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돌아오고 살아나고 합류했다.
비프로스트의 다리에서 계약을 진행하면서 칼페온에게서 아서 클라크의 뒷담화를 들었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정의의 사도를 가장한 소인배.
빈민가 출신으로 명예욕과 권력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욕망의 화신.
칼페온이 아서 클라크에 빙의해서 기억을 들여다보는데 엑스칼리버를 발견하고 무려 300일을 거의 매일 같이 와서 보고 가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 나는 새 시대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스라이팅한 존재가 있었다.
코드명 멀린.
최강의 각성자 아서 클라크를 발굴한 에이미 그린이었다.
계약을 마치고 칼페온과 함께 비프로스트의 폐쇄된 문을 ‘지옥의 문도 열 수 있는 잠금 해제’로 열고 나왔다.
그리고 본 것이 현서와 아서, 멀린의 대치 상황.
“아서, 멀린. 너희가 찾는 검이 이…… 커헉.”
현서가 바람처럼 날아와 안겼다.
어찌나 세게 날아와 안겼는지 호흡이 끊길 정도로.
그리고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등을 토닥여 주자 연녹빛 피부가 원래 색을 찾아갔다.
바람의 기운도 잠잠해지며 머리카락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원래의 현서로 돌아오자 현서를 잠시 떼어 내고 말했다.
“현서야, 나 다시 돌아왔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잠시 멤버들에게 가 있어. 나는 저기 저 사람들 좀 상대하고 갈게.”
현서가 고개를 저으며 걱정했다.
“저 사람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들이에요. 스승님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런 현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 이제 제법 강해졌거든. 든든한 용병도 하나 생겼고…….”
현서를 안심시키며 드림팀 멤버들에게 손짓해서 현서를 데려가게 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엑스칼리버.
하지만 실체는 김노아가 주문 제작한 겉만 화려한 철검이었다.
그것을 상태창을 조작해 여기 꽂아 두었다. 그리고 아서 클라크에게 이 장소를 알려주고 이곳에 드나들 수 있는 열쇠를 전달한 것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뽑아 든 그 검을 원래 있던 단상에 꽂았다.
그리고 아서 클라크를 향해 말했다.
“아서 클라크. 와서 검을 뽑아 봐. 검을 뽑는다면 이 검은 네 것이다.”
내 말에 앞으로 나선 것은 아서 클라크가 아닌 에이미 그린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마음대로 엑스칼리버를 가져가놓고 이제는 다시 엑스칼리버를 돌려주는 척 연기를 하다니…… 당신이 엑스칼리버의 힘을 쏙 빼먹고 껍데기만 가져왔을지 누가 아나요?”
역시 비선 실세.
바지사장을 앉혀 놓은 실세 참모다운 생각이다.
“이봐, 멀린. 너희는 지금 너희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모를 거야. 그러니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딴 추측성 발언이나 내뱉을 수 있는 거겠지.”
아서나 멀린이나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죽어도 시인하지 않을 위인(爲人)들.
아니 어쩌면 잘못했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위인들이다.
“사실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무리가 되었지. 그러니 좋게 말할 때 그냥 돌아가서 너희들의 역할이나 잘해. 이미 그것도 그른 것 같긴 하지만.”
아서와 멀린에게서 멀리 떨어져 복잡한 눈빛을 보내는 원탁의 기사들.
드림팀과 함께 서 있는 스피어와 세이렌은 아예 그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서, 멀린. 너희는 알고 있겠지. 이 검의 정보.”
움찔하는 두 사람.
“내가 여기서 이 검의 정보를 공개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얼굴이 붉어지는 아서와 고민하는 멀린.
“너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이 검이 아니라 사실이 알려져서 여론이 들끓으면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야. 그러니 이 검 가지고 가서 수습 잘해 보라고.”
아까부터 무언가 고민하던 멀린이 입을 열었다.
“좋아요.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어요.”
그런데 물러나겠다는 사람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귓속말을 건넨다.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요. 당신이 엑스칼리버를 가지고 사라져선 뭘 하고 돌아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많다는 것을.”
그리고 내 어깨를 짚고 뒤로 물러서며 나를 향해 윙크를 날린다.
이건 무슨 수작인가 싶어서 의아했는데 드림메이커 메시지가 알려 줬다.
- ‘현혹의 손길(S)’이 정신 간섭을 시도합니다.
- ‘강철 심장(S)’이 정신 간섭에 저항합니다.
- 저항에 성공하였습니다.
아마도 재능 있는 아서를 발견하고 그를 묶어 놓은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S급.
그리고 시스템을 넘어 세계의 법칙에도 관여할 만한 면역 스킬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를 멀린에게 넘어가 주는 척 할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어깨에 올려진 멀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확 잡아당기며 반대편 손으로 멀린의 목을 잡았다.
“케엑!”
“멀린!”
목을 잡혀 고통스러워하는 멀린이 반사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했고, 아서가 달려들어 검기를 날렸다.
나는 멀린의 목을 잡은 손에 귀살검법의 귀기를 침투시켜 마법을 방해하고 다른 한 손으로 검을 뽑아든 후 아서의 검기를 막아 내었다.
아서의 광명한 검기와 다르게 검디검은 흑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나의 검.
색깔과 멀린의 목을 잡고 있는 모습만 보면 내가 악당 같아 보였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최상위 실력을 가진 각성자 둘을 각각 한손으로 제압하고 있는 내 모습에.
멀린에게 귀기를 최대한 집어넣어 던져 버리고, 자유로워진 팔로 이번엔 아서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닿을 듯 가까워진 아서의 얼굴.
그 면전에서 오랜만에 ‘헤어 드라이어’를 발동했다.
“아서! 정신 차려! 멀린은 그냥 너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야. ‘현혹의 손길’에 네가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지금이라도 정신…….”
얼마나 소리를 쳤을까?
아서의 눈빛이 맑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 ‘헤어 드라이어(S)’에 노출이 된 아서 클라크가 각성합니다.
- ‘헤어 드라이어(S)’의 효과로 ‘현혹의 손길(S)’에 대한 면역이 대폭 상승합니다.
- ‘헤어 드라이어(S)’의 효과로 자신의 실책을 자백하고 사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아서 클라크가 맑은 눈을 되찾아 가는 동안에도 내가 침투시킨 귀기와 싸우느라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멀린.
그런 멀린을 일별하고 드림팀에게로 돌아갔다.
날아드는 주먹.
팔목을 잡고 보니 유미였다.
눈물이 그렁그렁.
어째 아서나 멀린과 싸우는 것보다 유미와 현서를 진정시키는게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대로 팔을 당겨 유미를 안아 주며 용서를 빌었다.
“유미야, 미안해. 그때는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나의 핑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현서와 유미의 공세에 시달리는가 했는데 구원자가 있었다.
“유미야,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우리 강한 오빠 좀…….”
퉁퉁 부은 눈의 란주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타이우가 들어설 만한 공간에 타이우를 소환했다.
그리고 타이우의 아래칸에 강한의 시신을 넣고 타이우를 소환 해제한 후, 멤버들을 하나 하나씩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만능열쇠 ‘지옥의 문도 열 수 있는 잠금 해제’로.
밖으로 나와 타이우를 소환해 드림팀 멤버들을 모두 태우고 런던 로즈우드 호텔에 도착했다.
숙소로 잡아두었던 프리미어 스위트룸으로 강한의 시신을 옮겼다.
강한의 시신을 중심으로 둘러선 멤버들과 강한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은 유미.
유미의 맞잡은 손에서 서서히 빛이 새어 나왔다.
밝기를 더해 가는 빛.
유미의 손에서 시작된 그 성스러운 빛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유미의 전신을 감쌌다.
성스러운 빛무리 가운데에서 눈을 뜬 유미는 간절하게 맞잡은 손을 풀어 천천히 강한의 가슴위에 내려놓았다.
강한의 가슴팍에 맞닿은 유미의 손바닥.
유미를 감싸고 있던 성스러운 빛이 유미의 손바닥을 통해 강한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든 빛을 흡수한 강한의 시신.
손가락부터 시작해 조금씩 움찔거리더니 강한의 눈이 떠졌다.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나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유미와 눈이 마주쳤다.
“유… 유미야…….”
떨리는 강한의 목소리를 유미는 강한이 감격해서 그런 것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괜찮아요. 삼촌. 아직 ‘기적의 소생’ 스킬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어요. 설사 마지막 한 번이었다고 해도 삼촌이라면 당연히 살려야죠.”
유미의 말에 결국 강한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흐흐흑… 유미야. 사실 나는 네 오빠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내 버린…….”
“쯧쯧쯧… 내가 이렇게 청승 떨 줄 알고 그 돌아오지 못할 곳에서 돌아왔지.”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는 강한.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너… 너… 어떻게?”
“왜? 다시 비프로스트에 갇히러 갈까?”
“운이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나…….”
강한의 투정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어느새 달려든 란주가 강한의 목을 끌어안아 버렸기 때문이다.
서럽게 우는 란주와 란주를 진정시키는 강한을 두고 나머지 멤버들은 조용히 스위트룸을 빠져나왔다.
스위트룸 앞 복도에 서서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이 스위트룸은 두 사람한테 양보하고 우리는 따로 숙소를 잡죠. 그리고 모두들 정말 고생했어요.”
“스승님,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 분은 누구시죠?”
중세 기사들이 쓸법한 투구를 쓰고 아까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
강한을 살리는 것에 신경쓰다 보니 잠시 깜빡했다.
“아, 소개할게. 투구 좀 벗어 줄래?”
투구를 벗으며 머리를 한번 흔들어 머리카락을 털어 내는 칼페온.
벗은 투구를 나에게 주자 투구는 흑룡수로 변해 내 손에 덧씌워졌다.
“어디서 많이 봤는… 아서?”
“어? 강한 삼촌이 가슴에 검 찔러 넣을 때, 강한 삼촌 공격하려 했던 그 사람 맞죠?”
“진짜 아서 클라크랑 똑같이 생겼네. 머리색 검은 거랑 피부 창백한 거만 빼고 완전 판박인데?”
“아서 클라크가 조금 나이들면 이런 얼굴이려나?”
각자 감상을 쏟아 낸다.
“소개는 직접 할래?”
고개를 끄덕이는 칼페온.
“나는 칼페온 크레이그. 최운의 말에 의하면 평행 세계에서 아서 클라크에게 빙의한, 카밀리아라는 세계의 카덴 왕국 공작이다.”
칼페온의 자기소개에 침묵이 흐른다.
- 꼬르르륵.
천둥 치는 소리가 내 배에서 터져 나왔다.
“자, 칼페온은 앞으로 우리와 함께 할 거야. 솔직히 칼페온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 팀 전체가 달려들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이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내 배 좀 진정시키고 마저 하자. 일단 식당으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