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신성한 불의 세례
하루 전.
“무슨 일이세요? 형님?”
내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는 성훈.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성훈에게 자리를 권했다.
“성훈아, 왔어? 여기 잠시 앉아 볼래?”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는 성훈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 사실 같은 노선을 걷게 된 시발점은 좋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너는 내 동생을 지켜주었고, 우리 팀원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었고, 궂은일들도 마다하지 않았지. 많이 늦은 것 같지만 고맙다. 성훈아.”
쑥스러운 듯 성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거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쉬운 일이라고 해서 모두 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은 쉬운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한 것처럼.”
성훈 나름의 계산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면 결론적으로 팩트만 놓고 본다면 성훈은 나에게, 그리고 가족의 안전을 소드 앤 매직 길드에 맡겼던 팀원들에게는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혹시 성훈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걱정하며 수시로 팀관리 메뉴를 통해 성훈의 근황을 확인하며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드림팀의 가족들을 지켜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욕심 외에 불순한 마음을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합류한 뒤로도 성훈은 본인의 부족함을 알기에 훈련에서 더 노력했고, 우리를 잘 서포트하기 위해 버스 기사를 자처하고 문지기를 자처했다.
항상 자신의 약함으로 고민하면서도 혹시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 팀 분위기가 흐려질까 애써 그 모습을 숨기려고 하던 모습들도 고마웠다.
출신, 재능, 실력. 무엇하나 특출난 것도 없고 오히려 드림팀에 섞여들기 힘들어 보였던 성훈.
하지만 그는 어느덧 자신만의 방법으로 팀원들의 신뢰를 얻었고,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성훈은 우리 팀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아픈 손가락을 잘라버릴지언정 방치하는 성격은 아니거든.
“성훈아.”
나지막한 부름에 성훈은 의문이 담긴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팀이야. 내가 추구하는 팀이란, 누구 하나 묻어가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팀이야. 1+1이 5가 되고 10이 되는 팀이지. 1+1=2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가 1.5를 해내야 하는 팀은 아니야.”
성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팩트를 날렸다.
본인 스스로 0.5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성훈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너는 우리 팀의 수준에 맞지 않아. 물론 너만의 역할들을 찾아가고 있지만, 솔직히 그 부분은 우리가 팀으로서 함께할 이유가 되어줄 정도라고 볼 수 없어.”
갑작스러운 팩트 폭행에 성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너는 우리 팀의 약점이고 필요 없는 존재야.”
팩트가 뼈에 맞았는지 고개를 떨구는 성훈.
한동안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있던 성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압니다. 형님. 그리고 많이 부러웠어요.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 가는 팀원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엇나가지 않고 가족 같은 분위기. 그런 가운데 발전이 없고 점점 뒤처지는 나. 물 위에 떠버린 기름같이 겉도는 나.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걸까?”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드는 성훈의 눈은 무언가 결심한 눈이었다.
“두 번, 세 번, 아니 솔직히 백 번도 넘게 생각해봤지만 결국 답은 하나인 것 같아요. 저는 드림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깐!”
“허업!”
힘들게 결심하고 말을 꺼내는 성훈의 말을 자르자 놀라서 헛바람을 삼켰다.
“그 뒤의 말은 아직 안 들을 거야. 그러니 너도 괜히 그 말 꺼냈다가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내 말 잘 들어.”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키는 성훈.
“약하고 필요 없는 존재인 네가 우리 팀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잘 생각해봐. 그 답은 내일 들을 거니까 내일 11시에 훈련장에서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리며 성훈을 돌려보냈다.
* * *
살라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성훈.
그런 성훈에게 다 들리게 불평을 터트리는 강한과 말리는 란주.
“아무리 그래도 좀 더 믿을만한 사람에게 주어야 하는 거 아냐?”
“오빠, 그래도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건 좀…….”
란주가 말리자 더 발끈하는 강한.
“내가 없는 말 했나? 솔직히 저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운이를 납치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읍읍.”
“오빠아, 제발!”
“저도 강한 삼촌의 말에 동의해요.”
훅치고 들어오는 하영.
“하영이 너까지!”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저분이 진심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저는 차라리 믿을 수 있는 강한 삼촌이 이 기회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강한 삼촌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약하니까.”
“야! 구하영!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푸훕.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래도 운이 오빠한테 생각이 있겠죠. 기다려봐요. 하영이 너도.”
란주가 마지막으로 기다려보자는 말로 불평을 차단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란주도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성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 긴장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성훈.
그런 성훈에게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주며 귓속말했다.
“나는 이제 너에게 어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거야.”
“네?”
당황하는 성훈의 모습이 못마땅했을까?
살라가 다소 퉁명스러운 의념을 날렸다.
[ 뭐지? 준비도 안된 이에게 신성한 불의 세례를 내리라는 건가? ]
같은 의념이 성훈에게도 전해졌는지 몸을 흠칫 떠는 성훈이었다.
“거 참, 성격 급한 것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불의 정령 종특이야? 잠깐만 있어봐. 대화 중이잖아.”
살라에게 무안을 주는 내 말에 성훈이 오히려 더 안절부절했다.
“형님. 도대체…….”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성훈.
“성훈아. 나는 다른 팀원의 짐이 되는 팀원을 원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너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지?”
어제 이런 상황까지 말해주고 미리 답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 말해주고 생각해보라고 했어도 되었을 것을 오늘 갑자기 결정하라고 하는 이유.
이건 성훈에게 시험과도 같았다.
갑작스럽지만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고 눈치만 본다면 나는 정말 성훈을 쳐낼 것이다.
나의 팀에 기회가 왔는데도 눈치보고 망설이는 사람은 필요없다.
하지만 비록 좀 눈치 보여도, 좀 뻔뻔하다 느껴지더라도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향상심이 있다면 성훈은 당당히 우리 팀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속으로 성훈을 응원하며 두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흔들리던 성훈의 동공은 어느 새 흔들림을 멈추었다.
이내 성훈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나와 마주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좀 눈치 보이고, 염치 없지만, 그렇다고 후회 될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저는 드림팀이 되고 싶습니다. 그냥 눈치껏 다른 팀원들 보조만 하는 그런 팀원 말고, 같이 협력하고 서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진정한 팀원!”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서서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나 같은 놈이 이런 기회를 받는 게 맞는가 싶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회를 누군가에게 양보하기에는 제가 좀 욕심도 있고, 뻔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받은 이 기회로 얻게 될 힘으로 반드시 드림팀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기회를 거절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성훈이 다짐하듯 외치는 소리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드림팀 멤버들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멤버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서 눈을 떠 멤버들을 보았다.
성훈을 보며 웃고 있는 멤버들.
웃어?
그중에 제일 크게 웃는…….
“푸하하하하! 성훈아, 네가 이겼다. 이겼어. 나는 그렇게 오그라드는 멘트는 못하겠으니 내가 양보하마. 푸하하하하!”
강한이 배꼽을 부여잡고 폭소했고, 냉정한 표정으로 강한이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했던 하영도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어…… 어…… 그러니까…….”
따악!
어버버거리는 성훈의 이마에 딱밤을 가볍게 먹여주었다.
“각오는 잘 들었다 성훈아. 이정도면 합격이다. 이제 이 기회는 네 것이다. 아까 그 결심 절대 잊지 마라.”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살라, 준비는 되었다. 우리의 선택은 성훈이야.”
[ 그래. 결정은 너희의 몫이고 그 결과도 너희가 감당할 몫이다. ]
의념을 전달하고 가슴 어림에 양손을 모아 원 모양을 만들어 불의 기운을 모으는 살라.
마치 자신의 심장에서 불을 꺼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불의 기운들이 모여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하얀색을 넘어 새파란 청염으로 변해갔다.
“자, 그럼 성훈아. 준비…….”
“으허허헝. 형님! 엉엉엉.”
내 허리를 부여잡고 눈물 콧물 다 쏟는 성훈.
“그래 그래, 성훈아. 네 마음 이해하는데 지금은 ‘신성한 불의 세례’를 받아야 할 시간이야. 진정하고 집중하자.”
겨우 다독여 진정을 시키고 뒤로 물러났다.
입고 있던 셔츠 앞섶으로 눈물 콧물을 대충 닦아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은 성훈.
새파란 청염의 불씨를 모아 쥔 살라가 물었다.
[ 그대, 신성한 불꽃을 품고 살아가기 원하는가? ]
“네, 원합니다.”
[ 그대, 불을 다스림에 있어서 절제와 온유함으로 할 것을 다짐하는가? ]
“네, 다짐합니다.”
[ 그대, 세상의 모든 불로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을 맹세하는가? ]
“네, 맹세합니다.”
[ 나, 불의 정령왕의 후계 살라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의 이름으로 그대, 최성훈에게 신성한 불의 세례를 주노라. ]
마지막 선언과 함께 살라의 손을 떠나 성훈의 머리에 안착하는 청염.
분명히 불꽃인데 머리카락이 타들어 가지 않고 성훈의 정수리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리고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한참을 꼼짝하지 않는 성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림팀 멤버들뿐만 아니라 살라마저 초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성훈의 눈이 떠졌다.
새파란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는 성훈의 눈동자.
그런 성훈을 향해 살라가 마지막으로 선포했다.
[ 나, 불의 정령왕의 후계 살라는 불의 정령왕께서 맡기신 ‘신성한 불의 세례’의 청염이 세례자 최성훈에게 무사히 임했음을 선포한다. ]
특별히 화려한 예식은 아니었지만 묘한 울림이 있는 세례식이었다.
그리고 성훈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드림팀은 약점을 잃고 강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