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돌아오다.
칼페온 크레이그라는 놈의 영혼에 완전히 잠식되기 전 강한에게 부르트강을 넘기고 강한이 부르트강으로 비프로스트의 다리를 불러오는 것 까지는 계획대로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프로스트의 다리에서 튀어나온 아서 클라크.
자세히 보니 부르트강을 찾으러 갔을 때 기억 속에서 본 존재였다.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의 아서 클라크.
그러고 보니 기억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도 아서 클라크가 비프로스트의 다리에 갇히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사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는 건가?
그래야 그나마 말이 됐다.
과거에 내가 본 장면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고 현재 내가 그 일의 결과와 마주하고 있다면 말은 된다.
하지만 이것도 말만 될 뿐이지 이해는 안 된다.
다시 비프로스트의 다리가 폐쇄되고 이곳에 갇힌 두 존재.
칼페온의 영혼이 잠식해 들어와 나는 점점 내 의식 속에서 밀려났다.
밀리고 밀려 도망가다가 내 의식 속에서 발견한 무언가 봉인되어 있는 듯한 작은 구슬?
나도 모르게 그 구슬에 손을 댔고 내 영혼은 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내 몸을 온전히 차지한 칼페온 크레이그와 아서 클라크의 대화.
칼페온 크레이그?
카덴 왕국?
카밀리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과거인지 미래인지 평행세계인지 모를 그곳에서 아서 클라크에 빙의한 영혼도 칼페온 크레이그의 영혼이었다는 사실.
둘은 서로에게 자신만이 아는 비밀들을 묻기 시작했다.
약혼자의 이름부터 가장 아끼던 보물, 아버지께 받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 어머니께 처음 반항했던 기억 등…….
둘은 막힘없이 서로의 질문에 답하고 놀라기를 반복하며 결국 인정했다.
둘 다 틀림없는 칼페온 크레이그의 영혼이라고.
그 이후 둘은 의식에 흐름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영원의 길’에 대한 내용.
탑인 줄 알았던 그 구조물이 사실은 어디론가 향하는 진짜 길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카밀리아 세계의 최강자였던 칼페온 조차 가지고 놀 수 있을만한 강자들이 바글바글한 곳.
이 또한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내가 들어가 있던 작은 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실금에서 시작해 잔금이 생기고 이제는 아예 깨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굵직한 금이 갔다.
이 구슬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칼페온의 영혼에 완전히 잠식당하게 될까?
온갖 걱정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결국 구슬이 깨지고 말았다.
곧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구슬이 깨졌지만 그 공간은 유지가 되고 있었다.
아니, 점점 확장되어갔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렇게 점점 확장되어 가는 공간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떠오르는 메시지.
- 30일이 지났습니다.
- 드림메이커를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잊고 있었다.
30일의 카운트다운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생각지도 못했다.
김노아에게 계약을 이행시키기 위해서 드림메이커 30일 사용금지의 페널티를 받아들였고 지금 막 30일째가 지났다.
내가 의식 속에서 발견한 작은 구슬은 드림메이커의 봉인이었다.
지금 그 봉인이 깨어지고 칼페온에게 잠식된 의식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 ‘강철 심장(S)’이 ‘영혼 잠식(S)’에 저항 합니다.
- 저항에 성공 합니다.
- 잠식한 영혼을 제압합니다.
드림메이커가 돌아오며 강철 심장이 움직였다.
그리고 잠식한 영혼을 제압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드림메이커의 영역이 급격히 넓어지며 손가락부터 시작해 팔, 다리, 온몸의 통제권이 돌아옴을 느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토록 무섭게 나의 의식을 잠식해왔던 칼페온의 영혼이 드림메이커 앞에서 꼼짝도 못하고 제압당했다.
그렇게 제압한 칼페온의 영혼을 반대로 작은 구슬로 만들어 의식 한 구석에 몰아넣었다.
‘상태창’
시야 왼편에 떠오른 드림메이커의 상태창은 그대로였다.
봉인되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반면 시야 오른편에 떠오른 가이아 시스템의 상태창은…….
* * *
[이름] 최운
[칭호] 전설의 비주류
[능력] 힘:S+ 민첩:S+ 체력:S+ 마력:S+
[특성] 세계 최강(S), 육성의 신(S), 개척자(S), 흑검의 주인(S), 어벤저(A), 탁월한 전술가(A), 용병술(A), 임기응변(B), 언더독(B)
[스킬] 인생경기를 만드는 선수교체(S), 지옥의 문도 단번에 열수 있는 잠금 해제(S), 최운식 귀살검법(S), 흑검기(S), 암천검법(S), 최운식 귀살보(A), 최운식 질풍탄(A), 최운식 그림자 기사의 전투태세(A), 외 16개
* * *
미쳤다.
능력치부터 미쳤다.
올 S+.
그리고 못 보던 특성과 스킬들.
심지어 ‘세계 최강’이라는 특성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시스템이 인정한 카밀리아의 최강자라는 뜻이겠지?
거기에 카덴 왕국의 수호가문으로서 흑검기를 다루는 크레이그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받은 흑검의 주인까지.
S급 스킬 2개를 포함해서 스킬 숫자가 대폭 늘었다.
아마도 칼페온의 특성과 스킬일 것이다.
이런 아낌없이 주는 칼페온 같으니라고…….
한참 상태창을 살피고 있는데 어느새 일어서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존재.
아서와 칼페온이 하나가 된 또 다른 칼페온이었다.
눈빛을 보니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모르는 눈치다.
전력분석관의 눈으로 확인한 결과 놈의 능력치도 올S+.
가이아 시스템이 표시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 능력치.
표기는 나와 같지만 실제로 맞붙는다면 나보다 강할 것이다.
원래 몸 주인인 아서 클라크가 나보다 강했고, 다운로드된 영혼도 100% 완료된 영혼이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아서 클라크의 특성과 스킬, 칼페온 크레이그의 특성과 스킬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상태창에는 보이지 않는 특성과 스킬들이 있었다.
아마도 다운로드 과정에서 소실된 특성과 스킬들인 것 같았다.
마계군주(S)라는 특성과 게이트소환(S)과 권속강화(A) 라는 스킬.
게이트오픈으로 마계의 존재들을 소환하고 권속 강화로 강화하는 마왕 그 자체.
기억 속에서 보았던 끔찍하게 생긴 마물들이 그렇게 소환된 권속들이었을 것이다.
이놈이 풀려나는 순간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 똑같은 일이 반복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이 공간을 나가려고 한다면 이놈도 같이 풀려나게 된다.
그러니 나는 평생 이공간에서 저놈과 함께 지내야 하는 걸까?
확신은 없지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지옥의 문도 여는 잠금 해제 스킬에 희망을 걸어볼만 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나 한명의 자유를 위해 저 위험한 놈을 풀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에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내가 엑스칼리버의 봉인을 풀었던 게 다운로드 완료 22일 전이었다.
그리고 다운로드 완료일로부터 10일 뒤에 영원의 길이 열린다.
32일.
애매했다.
비프로스트의 다리에서 며칠을 보낸 것 같은데 그게 애매했다.
가오한 때처럼 ‘헌터 메이커’에 놈을 담아 나가서 ‘영원의 길’에 풀어놓기 위해서는 3일이면 모자라고 4일이면 애매하고 5일은 되어야 안심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여기서 며칠 더 지내고 나가는 것이 좋겠지만 벌써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보는 녀석을 하루도 제대로 속이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아직 긴가민가할 때 운에 맡기고 거사를 치러야지.
이름 값 한번 하기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놈에게 말을 많이 하면 더 빨리 들통 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한마디로 물었다.
“왜?”
“괜찮아?”
생긴 것도 특성과 스킬도 살벌한 놈이 너무 스윗하게 묻는다.
아무래도 세상에 자신의 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으로 복수귀가 되어 살아왔는데 또 다른 자신을 만나 꽤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마음이 열린 듯 했다.
괜히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무작정 헌터 메이커를 썼다가 놈이 발밑에 생기는 포탈을 피해버리면 낭패다.
좀 억지스럽더라도 놈을 안은 채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서 놈을 향해 걸어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강철 심장이 최대한 차분하게 유지해 주었지만 침이 꼴깍 넘어간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서 멈춰 섰다.
“한 번만 안아 보자.”
놈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젠장, 눈치 챈 건가?
내 대사가 많이 이상했나?
영화에서 원빈이 할 때는 괜찮던데?
불안해하며 놈의 눈을 보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마음이 약해진다.
칼페온을 데리고 나간다면 결국 싸워서 없애야 할 텐데 사랑하는 이와 가족을 잃고 복수귀로 살아온 인생.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외로움에 사무친 그 마음을 생각하니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놈이 서서히 양 팔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나의 품에 안겼다.
그런 놈을 꽉 안았다.
헌터 메이커의 포탈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힘을 주어 안았다.
그러자 놈도 더 힘을 주어 꽉 껴안았다.
팔에서 느껴지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헌터 메이커를 사용하…….
“흐어어어어어엉. 흐어어어엉!”
짐승이 울부짖는 줄 알았다.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놈.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나도 모르게 놈의 등을 토닥이고 말았다.
“아일 나…… 에오었어…… 엄떵 에오었아구! (사실 나 외로웠어. 엄청 외로웠다구!)”
마계군주면 인간성도 좀 상실해주고, 좀 냉막하고 무자비하고 그래야하는 거 아닌가?
나보다 덩치도 더 큰 아서 클라크에 빙의해서 내 품에 안겨서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황당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을 조금 이용하면 확실하게 영원의 길에서 풀어놓을 수 있겠다 싶어서 놈을 위로하고 말을 걸었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마인드로.
“알지. 알지. 내가 너고 네가 나인데 내가 모를까.”
“크흐흐흑. 커헙.”
계속 울어대는 놈을 최대한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혔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나한테는 괜찮아. 다 말해봐.”
그 때부터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