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5 당황스런 뽀뽀 =========================================================================
순간 머릿속이 진공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는 좀 전에 마셨던, 샤토-무통-로쉴드의 보랏빛 향기가 가득 찼다. 물론 그리 진한 스킨십은 아니었다. 키스도 아니고 더 강한 스킨십도 아니고,…근데 너무나도 아름답고 진정으로 나의 영혼을 흔드는 그런 것이었다. 아.선배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안녕~~잘 가…
-네…네…
선배는 나를 놓아주고 문을 닫았다. 나는 한동안 선배 집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얼음처럼 문 앞에서 서 있었다.
와인이라고 해도 술은 술 이었나 보다. 눈을 떠 보니 벌써 해가 중천에 있었다. 10시나 되었다. 가연 선배의 입맞춤 자국이 아직 남아 있기라도 한 듯…왼쪽 뺨이 얼얼한 것 같았다. 아…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도 짜릿하다. 오랜만에 학교엘 가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했다고 너무 공부를 안한 것 때문이기도 했고, 혹시나 학교에 있는 친구를 보기 위함도 있었다. 씻고, 학교에 갔다.
학교는 한산하였다. 계절학기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 이었고, 날이 더워서 그런지 다들 실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동아리 방에 갔다. 역시나.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피서라도 간 것 같았다. 동아리 방엔 조그마한 에어컨이 하나 있었다. 후배들이 너무 더워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자 졸업한 선배들이 쾌척을 해준 것이다. 누가 방금 전에 동아리 실에 있었는지 에어컨 때문에 방이 시원하였다. 점심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팠고, 매점에서 김밥이라도 하나 사 먹을 겸 매점에 갔다.
매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비가 올 것이라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해 비를 맞았다. 다행히 동아리 방에 거의 다 왔을 때 비가 와서 조금 밖에 맞지 않았다. 좀 찝찝했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역시 여름엔 시원한 곳에 앉아서 김밥이나 먹는 게 최고였다.
"또각또각 또각"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로 볼 때 힐을 신은 여자였다. 그냥 이 주변에 있는 다른 동아리 방이나 행정실에 가는 사람일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동아리방 디지털 도어 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 누구세요?
난 많이 당황하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여자 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금 전 소나기에 맞았는지 옷과 머리가 많이 젖어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많이 젖어서 검은색 브라가 드러나 있었다.
-네…안녕하세요? 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 부원 한예선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전 2학년 최은하에요.
-네. 아. 오다가 비를 맞아서. 좀 말리려고 왔는데…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계시네요.
-아. 괜히 미안하네. 나 때문에.
-아니에요…
1학년 예선이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옷이랑 머리를 말렸다. 1학년이라 그런지 풋풋해 보이고 귀여웠다. 괜히 할 것 도 없는데 있으면 방해 될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전 이만 가볼게요.
-아네요. 저 때문에 나가시는 것 같은데.그냥 계세요. 전 상관없어요.
-아. 그래. 그럼 좀만 더 있을게. 사실 학교에 사람들 있나 보러 왔는데. 아무도 없네.ㅎㅎ
-그러게요. 방학이라 동아리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계절학기 들어?
-네…교양과목 두개 듣고 있어요.
-와. 대단하다. 1학년인데 벌써 계절학기도 듣고? 공부 잘하나봐.ㅎ
-아니에요…친구가 같이 듣자고 했는데, 걘 수강 취소 바람에 혼자서 힘들어요.
-어이구. 힘들겠다. 곧 기말고사 기간 아니야?
-네 맞아요. 과제를 두개나 해야 하는데.
-무슨 과목이야? 교양 지리학 이라는 과목이랑 금기의 예술 이라는 과목이에요.
-어렵겠다. 예술에 관심이 있나봐?
-아. 제가 미대에 다녀서요.
-아. 미대야? 어쩐지… 이미 옷 입은 거부터 예쁘더라고. 센스가 있는 것 같아.
-아니에요. 뭐.
-아. 나도 1학년 때 교양 지리학은 들은 적 있는데… 교수님이 어떤 분이셔?
-김석준 교수님이요
-어. 나도 그 분한테 들었는데, 되게 재미있게 잘 가르치시지?
-네. 이야기 하는 게 정말 재미있으세요.
-그럼 기말 리포트도 여행 답사기 쓰는 거야? 내가 들을 때는 그거 이었는데…기말시험이 없어서 좋긴 했는데. 오랫동안 글 써 본 적이 없어서 분량 채우느라 죽을 뻔했어.ㅎㅎㅎ
-ㅎㅎㅎ 이번에도 기말 리포트가 그거에요.
-아…그럼 어디 갔다 왔어?
-네. 아직 못 갔어요.
-왜? 제출 기간 며칠 안 남았을 텐데…지금쯤은 쓰기 시작해야 할 텐데…
-네. 그러게요…아까 말했던 친구랑 같이 들어서 같이 답사하러 갈 계획까지 세웠는데, 그 친구가 수강 취소를 하는 바람에…미루다 보니 아직 못가고 있어요.
-에고…그럼 어디 가까운데 라도 가봐…경복궁이나 뭐… 클래식하잖아.
-교수님이 서울에 있는 건 안 된데요… ㅠ.ㅠ선배는 어디 가셨어요?
-응 난 남한산성…아! 남한산성이 서울이랑 가까우면 서도 서울이 아닌 곳인데…지하철 타고 갈 수도 있거든…괜찮은 곳인 것 같아.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아…이번 주 일요일이라도 가야겠어요.
-일요일? 제출일이 다음 주 화요일이라면서? 그럼 늦어…
-그렇겠죠? 근데 아무런 준비가 안돼서…
-그래. 오늘 오후에 뭐해?
-별일 없는데, 왜요?
-나랑 같이 가자…지금!
-네??
-내가 작년에 가 본적이 있어서 잘 안내 해 줄 수 있어? 아직 12시도 안됐네.…지금 서둘러 가면 저녁이면 다 둘러보고 쉴 수도 있어.
-저 때문에 괜히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사실. 뭐 나도 할 게 없어서 학교에 왔는걸 뭐…그리고 후배한테 아직 도움 준 것이 하나도 없어서…뭐라도 베풀어야 할 것 같아서. 혹시 내가 싫은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저야 정말 고맙죠. 근데 괜히 바쁘신데. 저 때문에…
-아니라니까… 자…지금 가자. 지금 가면 1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거기서 점심 먹고 둘러보면 저녁 먹기 전에 내려 올 수 있어.
아직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바로 그칠 것 같더니…. 동아리 실에 버려진 우산이 있나 살펴봤다. 하나를 찾긴 했지만 하나 더 있진 않았다. 우린 어쩔 수 없이, 비가 그칠 때 까지 기다릴 순 없으니, 하나의 우산을 같이 쓰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우산이 하나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 같이 쓰자.
-네…고마워요 선배.
-아냐…자. 일루 들어와…
-네…
한 우산을 같이 쓰고 가니 여자 친구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여자 친구 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였다. 귀여우면서도 순수해 보였다. 얼굴이 그렇게 까지 예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이고 웃상으로 생겼다. 웃을 때마다 더 귀여웠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이 비는 그쳤다. 도착하니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배가 고파서 우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산성에 올랐다. 내가 나름 작년에 기행문을 쓴 지식? 이 있어서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예선이는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새겨 듣는 듯 했다.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조금씩 지어서 이야기 한 부분도 있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오히려 덥지 않고 좋았다. 예선이는 계속 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모습도 귀여웠다.
-선배. 저기 서 보세요. 제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아니야 됐어…나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럼 둘이 같이 하나만 찍어요. 저 때문에 시간내주셨는데.
-그래. 그럼 하나만 찍는다.…
타이머를 해 두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어색하게 차렷을 하고 찍었지만 재미있었다.
-어 선배. 저기 돌탑 있어요. 돌탑에 돌 올리고 소원 빌어요.
-응. 가보자.
예선이는 돌을 하나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나도 같이 하나를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후배가 아니라 여자 친구가 되게 해 달라고… 돌탑 주변에는 다른 돌도 있었는데, 유난히 사람의 손을 많이 탄 길쭉한 돌이 있었다.
-예선아. 이거 무슨 돌인지 알아?
-아뇨…모르겠는데요.
-그래? 이게 여자의 소원을 들어 주는 돌이거든…
-그래요? 왜요?
-응…일단 한번 쓰다듬듯 만지고 소원 빌어봐.
-네…
예선이는 돌을 쓰다듬고 나서 소원을 빌었다.
-소원 빌었어?
-네…ㅎㅎ 근데 왜 이게 소원 들어주는 돌이에요?
-아. 원래 그게 소원을 들어주는 돌은 아니야… 임신이 잘 안 되는 여자가 그 돌을 만지고 나서 아들을 낳았데. 그래서 그게 소원을 들어주는 돌로 전해지는 거야?
-아. 그냥 우연 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근데…이 돌 뭐처럼 생긴 것 같아?
-글쎄요…
-이거. 남자 성기처럼 생기지 않았니? ㅎㅎㅎㅎㅎ 이 돌이 여자가 임신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유는 그거야. 이 돌이 남자의 성기처럼 생겼거든. 그래서 이 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만질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는 건, 여자가 성적으로 눈을 뜰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지…그리고 자연스럽게 임신을 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ㅎㅎㅎ 재밌지.
-아. 선배. 뭐에요. ㅎ
예선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진 듯 한 표정이었다. 이런 심한? 장난을 쳐서 미안하기 도하였다. 난 그 상황에서 일부러 야한이야기를 더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지어 냈다.
-가끔씩 보면 저 남근석에 콘돔이 씌워져 있기도 하데…
-네? 왜요?
-저 돌이 정말로 남자의 성기처럼 생기고 크고 우람해서 여자들이 콘돔을 씌워놓고 자위를 한다는 거야.
-아. 징그러요.
-ㅎㅎㅎㅎ여기서 그런걸 하다가 관리인에게 발각되는데 한 달에 서너 번도 넘는데… 참 대단한 돌아야. ㅎ
예선이는 흥분된 다기 보다는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좀 든 사람 이었다면, 그걸 가지고 더 한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인 것 같다. 부끄럽게 반응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산성을 내려왔다. 작은 노점이 있었고, 배가 고파서 핫도그를 하나 씩 샀다.
-예선아…이 핫도그 아까 전에 그 남근석 닮지 않았어?
-네? 아…선배 …뭐에요.
-왜? 닮았잖아. ㅎㅎㅎㅎㅎ 아닌가? 너무 큰가?ㅎㅎㅎㅎㅎ
-아…자꾸 그 이야기 하니까 핫도그 못 먹겠어요.ㅎㅎ
-왜? 그냥 먹는 건데. ㅎㅎㅎ 생각하지 말고 먹어…괜히 너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아…
-아니에요….아. ~
후배를 놀리면 안 되지만, 이런 걸로 그렇게 까지 반응을 하는 게 귀여웠다. 올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학교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지하철 에서는 산성을 가는 지하철 때 보다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좀 더 가까워 진 것 같았다. 예선이는 산성에서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며 어떻게 기행문을 쓰면 좋을지에 대해서 내게 물어봤다. 난 뭐 글재주가 없어서 내가 조언해 주는 것 보다는 직접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며 와서 그런지 갈 때 보다 훨씬 더 지하철을 탄 시간이 짧은 듯 느껴졌다.
-아. 나는 집에 가봐야할것 같아. 오늘 재미있었어.
-아니에요. 저야 말로 고마워요. 선배 아니였음. 기행문 쓰느라 정말 고생했을 것 같아요. 오늘 재미있었어요.
-그래. 그럼 계절학기 종강하면 한번 다시 보자.
-네 그래요. 리포트 제출하고 제가 한번 쏠게요. 기다리세요 선배.
-응 그럼 담에 봐…
사흘이 지난 뒤 토요일, 예선 이에게서 부터 메시지가 왔다.
예선 : <선배. 잘 지내고 계세요? 덕분에 리포트는 다 썼어요…오늘 오후에 시간 되세요? 제가 점심 살게요. >
은하 : <응 난 좋아…그럼 언제 어디서 볼까?>
예선 : <학교 앞에 카츠 페버 아시죠? 거기서 12시에 봐요>
은하 : <아. 그 돈가스 전문점? 응 알아 거기서 보자.>
예선 : <돈가스 좋아하세요.?>
은하 : <응 좋아해. 완전…그럼 12시에 봐>
설레는 맘으로 예선이를 만나러 갔다. 예선이는 먼저 와 있었다.
-선배. 여기에요.
-응 먼저 왔네. 늦어서 미안.
-아니에요. 딱 맞춰 오셨네요. 여기. 이거 받으세요.
-뭔데?
-제가 쓴 남한산성 기행문이요…선배 때문에 쓸 수 있었어요. 한번 읽어 보세요. ㅎㅎㅎ 혹시 수정할 만 한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요.
-우와…고마워. 있다가 집에 가서 꼭 읽어 볼게…
-네…고마워요…
원래 돈가스를 좋아하는 데다, 예선이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다. 요즘 1학년 동아리 회원들에 대한 이야기도하고, 예선이는 알지 못하는 동아리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었다. 며칠 전에 만난 가연 선배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었다. 예선이는 자신은 가연 선배를 만나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였다. 그럴 만도 한 선배이다. 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나온 음료를 마시던 중 예선이가 갑자기 신중하게 말을 걸었다.
-선배…정말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응 뭔데?…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들어 줄게…
-네…근데 좀 힘들 수 도 있는데?
-뭐야? 들어 줄게…들어 주면 돈가스 한 번 더 사주는 거지?
-그럼요 당연하죠. 근데…이게 좀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도 좀 죄송스럽기도하고…
-뭔데 그래?
-제가 지난번에 <금기의 예술> 이란 과목도 듣는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그 과목 기말 보고서도 있는데…그걸 해야 하는데.
-그래? 내가 도와줄게 있으면 도와줄게. 근데, 난 그림을 잘 못 그려서.ㅎㅎㅎ
-아. 그게 아니라…모델이 필요한데.
-모델. ? 모델은 키 크고 잘 생긴 사람을 써야 그림이 잘 나오지. 나는 뭐. 영. 아니야. ㅎㅎㅎ
-아…그게…
-왜?
-근데. 그게. 누드모델이거든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