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 우리의 인생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었다면 (53/183)

53. 우리의 인생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었다면2021.10.30.

월요일 아침. 은비는 오랜만에 출근한 성미란 팀장에게 싹싹하게 인사했다.

1655114949212.jpg“팀장님, 몸은 괜찮으세요? 많이 걱정했어요.”

1655114949213.jpg“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제 다 나았어.”

1655114949212.jpg“수술하시는 바람에 여태껏 고생하신 팀장님의 공이 이정오 대리한테 갔네요.”

1655114949213.jpg“아니야. 오히려 다행이지. 프레젠테이션도 이정오 대리가 했는데.”

1655114949212.jpg“그래도 촬영은 다르잖아요. 국내촬영도 아니고 해외촬영인데요. 광고주들까지 같이 가는데 직급이 너무 떨어지잖아요. 많이 걱정되시겠어요.”

은비가 계속 미란에게 말을 붙이니 고은주 대리가 끼어들었다.

16551149492202.jpg“그래서 어제 정지헌 이사님이 합류하셨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은비의 눈이 커졌다.

16551149492202.jpg“채 과장님은 이사님 해외출장 떠나신 거 못 들으셨어요? 아, 못 들으셨겠구나.”

고은주 대리가 은비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피며 입술을 비뚜름하게 들어 올렸다. 은비의 입술 근육에 파르르 경련이 일었다.

1655114949212.jpg‘지헌 오빠가 해외 출장을 갔다고? 이정오를 따라서?’

어느새 은비와 지헌이 헤어졌단 사실이 회사에 널리 퍼져서 동료들은 은비의 앞에서 지헌의 이야기를 하길 꺼렸다. 은비 또한 지헌과 별다른 접점이 없어 지헌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가 해외출장을 떠났단 사실도 뒤늦게야 전해 듣게 된 것이었다.

1655114949212.jpg“이사님도 가셨다니 다행이네요. 광고주도 안심하겠어요.”

은비는 웃음도 화도 아닌 이상한 반응으로 툭 대꾸하고는 그들을 떠났다. 은비의 뒷모습을 보며 고은주 대리는 픽 코웃음 쳤고 미란은 난처한 듯 은주의 팔을 잡았다.

1655114949213.jpg“에이, 둘이 깨진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고 대리가 좀 너무했어.”

16551149492202.jpg“팀장님.”

하지만 공주마마의 사전에 반성이란 없다.

16551149492202.jpg“저는 칼이면 칼이에요.”

  * 출근한 은엽은 은비의 전화를 받았다. 은비가 다짜고짜 성을 냈다.

1655114949212.jpg[오빠, 이정오랑 정지헌이랑 어떻게 떼어놓을지 머리는 써보고 있는 거야?]

은비의 신경질에 이맛살이 구겨졌다. 언제부턴가 동생이 기어오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655114949212.jpg[이정오 해외출장에 정지헌이 따라갔다고! 그런데도 손 놓고 있을 거야?]

정지헌이 이정오를 따라 출장을 떠났단 사실은 은엽도 알지 못했다. 은엽이 무어라 대꾸를 하기 전에 은비의 말이 이어졌다.

1655114949212.jpg[걔 애 엄마야! 미혼모라고! 그런 애가 지금 지헌 오빠한테 집적거리고 있단 말이야!]

이제 은비는 악을 써댔다. 이 사실은 은엽 또한 알고 있었다. 그동안 은엽은 이정오에 대해서 조사했다. 이정오. 30세. 카피라이터. 어린 딸이 있는 미혼모. 아이의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정지헌이 기억을 잃은 것도 7년 전. 그 사실이 은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은엽은 이예나가 정지헌의 친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정지헌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아직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실이라면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16551149521076.jpg“채은비, 나대지 마. 알았어?”

은비의 충동적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은엽이 경고했다.

16551149521076.jpg“넌 그냥 가만히 있어. ”

은엽은 따끔하게 충고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해외출장이라니. 골치가 아팠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정지헌은 더 빨리 진실에 닿겠지.

16551149521076.jpg‘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를 떠올려 보았다. 정지헌과 이정오 사이에 불신을 만드는 것. 정지헌과 이정오의 과거에 흠집을 내는 것. 이정오를 겁주는 것. 이정오의 가족을 겁주는 것. 정지헌의 집안에서 이정오를 내치고 아이만 빼앗아오게 만드는 것. 아이를 없애는 것, 혹은 이정오를 없애는 것. 순서를 정할 것 없이 여러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야 할 것 같단 판단이 섰다. 최후에는, 정지헌이 이정오가 아니라 장영미 여사를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장 여사는 이정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정오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바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 멜버른 시내 촬영. 사전에 협조를 구하고 시청에도 허가를 받았지만 현장에서는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멜버른의 명소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촬영팀이 현장에 도착하여 장비를 막 설치했을 무렵이었다. 인명 피해는 없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현장을 정리하는 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려 촬영팀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정오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현장이 언제쯤 정리될지 물어보고 협조를 구했다. 처음에는 촬영팀과 정오를 귀찮게 여겼던 경찰관들이 정오의 호주식 영어 발음을 듣고는 호감을 보였다. 광고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지헌은 정오가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어제 오후, 지헌은 ‘더 크라운’이라는 식당을 다시 찾았다. 벽면의 사진들을 살펴볼 겸 사장과 더 이야기를 해볼 겸. 하지만 식당에서 자신의 흔적에 대한 다른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7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지헌은 식당 사장에게 혹시라도 자신과 사진을 함께 찍은 여자에 대해 무언가 알게 되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남겨놓고 식당을 나섰다. 과거를 알 수가 없으니 고민은 다시 현재로 옮겨갔다. 이정오의 매정한 태도가 계속 생각났다. 그 와중에 횡단보도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도망치려고 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잡힐 듯 집히지 않는. 그녀는 항상 그랬다. 크게 화를 내고 싶었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따지고 싶었지만 그녀를 눈앞에 두고 나니 부디 나를 보아달라는 간청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숙소의 카드키를 건넸다. 하지만 어젯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촬영은 11시에 끝났고 그 이후로 그녀가 방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연락조차,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기다림의 하룻밤이 지나버리고, 아침이 되어 햇살같이 환한 얼굴로 촬영장에 나타난 그녀를 보니 속이 조금 끓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녀에게 나란 사람은 별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지금 역시 그녀를 쫓아가서 어젯밤에 왜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헌은 충동을 지그시 눌렀다. 오늘은 그녀가 올까. 만약에 오늘도 오지 않는다면? 나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포기해야 하나? 당연한 일인데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곳의 말과 지리에 익숙한 그녀는 모든 배경과 잘 어울렸다. 창밖의 눈부신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영원히 내 것은 될 수 없는 풍경을. 그럼에도 그녀가 오래전 학생 시절을 보냈던 이곳에 자신 또한 한때 머물렀던 적이 있었단 사실이 어떤 위안을 주었다. 이정오. 우리의 인생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었다면, 어쩌면. 어쩌면 우리가 같은 프레임에 담겼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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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학원. 바둑판 앞에서는 언제나 눈을 초롱초롱 빛내던 예나가 웬일로 풀이 죽은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16551149521097.jpg“예나야. 오늘 우리 집에 갈래? 엄마가 빵 만들어준대.”

그런 예나에게 도빈이 말했다. ‘엄마’라는 말에 어깨를 한번 움츠린 예나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16551149551367.jpg“싫어.”

16551149521097.jpg“왜?”

예나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이제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16551149551367.jpg“……엄마가 출장 가서 안 와. 오늘은 전화도 안 받았어.”

16551149521097.jpg“그건 바빠서 그래. 우리 아빠도 출장 가면 전화 안 받아.”

도빈이 예나를 달래기 위해 정오를 변호했으나 예나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16551149551367.jpg“그래도 아침에는 전화해야지! 나 어린이집 가기 전에 인사해야지!”

엄마와 이렇게까지 오래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었다. 야근 때문에 엄마 얼굴을 못 보고 잠들었던 적은 더러 있어도 아침에는 언제나 엄마가 옆에 있었다. 가끔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 친구들이 있는 군산에 가도 하룻밤 지나면 다시 엄마를 만났다. 예나가 보고 싶다고 울음을 터트리면 엄마가 다음 날 아침에 군산까지 달려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16551149551367.jpg“엄마가 안 올 거 같아서 무서워.”

결국 예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간절히 바랐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적이 더러 있었다.

16551149551633.jpg“아이고, 우리 예나 왜 울어.”

선생님이 달려와 예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도 예나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때마침 도빈의 엄마 진서가 학원 안으로 들어왔다.

16551149521097.jpg“엄마!”

진서에게 달려간 도빈이 급하다는 듯 진서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16551149521097.jpg“엄마, 예나 울어. 빨리 와!”

도빈이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진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진서도 예나가 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6551149551654.jpg“예나야, 무슨 일이야?”

16551149551367.jpg“엄마가요. 호주로 출장 갔는데요. 아침에 예나한테 전화 안 했어요.”

예나가 끄억끄억 울면서 대답했다.

16551149551654.jpg“그랬어? 엄마가 바쁘셔서 못 하셨나 보다. 지금 아줌마가 전화해볼까?”

진서의 해결책에 예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는 바로 정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오가 부디 전화를 받아줄 시간이 있길 바라며. 길게 이어지던 통화대기음이 달칵 멈추었다. 예나는 진서가 건넨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정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51149580448.jpg[네! 도빈이 어머니!]

16551149551367.jpg“엄마아아!”

예나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예나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정오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16551149580448.jpg[예나야! 웬일이야!]

16551149551367.jpg“왜 전화를 안 했어어. 예나가 걱정했잖아아.”

예나는 휴대폰을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예나는 울음을 그치는 데 한참 걸렸다. 울음을 그친 후 전화를 끊고 나서도 무언가가 아쉬운 듯 입을 열지 못했다. 국순의 식당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빈이 예나의 마음을 달래듯이 말했다.

16551149521097.jpg“예나야. 나는 너랑 같이 영원히 평생 바둑학원 다닐 거야.”

16551149551367.jpg“…….”

16551149521097.jpg“계속 네 옆에 있을게.”

운전석. 귀여운 순애보의 수줍은 고백에 진서는 소리 없이 웃었다. 아들은 제 첫사랑을 바라보느라 엄마를 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들의 사랑에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진서는 뿌듯했다. * 정오는 예나를 겨우겨우 달래고, 진서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걱정을 끼쳐서 송구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전했다. 아침에는 촬영 준비를 하다가 국순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 이후 국순에게 전화가 왔으나 미처 받지 못했다. 예나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게 전화를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아이에겐 그 기다림이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심장이 철렁한다. 어젯밤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정오는 촬영현장을 둘러보는 양 고개를 돌리다가 지헌을 바라보았다. 지헌은 뒤편에 서서 광고주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외면하듯 빠르게 눈을 돌려 광고주를 보았다. 저런 태도를 보면 어제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손에 꼭 쥐여준 카드키는 여전히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는데. 예나의 전화를 받고 나니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나는 빨리 당신에게 닿아야 해. 우리 아이는 계속 자라고 있으니까. 그가 놓친 것들을 빨리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가 내 아이를 빼앗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모든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16551149580448.jpg‘저 사람의 휴대폰을 몰래 볼 수 있다면…….’

나쁜 짓이라는 건 알지만 정오가 정지헌의 어머니에 대해 제일 빨리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을 몰래 보려면, 그만큼 그와 가까워져야 하지. 그 생각에 결심이 쉽지가 않았다.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한다는 의지와, 또다시 그를 속여야 한단 죄책감이 그녀의 안에서 계속 다투었다.

16551149608411.jpg“이 대리 덕분에 촬영 잘 끝냈다. 새벽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밤 10시쯤이면 다 정리될 거야. 내일은 여유롭게 비행기 탈 수 있겠어.”

박영광 차장이 스케줄을 말했다. 밤 10시부터 내일 새벽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아침 비행기로 떠나야 하니 그다지 여유롭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건물 사이에 걸린 해는 도시를 붉게 물들이고는 이내 안녕을 고했다.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밤. 어느덧 모델도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광고주와도 인사했다. 광고주와 함께 떠났는지 지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정오도 촬영장 정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 짐만 가져다놓고 다시 나온 정오는 호텔 로비에서 몇 번 망설였다. 지헌이 준 카드키를 돌려주기는 어려울 테니 데스크에 맡길까. 로비를 크게 돌며 서성거리고 있을 때 광고주가 그녀를 불렀다.

16551149551633.jpg“이 대리님 여기 계셨네요. 누구 기다리세요?”

16551149580448.jpg“아, 아니요. 잠깐, 시내 좀 돌아보고 왔어요.”

당황한 정오가 겨우겨우 둘러대자 광고주는 끄덕이고는 인사했다.

16551149551633.jpg“네. 그럼 쉬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오도 광고주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광고주가 떠난 후 정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데스크에 카드키를 건네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욕실에서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정오는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앳되고 풋풋했던 스물셋 이정오는 이제 서른이 되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열심히 사느라 스스로를 꾸미는 데엔 소홀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셋 그때만큼 내가 예쁜 사람일까에 대해선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날 원하는 거라면, 그 사람은 내가 여전히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에는 그녀 또한 여전히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드키 하나만 들고 방을 나섰다. 그는 5층 객실. 그녀는 4층 객실. 그에게 가는 동안 행여나 다른 동료들이나 광고주와 마주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초조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방문 앞에 닿았다. 이 문을 열면,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다. 초인종을 누를까? 그러고 싶었지만 그 소리가 너무 클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내게 카드키를 준 건가? 알아서 열고 들어오라고.

16551149580448.jpg‘그래도 안 돼.’

그가 광고주와 객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수도 있다.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래. 문을 두드리자. 그리고 기척이 없다면, 그가 방에 없는 거라면, 카드키는 데스크에 맡기고 방으로 돌아가자. 정오는 몸과 마음에 단단히 기합을 넣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단단한 기합만큼 그 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소심한 도약이었다. 하지만 문은 열렸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던 걸까?

16551149580448.jpg“이사…….”

그를 부를 새도 없이. 정오는 그가 내뻗은 손길에 붙잡히듯이 안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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