤면 개인 훈련 스케줄이 있어서 그러니 용건만 간단히 하시죠.
에이전트가 권하니 마지못해 받은 티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아쉬운 건 우린데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죠. 드링크 워터 선수. 저희 팀으로 오시죠.”
- 그 말씀은 주급을 맞춰 주시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주급은 못 맞춰 드립니다. 저희 팀 최고 주급은 보장해 드릴 수 있지만 2부 리그 최고 수준의 주급은 어렵습니다.”
- 그렇군요. 그럼 더 들을 것도 없네요. 이만 끊….
-
“하지만!”
일부러 힘주어 말하자 상대방이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당신을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 2부 리그 최고 주급이 아닌 EPL 수준의 주급을 받을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EPL의 팀에서 말이죠.”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드링크 워터가 말했다.
- 그게 가능한가요?
원래라면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기적의 논리왕’이 열일을 했다.
“그럼요. 가능합니다. 저와 함께한다면 말이죠. 저를 뭘 믿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싶으시겠죠. 하지만 이미 저에게는 성공 사례가 존재합니다.”
- 성공 사례요?
“네, 비록 EPL급 선수를 키워 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있는 선수가 있습니다.”
- 그것이 혹시 저메인 스피어 선수인가요?
“네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 그는 훌륭한 선수죠. 스피도드 그렇고 라인을 무너뜨리는 센스와 결정력도 봐줄 만하더군요. 하지만 하부 리그 수준이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죠. 하지만 그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벽돌공이었습니다. 프로 선수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를 저는 2년 연속 득점왕으로 만들었습니다. 5부에서 그리고 작년에는 리그를 하나 올려 4부에서.”
이런저런 반론이 예상될 법한 내용이었지만 가만히 듣고 있는 드링크 워터.
“그리고 당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그는 올해 3부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3부 리그 우승 트로피와 도움왕 타이틀을 얻을 겁니다.”
- 도움왕이요?
사실 꽤나 좋은 롱 패스를 가지고 있는 드링크 워터였지만 키 패스나 번뜩이는 창의력 넘치는 창조적인 패스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 팀이 노릴 것은 그의 롱 패스에 이은 스피어의 역습이니 간결한 터치로 스피어가 골을 넣는다면 드링크 워터도 공격 포인트를 꽤나 많이 적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2부 리그 우승 트로피와 도움왕 타이틀을 획득하겠죠.”
사실 꿈을 파는 것 같은 느낌의 논리 전개였지만 ‘기적의 논리왕’은 그야말로 기적을 만들어 냈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던 드링크 워터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도 3부 리그 최고 수준의 대우는 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3부와 2부 리그를 씹어먹을 영혼의 콤비가 완성되었다.
- 스킬 ‘기적의 논리왕(A)’이 ‘기적의 논리왕(S)’로 진화합니다.
- 이제 ‘기적의 논리왕(S)’이 논리력 10을 추가해 줍니다.
- 스킬 ‘하이 재킹(A)’이 생성되었습니다.
- ‘하이 재킹’을 시도할 시 성공확률을 보정해 줍니다.
* * *
“하이 재킹!”
- 대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구하영.”
- ‘구하영(그림자 인형)’에 대한 하이 재킹을 시도합니다.
- 하이 재킹이 S등급입니다.
- 하이 재킹의 성공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 대상의 시전자에 대한 신뢰도가 높습니다.
- 하이 재킹의 성공률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 하이 재킹 성공 확률은 91.7%입니다.
- 구찬성으로부터 ‘구하영(그림자인형)’을 가로채는 데 성공합니다.
하이 재킹이 성공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하영과 사이에 희미한 무언가가 연결되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즉시, 옆에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구찬성을 향해 강하게 창을 찔러 넣는 하영.
그림자 인형에 버프 효과를 부여하는 ‘그림자 인형술(S)’로 모든 능력치가 A+로 보정을 받은 ‘그림자 인형 하영’이 기습적으로 찌르기를 시도했다.
“큭!”
하영에 대한 통제권을 잃자 구찬성이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온전히 피해 내지는 못하고 오른쪽 발뒤꿈치에 상처를 입었다.
구찬성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해 황급히 하영을 밀어내고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인형을 빼앗아 가다니 그것이 너의 스킬인가? 하지만 인형을 빼앗아 갔다고 한들 부리는 사람으로서 나와 너의 차이는 명확하지. 인형사에게는 치명적일 만큼. 그 차이는 바로….”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몸을 날리는 구찬성.
“나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지만, 너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지.”
내가 자신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하영의 통제권을 강탈해가자 나를 제거하고 통제권을 되찾으려고 생각했는지 바로 공격해 들어왔다.
비록 오른쪽 뒤꿈치를 다쳤지만, ‘흑영보’를 발동시켜 그림자를 타고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구찬성의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하압!”
팀원들 중 유일하게 상처를 입지 않은 찬우가 눈치를 채고 기의 창을 날려 구찬성을 공격해 보았지만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방어적인 면에서 압도적 성능의 현무검으로 기의 창을 머리 위로 흘려 버렸다.
“죽어랏!”
그리고 순식간에 내 앞에 도착해 찔러 들어오는 구찬성의 검.
현무검이 방어가 뛰어나다고 해서 공격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구찬성의 검격에서 일단 나부터 죽여놓고 보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구찬성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나에게는 없고 구찬성에게만 있는 것도 있지만, 구찬성에게는 없고 나에게만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것도 두 개나.
먼저 하나는 스킬.
‘인생 경기를 만드는 선수 교체(S).’
- ‘인생 경기를 만드는 선수 교체(S)’가 발동됩니다.
- 팀원 구하영(그림자 인형)과 위치를 바꿉니다.
- ‘인생 경기를 만드는 선수 교체(S)’효과로 10분간 구하영(그림자 인형)의 모든 능력치가 1단계 상승합니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구찬성의 뒤를 쫓던 하영이 구찬성의 앞에 나타났다.
“이익!”
나의 심장을 향하던 검이 되레 하영을 찌르게 생기자 구찬성은 황급히 검로를 변경했다.
하영의 어깨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가는 검.
누가 보았다면 아버지가 딸을 찌를 수 없어 무리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구찬성은 순수하게 자신의 인형이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무리한 수가 빈틈을 만들었다.
그는 ‘인생 경기를 만드는 선수 교체(S)’의 버프 효과로 하영의 모든 능력치가 A+에서 S-가 되면서 근력에서 구찬성을 앞서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상황.
하영이 창대를 튕겨 어깨 위로 지나친 검을 쳐냈다.
A+와 S-가 겨우 1단계 차이였지만, 등급 자체가 달라졌기에 그 힘의 격차는 엄청났다.
“으헉! 무슨 힘이!”
대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나를 죽이기 위해 적당히 힘줘서 찔러 오던 검은 예상치 못한 하영의 강한 힘에 사정없이 튕겨 올라갔고 구찬성은 검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
하영과 자리가 바뀐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 만세를 부르고 있는 구찬성의 뒤에서 양 겨드랑이에서 어깨를 감아 안고 들어 올렸다.
“뭐 하는 짓이냐? 놔! 놓으라고!”
그간 란주의 지옥 훈련에 동참해 근력을 A급으로 만들어 놓은 보람이 있는지 구찬성은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에서 나를 쉽사리 떨쳐 버리지 못했다.
“하영아! 찔러!”
나는 그림자 인형의 통제권을 활용해 하영에게 온 힘을 다해 구찬성을 찌를 것을 명령했다.
물론 하영이 온전한 정신이었다면 찌르는 것을 망설였겠지만 지금은 그림자 인형 상태.
그 명령 체계가 나에게 이전된 상황이었기에 고민 없이 창대가 부러질 듯 말아 쥐고 창을 회전시키며 온 힘을 다해 찔렀다.
“크아아아악!”
창날은 구찬성의 심장을 관통하며 파괴했고 뒤에서 붙잡고 있던 나의 심장을 찔러 왔다.
온 힘을 다한 공격이었기에 하영은 멈출 수가 없었고 창날이 나의 심장 어림을 찔렀다.
“교수님!”
“스승님!”
“안 돼!”
경악하며 달려오는 찬우.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다른 팀원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비명을 질렀다.
스스로를 버려 악적을 물리치는 숭고한 희생.
하지만 실제로는 하영이 혼신을 다해 찌른 창날은 내 겉옷조차 뚫지 못했다.
- 흑룡수에 내제된 ‘절대 방어의 술’이 발동됩니다.
- 심장을 꿰뚫어 터트릴 수 있는 강력한 창격이 감지되었습니다.
- 해당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이것이 구찬성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두 번째, 흑룡수의 힘이었다.
흑룡수의 반응은 완벽했고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구찬성의 어깨를 감싸 안은 손을 풀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그 자리에 허물어지는 구찬성.
입과 가슴에서 엄청난 피를 쏟으며 말했다.
“이… 이 내가… 나… 구찬성이… 고작 이… 인형 나부…랭이에게….”
나름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자 S급 헌터인데 그 최후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모두의 위에 서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가 불쌍하기까지 했다.
구찬성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고 그림자 조종술과 인형술의 주체였던 구찬성이 죽자 하영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쓰러진 하영을 감싸안고 ‘전력 분석관의 눈’으로 하영의 상태를 살핀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