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더러운 시스템
일주일 전.
“칼페온, 혹시 너희 세계에서는 영원의 길이 몇 개였냐?”
나의 물음에 웹툰에 집중해 스크롤 하던 칼페온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6개.”
“우리랑 같았구나.”
“그래, 하나는 메인, 나머지 다섯은 서브.”
메인과 서브라.
“그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 거야?”
“몰라.”
“아주 작은 단서도 없어?”
“없어.”
단호하다.
“너는 메인이었어? 서브였어?”
“당연히 메인이었지.”
“운이 좋았네?”
비록 6분의 1 확률을 뚫고 당첨된 거니까.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나는 그저 가장 가까운 크레이그 영지의 영원의 길로 올라갔는데 거기가 메인이었다.”
칼페온의 경험은 분명 중요한 경험이었지만 지구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디를 골라야 하나…….”
“영국.”
확신이 담긴 듯한 대답.
“영국?”
“그래, 거기가 메인이다.”
“어떻게 알지?”
약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칼페온.
“뭐지? 그 눈빛은?”
“잘 들어라. 영원의 길이 몇 개여도 결국 영원의 대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오직 메인이 되어 진행하는 길만이 영원의 대지에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여섯 개중 하나,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길만이 영원의 대지에 닿을 수 있다.
“그러면 서브 쪽은?”
“서브는 말 그대로 서브다. 메인을 통해 영원의 대지로 향하는 이들이 좀 더 원활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지.”
“어떻게 돕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 아니야?”
“서브로 진입하면 도우미의 역할을 맡게 된다.”
“도우미?”
“음…… 게임으로 예를 들면 NPC?”
이해가 확 된다.
“그리고 서브는 입장을 함과 동시에 층에 배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층에서 일어나는 시나리오를 벗어날 수 없지.”
점점 복잡해져간다.
“하지만 층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존재한다. 바로 역할을 포기하는 것. 역할을 포기하게 되면 그 역할은 다른 서브 입장자가 챙기고 그 역할을 부여받기까지는……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지구의 개념으로 A.I가 담당을 한다.”
영원의 길이라는 것.
생각과는 좀 많이 달랐다.
칼페온의 설명에 따르면 이건 마치 지구의 대표를 영원의 대지로 보내는 것 같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영국이 메인이라는 것은…… 아!”
칼페온이 영국이 메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칼페온은 영국의 영원의 길을 통해 지구에 왔으니까.
그 말은, 영국의 영원의 길은 영원의 대지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영원의 대지에 닿아있는 영원의 길 하나가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길이다.
“이제 알아차렸나?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더 중요한 사실?”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칼페온.
“영원의 길에는 입장인원 제한이 있다.”
“뭐?”
“나의 세계 같은 경우는 메인은 12명. 서브는 100명만이 시나리오에 도전할 수 있었다.”
칼페온의 말에 고민이 깊어졌다.
지구에서 딱 12명만 도전할 수 있는 메인 시나리오.
12사도 느낌인가?
그리고 NPC의 역할을 감당할 인원이 100명씩 5개 총 500명.
이 사실을 공표하고 지구의 대표 격인 각성자들을 모아야 할까?
드림팀의 위상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이 사실을 공표한다고 사람들이 믿어줄까?
오히려 드림팀이 수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새로운 정보.
“메인 시나리오에 도전한 12명에 포함되지 못한 인원이 늦게라도 영원의 길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귀가 번쩍 뜨였다.
“그 방법이 뭔데?”
“초기 12명의 인원에서 공석이 발생하면 빈자리 만큼 추가로 들어갈 수 있다.”
“그 말은…….”
“그래, 공석이 되는 경우는 한 가지. 죽음뿐이다.”
인상이 찌푸려진다.
“혹시 말이야. 서브로 들어가게 되면 자신들이 서브고 메인을 진행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
“당연하다.”
“메인에서 결원이 생기면 메인이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도?”
“물론.”
더러운 시스템.
인간의 욕심을 아주 제대로 자극하는 시스템이다.
대한민국의 영원의 길을 제외하고 각각의 영원의 길을 차지한 이들은 모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쟁탈전을 치르고 승리한 이들이다.
그들이 메인은 따로 있고 자신들은 들러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수긍할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메인을 진행하는 멤버들을 죽이고 자신들이 메인을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메인은 죽어야만 결원이 생기지만 서브는 스스로 역할을 포기하기만 하면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메인을 죽이고 서브자리를 포기한 후 메인에 도전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서브끼리도 단합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 모르게 메인을 죽여야 빈자리를 선점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시나리오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개싸움이 될 것이다.
서브에게 메인은 척살의 대상이고 서브끼리도 눈치싸움을 하며 이전투구 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무엇이 최선일까?
일단 메인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브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이런 시스템을 짠 것이 누구인지 한번 보고 싶다.
콧잔등에 주먹이라도 날려주게.
“칼페온, 너는 어떻게 했지?”
칼페온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다 죽여 버렸지.”
심플하구나.
“아, 물론 찾아다니면서 죽이진 않았다. 나를 찾아오고 방해를 하는 놈들만 죽였다.”
그래요, 아주 관대하셨군요. 칼페온 공작 각하.
“지금 우리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그렇게 간단한 것을 묻냐는 표정의 칼페온.
“메인 먹고 시나리오 깨는 거지. 방해되는 놈들은 죽이고. 왜? 안 돼? 힘이 없어?”
“그…… 그렇네. 아주 간단하네.”
나는 드림팀을 소집했다.
‘헌터 메이커’에 들어가 있는 성훈을 제외한 모두가 모였다.
그리고 칼페온이 알려준 사실을 모두에게 설명했다.
표정이 굳어지는 드림팀 멤버들.
칼페온을 포함해 우리의 회의는 길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최소한의 방해로 메인 시나리오를 모두 클리어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길어졌을 뿐이다.
그 첫 번째가 메인에 들어갈 멤버들이 안심하고 시나리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역할을 칼페온이 맡아주기로 했다.
두 번째는 하나의 시나리오라도 날먹을 할 수 있도록 하나의 탑을 우리의 아군으로 채워넣는 것.
이것을 위해서 유기성과 연대를 하고 유기성 포함 선별된 100명의 인원이 입장하기까지 칼페온이 잠시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마지막 세 번째, 메인에 입장할 12명을 선정하는 것.
고민 끝에 감독인 나, 스피어, 세이렌, 현서, 하영, 용석, 찬우, 가인, 강한, 란주, 유미, 성훈까지 12명이 입장하기로 했다.
칼페온과 진, 은유, 은비는 영원의 길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칼페온과 진은 지구에서 상황을 조율하기로 했고, 은유, 은비는 다른 서브에 들어가 우리를 돕기로 했다.
계획을 세운 우리는 즉시 유기성과 접촉을 해서 일본을 물리치고 러시아를 돌려보내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영원의 길이 열리기 하루 전날 밤.
웸블리 스타디움 반경 2km 내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소드앤매직 길드.
멀린의 실각과 아서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세력이 많이 위축되고 떠난 이들도 많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은 아서의 노력으로 전력누수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영원의 길 쟁탈전에서도 승리를 거둔 소드앤매직.
하지만 원탁이 건재할 때처럼 압도적인 전력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영원의 길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경계에 만전을 기했다.
영원의 길을 품고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
임시로 설치된 베이스캠프의 분위기는 삼엄했다.
과거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관중들의 시선을 끌었던 메인 전광판.
그 옆으로 달빛에 생겨난 그림자가 살짝 움직였다.
- 하영 : 스승님, 잠입 완료했습니다.
- 최운 : 수고했어. 주위는 어때?
- 하영 : 아무도 없어요.
팀 메시지를 주고받는 하영과 나.
그동안 특별히 사용할 기회가 없어 쌓아두기만 했던 ‘팀 성장 포인트’.
팀 성장 포인트는 팀이 레벨 업을 하면서 생겨난 기능들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팀 목표를 계속 바꿔가며 달성하다보니 팀 성장 포인트가 10포인트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팀 메신저와 구단버스 메뉴에 ‘+’ 표시가 떴다.
‘+’를 눌러 확인해보니 팀 메신저는 쌍방 소통이 가능해지고 구단 버스는 구단 전용기로 업그레이드된다는 알림이 표시되었다.
전용기라는 말에 혹하기는 했지만 유틸적인 측면을 생각해 팀 메신저를 10포인트를 주고 업그레이드했다.
- 하영 : 제가 완벽하게 엄폐를 하고 있으니 지금 오셔도 들킬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최운 : 좋아. 그럼 셋 세고 간다. 셋, 둘, 하나.
선수 교체를 실행하니 웸블리 스타디움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일색의 옷을 입고 웸블리 스타디움의 메인 전광판 옆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 최운 : 하영아, 위치에서 벗어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줘.
- 하영 : 네, 스승님. 염려마세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드릴게요.
쌍방향 소통이 되는 팀 메신저는 정말 신세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회에 젖어 있을 시간도 감탄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팀 메신저 아래로 떠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홈구장으로 등록 가능한 구장을 발견했습니다.
- 구장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 * *
[이름]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
[준공] 2007년
[위치] 잉글랜드 런던 브렌트
[수용인원] 90,000석
[필드크기] 105 X 68 m
* * *
웸블리 스타디움의 정보가 떴다.
- 현재 홈구장은 ‘울산 문수 축구경기장’입니다.
-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을 홈구장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메시지를 확인하니 드레이크 퀸과의 혈전이 떠올랐다.
5분여가 흐르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떴다.
- 홈구장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 이제부터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을 홈구장으로 사용합니다.
- 홈구장 메뉴를 열어 기능을 확인하세요.
뒤이어 메시지가 계속 올라갔다.
- 드림팀 팀원들에게 ‘홈 어드밴티지’가 적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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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 ‘안방불패(S)’가 활성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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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우리는 새로운 홈구장을 등에 업고 메인 시나리오 12자리를 반드시 따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