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상태창 2개-90화 (90/140)

<90화>

몰려드는 각성자들

“결국 이렇게 되었군요.”

셀리온이 사라지고 타이우에서 내려서 한참을 서 있던 은비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오산의 본사는 모두 잿더미가 되었고, 그들의 길드센터는 무너져 내렸지.”

“비록 셀리온이라는 불을 뿜는 악마가 한 일이지만, 그 셀리온을 물리친 것이 드림팀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우리가 겪은 일이 오산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증언하겠습니다.”

드림팀을 인정하는 은비의 말에 사실 이 정도로 일이 어려워질 줄은 몰랐다는 쓸데없는 말은 삼켜 버렸다.

“당연히 도움이 되지. 그런데 갈 곳은 있니?”

갈 곳을 묻는 질문에 은비는 가만히 있었고 은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우리가 납치될 때 부모님도 오산놈들에게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부모님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오산의 실험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요. 오산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입막음하려 들 텐데 염치없지만 저희를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원했던 대답이 나오자 지체하지 않고 은유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안 될 리가. 자, 어서 타자. 얘들아.”

어느새 다가온 타이우가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아 주었다.

아이들이 타이우에 탑승하고 드림팀 멤버들도 하나씩 탑승하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와 드론들이, 땅에서는 수많은 헌터들이 주변을 포위하며 몰려들었다.

마력포를 장착한 장갑차와 통일된 국방색 밀리터리 룩의 각성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서 군대도 동원된 듯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카메라맨을 동반한 종군 기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 도착해서 본 것은 드림팀 멤버들을 모두 태운 타이우와 그 곁에 선 나의 모습.

타이우의 차창은 사생활 보호모드로 바깥에서 안쪽을 볼 수 없게 되어 있기에 투시 능력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러니 당장 보이는 나에게 시선이 모였고 셀리온이 보이지 않자 기자들이 앞다투어 나에게 플래시 세례를 퍼부으며 마이크를 들이대려 했다.

“모두 물러서시오!”

그때 나를 기자들의 마수에서 건져준 목소리.

득달같이 달려들던 기자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뒤로 물러나자 그들을 헤치고 다가온 인물은 다름 아닌 오산의 총수이자 우리나라 두 번째 S급 각성자 철권(鐵拳) 김한철이었다.

김한철의 일갈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김한철이 앞으로 나서자 그가 지금 이 무리를 대표하는 형세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자네는 누군가?”

낮은 목소리에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위압감 따위 가볍게 무시해 주는 ‘강철 심장’.

“그러는 당신은?”

은근히 퍼트린 기세에 주눅 들지 않고 대답하는 내 모습이 의외였는지 눈에 이채를 띠는 김한철.

하지만 호기심과는 별개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일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기세를 나에게 집중시키며 압박하듯 다시 묻는다.

“내가 먼저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일점에 집중시켜 거의 유형화된 기세에 몸이 살짝 휘청거렸지만 멘탈은 끄떡없었다.

흔들리는 몸을 타이우의 사이드미러를 잡고 바로 세우고 말했다.

“진짜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순서 타령이야?”

그 순간 머리가 하늘로 치솟고 상체가 부풀기 시작하며 잔인한 미소를 머금는 김한철.

폭발 일보 직전의 그의 모습에 살짝 긴장했지만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구면이지?”

삼족오 길드의 길드장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S급 각성자 불사조 오상익.

김천에서 만났던 그가 이곳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오상익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둘러싼 이들 사이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하는 이들을 살펴보니 그 면면이 대단했다.

대한민국 3대 길드의 길드 핵심 인사들뿐만 아니라 이름 좀 날린다 하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새 해외에서 인력까지 충원을 받았는지 중국, 일본, 미국의 S급 각성자들도 몇 명 보였다.

그 와중에 그 무리에 섞여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류산산.

문신이 보여준 기억 속에서 광화문에 몰려왔던 각성자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는 것은 이들은 지금 셀리온을 제거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인데….

김한철이 분노하자 그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나선 오상익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우리는 지금 재앙급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도착한 자리에 재앙급 몬스터는 보이지 않고 네놈과 정체불명의 버스만 덩그러니 있군. 어찌 된 연유인지 잘 설명해야 할 게야.”

말로는 차분하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며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우리에게 아주 좋지 않은 쪽으로 전개가 될 것 같아 보였다.

“설악 길드를 도와 강원도를 수복하는 작전을 진행하는 중에 철원 쪽에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을 했다가 정체불명의 몬스터 흔적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흔적을 따라 몬스터를 추적하다 보니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 그리고 그 몬스터는 물리쳤다.”

내 말에 술렁이는 분위기.

인상을 쓰고 듣고 있던 오상익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의 말에는 두 가지의 어폐가 있군. 첫 번째는 철원에서 몬스터의 흔적을 쫓아왔다고 했는데, 우리는 철원 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어떠한 경로에서도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부분은 터널 때문이었지만 일단은 별말 없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두 번째는 다 지난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 국내 최정상의 길드인 오산이 처리하지 못해 불바다가 되고 도움을 요청해 해외의 뛰어난 헌터들까지 초빙해 잡으러 온 몬스터를 처리했다는 것이지. 할 말 있나?”

오상익의 말은 아주 설득력 있었다.

상식선에서라면….

하지만 드림팀은 상식을 벗어나는 팀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적이 상식이 되는 팀이랄까?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이고 조작된 소리라고 치부할 법했다.

“첫 번째 의문점은 뒤에 계신 김한철 총수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리고 두 번째 의문점은 드러난 결과를 보고도 못 믿는데 어떤 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김한철에게로 향했다.

“철권. 설명이 필요한 듯하네.”

오상익이 은근히 압박하며 묻자 김한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지금 저딴 놈이 되는대로 지껄인 말로 나를 핍박하는 건가? 지금 중요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저놈들의 정체를 까발리고 사라진 재앙급 몬스터를 찾는 것이다. 정신 차려라.”

누가 보면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억울하게 몰린 줄 알겠네.

최고 기업의 최정상에 자리하려면 이 정도 포커페이스는 기본 패시브로 가지고 있어야겠지.

오상익은 김한철을 다시 한번 쏘아보고는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일단 네놈이 왜 여기 있는지는 차차 밝혀 보기로 하고 재앙급 몬스터는 어디로 갔나?”

“우리가 물리쳤다고 했다.”

오상익은 결국 폭발했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건가? 그놈이 어떤 놈인데? 네놈이 그렇게 자꾸 발뺌한다면 그 몬스터를 숨겨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공격하겠다. 좋은 말로 할 때 사실대로 말해라!”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답정너는 이길 수가 없다.

“뭐 믿지 못하겠다면 나도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여기에 너희가 찾는 그 몬스터는 없으니 다른 데서 찾아보든가?”

이쪽에서 삐딱하게 나가서 저쪽에서 들이받아 주었다.

“어디서 굴러먹던(지도 모를) 개뼈다귀 같은 새끼가!”

김한철이 주먹에 기운을 잔뜩 모아 날아온다.

맞으면 아프겠지만, 그건 맞았을 때 일.

내 그림자 밑에서 사람의 형체가 올라와 김한철과 주먹을 맞대었다.

똑같이 한 걸음씩 물러서는 두 사람.

“뭐야?”

김한철이 경계하며 물러섰다.

“흥, 철권이라더니 별거 없네.”

가냘픈 미성.

내 앞을 막아선 이는 하영이었다.

그림자 군주의 전투태세를 입고 내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김한철을 막은 것이다.

“누구냐?”

김한철이 묻자 때마침 타이우 앞쪽 문이 열리며 드림팀 멤버들이 내렸다.

멤버들은 스피어를 필두로 내 옆으로 다가와 한 명 한 명 좌우로 늘어섰다.

명불허전 원탁의 기사 스피어와 세이렌.

그러나 좌중은 스피어와 세이렌의 등장보다 바람의 기운에 둘러싸인 현서와 진의 등장에 더 놀랐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찬우 등 뒤로 하나둘 생겨나는 마나 웨폰들.

해동검귀의 귀살검을 뽑아 든 란주.

거대한 방패를 들고 진각을 밟아 대는 용석까지.

대한민국 국적의 S급 각성자는 다섯.

아니 구찬성이 죽었으니 넷인데 버스에서 내린 S급의 멤버만 여덟.

마지막으로 내린 가인과 강한도 특이한 복장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래도 못 믿으시려나?”

미소를 지으며 묻자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는 오상익.

“도… 도대체… 어… 어떻게?”

상대의 강함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오상익이었기에 충분히 당황할 만했다.

S급을 찍어 내듯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일 테니까.

“내가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내 말에 코웃음 치던 김창혁은 터널 안에서 이미 죽었고, 대성의 최본웅은 코빼기도 안 보이니 이곳에서 내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너뿐인 것 같은데? 오상익?”

내가 오상익을 지목하자 김한철이 그의 뒤에 다가서 속삭였다.

‘저놈들은 뭔가?’

‘아들놈에서 못 들었나?’

‘무슨?’

‘1년 안에 서울로 쳐들어와 삼족오, 오산, 대성을 갈아엎어 버리겠다는 놈이 바로 저놈이다.’

깜짝 놀라 다시 살피는 김한철.

‘개소리라 여겼는데….’

‘개소리가 아니었던 거지.’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면서 귀엣말을 주고받는 모양이 꼴사납다.

“둘이 사귀냐? 남자 새끼들이 뭘 쥐새끼처럼 속삭여?”

도발을 섞은 말에 둘의 얼굴은 터질 듯 시뻘게졌다.

“여자애 뒤에 숨어 있는 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과하구나!”

김한철의 주먹이 금속으로 뒤덮인다.

김한철의 이명이 ‘철권(鐵拳)’인 이유는 진짜 쇠로 된 주먹이 무기이기 때문이었다.

오상익도 이에 호응해 불길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지만 김한철과 오상익의 위협 정도는 스피어와 세이렌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하영과 란주가 나섰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더 짙은 어둠을 입은 하영과 귀살검을 빼든 란주.

“어디 그 여자애 주먹맛 좀 보시든가?”

“아저씨, 날도 건조한데 불장난하면 큰일 나요. 아 씨! 칼 장난이라니!”

김한철과 오상익은 둘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선 두 사람 뒤에서 하나씩 만들어 띄워 놓은 마나 웨폰이 어느새 100개를 넘어가는 찬우와 유형화된 바람의 기운을 타고 떠오른 현서도 자신이 1:1로 붙어도 이긴다 자신할 수 없을 강자임을 느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내 기세를 거두는 김한철과 오상익.

둘의 표정을 보니 이제 이야기를 나눌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뒤에서 호기심과 탐심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이는 중국, 일본, 미국의 S급 각성자들.

그들도 노선을 확실하게 잡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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