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상태창 2개-138화 (138/140)

<138화>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뭐지?”

수잔은 찝찝한 기분에 가죽 주머니를 아무렇게나 쑤셔 박아 버렸다.

“내가 뇌물이나 받자고 여기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참 나!”

의뢰인이라는 그자의 표정이 잔상처럼 남아 계속 신경을 건드리는 듯 했다.

그때 그녀의 신경을 정말로 건드리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입고 뭉쳐서 다가오는 무리.

수잔은 짜증 나는 표정을 애써 숨긴 채 다가오는 무리에게 소리쳤다.

“멈춰라! 이곳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나름 위엄 있게 외쳤다는 생각에 뿌듯해하고 있는 수잔에게 돌아온 것은…….

“뭠쭤라~ 이곳은 쭈리비 금쥐된 고시돠~”

재수 없는 새우 수염의 사내가 수잔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니 그대로라기에는 어폐가 있을 정도로 열받게 만드는 목소리.

“내 말을 왜 따라 하지?”

“뇌 뫄를 왜 따롸 하쥐이?”

계속 따라 하는 사내.

수잔은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이 세계 사람이라면 ‘세상의 동쪽 끝 수호자’에게 이렇게 할 수 없다.

수잔은 저들이 분명 골드러시 소속 인원이거나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한다는 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감히 원탁의 기사 제10좌인 자신을 몰라보고 놀린 자에게 참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순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매가 약이다.”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하며 검을 뽑았다.

검 주위로 흩날리는 새하얀 냉기.

보통 사람, 아니 어느 정도 단련한 강자들이라고 해도 긴장할 법한 기운을 흩뿌리는데 상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숫자를 믿고 그러나 본데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다는 걸 깨닫게 해 주마.”

“수짜를 미꼬 그뤄나 본뒈~ 오늘 사람 잘… 꾸웩!”

이번에도 말을 따라 하던 새우수염의 사내가 뒤통수를 잡고 쓰러진다.

아카데미 교복처럼 보이는 복장의 여인이 사내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으이구, 그저 수잔만 보면 놀리고 싶어 가지구…….”

“나를 아세… 응?”

수잔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여인의 말에 나를 아느냐고 물으려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마리 앨런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저 여인은 어떻게 본명을 아는 걸까?’

검에 더 많은 기운을 불어넣으며 상대를 경계하며 외치는 수잔.

“웬 놈들이냐?”

그런 수잔의 모습에 앞으로 나선 여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잔, 너 아까 지나간 남자가 주고 간 가죽 주머니 안 열어 봤지?”

친밀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의 말에 움찔하는 수잔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내기는 내가 이긴 거다?”

여인의 말에 뒤에 있던 이들 중 몇몇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여인에게 내민다.

수잔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수금을 끝낸 여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수잔! 이렇게 보니 새롭네? 나 세이렌이야. 이 새우 수염은 스피어고.”

그녀의 말에 수잔은 턱이 바닥에 닿을 듯 입이 벌어졌다.

* * *

-우우우우웅

한참을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꽤나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데 멈출 줄을 몰랐다.

“끝도 없이 내려가는군요.”

내 말에 잭 마일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이 세계가 넓은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네, 그 정도는 상식이죠.”

잭 마일스는 배낭에서 네모난 상자를 하나 꺼내 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이곳에 세계의 동쪽 끝이라는 것도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상자로 치면 이쯤?”

잭 마일스가 들고 있는 네모난 상자를 보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 우리가 사는 뒷면에…….”

잭 마일스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호! 이해가 빠르시군요.”

“그런데 수인들은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죠? 수인들이 죄다 박쥐족도 아닐 텐데.”

이 세계의 상식적인 물음에 잭 마일스는 자신이 대단한 선구자라도 되는 양 설명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네모난 상자 같은 이 세상의 중심에는 인력, 즉 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얇은 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래쪽 세상에 사는 사람들도 발을 땅에 붙이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 세계의 비밀을 알려 주듯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 우스워 보였지만 적절한 리액션은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기에 좋다.

“오! 그런 놀라운 비밀이 있었군요!”

심드렁한 표정의 현서와 하영에게 팀 메세지로 호응하라고 하자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해 주었다.

“와, 대, 단, 하, 네, 요.”

“그, 런, 비, 밀, 이.”

잭 마일스가 자아도취 하느라 눈치를 못 채서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도 ‘수인족의 땅은 낮과 밤이 인간 세계의 반대이다’, ‘별자리도 다르다’ 같은 머리가 있으면 알 수 있는 것을 계속 떠들어 대는 바람에 나도 리액션에 영혼이 빠져나갈 때쯤 겨우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이후 잭 마일스의 설명과 시범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려 무중력 지대를 지나쳐 내려와서 대기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인족의 땅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우리를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본인을 ‘세상의 서쪽 끝 수호자’라고 소개하는 호랑이 얼굴의 수인족.

하지만 그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수인족의 땅에 들어서는 순간 갱신된 메인 시나리오 때문이었다.

- 숨겨진 대지에 도착하셨습니다.

- [Episode 1. 숨겨진 대지로]가 완료되었습니다.

- 보상으로 ‘가이아 시스템’과 연결을 복구합니다.

- ‘가이아 시스템’ 정보를 불러옵니다.

- 메인 시나리오가 갱신됩니다.

- [Episode 2. 어둠의 씨앗을 찾아라] 가 시작됩니다.

- 숨겨진 대지에 뿌리를 내리려는 어둠의 씨앗을 찾으세요.

- 보상 : 능력치 강화 물약

처음 메인 시나리오로 들어왔을 때 드림팀 멤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먹통이 된 가이아 시스템.

그리고 방금 전과 같은 메시지로 첫 번째 에피소드인 ‘숨겨진 대지로’가 주어졌다.

보상은 ‘가이아 시스템 복구’.

다행히 드림 메이커 시스템은 사용이 가능해서 팀 메뉴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같이 모이는 데만도 한참을 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인족의 땅에서 시작한 강한은?

- 최운 : 형, 지금 에피소드 몇 진행 중이야?

- 강한 : 나? 에피소드 2 진행 중이지.

- 최운 : 에피소드 1은 어떻게 완료했는데?

- 강한 : 아, 그거? 그거 완전 거저던데? 에피소드 1 뜨자마자 완료되었다고 떴어. 그래서 탐정 스킬로 여기서 실력 좋은 용병으로 활동하고 있지.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고 메신저를 닫았다.

우여곡절은 있었어도 가이아 시스템이 복구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 최운 : 어디쯤 왔어?

- 찬우 : 무중력 지대 지나서 수인족의 땅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탔어요.

- 최운 : 수잔도 만났어?

- 스피어 : 지금 수잔도 함께 가고 있어.

- 최운 : 수인족의 수호자는 일단 지금은 일반 NPC로 보여. 수인족의 땅에 도착하면 가이아 시스템 복구 되니까 수잔이 잘 설득하든 힘으로 뚫고 들어오든 해봐.

- 스피어 : 오! 드디어! 느려 터진 몸뚱이 때문에 힘들었는데 다시 섬광의 기사로 돌아간…….

팀 메신저를 끄고 잭 마일스에게 물었다.

“혹시 올랜도라는 영지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지도를 펼쳐서 살펴보는 잭 마일스.

“걸어서 이동해야 하니 넉넉잡아 3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보물을 찾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강한은 몰라도 탐정 클래스는 우리 팀의 보물이지.

수인족의 땅 수호자가 있는 곳에서 걸어 내려와 드넓은 초원 위를 걷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을 보니 말의 얼굴을 한 수인족들이 초원을 내달리고 양의 얼굴을 한 수인족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렇게 황당한 상상을 하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전체 메시지가 떴다.

- 현재 시나리오에 존재하는 메인 액터 전원이 [Episode 1. 숨겨진 대지로]를 완료했습니다.

- [Episode 2. 어둠의 씨앗을 찾아라] 가 시작됩니다.

걸음을 멈추는 잭 마일스 일행.

빠르게 눈빛 교환을 하더니 잭 마일스가 제안을 했다.

“우리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까요?”

딱 봐도 눈치를 챈 모습.

잭 마일스의 근황에도 나타났다.

* * *

[근황]

1. 에피소드 명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 당황스러워합니다.

2. ‘숨겨진 대지’가 ‘수인족의 땅’이라고 확신합니다.

3. 자신이 데리고 온 의뢰인을 메인 액터라고 생각합니다.

* * *

그리고 리다이브 용병 3인 중 1인은 로그아웃을 한 듯 했다.

우리의 정보를, 그리고 시나리오의 주 무대를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그아웃했던 이도 필요한 정보는 다 전달했는지 다시 로그인을 했다.

진짜 칼페온처럼 다 처죽이지 않는다면 ‘전력 분석관의 눈’ 없이 서브들의 방해를 뚫고 에피소드를 완료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메인 액터들에게 많이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원래 의도는 서브들이 메인 액터를 돕는 것이었겠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바람일 지도…….

잭 마일스의 요청대로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잠깐 앉아서 쉬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반응한다고?

잭 마일스와 용병들을 돌아보았지만 그들도 모르는 눈치다.

“저들은 누구지?”

다가오는 무리의 행색을 보아하니 상행을 떠나는 상단 같아 보였다.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데 100m쯤 거리를 두고 멈춰 서는 무리.

그리고 무리 중앙에 위치한 가장 크고 화려한 마차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내리는 고양이 얼굴을 한 수인.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오자 그 좌우와 뒤쪽으로 호위로 보이는 이들이 빠르게 따라붙는다.

“당신들은 누구요?”

잭 마일스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고 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고양이 얼굴의 수인.

이내 잭 마일스와 용병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축객령을 내렸다.

“이분들은 이제 우리가 모실 테니 그대들은 우리 수인들의 대지를 떠나시오.”

잭 마일스와 용병들은 황당해했지만 지금 나는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손가락을 뻗어 고양이 얼굴의 수인을 가리키자 나를 향해 씽긋 웃는다.

“너… 네가… 여기 어떻게…….”

운이 좋은 건지 실력이 좋은 건지.

지구에 있어야 할 이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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